김세연: 이번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가족 및 아동 청소년 심리 치료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이론 연구와 실천 경험을 쌓아 오신 새라심리상담연구소의 김사라 소장님을 모시고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참혹한 범죄 발생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이유 없이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가족 간에, 연인 간에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런 사건들이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할 만큼 일상화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점점 심각해집니다.
지난 〈스케치 다이얼로그〉 사법 편에서는 시민들이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범죄 발생 이후에 어떠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지 다뤄 봤습니다. 그렇다면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 경제 범죄로 타인에게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 모두 그 행위에 근원적인 범죄 유발 원인이 내포되어 있을 텐데, 성장 배경과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일련의 경험들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교육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졌다는 진단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대한민국 다음에 들어설 국가에서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심리 케어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직전 대담의 첫 번째 화두는 〈지옥에서 온 판사〉라는 드라마의 내용이었습니다. 혹시 소장님도 이 드라마를 보셨나요?
김사라: 저는 본방송으로 봤고, 나중에 따로 정주행도 했어요.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실제 판사가 아니라 지옥에서 온 판사가 등장합니다. 만약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따라 지옥으로 가는지, 가지 않는지만 다뤘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지옥에서 온 판사가 가해자에게 꼭 하는 질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잘못을 인정하는지입니다. 두 번째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었는지를 물어요. 이 두 가지를 충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벌을 합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 두 가지를 질문하고 있다고 봤어요.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는지, 피해자에게 용서를 비는지 말이죠. 그리고 인간이 가진 마음을 어떻게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까지 총 세 개의 질문을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마음. 이게 있어야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 청소년, 그리고 성인도 다르게 살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사실, 타고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 좀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죠. 충동이 강한 기질이거나 위험 회피가 낮은 경우입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그러다 보니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위험한 일도 하게 됩니다. 가정과 사회, 학교 안에서는 물론이고 이웃 간에, 동료와 친구를 통한 교육과 행동 체험 학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이뤄지면 설령 실수로 범죄를 저지르게 돼도 새롭게 인생을 살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런 교육과 행동 체험 학습의 기회가 없다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겠지요. 미안해하기는커녕 자신의 잘못도 깨닫지 못한 채 그냥 살아갈 테고요.
김세연: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이 다를 텐데, 이 차이가 우리가 어떤 체계를 만들어감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철학적 논쟁입니다만, 넓은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는 모든 개개인의 분포를 하나의 점으로 수렴시키는 것은 과도한 이분법적 사고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 현실을 보면 성악설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만한 사람부터 성선설의 대표 사례까지 스펙트럼이 넓게 퍼져 있으니까요. 다만,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이뤄지는 사회에서 법적 제재, 그리고 불법은 아니지만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지’ 하는 사회적 합의가 작용하면서 개인의 일탈을 방지하고 있겠죠.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생각해 보죠. 길을 가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동이 한두 사람에게 용인되기 시작하면 점점 아무렇지도 않은 행위가 되어 사회 질서의 근본이 미세하지만 계속 허물어지고, 나중에는 큰 기둥이 무너지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겠죠. 특히, 기질적으로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의 신체적·정신적 자유를 억압하거나 훼손하면서까지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이 처음부터 단번에 극단적인 수준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동물 학대범이 살인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크다는 연구처럼, 작은 단계들을 거치며 행동이 점점 심각해집니다. 초기 단계에 일종의 방어벽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사라: 충동이 강하고 위험 회피가 낮은 아이들을 ADHD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규정하고 싶지 않지만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더 모험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거죠. 이런 아이들이 A로 갈지 B로 갈지의 기로에서 가정과 사회에서의 교육과 학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에게 위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강아지부터 시작하지 않거든요. 개미로 시작해서 조금 더 큰 귀뚜라미, 그다음에는 물고기, 더 시간이 지나면 새나 토끼로 갑니다. 그러다 강아지에게 위해한 행동을 하죠. 우리 사회에선 다른 동물과 달리 반려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있으니까 세간에서는 범죄자들의 과거 범죄 행위를 이야기할 때 강아지에게 위해를 가했던 전력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어린 시절 아주 작은 동물부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예요.
개미는 아주 작은 생물이니까 죽여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별로 없는 거예요. 이럴 때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에서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합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 비슷한 사례가 있어요. 아이가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는데 아이가 슬퍼하지 않으니까, 어머니가 의심을 했어요. 하지만 자극 추구가 강하고 위험 회피가 낮은 아이라 해도 반복적인 학습을 받으면 나중에는 슬픈 일이라는 것을 인지합니다. 반려동물의 무덤을 만들고 봉분을 세우고 십자가도 만들어 주는 과정 속에서 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런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기질이 더 충동적이라고 하더라도 학습과 학습에 따른 연습이 되어 있다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이 작은 부분이라 여기고 간과해 버립니다. 개미는 그냥 지나치죠. 새도 지나치고 물고기도 지나치고요. 물고기가 죽으면 그냥 변기에 버리잖아요. 그런 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물고기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고 인식하게 돼요. 저는 이게 정말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지능 수준의 정도, 즉 얼마나 고등 생물인지와는 관계없이 생명에 대한 존중이 모든 아이들에게 심어진다면 같은 종인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는 훨씬 더 높은 방벽을 넘어야 하니까, 궁극적으로 극단적인 행동까지 이어지는 일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미물로 여겨지는 작은 생물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쌓이고 쌓여 결국 궁극적으로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키우던 금붕어가 죽었을 때 묻어 주고 간소하게나마 의식을 치러 주는 사려 깊은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가령 백 명의 부모가 있다고 할 때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해지네요. 어쩌면 금붕어를 변기에 그대로 흘려보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지 모릅니다.
