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이번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안오성 박사를 모시고 과학 기술 분야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오성 박사는 공식적인 토론회나 원고 발표를 통해 대한민국 과학 기술 정책 시스템과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약 새로운 나라에서 백지 상태로 과학 기술 정책의 기본 틀을 설계한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현재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보면, 종종 현재의 문제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원인과 결과가 불분명해지거나, 복잡한 원인들 속에서 논의가 얽혀 종합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 새로운 백지 상태에서 설계도를 그려 본다는 차원에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가령 대한민국의 후계 국가에서 과학 기술 행정을 담당하는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안오성: 과학 기술 정책을 논의할 때 과학 기술 행정 이야기가 항상 강력하게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정책을 실행하는 주체가 바로 행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과학 기술 정책 영역이 각 부문별 고유한 임무와 전략 환경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전략적 자율성에 관한 환경과 토대가 잘 발달하지 못하고, 행정 운영 논리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 행정적 입장이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그 결과 선행 기술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임무와 활용에 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매우 취약하게 다뤄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략적 자율성에 관한 환경과 토대라고 하는 것은, 제도적 차원의 위임형 거버넌스만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어떤 임무와 전략적 방향이 우선 순위이고 어떤 국가적·사회적 가치와 위험에 대한 대응을 위해 과학 기술을 육성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전략적 소프트웨어를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담론 중 하나는 이제 과학기술부의 역할이 끝났다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부처 중심의 소프트웨어로는 담기 어려운 수준의 복잡도와 깊이, 그리고 빠른 대응이 요구되는 환경 변화로 인하여, 매우 주의 깊고도 합리적인 위험 수용과 전략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전문적 연구 경영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개발 국가 시절에는 과기부의 역할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미국만 보더라도 과기부는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미션 단위로 부처들이 존재하고, 다른 선진국도 과기부 같은 기능의 부처는 기초 연구만 일부 담당하고 나머지는 미션 부처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합니다.
제가 담당하는 우주 분야를 보자면, 전 세계적으로 미션 부처화된 연구 기관이 행정과 과학 기술 관련 전략 결정을 모두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게 나사(NASA)의 정체성입니다.
김세연: 나사의 사례는 우리가 자주 접해서 익숙한 면이 있는데, 다른 나라 사례는 어떻습니까?
안오성: 미국 나사는 거대 공공 과학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행정까지 들어가 버린 겁니다. 독특한 모델이죠. 다른 나라도 다 그러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는 항우연이나 나사 같은 기관이 없습니다. 준공공형 기업인 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나 엘빗(Elbit) 같은 기업이 국가의 주요 사업을 독과점적으로 수행합니다. 국방·안보 차원에서 활용성과 중요도가 높은 무인기 사업의 경우에는 이들 이스라엘 기업들 간에 내부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져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가 이스라엘 무인기에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영국은 우주 에이전시가 별도로 존재하지만 규모가 매우 작습니다. 실제로는 BAE 시스템즈(BAE Systems)가 영국의 항공 우주, 방위 산업, 조선까지 수직 계열화해서 거의 독점적으로 수행합니다.
빠른 혁신과 시장 경쟁이 필요한 경우, 국가가 선행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창업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임무가 뚜렷하고 도전성이 높은 경우에는 BAE의 독점적 지위가 안정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때는 시장 경쟁에 기반한 효율성보다는 임무 안정성에 기반한 효율성이 작동하는데,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규모의 혁신 조직이 작동하는 동적 균형이 이뤄집니다.
김세연: 영국의 BAE 시스템즈나 이스라엘의 엘빗, 이런 기업들이 공기업입니까?
안오성: 아닙니다. 사기업인데, 그 거버넌스가 놀랍습니다. 사기업이지만 기업 마음대로 하지는 못합니다.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하지만, 전략적 의사 결정의 독립성과 정부로부터 일정 수준의 독과점적 임무를 인정 받는 측면에서는 일종의 출연연하고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은 하지만 경영에 개입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영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죠.
여기서 출연연과 비슷하다는 의미는, 우리나라의 출연연이 아닌 독일식의 전문인 연구 경영이 작동하는 그런 출연연 모형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출연연 모델을 설계할 때 자주 참조가 되지만, 실현은 되지 않고 있는 모형이죠.
김세연: 예를 들어 나사는 우주 탐사를 위해 스페이스X 같은 기업에 다양한 미션을 위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페이스X가 나사보다 더 효율적으로 미션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사는 스페이스X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지원만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행정 기관이 예산을 집행할 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적용됩니다. 그런데 사기업에 공공적인 성격의 미션과 예산을 맡길 때, 시민의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이를 감독하게 됩니다. 국민 정서상 사기업이 국익과 공익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자기 이익에만 봉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기업이 적어도 공익을 훼손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만 효과적인 거버넌스가 형성될 수 있을 텐데요, 그 국가들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인 논란은 없었습니까?
안오성: 항공 우주 및 국방 관련 산업적 기반 자체가 매우 중요한 공적 자산을 간주되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것을 완전히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일 때 역설적으로 비효율성에 의해 국가와 기업이 모두 난처해집니다. 더욱이 중견 국가들의 경우 시장 규모의 한계와 글로벌 시장 진출의 제한성으로 인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서 한계가 큽니다. 이로 인해 정부가 적극적인 산업 육성 의지를 가질수록, 기업들은 점점 더 정부 발주 사업에만 의존하는 문제점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이 항공 우주 산업 경쟁력을 강화를 위한 보다 나은 전략과 의사 결정을 하도록 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이 중요합니다. 임무 중심 파트너십이라는 말은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사용이 되지만, 임무 중심 연구와 민관 파트너십이라는 개념으로 따로따로 언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항공 우주 부문에는 대형의 개별 사업 경쟁 관행이 여전하면서도 저런 용어를 형식적으로 사용할 뿐입니다.
항공 우주와 관련해 시장 실패가 뚜렷한 중견국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이 작동하려면, 앞서 언급드린 전략적 자율성에 관한 환경과 토대가 핵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늬만 파트너고 실제적으로는 개별 부처들의 거대 과제 선점을 위한 파편적 경쟁과 정부 의존성이 지배하게 되어, 결국 국가와 기업 모두 난처하게 되죠.
