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 정책연구실장을 맡고 계신 김승호 선생님을 모시고 교육 분야에 대한 〈스케치 다이얼로그〉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먼저, 〈스케치 다이얼로그〉의 취지를 잠시 환기하겠습니다. 어떤 국가든지 수명이 있습니다. 수명이 다해 갈 때 각 시스템의 문제가 커져서 더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만약 새로운 국가에서 교육 체계를 백지에서 새로 꾸린다면 어떤 모습이 나오면 좋을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구성 요소를 준비해야 할지,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김승호: 먼저, 학교의 정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배워야 할 최소한의 목표 혹은 최대치의 목표가 있고, 이걸 전달하는 기관으로서 학교가 자리하는 거죠. 그런데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학교가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모습으로는 좀 곤란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학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만든 미래 시나리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0년에 OECD가 ‘미래 학교 교육 시나리오(Back to the Future of Education: Four OECD Scenarios for Schooling)’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여기서 네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정규 학교 교육의 형태가 유지되면서 국제적인 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통적 학교 제도는 해체되고 교육이 외주화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중간 타협점으로 학교라는 기관이 존재하되 학교가 여러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디지털 기술의 활용으로 학습의 상시화, 즉 정규 교육과 비정규 교육의 구분이 무너지고 평생 교육처럼 각자 알아서 학습하는 체제입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여러 주체에게 이 시나리오를 논의해 보자고 해서 저도 가봤더니, 학교는 네트워크 기능을 하고 전문가들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세 번째 관점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처럼 학교에 기능이 변화해야한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다만 저는 전통적인 모습을 떨쳐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얘기는 차차 설명드리겠습니다.
김세연: AI가 우리 삶에 깊고 빠르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미래 교육 논의에서 자주 등장한 모습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였습니다. 표준화된 교육 콘텐츠의 대량 생산, 학습과 테스트를 통한 학력 검증 대신, AI를 활용한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이나 개인 맞춤형 교육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래 학교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협업 능력과 공감 능력 등 사회성을 키우는 장소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죠.
그런데 OECD가 전망하는 미래 학교의 형태는 특정한 모델을 상정하기보다는 기존 모델의 개선부터 근본적인 변화까지 스펙트럼을 넓게 잡은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이라고 하셨는데, AI가 인류와 함께하는 시대에 획일화된 교육과정이 타당하냐는 질문도 제기됩니다.
김승호: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교육과정이 현재처럼 획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AI와 디지털 기술의 등장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계속 제기돼 왔습니다. 교육과정을 국가 단위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지역이나 학교 단위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곳도 있습니다. 한국은 국가 교육과정의 경직성이 매우 높고, 지역과 학교에 주어진 자율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자율화와 분권화를 강조해 왔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국가 교육과정은 상대적으로 통일성을 강조합니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대 갈등의 원인 중 하나는 지식의 단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거시기했냐”라고 하면 과거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대부분 그 뜻을 알아들었지만, 이제 젊은 사람들은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뜻인지 물어봅니다. 공통된 지식과 맥락이 있을 때 의사소통이 더 원활하고 빠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금은 지식이 개인화되고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10년 전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영국이 섬나라인 걸 꼭 알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을 때 7 대 3 정도로 “당연히 상식으로 알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질문을 하면 대부분이 “상식이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영국 갈 일 없고 영국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면 상식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사회에서는 영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먼저 영국이 섬나리인지를 아는지 확인하는 등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해지면서 의사소통이 어려워집니다.
기존 세대는 공통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통 지식을 전제로 자율성을 확대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율성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공통 지식이 외면당해 버린다면, 결국 각자 알고 있는 전혀 다른 지식들로 전혀 다른 대화를 해야 하는 거죠.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초중등 교육에 대해 많이 오해하는 것인데, 다들 이미 초중등 교육을 통해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이거든요.