국가 차원에서 보편적인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통일된 규범을 익히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지나친 주입식 교육과 지식 암기가 이뤄집니다. 또 억지로 변별력을 갖추려다 보니 입시 제도는 왜곡됩니다. 현재 우리는 지식 암기를 넘어서서 기계와 협업하며 살아야 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금 주산을 이용해 계산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 — 특히 생명 윤리 — 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관되고 보편적인 교육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심어 줄 수 있는 제도를 백지에서 새로 만든다면 어떤 시도가 가능할까요? 물론 모든 개혁론에서 제도냐 사람이냐의 논쟁이 있습니다. 결국 두 가지가 함께 가지 않고는 실질적인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사람은 사람대로 준비하면서, 동시에 생명 존중에 대한 개개인의 편차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을 설계해 보면 좋겠습니다.
김사라: 학교에서 봉사 활동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했던 제도가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과거 제가 근무했던 기관에서는 아이들이 봉사 활동 점수를 채우기 위해 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간을 채우기 위해 형식적으로 활동하던 아이들이, 점차 정해진 시간 이상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품행 장애로 문제를 일으키던 한 아이에게 봉사 활동을 시켰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아이는 발달 장애 아이들을 돕는 봉사 활동을 배정받았는데, 처음에는 활동을 몹시 싫어하며 도망 다니기 바빴습니다. 저는 매번 그 아이를 붙잡아 오느라 바빴고요. 그렇게 매주 두세 시간씩 활동을 이어 가던 아이가 두 달이 지나자 자발적으로 봉사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3개월쯤 되었을 때 아이가 저에게 담배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들이 와서 자신의 손을 잡고 냄새를 맡는 게 부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그 아이는 담배를 끊기 위해 노력하며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재학 기간에 천 시간 이상 봉사 활동을 했고, 여러 곳에서 봉사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기도 하고 표창도 받으면서 그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에도 진학했고요. 지금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은 형식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큰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런 제도가 사라졌습니다.
김세연: 봉사 활동 제도가 사라진 이유가 뭐였습니까?
김사라: 봉사 활동 실적이 대입에 반영됐는데,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교육부가 대입 공정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2024년 대입부터 봉사 활동을 포함한 비교과 활동을 반영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줄었어요. 최근에 제가 조카를 포함해 아이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다녀왔는데, 제 조카가 봉사 활동 인증서를 받아서 학교에 제출했더니 선생님께서 이런 것은 필요 없다고 하셨다는 거예요. 그 인증서가 필요 없다 하더라도 참 잘했다며 칭찬해 주셨다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조차 이런 것은 필요 없고,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현실입니다.
충동이 강하고 위험 회피가 낮은 아이들은 재미있는 것을 굉장히 선호합니다. 이 아이들을 봉사 활동에 데려가면 정말 재미있어해요. 또 오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굉장히 신나 합니다. 에너지도 발산되고 교감을 경험하기도 하니까요. 이런 친구들일수록 봉사에 더 열심이고 잘하기도 합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에너지가 더 많으니까요. 이렇게 공식적으로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식적 시간을 많이 부여해 준다면, 이 아이들이 자신의 기질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칭찬을 받거나 지지를 받는 등 심리적인 부분에서 얻는 것도 있죠. 그런데 그런 기회가 지금 우리나라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봉사 활동에 데려가고 싶어도, 학원 등을 생각하면 갈 수도 없거니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정보도 부족하죠.
김세연: 봉사 활동을 교육 과정의 중요한 일부로 포함시키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겠네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직접 도와주는 경험을 일정 시간 동안 축적하다 보면 생각의 변화도 생길 수 있겠고요. 아까 말씀하신 사례처럼 봉사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 윤리와 관련된 경험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교육청 차원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교감할 수 있는 현장 학습 공간을 곳곳에 조성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포유류 뿐만 아니라 조류, 어류, 곤충 등과의 교감을 통해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최근 폐교되는 학교를 이러한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학생들이 도심 내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생명 존중 교육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명 존중에 대한 인식을 학생 때부터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 존중에 대한 교육은 단지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된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학생에게 핀잔에 가까운 이야기를 툭 던진 교사나 죽은 물고기를 변기에 버리는 부모의 사례처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은 훨씬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생명 존중 교육을 받은 세대가 부모와 교사가 되어야 사회 전체적으로 체계가 잡힐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시점이 오기까지는 과도기로서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부터 환경 보호 캠페인이 이뤄지면서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는데,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성장한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비로소 자녀들에게 환경 보호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교육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 존중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가치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도기적 시기에 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한 재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김사라: 저는 대학교 때 봉사 활동을 6000시간을 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제 삶에서 많은 것이 바뀌는 체험을 했고요.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있었기에 청소년기, 특히 성인이 되기 전 봉사 활동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센터에 오는 아이들과 함께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다음에도 또 가자고 요청하더군요.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저도 가겠다’고 하면서 참여를 희망하게 됐죠. 이제는 매달 한 번씩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저희는 유기견 센터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봉사 활동을 간 아이들은 유기견을 굉장히 편안하게 받아들여요. 센터에는 노안, 백내장, 녹내장 등으로 인해 시력을 거의 잃은 유기견도 있고 학대로 인해 휠체어를 타는 강아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강아지들을 더욱 예뻐해요. 산책할 때도 불편한 강아지를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강아지들과 함께 뒹굴며 놀기도 하고, 강아지들이 실수로 용변을 봐도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지저분하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아요. 조용히 저에게 와서 강아지가 아픈 것 같다고 전할 뿐이죠. 용변 냄새가 나는데도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인인 저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쉽게 마음을 열고 유기견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선생님이나 부모님들께서는 이런 모습을 보실 기회가 거의 없겠죠.