일본도 이러한 특성을 간파하고 일찍이 영국식 모델을 따라갔다가 관료주의적 의사 결정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미츠비시는 특히 항공 우주 분야에서 부실한 의사 결정을 많이 드러냈습니다. 외신을 통해 자주 보도됐죠. 반면 영국의 BAE 시스템즈는 항공 우주뿐만 아니라 위성, 조선 등 다양한 방위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독점적인 대형 기업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화시스템, 한화오션, 현대중공업 등이 통합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츠비시가 BAE 시스템즈를 모방해 규모는 키웠지만, 세계적인 성과를 내려고 할 때마다 대형 프로젝트와 톱다운 계획 중심의 접근의 한계를 보여 줬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 정부의 관료들이나 대기업 경영진들이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해결될 문제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인식입니다. 전략적 식견의 리더십은 분명히 중요하며, 이는 이스라엘 IAI나 엘빗 같은 글로벌 방산 대기업이 성장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더 큰 규모의 항공 우주 산업 선진국의 경우, 정부와 기업 사이에 전략적 기술 기획 전문 기구(주1)가 잘 발달해 있습니다. 이러한 기구들은 단순히 정부 관료들의 두꺼운 계획서를 그럴듯하게 작성하는 데 동원되고 지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전략적 기획과 방향성에 관한 국가적 의사 결정과 조정에서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가 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소프트웨어가 과부하에 걸리지 않도록 조기에 점검하며, 전략적 사유와 탐색, 그리고 미래 시나리오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질문하는 리더십이 작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권위주의적 사회나 관료화된 조직에서는 이러한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거나 뒤늦게 서둘러 선택지가 거의 없어지게 됩니다.
* 주1. 미국: NASA, MITRE, DARPA, DIU, The Aerospace Corporation, 영국: Dstl, 독일: Fraunhofer INT, LIH, 프랑스: IRSEM, 네델란드: TNO, 일본: NIDS 등
김세연: 한국의 기업들이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과학 기술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책 집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입니다.
순수 공무원들로 이뤄진 조직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연구 기관으로 출발해 집행 기능을 가지게 된 나사, 민간 기업이지만 공공적 성격을 띠는 BAE 시스템즈, 또 이스라엘의 3대 방산 기업(IAI, 엘빗, 라파엘)처럼 특화된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조직들이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국민적 신뢰와 여론의 지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방산 복합체(카르텔)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모델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안오성: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대담 주제인 과학 기술의 새로운 역할과도 깊이 연결된 부분입니다. 과학 기술은 순수 과학으로서의 중요성도 크지만, 용어에서부터 과학에 기술이 붙었듯 기술의 측면, 혁신의 측면, 또 사회적 가치로 환원될 때 첨단 기업과 결합하면서 비즈니스 속에 녹아드는 측면이 중요합니다. 과학 기술이 그 나라에 왜 존재하느냐 봤을 때 결국 그 나라의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합니다. 사회 문제, 공공 문제, 국방 문제 등에서 과학 기술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대표적인 예로 항공 우주 분야가 있습니다. 여기서 영국과 이스라엘의 모델, 일본과 한국 모델의 차이를 살펴보면, 영국과 이스라엘은 국방과 항공 우주를 내재화하는 것을 국가적 아젠다로 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을 만들고, 영국은 유럽에 계속 돈을 내면서 우주 협력을 하다가 미국과 협력하는 게 더 유리하겠다고 판단해서 빠져나옵니다.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원웹(OneWeb)을 만들었죠. 국가 주도로 투자한 프로젝트인데, 저궤도 군집 위성 기반의 새로운 통신 체계와 GPS 시스템을 구축하는 겁니다.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GPS 독립을 추구하는 거죠. 미국에 계속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카드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국방 항공 우주 산업에서 중요한 점은 주권적 의지와 전략적 의사 결정의 독립성 확보입니다. 최소한 준(準)독립성 수준이라도 확보해야죠. 동맹을 맺더라도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원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국제 무대에서 협상할 수 있는 카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항공 우주 기술을 발전시켜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입니다. 이러한 국가적 의지가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이게 마중물이 되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국방 항공 우주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하이로우 믹스(High-Low Mix)라는 전략적 개념 속에서 복잡한 고민을 단순화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습니다. 즉, 상위급 기술은 외국에서 사오고, 하위급 기술은 자체 개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인식과 관행이 향후 우리나라의 전략 역량 성장에 가장 큰 장애라 봅니다.
국방적인 측면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전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점점 더 미국 의존성을 벗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유럽이 그 덫에 빠졌었죠. 국방비를 늘려도 해외 의존도는 줄어들지 않고, 하위급 기술만 계속 개발하다 보니까 그 산업이 외부로 나갈 모멘텀을 갖지 못하게 되죠. 기업가 정신만 나무랄 게 아니라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과학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국가 이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걸 가장 잘하는 나라가 독일이에요. 독일은 자기들의 위치를 잘 압니다. 미국과 비교할 때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는 걸 알아요. 그런데도 첨단 제조업에서는 미국과 대등하거나 앞섭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 때문입니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하기로 결정할 때 관료들이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독일의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DLR, 막스 플랑크 연구소 같은 기관들이 독립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산학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정치인들은 산학 협력이 잘 작동하는지만 질적인 감사를 합니다. 산학 협력이 잘되는지, 네트워크가 잘 작동하는지, 이걸 전담하는 기관으로 프라운호퍼를 둔 겁니다.
인력 흐름도 굉장히 다릅니다. 미국 대학은 기초가 강한 반면, 독일은 거꾸로예요. 대학들이 엔지니어링을 많이 합니다. 어떤 학생이 엔지니어링을 하다가 가능성이 보이면, 더 기초적인 분야를 다루는 막스 플랑크나 헬름홀츠로 보내서 응용 연구를 하게 합니다. 프라운호퍼로 가서 기업과 연계 연구를 하기도 하죠. 대학의 포지셔닝이 중간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학의 포지셔닝이 없어요. 과제만 받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죠. 독일은 우리보다 덜 열심히 하는데 더 잘합니다. 똑똑해서 아니라 독일 사회가 포지셔닝을 확실히 합의하고, 그 포지셔닝대로 꾸준히 가기 때문이에요. 반면 우리는 그 포지셔닝이 합의되지 않았죠.
김세연: 독일의 과학 기술 생태계 내에서 대학이나 기초 연구를 담당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 그리고 응용 연구를 담당하는 프라운호퍼 연구소 간의 역할 분담과 정체성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역할 분담이 시너지를 만들어 내면서 전반적인 성과와 효율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2014년에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해서 국가과학기술연구회를 출범할 때 독일의 체계를 벤치마킹했는데,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면 기존 출연연 관리 체계에서 과기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생적인 의사 결정 방식을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클러스터별 거버넌스를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기존 거버넌스의 공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이 그 공백을 채울 수 있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당시 이 부분이 왜 잘 안됐나 원인 분석을 해보면, 사무국이 빈약했고 예산 지원도 넉넉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과거 패러다임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인원의 사무국과 예산을 투입했다 해도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전의 패러다임 폐기,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부상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결여되면서 하나 마나 한 개혁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논의는 백지에서 새로 그려 보자는 것인데, 그렇다면 백지에서 어떻게 그리면 좋겠습니까?
안오성: 백지라 하더라도 과학 기술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사회 덕분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전략적 자율성에 관한 환경과 토대 수준, 소프트웨어의 발달 수준에 따라 우리의 선택지와 수준은 달라질 것입니다.
김세연: 독일은 현존 최강대국인 미국에 대비해서 자신들의 명확한 포지션을 인식한 반면, 한국과 일본은 그렇지 못하고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국가 이성에 대한 명확한 자각 없이는 뭘 해야 할지 몰라 하던 대로 하거나 따라 하거나, 이렇게 되면서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릴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듭니다.