김세연: 바벨탑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김승호: 그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과 AI가 가져올 많은 변화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럴수록 공통 지식과 기초 지식이 더욱 안정적이고 확고하게 운영돼야 합니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그렇죠. 물론 학습 방식은 꼭 기존 방식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 중요한 논의를 자꾸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세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교육과정의 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 중심의 교육과정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영국이 섬나라라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라는 것처럼 상식의 기준이 바뀌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 실행해야 할 교육과정은 최소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유 지식을 포함해야 할 텐데요, 그렇다면 어떤 지식을 공유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이 섬나라라는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 이런 것에 대한 합의가 필요할 텐데, 그 경계선을 어떤 과정을 통해 설정할 수 있을까요?
김승호: 일종의 비탈길 논증과 비슷합니다. 하나를 알아야 하면 다른 것도 알아야 하고, 반대로 이게 필요 없다고 하면 저것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논의가 극단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저는 교육과정이야말로 사회의 코먼 센스(common sense)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교육 형태를 도입하려면 시민들을 모아서 5년이고 10년이 걸리더라도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보면 교과 간 칸막이가 매우 강합니다. 각 교과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 시간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교육 내용의 변화를 주기 위해 ‘교육과정 대강화(大綱化)’를 추진했는데, 큰 틀만 국가가 정하고 세세한 부분은 각 학교나 교사가 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정 개정에서 논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역사 교육과정에 4.19와 6.10은 서술돼 있는데 5.18은 왜 빠졌냐는 거였죠.
그런데 그 논란이 교육과정 대강화를 요구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결국 무엇이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대강화해야 한다”와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충돌하고 있습니다. 저는 5년, 10년은 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서사와도 관련이 있고요. 우리나라 사람이 꼭 알아야 할 지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논의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기초학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기초학력을 이야기하려면 기초가 무엇인지 먼저 논의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다문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학생들은 어느 정도의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할까요? 막연하게 기초학력이라고 하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국어 과목의 경우 초등학교에서는 어느 정도의 국어 단어를 알아야 하는지, 중학교에서는 어느 정도의 어휘가 필요한지가 반드시 논의돼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영어 단어를 몇 개 알아야 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과정에도 존재하죠. 그런데 국어 교육에는 그런 기준이 없습니다. 언론에서 문해력과 어휘력 문제를 자주 지적합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알아야 할 어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 한쪽은 이걸 모른다고 비난하고 한쪽은 왜 알아야 하냐고 비난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런 기준들이 논의되지 않고 단순히 국어를 몇 시간 확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김세연: 기존에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개정하는 작업에 참여했던 분들이 이런 문제를 잘 해결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겠죠. 그러나 지금 논의는 누구를 비난하거나 기존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공통의 인식 기반을 정의하기 위한 논의의 주체는 누가 돼야 할까요?
김승호: 저한테도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교육과정을 장기적으로 보기 위해 지난 정부 말기에 국가교육위원회법이 통과돼 국가교육위원회가 설립됐습니다. 그런데 국가교육위원회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승인한 과정을 보면 초등학교 1~2학년의 체육 과목을 분리시켜야겠다고 해서 그냥 의결해서 통과시켰어요. 원래 초등학교 1~2학년은 즐거운 생활, 바른생활, 이렇게 통합 교과로 운영됐었는데, 체육을 독립시켜 달라는 요구가 계속 있었고, 바로 의결해서 독립시켰어요. 그런데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아직 현장에서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장기적인 걸 추구해 보자는 방향성과도 맞지 않고 숙의와도 맞지 않은 거죠.
그럼에도 저는 별도의 위원회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과제이니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0년, 15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중간중간에 국민들과 토론회를 통해 현재 상황에 대한 합의를 거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작업은 매우 오래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우리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공통된 인식 기반 위에서 가진 상태에서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교육과정이 필요한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앞서 〈스케치 다이얼로그〉 국제 정치 편에서 예로 들었던 ‘거문도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면, 저도 학교 다닐 때는 그 사건의 발발 연도와 한두 줄의 개요만 암기 대상으로 봤습니다. 제국 간 힘의 균형이 변화하는 가운데, 지정학적 요인이 어떻게 작용했는가 하는 맥락으로 보지는 못했거든요.