김세연: 교원 양성 과정에 봉사 활동 시간을 필수 과정으로 넣는 것은 어떨까요? 단순히 한 학기 동안의 단발성 활동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필수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깨달음을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 있으니, 충분한 시간을 통해 모든 교원 후보자들이 비슷한 정도로 봉사 활동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런 경험과 깨달음은 교사가 된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겠죠. 이를 통해 긍정적인 영향력이 더 빠르게, 더 광범위하게 학교와 사회에 확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사라: 저는 대학교 시절에 관련 수업을 수강하면서 우연히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이후 상담을 하면서 봉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고 아이들에게 자주 권하게 됐습니다. 상담을 진행했던 아이들과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는데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이에게 며칠 전에 물어봤습니다. 지금은 엄마가 된 그 아이에게 저에게 상담받았을 당시에 뭐가 너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더니, 가장 자신을 변화시켰던 활동 중 하나가 바로 봉사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걸 시키나, 꼭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활동이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엔 모를 수도 있지만, 도움이 되었음을 나중에는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경험들이 점차 전파된다면, 그리고 제도화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고 의무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봉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앞서 이야기 나누었던 것처럼, 범죄를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상대방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거나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기 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망설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돕거나 양육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세연: 새로운 사회를 설계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겠네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회가 임박했다고들 말합니다.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도 그 과정에서 등장했는데, 용어의 뜻이 최근 정치적으로 남용되어 다소 변질된 측면이 있습니다만, 소득이 증발한 시대에는 기본 소득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게 되겠죠.
우리나라의 기초 생활 보장 제도나 미국에서 고안된 근로 장려 세제(EITC) 같은 사례를 보면,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일 때는 지원을 받고, 소득이 늘어나면 제도에서 졸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소득 보장 제도에 봉사 활동을 포함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다른 누군가의 세금으로 기본적인 생활에 도움을 받는다면, 신체적·정신적으로 여력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도록 제도에 편입하는 거죠. 양육 경험을 쌓거나 장애가 있는 동료 시민이나 동물을 돕는 활동 자체가 높은 치유 효과를 가질 것 같습니다. 이런 봉사 활동은 미래 제도 설계뿐만 아니라, 현재의 현실 세계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교정 행정의 중요한 요소로 통합할 수도 있겠죠.
물론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도가 변경될 때 처음 시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교정 공무원들이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면 이러한 제도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커지겠죠. 앞선 〈스케치 다이얼로그〉 사법 편에서 논의했습니다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특정 순간에 행동을 교정해 줬다면 비극적인 결과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예컨대 어려서부터 봉사 활동을 하고 남을 돕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경험했다면 무언가가 분명히 달라졌겠죠.
또 다른 시각으로는, 이들이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서도 다른 경험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부모님이나 선생님, 또는 다른 어른들에게서 적절한 이야기를 듣거나 적절한 행동을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상처와 결핍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역시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이 논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재교육, 그리고 다음 세대의 교육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봉사 활동이나 생명 윤리 교육과 함께, 언행에 있어서도 유의해야 할 점이나 금기시해야 할 요소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 X세대나 86세대에서는 “너는 이것도 못 하냐”는 식의 핀잔이나 심지어 “이렇게밖에 못할 거면 왜 사냐”는 식의, 지금은 용납되기 어려운 표현의 질책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너무 흔해서 문제라는 생각도 하기 어려웠죠. 그게 불과 30~40년 전입니다.
그러다 10년쯤 전부터 한 5년 전까지 ‘꼰대 논쟁’이 활발했죠. 문화적 격차로 인해 기성세대가 힘들어했던 시기입니다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자각하고 교정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반인권적이고 일방적이거나 권위적인 행태가 상당 부분 걸러진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자신이 받았던 교육의 방식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며 상처를 주는 부모들도 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상처와 결핍을 주지 않기 위해 유의해야 할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사라: 사실, 어른들이 어떤 말을 해도 결과적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선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와 내 동생이 생각하는 아버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부모인데 말이죠.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최근 배우 최강희 씨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선하고 성실한 배우로 알려져 있죠. 그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15등급이었다고 고백하더군요. 가장 낮은 등급이죠. 그런 최강희 씨가 학창 시절에 가장 잘했던 것은 다이어리 꾸미기였다고 해요. 굉장히 열심이었고, 그 과정이 배우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어요. 우연히 버스 안에 다이어리를 놓고 내린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방송 스태프들이 다 돌려 봤다고 해요. 나중에 다이어리를 돌려받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다 봤다고 하니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관계자가 보게 되어 우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계기라는군요.
결국 무엇을 잘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길이 열리고 기회가 생겨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가능성을 보지 못하죠. 중고등학교 시절 최강희 씨는 그저 꼴등을 하고 학교에 잘 안 가는 아이였을 뿐입니다. 어른들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아이들에게 심어 줍니다. 하지만 정작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아이들은 저에게 토로해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갔는데 대학에서도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취업 걱정을 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아이들은 언제든지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부모와 교사의 말과 행동이 상처가 될 수 있죠. 하지만 아이가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그 상처를 극복할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한 확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최강희 씨의 어머니는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에 ‘그래, 오늘은 가지 마’라며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줬다고 합니다. 아마 자신의 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믿음과 지지는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와 동시에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어른들의 역할이죠.