국가 이성이 물론 전제돼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과학 기술 정책의 기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작한 논의는 결국에는 국가 이성이나 국가 정체성 같은 더 근본적인 철학적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다시 정책과 집행의 밑그림으로 돌아와 본다면, 이 과정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추진해야 할까요?
안오성: 매우 중요한 핵심 질문입니다. 전략적 방향 전환과 기존 관성에서의 탈피는 거시적 차원에서 자기 좌표를 인식하고 미래 방향에 대한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고민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대전략적 좌표 인식과 방향 설정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논의가 있다 하더라도 관념론 수준에 그치거나 지나치게 지엽적인 부분만 다루며, 기존 이해관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점은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리더들이 이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실무자들에게 써오라고 하거나, 이를 질문하고 논의하는 광장과 언로가 위축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가지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첫 번째로는 과학 기술계를 논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헌법을 스스로 개정하고 진화시키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헌법을 개정하는 것조차도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주변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진정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죠.
이와 유사하게, 과학 기술에서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왜 변화가 필요한지, 변화가 이루어졌을 때 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자율을 달라고는 하면서도 그 여건과 토대는 어떠한지, 어떻게 단계적으로 진화시키고 그것이 하나의 약속으로 굳게 작동할게 할지 등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습니다.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려 한다면서도, 정작 그 경로의 가장 큰 이해관계자인 관료들에게 계획서를 써오라고 했던 것이 지난 정부의 모습이었죠. 어떤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그 원칙에 따라 국회가 어떻게 질적 감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었어요. 변화를 위한 인내와 이행 관리 이전에, 그 상위 이성이 없었습니다.
김세연: 합의가 없었던 거네요. 명시적이고 명문화된 합의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국회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국정감사나 상임위 활동을 통한 정부 부처의 감독 과정에서 과학 기술 정책의 결과물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 실행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암묵적 공감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공감대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훼손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안오성: 정확히 명문화되지 않았죠. 말씀하신 대로 제가 거버넌스를 연구하면서 계속 확인하는 것은, 제도적 변화나 구조적 변화를 추진할 때는 원칙(principle), 이유(why), 그리고 핵심 가치(core value)와 방향(direction)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두 가지 층위에서 이를 명시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층위에서는 연구자나 관료들이 다룰 수 없는 상위 차원에서 어떤 가치와 방향성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설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 층위에서는 이러한 가치와 방향성이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를 정의해야 합니다. 현실 적용 단계에서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적용 방법을 설정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층위를 분명히 구분하고 정의해야만, 실행 과정에서 체크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위적 가치와 방향성 정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구체적인 적용 방안도 국회나 이해관계자들이 검증 가능한 수준으로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김세연: 제가 과학 기술 분야에서 직접적인 경험을 쌓지는 않았지만, 일정 기간 바로 옆에서 관찰한 바로는 대한민국의 정책 의사 결정자들, 그러니까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그리고 과학 기술인들조차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위 가치나 하위 실행 기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보다는 단기적인 결과물, 즉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성과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상위의 가치와 하위의 실행 기준에 대한 논의가 거의 생략되거나, 실무자의 눈높이에서 작성한 초안이 비판적 사고 없이 그대로 결론으로 채택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에 따라 실행되는 하위 행위들은 원칙이 없거나 방향성을 상실한 채로 진행되고, 모두가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방향성이 없기 때문에 의미를 상실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거죠. 아마 1960년대 과학기술처 공무원들은 이런 문제를 겪지 않았을 겁니다. 왜 최근 20~30년 사이에는 근본적인 논의가 사라졌을까요?
안오성: 당연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기술 격차가 매우 컸고, 우리한테 필요한 연구를 하려고 했죠. 예를 들어 카이스트의 설립 목적은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인재 유출의 전진 기지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문제라는 감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엔비디아의 반도체 설계 툴인 쿠다(CUDA)로 공부하면서, 엔비디아는 ‘가두리 양식장’처럼 고급 인재를 손쉽게 확보하는 생태계를 형성했습니다. 인텔이 여기에 대응해 자체 툴인 가우디를 만들었어요. 카이스트가 협약을 맺고 가우디를 사용하는 사례를 보세요. 이 소식이 좋은 일처럼 대서특필되지만, 정작 삼성은 여기에 빠져 있습니다. 가우디로 훈련된 학생들이 삼성으로 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텔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선별된 톱클래스 인재들을 마치 택배로 집단 배송하듯 외국 기업에 보내는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인텔과 국제 협력을 한다고 박수 치는 뉴스만 나오지 정작 인재 유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거의, 아니 어디에서도 제기되지 않고 있죠.
국회조차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카이스트 설립의 본래 취지는 국내 고급 인재의 해외 유출을 최소화하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기본 정신과 원칙에 대한 정치적 인식과 이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치열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인텔과 협력했다거나 새로운 연구회를 만들었다는 성과만 부각될 뿐, 왜 이러한 협력이 필요했는지, 왜 통합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대충 다뤄지고 있습니다.
김세연: 우리나라 언론 기사를 보면 기관이나 기업의 보도 자료를 거의 그대로 받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해외 유수 언론의 기사를 읽다 보면, 기사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궁금한 점들이 기사 내에서 다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분석 기사를 읽을 때마다 마치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처럼 궁금증이 해결되는 것에 놀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언론의 영역이라 오늘 다룰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된 상태에서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소 불안정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해외 사례를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는, 잘하고 있는 곳의 이유를 분석하고 통찰을 얻어서 우리 토양에 맞는 해결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과학 기술 정책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국가 이성의 자각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 또는 국가 공동체가 과학 기술 정책을 통해 지향하는 목표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합의가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고, 정책 의사 결정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게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지향점에 대해 근본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정책이 집행돼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려면 사기업이나 연구 기관에서 전담 행정 부처 없이도 정책이 효과적으로 집행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벤치마킹의 대상, 참고의 대상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 대담을 통해서는 한 번에 안 되더라도 우리의 그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노력을 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다시 드리고 있습니다.
안오성: 백지 상태에서 과학 기술을 재구성할 때, 우리는 과학 기술이 사회 속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사회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복잡한 도전들이 존재하며, 그 속에서 과학 기술은 공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공적인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고유의 전략적 가치, 위기 정의, 의미 구조의 정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상위적 가치와 방향성 속에서 각 전문 부문 간 광범위한 수평적 시너지가 가능한 도메인-스페시픽(domain-specific) 전략이 요구됩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현재의 관료적 처리 방식에서는 파편화된 과제로 나뉘어 처리되고, 이로 인해 전략적 의미 구조의 부재 또는 취약성을 우회하게 됩니다. ‘왜’와 ‘어떻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부족하며, 논의를 하려고 해도 의제가 진화하고 깊어지기 어렵습니다. 이는 인물 문제나 진정성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며, 단번에 해결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왜’를 고민하지 않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왜’를 생각합니다. 다만 파편적인 과제 시장 속에서 경쟁을 하다가 과제를 따면 ‘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거죠.