역사란 과거의 현실입니다. 기술, 경제, 사회, 정치의 변화들이 맞물리면서 인류 사회는 진보해 왔습니다. AI가 도입될 때 우리가 겪을 산업적, 사회적 변화도 마찬가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까 기존 교육과정의 교과 간 칸막이가 너무 두텁다고 하셨는데, 기존 패러다임에 깊은 고정관념을 가진 전문가들로는 칸막이를 극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문제에 대한 반성 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낸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문제겠죠. 그래서 주체에 대한 질문을 계속 드리는 겁니다. 누가 이 논의에 참여해야 할까요?
김승호: 교육과정을 논의할 때 지금까지는 대부분 각 교과별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먼저, 교육학과 중심으로 총론을 결정하고, 이 총론에 맞춰 교과별로 각론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각론은 이미 거의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총론에 맞춰 약간 끼워 맞추기를 하거나, 아니면 지난 교육과정을 참고해서 운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수들 사이에서 교과 간 칸막이가 강하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없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들 중 하나거든요.
저는 칸막이 현상이 시간 부족 때문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육과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교육계가 한 발 양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육계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교육계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교육계는 과연 학생들의 발달 수준에 맞는지, 그 지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내용의 위계성을 철저히 검토해야 합니다. 또 산업계나 사회 각 계층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일차적으로 필터링하는 역할도 필요하죠. 이런 과정들이 교육계 교수나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겠죠.
김세연: 교육계 전문가들이 총론을 정한 뒤에 각론으로 들어가는 톱다운식 접근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논의의 틀이 필요한데요, 어떤 분야에서 어떤 분들이 와야 할지는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승호: 특정 분야를 언급하기 어려운 이유가 사실 그 분야를 정하는 것 자체가 결국 우리가 무엇을 상식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김세연: 이 문제가 표면적으로는 교육과정이나 시수의 문제, 학교 운영 방식의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깊은 인식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인식론적 합의가 이뤄져야 그 위에서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전세 사기 같은 문제를 보면 우리는 ‘법과 경제’ 수업 시간에 어려운 내용을 공부하면서도 정작 실생활에서 필요한 법률적 대처 능력이 부족해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저축은행 사태 때도 금융 소비자로서 최소한의 리스크에 대한 지식이 결여돼 피해자들이 나왔죠.
생명 윤리 관점에서 안락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또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대두됐듯 성전환 수술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이런 이슈들이 우리 사회에 속속 도래할 겁니다. 결국, 이런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텐데, 우선 우리의 공통된 인식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김승호: 아까 말씀하신 생명 윤리적 쟁점들, 예를 들어 안락사나 성 상품화, 뇌사에 대한 논의는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도 포함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있습니다. 안락사를 무조건 인정하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냐, 아니면 안락사에 대해 건강하게 토론해 보자고 할 것이냐의 선택입니다. 최근 교육계의 트렌드는 후자, 즉 토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론 수업은 매우 고차원적인 수업 방식입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면 학생들이 일차원적인 답을 내놓고, 그것들을 모두 존중하는 순간 깊이 있는 사고나 지식의 풍부함을 간과하게 됩니다. 결국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위험이 있죠.
처음 논의한 인식론적 문제 외에도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어떤 인식을 어떤 방식으로 하게 할 것인가입니다. 그게 교육에서는 교수 학습 방법인데, 기존에는 전부 강의식으로만 하다가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의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탄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아니면 흉내내기에 그치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김세연: 그러한 합의의 결과물로서 교육과정이 설계되면, 이를 현장에서 실제로 실행할 교사들의 역량과 스킬이 중요합니다. 이전 시대에 교원 양성 과정을 거친 분들이 여전히 많은데, 교대와 사범대의 교육과정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학교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초중등 교육과정이 거의 암기력 테스트와 유사하게 흘러갔지만, 지금은 토론 중심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토론 수업에서 교사는 사회적 현상과 그 원인에 대한 맥락을 충분히 이해한 퍼실리테이터로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을 체험할 수 있도록 토론을 이끌어야겠죠.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어 최근 교육 현장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과거에는 교사용 지도서를 그대로 읽는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교원 양성 과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가 중요한 질문입니다.