김세연: 말씀하신 내용은 기본적이고 당연한 과제이고, 당연한 태도여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죠. 우리 사회에는 획일적인 잣대와 압박이 여전히 만연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탈조선’ 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권위적인 질서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과거의 제도가 새로운 형태로 왜곡되어 현실의 문제를 더욱 심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고등학교 입시 경쟁이 이제 대학 입시로 옮겨 왔는데, 병목 현상이 해소되지 못한 채 점점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공교육은 무너지고, 교육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모나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 같은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도, 입시라는 현실적 압박 앞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마치 경기장의 트랙 위에서 양옆 시야가 가려진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시험 기계로 길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등 바람직한 교육의 자세를 유지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소장님의 말씀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평범한 부모들이 현실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김사라: 부모님들도 사실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본인 삶에 대한 자기 결정을 확립하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교과서처럼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관련한 책은 많이 읽는데, 현실에서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잖아요. 인간은 로봇이 아니고,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니까요. 그런데 책에 나오는 그대로 하기를 바라고 책 내용에 의존합니다. 또, 누군가 권위 있는 사람이 한 말을 모두 옳은 것처럼 생각하고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님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지 않고요.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가장 잘 모를 수도 있어요. 또,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도 독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이 문화 덕분에 긍정적인 발전을 이룬 부분도 많지만, 동시에 기다려 주는 인내심이 부족해지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학교도, 부모님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각을 하려면 좀 기다려야 합니다. 어른들도 뭔가 고민할 때 빨리하려고만 하면 잘 안 되잖아요. 조금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는 어떤 답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설령 최선의 답이 아닐지라도 말이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스스로의 판단이 생깁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김세연: 그게 핵심적인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정해진 틀 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이 틀을 누가 정했는지조차 불분명한 경우가 많죠.
부모들 또한 자존감이 낮거나,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주체적인 태도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가 정한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중 심리와 사회적 압력 속에서 개개인의 고유성과 다양한 개성은 점점 사라지고, 획일적인 잣대만 남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영향을 미치고, 문제를 더욱 심화합니다.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면, 부모로서 어떤 결단과 행동이 필요할까요?
김사라: 부모들은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잘 주지 못하죠. 동시에 굉장히 과보호하고요. 부모들이 공부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대부분 대신해 주니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편하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걸어서 5분 거리의 학교를 7분 걸려 차로 태워 줘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차를 태워 주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럴 때 부모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를 명확히 정해 줘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해 주는 것이 선생님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것을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부모들이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나머지는 다 된다, 다 해주겠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 공부를 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다 해주니까요.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해야 할 것과 부모가 도와줄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해 주어야 합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본 사례인데요, 부모가 이사를 준비하며 그 과정을 TV 프로그램 측에 의뢰한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자기 방에 가깝게 배치해 달라고 싸우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시끄럽고 좋을 것이 없을 텐데 왜 그럴까 봤더니, 부모가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도우면 용돈을 주는 식으로 교육을 해온 것이었어요. 원래는 언니 방 근처에 세탁기가 있어서 언니가 빨래를 더 많이 하고 용돈을 더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 이사 갈 집에서는 공평한 위치에 세탁기를 놓아 달라는 의견을 내더군요. 아이들이 생각을 한 것이죠. 이렇게 경계를 확실히 해주고 인내심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실 부모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긴 하죠.
김세연: 유대인들의 교육법을 보면, 행동의 지침이나 판단 기준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 논의하고 있는 제도 설계 측면에서는 풀기 어려운 과제일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조율할 수 있는 일종의 메커니즘을, 습관과 관습을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겠죠. 방금 말씀하신 대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그어 주고, 기다려 주고, 아이들이 작은 성취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책임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유대교라는 종교적 인프라와 탈무드처럼 대대로 전승된 전통 텍스트는 유대 공동체 내에서 일종의 품질 보증(quality assurance) 역할을 합니다. 형제간의 관계, 재산 관리, 사회적 책임과 의무 등 다양한 가치 체계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속 가능한 가치 체계의 착근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체계가 우리 현실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가치 체계에 공감하고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상적인 가치나 실천이 인정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즉 일종의 ‘처벌’을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들은 다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데, 어떤 사람은 혼자 남아 남이 버린 쓰레기를 줍게 되는 거죠. 다른 사람이 일으킨 문제를 소수가 떠맡는 결과를 낳습니다. 모두가 새치기를 하는 상황에서 혼자 원칙을 지키려다 가장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 체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만 가치를 실천하고 다수는 무관심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겠죠. 심지어 소수가 만들어 낸 가치를 다수가 남용하거나,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을 착취하는 형태로 귀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비슷한 지점으로 모으고, 그들의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혹시 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신지요?
김사라: 제가 어릴 적에는 아이들에게 각각 역할을 맡겼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선생님을 도와주는 분들이 많지 않았고, 선생님 혼자 모든 일을 맡아야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칠판 지우개를 털거나 꽃에 물을 주는 역할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셨죠. 처음에는 아이들이 불만스러워하기도 했지만, 점차 맡은 역할에 익숙해집니다. 맡은 일을 잘하면 계속 그 역할을 맡게 됐고요, 돌아가면서 일을 배정받기도 했죠.