김세연: 당면한 자기 조직의 운영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과제 시장’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대단히 적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게 반복되면서 학습이 되어 못 벗어나는 거죠.
안오성: 맞습니다. ‘왜?’에 대한 질문이나 ‘이렇게 해도 괜찮은가?’라는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 과제 중심주의가 ‘방 안의 코끼리’처럼 문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문제의식이 다 그 속에 녹아들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변죽만 울리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오래된 문제니까요. 사람들이 파편적 과제에 매몰됐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20년은 됐어요.
그래서 ‘왜’라는 차원이 충분히 논의되고 피드백을 받으며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아까 사무국을 얘기하셨는데, 나사의 모델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가 헤드쿼터 기능입니다. 저는 이 헤드쿼터에 대해 보고서를 많이 썼습니다. 헤드쿼터 기능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고, 이 기능이 없으면 무슨 시도를 해도 왜 다 무너지는지에 대해 보고서를 썼죠.
김세연: 제가 듣고 싶었던 답의 단서를 지금 말씀해 주신 것 같은데, 헤드쿼터는 어떤 기능을 해야 합니까?
안오성: ‘왜’에 대해 피드백을 줘야죠. 조직원들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조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 줘야 합니다. 큰 ‘왜’ 속에서 조직원이 제기한 가치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접점을 찾아가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죠.
김세연: 나사의 헤드쿼터는 어떻게 구성돼 있습니까?
안오성: 나사에서 꾸준히 성장해 온 사람들이 헤드쿼터에 갑니다. 그 사람들은 기업으로 치면 CTO(Chief Technology Officer) 수준이죠. 치프 엔지니어링 오피서(CEO, Chief Engineering Officer)도 있습니다. 이런 수준이 되면 하나의 계급처럼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이 특정한 대형 사업을 맡고 있지 않더라도요.
과제 중심주의 속에 그 기능이 위축된 한국의 출연연에서는 CTO나 CEO를 임명해도 아무런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해당 조직에 전략적 미션과 관련된 제도적 위상과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세연: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의 학문적 권위나 커뮤니티 내에서 받는 존경 수준과 관계없이 임명권자와 가까우면 역할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어떤 경우가 더 많습니까?
안오성: 대표적인 예로 출연연 설립 초기부터 존재했던 연구 사업 심의위원회(연심위)를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키스트(KIST) 설립 이후 책임 연구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과제를 시작할 때 ‘왜’라는 질문에 대한 내부 소통과 점검이 이뤄졌습니다. 과거에는 책임 연구원이 자신의 랩을 대표하고, 내부적으로 과제의 목적과 필요성을 점검하는 보드가 작동했습니다. 그때는 이런 과정이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은 바뀌지 않았는데, 환경이 너무 어려워졌어요.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 나가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으로 승부해야 하고 빠르게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니까 해외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해버립니다. 국내에서 연구하다가 성공해도 2위가 되느니,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차라리 해외 리소스를 통해 바로 점프업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게 우리나라 기업의 포지셔닝이 되니까 출연연이 산업적 니즈와의 연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죠.
독일처럼 깊이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보드나 헤드쿼터 같은 상위 의사 결정 집단이 형성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문제이거나 무슨 무슨 위원회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임무 중심의 제도적 위상과 전략적 운영에 관한 소프트웨어 발달이 안 되어 있으면 누가 나서더라도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또 이런 의사 결정 집단은 아까 말씀드린 독일의 4대 연구회처럼 분할해 전문성이 강력하게 결집되고 대표될 수 있도록 워크로드를 확 줄여야 합니다. 복잡성을 줄이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고유의 전략과 전문성이 성장하기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지금 출연연의 많은 연구자들은 과제를 받아오는 논리를 만들어 내는 데까지는 진화했지만, 그 과제가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되어 갈 것인지는 디벨롭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연구자들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데가 없는 거예요.
저는 그 비명을 들었어요. 톱레벨의 엔지니어들이 논문을 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가 실제로 쓰이기를 원하는데, 그런 고민을 논의할 상대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를 도와 연구하는 동료들은, 선행 기술 연구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과제를 받아오는 데 또 뛰어들어야 하고. 흩어지게 되는데, 답답하다는 거죠.
이 상황을 쉽게 표현하면, 우리는 지금 미드필더가 없는 축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동네 축구가 아니라 프리미어 리그에 가봤더니 미드필더가 가장 중요한데, 우리는 다들 수비 진영이나 골대 근처에만 있는 거예요. 그리고 뻥 축구를 해요. 특허 냈다, 논문 냈다, 기술 이전했다, 세계 몇 번째다, 이런 기사가 부지기수로 나지만 들어가 보면 아닌 거죠. 미드필더를 키우는 데 투자해야 하고, 그게 헤드쿼터의 기능이에요. CTO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지 않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서 그 기능이 없다고 나무라기만 하는 거죠.
헤드쿼터 기능, CTO 기능이 성장할 수도 작동할 수도 없는 공간에, 기술 이전 전담 조직(TLO)만 두고서 끝단에서만 더 잘해 보라고 하니, 갈등만 일어나고 질적 성과도 한계가 클 수밖에 없어요.
김세연: 과거 키스트 초기에는 책임 연구원들이 상당한 권한과 권위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었던 반면, 현재는 환경이 많이 변해서 그러기 어려워졌다고 하셨습니다. 아까 기업 이야기를 하셨는데, 해외 스타트업에 바로 투자할 수 있을 정도라면 주로 대기업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외부 환경의 변화까지 고려하면 논의의 복잡성이 너무 올라갈 수 있으니, 출연연 내부로만 한정해서 보자면 과거에 존재했던 미드필더 또는 그 후보군의 층이 왜 이렇게 얇아지거나 거의 사라지게 됐다고 보십니까?
안오성: 과거 연심위와 현재 연심위를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과거 연심위에는 리젝트나 조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현재 연심위는 행정 프로세스입니다. 내부 프로세스인데다 거수기에 가깝습니다.
김세연: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요?
안오성: 과제 받아오는 게 만능이 돼 버렸으니까요.
김세연: 그럼, 왜 과제를 받아오는 게 만능이 되었나요?
안오성: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먼저, 헤드쿼터 기능을 할 사람들이 관성적으로 현실에 점점 녹아들어서 소사장주의 같은 낮은 수준의 전략적인 사고는 가능해도 국가적인 기술 전략을 수립하기에는 경험이나 부족하거나, 관성적인 현실에 적응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여전히 뛰어난 분들이 있고, 이들을 모아서 시도도 해보고 성과도 있었지만, 굉장히 소수라는 거예요. 대다수는 그렇게 가지 않고 있다는 거죠.
또 하나는, 제도적 현실을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3M 같은 기업 연구소는 확고한 연구 기반과 기업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연구에 안정적으로 투자하는 프레임 워크가 마련돼 있습니다. 3M은 연구를 3단계로 나눠요. 10년 이상을 보고 연구하는 그룹, 5년을 보고 연구하는 그룹, 2년 정도 연구하는 그룹. 대신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그룹도 단기 연구 그룹과 연결되도록 운영하면서 경영적인 판단과 가치 원칙을 따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공공 과학 기술 연구자들은 안정적 기반이 부족해요. 독일 모델처럼 연구자들 인건비의 70~80퍼센트를 출연금으로 깔아 줘야 하는데, 우리는 30~40퍼센트만 깔아 줍니다. 이건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월급 30~40퍼센트만 받고 일할 사람은 없잖아요.
김세연: PBS(Project-based System) 제도가 원래 30~40퍼센트에서 시작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안오성: 원래는 더 작게 시작했어요. 15~20퍼센트에서 시작했죠. 0에서 하려고 하다가 그건 도저히 안 된다고 해서 겨우겨우 그렇게 된 거예요. 해외 대비 말이 안 된다는 건 정부도 인정해요. 70~80퍼센트로 올리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30~40퍼센트로 유지하는 거예요. 그럼 정부가 거짓말을 했느냐. 그렇다고 볼 수도 없는 게, 과제가 파편화돼서 너무 많아지고 그걸 쭉쭉 가져와서 분모가 커지니까 퍼센트가 낮아지는 거죠. 과제를 절반만 가져 왔으면 사실 60~70퍼센트는 된다고 할 수도 있어요. 악순환이죠. 정부 탓만 할 수는 없어요.
누구 탓을 하기보다, 이런 사태가 PBS 제도 도입 초기부터 이미 예견됐지만 공론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그저 그렇게 피상적으로 다뤄져 왔어요. 정작 PBS를 하려면 프로젝트 수주 책임자에게 인력 선발의 권한까지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꼴이 벌어지죠. 이것이 시초부터 반대 논리로 제기됐지만, 출연연 인력 TO와 인건비는 별도로 관리 통제하고,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대로 별도로 관리하는 행정 통제 중심의 기형적 구조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정치권이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고, 관료들은 이 본질은 빼놓고 기재부·과기부·각 임무 부처 간에 부처 이해관계 셈법을 더 우선했다고 봅니다.
연심위 기능이 왜 무력해졌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연심위는 완전한 거수기가 됐어요. 연심위에서 조정되거나 탈락되는 게 없습니다. 가져오면 되는 거예요. 출연연 내에서 집단 이성이 자랄 수 없는 환경입니다. 기술 전략에 대한 얘기는 없고 너무 많은 시설, 너무 많은 인력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 이런 정도만 얘기될 뿐이죠.
김세연: 정리하자면 과거에는 연심위가 리젝트와 피드백을 통해 헤드쿼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즉 헤드쿼터 기능이 부재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심위는 헤드쿼터의 일부 역할을 담당했을 텐데, 그렇다면 연심위만이 헤드쿼터의 전부는 아니었겠죠. 헤드쿼터의 다른 부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겁니까?
안오성: 과제 중심주의라는 제도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 물론,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지만 ― 헤드쿼터 기능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임무 중심 조직이라면 과제가 올라왔을 때 이를 제대로 리뷰하고 조정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기초적인 역할조차 무너진 상태지만, 상위 구조는 어떠해야 할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죠.
제가 그중 하나를 강력하게 시도해 봤습니다. 단순히 특정 과제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특정 도메인의 핵심 문제를 깊이 파고들고 장기적으로 안정성과 구체성을 갖춘 기술 전략, 누구에게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기술 전략을 정의하고 실행할 그룹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제가 조건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일로가 안 돼야 하고, 그저 그런 기술 전략이어서는 안 되니까 항우연에서 가장 미래 지향적인 주제에 대한 대표적인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
마침 항공 우주가 ICT와 결합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에트리(ETRI, 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일대일로 파트너십을 맺어서 두 명의 리더가 이끄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두 리더가 제대로 서면 기술 전략 그룹이 만들어지는데, 제가 여기에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법까지 집어넣었어요. 연구자들은 ‘차터(charter, 당사자 간 합의에 기반한 협력의 약속)’에 익숙하지 않지만, 시스템 엔지니어링에서 코어 그룹은 프로젝트를 차터로 시작해요. 우리가 어떤 도전 과제에 대해 어떤 역할을 분담하고, 어떤 세부 목표를 가지고, 어떤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지를 명확히, 함께 정의하는 겁니다.
이 방식을 기술 전략 그룹에 도입하려 했습니다. 연구자들에게 차터로 만들어 와야 인정해 주겠다고 했죠. 그러나 실제로는 ‘인정해 준다’기보다는 제가 연구자들에게 해달라고 쫓아다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스트맨들은 이걸 할 필요가 없어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너무 바쁜 사람들이니까요. 이미 많은 과제에 얽혀 있어서 바쁜 상황이었고, 이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득을 했죠. 자신의 기술 분야가 국가 가치에 기여하려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자극했습니다.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당신이 그림을 그려 보여 줘야 하고, 그게 당신 혼자만의 그림이 아니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파트너십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산학연 모두를 대표하는 수준의 기술 전략으로 나아가려면, 최소한 다른 부서나 상대 기관의 최고 수준의 경쟁 관계 엔지니어와 합의할 수 있는 고민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따라와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항우연과 에트리에서 각각 2개 부서 이상, 4명 이상(총 8명 이상)이 참여하는 조건으로 7개의 기술 전략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기술 전략 그룹의 주제 발굴은 이미 이런 고민을 함께 해온 코어 그룹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15개의 주제를 제시했는데, 안타까운 건 좋은 주제일수록, 대형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주제일수록 그룹이 잘 안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당장의 협력을 통한 이득보다는 사일로를 통한 이득이 더 크다는 거죠.
하지만 초기에 발굴한 15개 주제 중 1년간의 분과별 논의를 거쳐 7개 그룹이 탄생한 것은 나름의 의미가 큽니다. 비록 이전에 시도되지 않았던 일이어서 지속 가능성과 후속 경로에 대한 신뢰의 시그널을 줄 수 없었기에 한계도 컸습니다. 실제로 기관장이 바뀌면서 해당 사업의 시도는 막을 내리게 되었죠. 하지만 헤드쿼터가 질적으로 작동할 때 연구자들은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실효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우리가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 의의를 둡니다. 그래서 굉장히 공을 들여 실험적으로 최선을 다해 봤던 것이고요.
김세연: 헤드쿼터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기술적 역량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국제 무대에서 국익이 충돌할 때 전략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도 겸비해야 합니다. 출연연 소속 연구자 1만 1000명 중에서 이러한 헤드쿼터 또는 CTO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다음 패러다임이 왔을 때 우리 과학 기술 조직의 리더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규모조차 되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 아니면 지금 상위 거버넌스는 망가진 상태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조직을 훌륭하게 이끌어 갈 리더들이 숫적으로 충분히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안오성: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지만, 제가 고민을 많이 했던 주제이기에 감사드리고 싶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 후배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대신하겠습니다.