한 친구는 꽃에 물을 주는 일을 담당하게 됐는데, 초반에는 물을 잘 못줘서 꽃이 시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이것은 네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며 꽃을 돌보는 방법을 알려 주셨어요. 선생님이 직접 꽃을 관리했다면 더 잘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수한 이후에도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꽃을 계속 맡기셨어요. 그 친구에게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현재 선생님들은 이런 역할 분담을 굉장히 어려워하는데, 선생님이 다 해주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세연: 〈스케치 다이얼로그〉 교육 분야에 관한 대담에서 선생님들이 서류 작업에 파묻혀 있어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할 시간 자체가 매우 줄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김사라: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역할 분담을 하려고 하면 처음에 틀을 만들기가 매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년 초에 그 틀을 잘 만들면 1년 내내 학급이 잘 돌아간다고 하더군요. 1년 내내 힘들지, 학년 초반에 좀 고생해서 틀을 잘 만들지 생각해 보면, 후자가 낫지 않나 싶습니다.
김세연: 교원 양성 과정에는 당연히 아동 심리와 의사소통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겠죠. 앞으로 지식 전달에서 인간 교사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겠지만, 협업 능력을 기르고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돕는 과정은 더 중요해질 겁니다. 이는 일종의 민주주의 교육이 될 수 있을 텐데,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하고 합의를 도출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이 학교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이죠.
교실이라는 시스템을 원활히 작동시키기 위해 학생들이 역할을 분담하게 되면, 책임과 의무, 권한에 대한 인식과 체험을 자연스럽게 쌓아 갈 수 있게 되겠죠. 이런 경험을 학교에서 할 수 있게 된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앞서 논의했던 네 가지 핵심 원칙을 다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할 것, 기다려 줄 것, 아이들이 작은 성취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할 것, 아이들이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적용 가능하지만, 정규 분포에서 오차 범위를 벗어난 소수에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안정적일 때에는 이러한 소수의 비율이 적지만, 사회가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이 비율이 증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과거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는 가정 폭력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취 상태에서 가정 폭력을 일삼는 부모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가 존재할 때, 이를 다루고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결국 어릴 때부터 상처와 결핍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로 연결되는데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김사라: 저는 과거 오랜 기간 가정 폭력 피해자 보호 시설에서 근무하면서 피해 여성과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보호 관찰을 받는 행위자들도 교정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기도 했고요. 프로그램 수강 명령을 받은 분들을 보며 느낀 것은 이분들 역시 공통적으로 상처를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경험했던 것이죠.
피해 아동 중에는 초등학생 때 만났는데 이제는 결혼한 아이들도 있어요. 청소년 시기에 만났던 아이들 중에 아주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불안감이 높습니다. 어린 시절 원치 않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라 온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로 왔어요.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반항했던 아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면 대신 맞고, ‘그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오히려 그 아이가 잘못했다, 아빠를 자극했다고 이야기하고요. 원인을 살펴봤더니, 이 아이만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와 같이 지내지 않은 시기가 있었어요. 어머니가 폭력을 피해서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함께 집을 나간 겁니다. 7살 이후에야 다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폭력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폭력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굉장히 우울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반면, 다른 형제들은 폭력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드는 아이가 잘못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 아이와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데요,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아이는 매우 우울했지만, 눈빛이 살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네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더군요. 지금은 달라졌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경찰은 가족의 문제이니 가족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신고했다가는 더 맞게 될 뿐이니 가족들도 ‘네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에 죽고 싶었던 마음에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의 상담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가진 근본적인 상처와 문제를 이해하고 그들을 봐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동 학대 관련 신고 의무가 있으니, 그 의무를 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근원을 봐주면 좋겠어요.
김세연: 앞서 진행했던 〈스케치 다이얼로그〉 사법 편의 대담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경찰의 수사력이 부족하다 보니, 증거 수집과 범죄 입증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경찰의 수사력이 보강돼야겠죠.
사실 저는 대한민국의 국가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망가졌고, 단순히 고쳐 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이성이 정상적으로 살아 있다면, 가정 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족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과거에 비해 이런 상황이 많이 개선됐지만, 높아진 국가 위상과 시민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가정 폭력의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상담을 통해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훨씬 어릴 때부터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 이성이 살아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김사라: 아이들이 가정 폭력으로 신고를 했을 때, 신체적으로 멍이 드는 등의 명확한 폭력의 흔적이 없으면 경찰이 개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분리 조치를 할 수 없고, 가해자를 퇴거시킬 수도 없어요.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신체적 폭력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하는데요, 실제 가정 폭력은 신체적 폭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정서적 학대나 방임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히려 신체적 폭력보다 정서적 학대나 특히 방임은 장기적으로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체적 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항상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기 때문에, 때로는 잘 대해 주는 순간도 있고, 미안함을 표현하는 순간도 있죠. 하지만 방임의 경우에는 24시간 내내 돌봄이나 관심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이 지속됩니다. 아이들에게 훨씬 더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죠. 우리가 24시간 내내 정신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진짜 너무 무서운 일이잖아요.
가정 폭력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성인이 된 후 결혼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 배우자와 그 가족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이들이 고민하게 되거든요. 아이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정서적 학대, 방임, 경제적 학대의 경우에도 물리적인 폭력만큼이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피해 아동이 안심하고 자신의 상황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죠.