항우연은 나사와 성격이 비슷해 비교하기가 쉬운데, 아시다시피 나사는 헤드쿼터 기능이 매우 강력하죠. 그래서 제가 “그 헤드쿼터 기능을 위해서 우리도 CTO가 필요한데, 왜 우리는 CTO가 잘 성장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후배에게 던졌습니다. 아주 똑똑한 친구였는데, 대답이 이랬어요. “우리나라에서는 CTO가 성장할 수가 없죠. 이 과제 저 과제 쫓아다니는데, 무슨 CTO입니까?” 그래서 제가 또 물었어요. “그럼, 너는 성장할 수 있냐?” 그러니까 그 친구가 그래요. “저도 안 되죠.” 아주 똑똑한 후배인데, 자신도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CTO로 성장하려면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치열하게 논의하고 더 나은 가치를 합의하고, 그 경험을 계속 쌓아가며, 전략적 차원의 식견과 전문성만 아니라 소통·조정 역량까지 레벨업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러한 성장 과정에서 협소한 범위의 전문가주의가 공공선에 얼마나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적으로 학습한 윤리적 정체성이 성장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는 거예요. 저는 그 후배와의 진솔한 대화 속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그 경험만 제공된다면 그럴 만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수 있어요. 여기서 숙제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성하지 않고 “너희 그렇지 않잖아. 당장 권한 주기에는 모자라잖아. 이제껏 이랬으니까 이렇게 돼버렸고, 앞으로도 이렇게 될 거야”식으로 일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잠재력이 점점 억눌리고 있습니다.
앞서, 전략적 자율성에 관한 환경과 토대, 소프트웨어의 발달이 중요하단 말은 이런 의미에서 강조한 것입니다. 출연연에는 포텐셜이 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많았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슬프지만, 과거에는 그런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데, 시스템이 그들의 동기와 의지를 죽여가는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
김세연: 헤드쿼터의 현재 모습과 과거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물론 환경 변화 ― 경제 규모나 기술 발전의 수준, 과거와 현재의 국력 차이, 출연연과 기업 간의 관계 역전, R&D 역량과 단기적인 R&D 필요성 변화 ― 와 같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외부적 환경 요인을 제외하고, 대담 서두에 과기부 무용론을 언급하신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안 박사께서 쓰신 글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천박과 척박의 혼재’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많은 연구자들이 의욕이 꺾인 상태이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 집단 중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건이 바뀌면 그들의 원래 열정과 잠재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거버넌스가 바뀌지 않으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겠죠.
아까 과기부 무용론을 말씀하셨는데, 백지 상태에서 새로 그리는 설계도에서 과기부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헤드쿼터 기능이 연심위만으로 단독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우주 항공 정책에서 나사의 헤드쿼터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이 경우는 특정 분야의 특정 기관의 헤드쿼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과학 기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전체적인 생태계는 여러 층위와 다양한 부분으로 나뉘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과기부의 역할이 많이 약해졌거나, 과거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안오성: 책임 연구원들이 CTO급으로 성장해 헤드쿼터를 이끌 수 있는 인재로 발전하는 문제는, 단순히 여건을 마련해 준다고 해서 다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럴 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즉 포텐셜이 있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새로운 사회의 핵심은 연구자의 주권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구절이 있죠. 소가 곡식 밟느라고 힘든데, 망까지 끼우고 너무 잔인하지 않냐. 먹으면서 일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동물도 그런데, 지금 출연연의 시스템은 망을 끼우고 성과를 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연구원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아요.
물론 도덕적 해이 사건들이 있긴 하지만, 사고가 생기지 않게만 신경 쓸 뿐, 출연연 연구자들의 공공선에 대한 의지나 자율적 판단력, 그리고 그것이 피어 그룹 간에 상호 작용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는 뒷전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회는 연구자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이 사회의 공공성과 조화를 이루도록 이끄는 정치적 리더십이 작동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주권’이라는 표현은 정치학이나 법학의 관점에선 다른 뉘앙스를 가질 수 있을 텐데, 방금 말씀하신 주권은 전문 집단이 보유한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정치 권력이나 행정 권력이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이들을 공공 기관 종사자로서 상하위 개념 없이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무원이든 아니든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에서 급여를 받기 때문에 각자의 역할과 권위를 존중해야죠.
그런데 정치 권력과 행정 권력은 전문가 집단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권위를 존중해야 마땅함에도, 빈번하고 심각하게 그 권위가 훼손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의 유교적 세계관, 특히 성리학에서 비롯한 사농공상의 구분, 그리고 중인과 전문직에 대한 홀대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또, 우리는 주요 보직을 맡은 사람들이 길어야 3년, 마음에 안 들면 1~2년 만에 교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연속성과 안정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빈번한 인사 교체로 인해 전문성에서 비롯된 권위가 불안정해지고,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안오성: 지금은 분명히 행정 권력이 전문성을 동원하는 상황인데, 어쩔 수 없어 보여요. 왜냐하면 행정 권력도 뭔가 전략적으로 해보려고 해도 그 상위가 없으니까요. 지금은 어차피 파편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이상을 얘기해 봤자 시스템상 말이 안 되죠.