김세연: 가정 폭력의 피해 경험이 어느 정도나 되죠?
김사라: 18세 미만 아동 인구가 700만 명인데, 그중에 학대 피해를 경험한 아동이 2만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정서적 학대와 방임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훨씬 늘겠죠. 3분의 1까지 될 수 있다고 보는 분도 있어요.
김세연: 아동 인구의 0.3퍼센트만 해도 심각한데, 집계 기준에 따라 아주 많게는 3분의 1 수준까지 간다면, 한 국가와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지 암담하게 느껴집니다.
김사라: 현실적으로 성 학대를 받은 아이도 다시 부모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분리 조치를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뻔히 문제를 알면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다시 그 환경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죠.
김세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에 밝은 공간을 아무리 조성해 두더라도 여전히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공간이 남아 있겠죠. 아이들이 어떤 나라에 태어나고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는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본인 잘못이 아니고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부정당하는 상태를 방치한다면 결코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라 할 수 없겠죠.
물론, 완벽한 상태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최소화하고, 체계적으로 치유하며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백지상태에서 사고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모두 규정하고 통제하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니겠죠. 가장 바람직한 접근은 공적 영역의 기능과 사적 영역의 자유, 안전, 프라이버시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통제보다는 넛징(nudging) 같은 간접적이고 최소한의 국가 개입을 허용해서 사회 전체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사라: 제가 가정 폭력 행위자 교정 프로그램도 오랫동안 진행하다 보니 느낀 바가 있어요. 가정 폭력 행위자 보호 관찰 수강 명령 프로그램은 보통 40시간인데, 행위자가 일정 기간 동안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수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참여하신 분 중에는 ‘내가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며 좋았다는 소감을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느끼는 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로그램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는 분도 있었습니다. 또 일부는 프로그램까지 안 가고 약한 처벌을 받는 분도 있다 보니까, 프로그램에 오는 분들 중 일부는 상대적으로 억울해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프로그램에 초기에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기보다는 억울하다는 말부터 시작합니다. 가정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도 있는데 억울하게 나만 처벌을 받는다는 식이죠.
물론, 사회적으로도 억울함을 방지하기 위해 공정한 처리가 필요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사람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내려진다면, 억울함이 생길 테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이 저지른 가정 폭력에 대해 ‘정말 잘못했다’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족 내에서도 더 잘 지내고, 좋아졌다는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반면, 억울함만 호소하고 자기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은 그러한 변화를 경험하기 어렵죠.
김세연: 운 나쁘게 걸렸다는 것이네요.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잘못을 인정하느냐, 반성하느냐, 용서를 받았느냐를 따졌는데, 반성이나 용서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는 것이군요.
40시간의 보호 관찰 수강 명령을 받으면 강의를 듣고, 실습이나 역할극 같은 것도 해보겠죠. 그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행동 변화로까지 이어진 분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울해하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결국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김사라: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들에게 있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프로그램 이수 시간이 늘어나기도 하고 조사가 나가고 하는 것들을 가장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이수를 해야 하니 시간을 뺏겨 경제적 손실이 크고,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물론 많은 것을 느끼는 분도 있지만, 내가 뭘 잘못했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거든요. 우리 어머니는 더 많이 맞았고 하면서 말이죠.
김세연: 〈지옥에서 온 판사〉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는데요, 드라마에서 지옥에서 온 판사는 가해자를 피해자가 겪은 것과 똑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밀어놓고 같은 경험을 시킵니다. 물론, 환상이기는 하지만요. 최근에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배우들을 동원해서 참가자가 특정 상황을 경험하도록 하는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을 선보였는데, 소통이나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이런 식으로라도 충격을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지 않고는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정 폭력으로 40시간 교육을 듣게 됐는데도, 40시간 동안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게 제일 고통스럽다는 건 상황 파악이 한참 잘못된 거죠.
김사라: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힘이 있을 때 가해자가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상담했던 피해 아동 중에는 부모님이 이혼하지는 않고 따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부부로 남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하게 되자 아버지라면서 참석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저를 ‘우리 선생님’이라며 아버지에게 소개해 주셨는데, 제가 참지 못하고 “아버님 좋으시겠어요. 해주신 거 하나도 없으신데 알아서 자녀분이 이렇게 잘 커줬으니 얼마나 좋으시겠어요”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분이 너무 당황하면서 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더라고요.
김세연: 일종의 사회적 압력을 가하신 것이군요.
김사라: 다른 경우도 소개해 드릴게요. 가정 폭력의 피해를 받은 아이들과 어머니는 독립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가해자가 쫓아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립니다. 피해자 보호 시설에 오는 분들 중에 그런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일부 가해자는 전국을 뒤지며 피해자를 찾아다니기도 해요. 심지어 학교까지 찾아와서 마주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지금보다 나이가 어릴 때였으니, 그런 분들은 대개 처음에는 저한테 반말을 하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특징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언제나 ‘아가씨’ 이렇게 부르거든요. 저는 그런 호칭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단호하게 대응하니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어머니한테 했던 것처럼 같은 여자라고 저한테 똑같이 하시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죠. 나중에는 저를 ‘선생님’, ‘팀장님’이라고 불렀어요.
그때 느꼈습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매우 약한 존재라는 것을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도 말해 줬어요. 너희들이 당당하게 대하면 아빠도 너희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죠. 실제로 어느 날 한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봤지만, 자신은 맞은 적이 없어서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만나고 나서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죠. 그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음에도 자신이 나서서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아버지가 계속 소란을 피우자 아이는 정확하게 ‘다시는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이야기했고요. 결국 아버지는 무릎 꿇고 사과했고, 이후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경험을 통해 보자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 아이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답하더군요.