김세연: 지금까지 말씀을 종합해 보면, 국가 단위의 연구 개발에서 전략적 방향성이나 철학의 부재, 그리고 박약한 국가 이성, 여기에다 과학 기술계가 과제 수주 경쟁에 매몰되어 버리고, 이러한 상호 작용 속에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 이성의 확립은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라 오늘 이 자리에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국가 이성이 전제된다면, 그 이후에는 방향의 정립이 중요해집니다. 예를 들어 사회 속에서 과학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냉정한 국제 무대에서 국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위한 과학 기술의 역할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 국가의 전략적 방향이 설정되고, 이 과정에서 국가 이성이 작동해야 합니다. 튼튼한 기초 위에 건물을 쌓아가는 것과 같죠. 아까 ‘왜’와 ‘어떻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무엇’으로 넘어가는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기초 없이 건물을 지으려하는 것 같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서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오늘 사례로 자주 언급된 분야는 우주 항공 쪽이 많았습니다만, 과학 기술의 영역을 보면 위성과 발사체 분야를 이끌어 온 항우연, 우주 관측과 탐사를 수행하는 천문연, 그 외에도 전통적인 엔지니어링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기계연구원과 화학연구원, 전자 통신 쪽의 에트리, 그리고 종합적인 역할을 맡은 키스트 등이 수많은 쟁쟁한 출연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출연연들이 규모는 다르지만, 출연연의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헤드쿼터의 역할이 됩니다. 분야별 헤드쿼터가 할 일이 있고, 종합적인 헤드쿼터가 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종합 헤드쿼터 역할을 과학기술부가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미국의 NSF(미국 국립과학재단) 같은 기관이 맡을 수도 있겠고요.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자원 배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 기술 연구 분야에서 특정 분야에 자원이 과도하게 쏠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바로잡고 다양한 연구 분야를 보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겨울에도 미국에서 AI 연구가 살아남았던 것처럼, 마치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다양한 종을 보호하듯 과학 기술 연구 분야에서도 다양성의 씨앗들을 고사시키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M의 사례에서처럼 연구 기간을 10년, 5년, 2년으로 나누어 장기적인 연구와 단기 성과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방식은 민간 기업의 R&D뿐만 아니라 공공 R&D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장기적인 과제를 맡는 팀에게 단기 성과와 연결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균형을 맞추는 것이, 공공 R&D에서 다양성과 장기적인 비전을 유지하면서도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과학 기술 예산의 분야별 배분과 기관들의 장단점을 고려한 상호 연결성 확보가 매우 중요합니다. 연구가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며, 표면적으로는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관계가 많습니다. 항우연과 에트리의 협력이 가능했던 것처럼, 3개, 4개, 5개, 그 이상의 더욱 다양한 기관 간의 협업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협업의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퍼실리테이션에 더 많은 시간, 노력, 비용이 들겠지만, 그만큼 임팩트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국가적, 나아가 인류에 기여하는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질문을 정리하자면, 어떠한 상위 거버넌스가 확립돼야 기관 간 협업을 촉진하고 영역별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다양성과 효율성이라는 모순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의사 결정, 예산 배분, 기간 설정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안오성: 아까 영국 원웹 모델을 말씀드렸는데, 조금 보충해서 답하겠습니다. 영국은 미국이 이미 GPS를 갖고 있는데 왜 원웹을 추진하는가. 그 자체로 전략적 가치가 있습니다. 전략적 헤징(strategic hedging)의 관점에서, 미국과 완전한 동맹을 맺고는 있지만, 완전히 의존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이는 국가적 의도, 즉 국가 이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다양성을 유지하고 존중하더라도, 국가 이성이 없다면 장기 과제의 가치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제각각 장기적 기대 가능성을 어필하는 홍보 경쟁, 인텔리전스보다는 공감대에 절대 가치를 두는 게임이 벌어지니 집단 속에서 아무리 논의를 반복해도 전략이 진화하지 못하죠.
그렇기 때문에 헤드쿼터는 장기 가치에 대한 전략적 포지셔닝을 명확히 해주는 역할을 책임 있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위상과 전문성, 독립성을 갖춰야 합니다. 또한, 이들이 사일로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정치권에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깊은 정책적 관심을 가진 의제 리더십이나 이를 지원하는 전문 위원회가 필요합니다. 나사가 잘 작동하는 이유도 나사 상위에, 그리고 수평적으로 그들을 전략적으로 견제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자문기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전략은 자원과 경쟁 속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장기적인 과제들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국가적인 가치가 높은지, 이를 정의하고 설득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시나리오 연구가 중요합니다. 시나리오 연구는 여러 가능성과 미래의 전망을 합쳐 실현 가능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전략적 미래 예측(strategic future forecasting)이라 합니다. 포캐스팅(forecasting)과 포사이트(foresight)는 다릅니다. 포사이트는 단순한 전망입니다. 반면 포캐스팅은 과학 기술이 놓여 있는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면서,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자원과 리스크를 평가하며 가능한 솔루션을 비교 연구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전략적 미래 예측이 활성화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소통하고 수렴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헤드쿼터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만, 그 정보는 국가와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김세연: 포사이트와 포캐스팅의 차이는 의지나 의도의 투영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국가 이성 또는 국가 의도나 의지가 확립되어야만 이러한 의도가 투영된 전략적 미래 예측이 가능해지겠죠. 과학 기술 정책의 종합 헤드쿼터와 분야별 헤드쿼터가 의사 결정에 확고한 기준을 세우려면 먼저 이런 가치 정립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안오성: 하나 덧붙이자면, 우리가 불확실성 속에서 의지를 모으고 길을 찾아갈 때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모험적 실험”이 많아야 하고, 그 실험은 성공·실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위적 목표와 원칙(principle)을 보다 공공선에 관한 책무성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탐색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문성과 공공성이 결합된 ‘위상’을 갖는 임무 조직이어야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거죠. 위상이 부재하고, 파편적 과제가 주변에 돌아다니는데 헤드쿼터 기능이 제대로 성장할 동력이 보존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위적 목표와 원칙을 중심으로 기관별 고유의 전략적 자율성이 작동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형태의 미래 연구, 시나리오 연구, 아키텍처 연구가 있지만, 그런 주변적·환경적 전략 연구 행위들이, 각 기관의 구체적 의사 결정의 방향을 질적으로 이끌거나, 조정·통제의 수단으로서 실효적으로 작동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국방 항공 우주를 예로 든다면 우리나라는 산업적으로 발전했지만, 전략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이나 영국처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급 기술은 해외에서 가져오고 하위 기술은 국산화하겠다는데, 해외 의존도를 줄이지 못하고 있잖아요. 해의 의존도를 낮추자는 게 원칙이 돼야하고, 그러려면 이런 의도와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와 방향성을 독립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하는 기관이 필요합니다. 단지 그런 기관의 존립 여부 이전에 그러한 역량과 리더십이 성장하는 과정과 기다림, 피드백과 보상 체계가 필요합니다.
김세연: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면, 헤드쿼터가 아무리 훌륭하게 구성되어 있어도 연속성과 안정성이 떨어지면 체계의 지속 가능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헤드쿼터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정치 권력이나 행정 권력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선정될 수 있습니다. 체계는 쌓기는 어려운데,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그래서 이런 위험 요인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처음부터 잘 만들어 놓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선정 주체, 선발 절차,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 질문드립니다.
둘째는, 엄선된 인물이 안정적이고 연속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입니다. 첫 번째 질문이 초기 구축 단계에서의 문제라면, 두 번째는 구축 이후의 연속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오성: 독일의 프라운호퍼나 일본의 리켄(RIKEN, 일본이화학연구소)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연심위와 비슷한 ‘국가 사이언티스트 커미티’가 있습니다. 헤드를 세울 때는 연구소 내부의 그 조직에서 추천되고 인정받는 사람이 선정됩니다.
김세연: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과기부 실장, 국장, 과장의 펜 끝이나 국회 과방위 위원장과 간사, 대통령실 수석이나 비서관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아닌, 함부로 도전하기 어려운, 권위가 인정되는 전문가 집단에서 추천한 인물이 선정돼야 하겠네요. 한두 사람의 권위가 아니라 집단적인 전문가들의 권위가 인정되는 데에서 추천을 하면 거부하기가 상당히 어렵겠죠. 그 안에서 스크리닝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고요.
안오성: 그게 헤드쿼터인데, 우리는 그 기능이 없어서 작동하기가 어렵죠.
김세연: 헤드쿼터의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헤드쿼터의 집행 기능과 감독 내지 추천 기능이 분리돼 있다는 거죠.
안오성: 추천이 짬짬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추천 자체가 개방형으로 이뤄지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그 커뮤니티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된 구조입니다. 최종적으로는 그 커뮤니티에서 통과되어야 하는 방식인데, 형식적으로는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큰 의미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죠.