김세연: 제대로 된 국가 체계라면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지기 전에, 즉 폭력의 정도나 빈도가 높아지기 이전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가정 내 폭력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기 단계에서 "우리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실제로 폭력이 반복될 경우 즉시 개입해서 피해자 보호 조치를 시행하는 대응 체계가 구축된다면, 지금까지 발생했던 많은 비극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경찰, 사회복지사, 지자체 등 관련 행위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경찰 내 여성청소년계나 사회복지 기관 등 다양한 부서와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대응 체계가 강약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에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낮은 단계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강한 수단이 사용되거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약한 수단이 적용될 경우 모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체계를 잘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사라: 우선 학교 안에서는 가정 폭력을 숨기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쟤네 집이 이랬대, 이러면서 자꾸 낙인을 찍잖아요.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자꾸 그렇게 얘기를 하죠. 가정 폭력을 얘기할 수 있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숨기면 점점 심해지거든요.
김세연: 우리나라 이혼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만, 20~30년 전만 해도 부모가 이혼했다고 하면 상당한 낙인 효과가 뒤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낙인을 줄이거나 없애는 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이 어렵고, 사회적인 각성이 한 번 일어나야 합니다. 모두 쉬쉬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도 사회적 시선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과제로 남습니다.
김사라: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성교육을 하는 것처럼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교육이 있어도 좋겠어요.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문제를 이야기한 다음에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하겠죠. 폭력이 있다는 걸 알면서 그냥 조사하고 귀가 조치시키는 게 아니라, 구금처럼 자유를 박탈해야 해요. 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한 것이 결국 자유의 권리를 박탈한 거라고 생각해요.
김세연: 아까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역할극 센터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무섭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설과 제도도 검토해볼만 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전문 배우들이 참여해 상황을 잘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면 좋겠습니다. 가해자를 철창 속에 가두는 구금도 효과가 있겠지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절차를 통해 역할극 기반의 교정 과정을 제공하는 것도 가정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사라: 그리고 또 하나는, 결정이 빠르게 나와야 해요. 피해자들이 불만을 표했던 얘기 중 하나가 조치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부분을 억울하고 힘들어해요. 6개월, 1년이 걸리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죠. 그사이에 문제가 괜찮아진 집도 있지만, 이혼을 하는 집, 따로 사는 집도 많아요. 상황이 다 끝나 있는 거예요.
김세연: 〈스케치 다이얼로그〉 사법 편에서도 같은 맥락의 문제가 논의된 바 있습니다. 범죄가 발생하고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법 절차가 장기화하니까 피해자가 지치고, 억울한 감정이 추가로 생긴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행정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절차를 개선하면 충분히 가능한데, 현재 행정 체계의 경직성이 높아서 불필요한 시간이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즉시 대응할 수 있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인데, 일단 이렇게 기록을 해두고 향후 개선 방향을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유년기나 청소년기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기에 어떤 경험을 제공하면 범죄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해법 중 하나로 남을 돕고 생명을 존중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봉사 활동 시간을 교육 과정 뿐만 아니라 교원 양성 과정에도 포함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머지않은 미래에 가족 단위든 개인 단위든 기본소득 체계가 작동한다면, 국가로부터 생활비 지원을 받는 만큼 사회적 기여를 통해 보답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 수령자가 누군가를 돕는 노동이나 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서, 사회적 기여와 지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 설계되고 운영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사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더 무기력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을 받으려면 1년에 최소 몇 시간은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는 기준이 생기면 사회적으로 선순환이 될 것 같습니다.
김세연: 가령 기본소득을 받으려면 50시간이든 100시간이든 자신의 노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둔다면 이런 시스템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금 논의는 적극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억제하는 접근도 필요합니다. 아까 논의가 당근이라면, 이건 일종의 채찍에 해당하겠죠. 가정 폭력 가해자에게는 단순한 경제적 고통 이상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 방안 중 하나로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방식의 행동 교정에 대해 잠시 논의해 봤습니다.
특히, 처벌과 교정이 사법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그 전 단계에서 행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최단 기간 안에 빠르게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김사라: 가정 폭력의 피해를 입었던 아동 중에서 남자아이들은 커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자아이도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고르는 경우가 많고요. 익숙하니까요. 연쇄살인마처럼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상당수가 어린 시절에 가정 폭력에 노출됐던 경험이 많아요.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어떻게 양육되고 어떤 환경이 제공되고 국가에서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좋은 쪽으로 그 기질이 발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아이들은 국가가 책임져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해요. 사회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아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다른 아이들이나 사회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돼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사람이 어린 시절에 불우했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매번 봐요. 그런데 바뀌지 않아요. 그 사람이 어린 시절에 불우하지 않도록 그때 도왔다면, 그런 사람이 사회에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요.
김세연: 중요한 부분을 짚어 주셨습니다. 사실 이 주제와 관련해 질문드리려 했던 부분을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맞추어 주신 것 같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신속한 격리 조치는 필수적입니다. 또한,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다양한 방법을 통해 행동을 억제하고 통제해 폭력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리 대상으로 삼아 시스템 안에서 제어해야 하겠죠. 이와 함께 남는 과제는 피해자, 특히 주로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치유가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삶의 지지대가 되었던 경우가 있는 반면,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잘못된 행동을 배우며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해자 중에는 빠르게 잘못을 인식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끝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죠.
피해자 또한 회복 탄력성의 정도가 다릅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피해자는 감사하게도 치유가 비교적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텐데, 회복 탄력성이 낮은 피해자에겐 어떤 도움을 제공할 것인지가 오늘 대담의 마지막 퍼즐이 될 것 같습니다.
김사라: 회복 탄력성에 있어서는 피해자가 가진 기본적인 기질이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변 환경이 어떠한지도 치유 속도를 좌우하는 큰 요소인 것 같습니다.
‘내 주변에서 나를 지지해 준 사람이 있어’라는 것이 대표적인 주변 환경이겠죠. 제가 아까 말씀드린 아이 있죠? 7살 때부터 가정 폭력을 당했던 아이가 10년 넘게 아버지에게 맞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외할머니였어요. 그 아이가 외할머니와 살았거든요. 외할머니가 자기에겐 너무나 큰 지지자였던 거예요. 저에게 왔을 때 상황은 정말 안 좋았지만, 그 아이의 눈이 살아 있었던 이유도 외할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 덕분이었을 거예요. 피해 가족의 회복 탄력성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그런 환경 자원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김세연: 가족 구성원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심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피해자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개인의 운에 달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선생님의 한마디가 평생의 심리적 지지대가 되고, 그 말씀에 용기를 낸 경우를 많이 보게 되니까요.
그래서 교원 양성 과정에서 성폭력이나 가정 폭력 피해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는 전문 상담 교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와 같은 특수한 전문성을 가진 분들만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물론, 고도의 전문적 상담은 전문가들이 맡아야 하지만, 일반 교사들에게 초동 대응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의 초동 대응 시 누군가 잘못된 말을 할 경우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교사가 피해 학생에게 처음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교사가 고도의 상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피해 학생에게 잘못된 말을 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대응 지침을 익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과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있었을 때 다문화 가정 학생들과 관련된 사례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다문화 학생들이 많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한 교사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학생을 ‘초코파이’라고 부른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후 피부색에 따른 차별 언행을 금지하는 지침이 도입됐죠. 그 이후에 ‘다문화’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저는 좀 위선적인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가 나오면서 차별의 새로운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당시 한 교사가 “오늘 수업 끝나고 다문화 다 남아”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교양이나 상식이 있으면 이런 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각도 없는 일부 사람들이 교단에 있기도 했습니다.
훌륭한 교사나 훌륭한 경찰관처럼 공공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자질이 안 되는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걸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적인 국가 이성이 발휘될 수 없습니다. 사실,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이러한 체계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국가 이성의 미성숙 또는 약화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봅니다.
피해자인 아이들이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보호와 지원 체계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특히, 학교나 행정 기관에서 초동 대응 시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피해 아동에게 보호자나 지지해 줄 어른이 없다면 즉시 전문가와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현재도 이런 체계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효과적인 보호와 지원의 범위를 더 넓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사라: 피해 아동이 10~15년간 폭력을 겪어 왔는데, 단지 10번 정도의 상담만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부족합니다. 또한, 가해자가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어머니가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는 경우, 피해 아동은 또다시 어려운 환경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어머니가 경제적 능력이 없을 때는 아이에게 ‘네가 신고해서 이렇게 됐다’는 비난을 하기도 하는 등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소득 수준 때문에 지원 대상에 해당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정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일을 하려고 해도 맞벌이 증명이 필요해서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경우, 아버지가 일부러 동의를 해주지 않아 아이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런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기간 예외적으로 혜택을 제공하고,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활용해 꼭 필요한 아이들에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피해를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회복과 성장을 돕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입니다.
또, 저는 이런 고리를 끊으려면 교육이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아이들 중에는 20년씩 계속 만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대학까지 공부를 마쳤습니다. 공부를 정말 잘하는 아이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외고에 입학한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이 아이들이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공부를 계속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습 지원 봉사자의 존재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첫 학기만 등록금을 지원받으면 이후에는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당시 저는 이 아이를 당연히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몸담았던 기관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더군요. 등록금은 큰돈이고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데, 왜 이 아이에게만 지원을 해야 하냐는 논리였어요.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지원 간의 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 아이가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하느냐는 질문도 나왔죠. 결국 지원을 해주기로 했지만, 지원금이 3월 2일에 나오게 됐어요. 행정상의 문제로 등록금 지원이 늦어진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이지만, 안정된 직업을 얻으려면 대학 교육이 필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노력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반드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해 아동들에게 대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되어야 합니다. 등록금 대출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아이들은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중에 직장을 갖게 된 이후에도 대출로 인한 부담이 더 큽니다. 대부분 이중의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육을 통해 이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면, 그들이 받은 도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할 가능성도 큽니다. 실제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이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후원과 봉사를 실천하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됩니다. 학교와 사회가 협력해 가족 내 자원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지원을 확대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열 어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좋겠습니다.
김세연: 예산이 방만하게 쓰이는 곳이 많아서 이런 말씀을 들으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나라에서는 원천적으로 예산의 방만한 운영과 잘못된 지출을 최소화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야 할 것입니다. 전체 예산에서는 아주 작은 비중일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전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논의 주제로 계속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백지에서 거대한 시스템을 새로 설계한다는 것은 워낙 잘 시도되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사안이 방대하고 복잡해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접하셨던 실제 경험과 이뤄내신 변화를 바탕으로 좋은 사례와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사라: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