김세연: 일단 선임에 대한 부분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럼, 그다음으로 연속성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
안오성: 국가 이성이든 조직 이성이든, 또는 집단 정체성이 제대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톱레벨 인물들의 연속성이 보장돼야 해요.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죠. 제가 항우연 자문위원회를 구성할 때 나사의 자문위원회를 참고했는데, 나사에서는 자문위원의 임기가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문위원 전체를 한 번에 교체할 수 없습니다.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 절반만 바꿀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이 의제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자문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항에 대해 2주 내에 응답해야 하는 법적 규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운영의 묘만으로는 연속성을 질적으로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미국이 VUCA(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로 표현되는 환경 속에서도 전략적 의사 결정을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IC(Intelligence Community) 구축에 우리나라 국방비 수준에 근접한 재원을 투자한다는 겁니다. 이들은 미국의 전략적 좌표와 방향, 그리고 환경에 대해 공통된 이해를 가지며, 이러한 공유된 전략 인식 자체를 공공재로 인식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연속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 제도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연속성이 커뮤니티 운영의 핵심 가치로 작동하고 있어요.
김세연: 나사 자문위원회 같은 기구가 꾸려져도 이 또한 국가 이성이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다면 감투를 하나 쓰는 그런 도구로 전락하겠죠.
안오성: 지금까지는 사람과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시스템 빌딩, 시스템 진화 역시 톱레벨에서 지켜야 할 원칙에 기반해야 합니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제도와 조직, 운영 실무와 과정의 정교한 매커니즘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시스템 빌딩, 시스템 진화 중심의 원칙이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덱스화되어 실제로 관리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는 전 세계 국방 산업체를 연구하며, 국방 산업체들의 부패 수준까지 순위로 매깁니다. 얼마나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지, 경영진 선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내부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등 다양한 요소를 인덱스화하여 관리합니다. 국방 항공 우주 산업이 방산 복합체의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는 원칙에 기반해 이뤄지는 겁니다.
또한, 항공 우주 산업은 단순한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전략 인덱스로 관리합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 직접 투자) 지표를 항공 우주 산업에 적용해서 국가 내에서 FDI를 플러스 방향으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항공 우주 분야는 시장 실패 산업인데도 시장에서 경쟁하겠다는 거예요.
반면, 한국은 항공 우주의 FDI를 관리하지 않아요. 왜? 없으니까. 그리고 정부가 투자를 늘릴수록 오히려 FDI가 더 안 좋아져요. 정부가 투자한 자금의 대부분이 해외로 유출되거든요. 우리는 해외 핵심 부품을 사오거나, 국내 산업 육성 전략상 정교하게 가져가야 할 것을 파편적 사업 단위로 다루는 상황이니, 이러한 관성적 행태에 거추장스러울 뿐인 거죠.
즉, 시스템 빌딩, 시스템 진화에 대한 의도와 긴장이 어떠한 원칙과 지표로 대표되어 작동하지 않아서 그래요. 정치인들이 이 원칙을 세우고 관리하겠다고 명확히 해야 행정인들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관심 갖고 관리하고 보상할 ‘국가 이성’이 없으니, 행정인들도 더 쉬운 일을 하는게 정상이 되죠. 결국, 문제는 정치 이성의 부재에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죠.
김세연: 그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정당과 유권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오늘 과학 기술에 대한 논의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일단 이 부분까지만 말씀드립니다.
안오성: 정당과 유권자의 문제이지만, 그 사이에서 오염된 인식이 오가게 만든 데에는 전문가들의 책임도 큽니다. 전문가들이 “우리는 이것만 하면 돼” 하는 식으로 대처했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책임이 없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김세연: 안오성 박사께 오늘 과학 기술 분야의 스케치 다이얼로그 첫 대담을 부탁드린 이유는, 내부에서 문제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비판적 분석과 발언을 하시는 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소 안 박사께서 문제의식을 꾸준히 설파해 오셨고, 용기 있는 투고와 토론을 지속해 오신 점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사석에서는 비판적 의견을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용기 있는 발언을 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그런 노력을 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오늘의 대담 한 번으로 완벽한 해법에 도달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나선형으로 문제를 확장해 가며, 인접 분야들과 어우러져 다양한 문제들을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더 고도화된 체계를 만들고, 보다 적은 노력으로도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예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혹시 오늘 추가로 말씀해 주실 부분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오성: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저는 이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관의 실상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마음은 공공성과 애국심이 얕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비관적인 현실을 누군가와 깊이 논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시작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논의할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이 문제는 과기부나 연구자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스템을 진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오랫동안 방기해 온 업에 던져져 있고, 당장은 근본적 해법을 추구하기에는 자원도 토대도 열세인 딜레마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아까 헤드쿼터를 맡을 수 있는 연구자들의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100퍼센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키워 내기에 따라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또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쌓였기 때문에 큰 위기죠.
좋은 마음들이 무너진 건 제도나 특정 조직·부처를 바꾸거나 신설한다고 해서 살아나지 않습니다. 시간의 무서움은 사람을 키워 보면 압니다. 아이들을 키워 보면 시간의 축적에 내가 투자하지 않은 건 죽어도 얻을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앞으로 시스템을 제대로 세우더라도 우리가 이미 치른 비용과 죗값을 감당해야 할 겁니다. 출연연을 기만한 죄, 특히 거버넌스에 대해 출연연을 기만한 문제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행정 중심의 논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체제에서는 질적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깊이 탄식할 만큼 현장 경험을 한 분들이 출연연 경험을 개인의 커리어로 사유화하거나, 앞서 언급한 전략적 자율성, 환경과 토대, 소프트웨어 발달에 관한 씨 뿌릴 기회들로부터 물러서거나 정부 탓만 하는 것 역시 진정한 리더십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문제에 관해 몇몇 분과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해봤는데, 그러한 의도와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하다가 다른 길로 가버리거나,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여건으로 밀려났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이 말을 덧붙이는 이유는, 양비론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출연연 경영진이나 연구회 경영진을 탓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은 행정과 정치권에 있습니다. 내생적 개혁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이를 확장하고 진화시키기 위한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개인들에게 용기와 사명감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환경 구축과 환경적 제약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입니다. 시스템과 사람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시도했다 해도 짧은 임기 만료와 함께 사라지기 일쑤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시도가 쉽게 묻혀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기관장이나 이사장의 새로운 시도만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구성원들이 뜻을 세우고 노력해도 조직의 정체성과 집단 지성은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연의 역할과 기능은 점점 더 중요한 시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이유는, 그 뒤에 진정한 역할에 대한 가치와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를 믿고 이를 더 구체화하려는 분들에게 이 인터뷰가 자양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좋은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세연: 마무리 말씀이 무겁게 와 닿습니다. 구체적인 진단과 해법에 대한 논의를 넘어, 비관과 희망을 함께 가지고 임하고 계신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