김승호: 평균적으로 교사들의 역량이 크게 향상돼서 말씀하신 그런 문제들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봅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교대와 사대의 입학 커트라인이 높아지면서 더 우수한 인력이 유입된 것도 이유 중 하나겠죠. 그렇다고 해서 교사 양성 과정이 충분히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있느냐를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사 양성 과정에서 실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 4주 정도 나가거나 3주씩 두 번 나가서 참관하고 수업을 해보는데, 이 과정이 실질적으로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은 교생 선생님이 오면 한 달 동안 굉장히 즐거워하고 반가워하고 수업을 재미있게 듣습니다. 아무리 재미없는 수업이라도 교생 선생님이 하면 눈이 동그래져요. 그런데 이런 모습만 보고 돌아가면 학교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죠. 학교에는 더 어두운 면도 있고, 지도하기 힘든 상황도 많은데, 교생들은 좋은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맛보기를 하고 가는 거죠.
두 번째로, 교대와 사대가 고등 교육기관이라면 여기서 가르쳐줘야 할 것들 중에 실험연구 또는 실행연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연구가 내면화된 상태에서 학교 현장에 와야 하고, 새로운 교육 방식을 도입해 보고 싶다면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연구자의 시선에서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하고 있는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스스로 평가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현재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잠을 안 잤어요”, “아이들이 떠들지 않았어요” 같은 것들을 수업의 변화로 느낍니다.
예를 들어 플립 러닝 같은 방식이 2010년대부터 한창 들어왔을 때 저는 그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형됩니다. 이 변형된 방법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따져 봐야 하는데,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자신이 수업을 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수업했을 때와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하고 보완할 방법을 고민해야죠. 그러나 교대나 사범대에서 그런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길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속학교가 이러한 실험학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대와 교대가 부속학교와 잘 연동돼 있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A대 사범대 교수들의 부설 중고등학교에서 다양한 연구를 해보면서 어떤 교육 방식이 더 낫더라 하는 방식이 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거의 연동이 없습니다.
김세연: 다른 영역과 비교해 보자면 전문대학원 중에 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이 있죠. 가령 핀란드에서는 교사들이 모두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갖도록 한다고 들었습니다. 서남 의대가 지속된 문제로 폐교됐습니다만, 당시 수련 병원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수련의들이 인근 다른 병원들에 가서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면서 경험을 쌓아 라이선스를 취득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 라이선스를 얻는 것처럼 교육 분야도 라이선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현장에서 완전히 몰입해 체득할 수 있는 기간과 환경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실험학교나 실행수업 같은 방식으로 교사들이 라이선스를 정식 취득하기 전에 현장의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승호: 사실 그런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이유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범대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의대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웠던 거죠. 하지만 현재 두 가지 측면에서 가능성이 보입니다.
첫 번째는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므로 교대와 사대의 학생 수도 줄어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교대와 사대의 학생 수를 줄일 때, 교수 수나 학교 규모도 함께 줄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체계적인 개편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어요. 학생 수가 줄어듦에 따라 좀 더 연구 중심, 실험 중심의 교육으로 개편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거죠.
두 번째로, 기존 제도에 대한 수정 논의들이 자꾸 나온다는 것입니다. 현재 교사는 2급 정교사와 1급 정교사로 나뉩니다. 2급 정교사는 5년간 현장 경험을 쌓은 후 1급 정교사 연수를 받고 1급 정교사가 됩니다. 1급 정교사 연수는 상대 평가에서 절대 평가로 바뀌면서 사실상 합격 또는 불합격을 결정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이 제도를 조금만 바꿔 줘도 됩니다. 2급 정교사를 일종의 수습 교사제로 운영하고, 1급 정교사 승급 시에 5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물이나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게 하는 거죠.
김세연: 마치 전공의와 전문의 과정을 거쳐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교원 양성 과정과 교사 라이선스 요건을 새롭게 설계한다면, 기존의 교대와 사대 교수진으로 이러한 새로운 과정을 운영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십니까? 기존 체제에 익숙한 교수진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관성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관성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드물지 않습니까?
김승호: 새로운 나라 혹은 새로운 교육 체제라고 하지만, 교대와 사대 체계들은 그대로 있으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사실 쉽지 않겠죠.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교대와 사대가 교과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교수님들 중에 교대와 사대의 경험이 없는, 즉 교육 경험이 없는 분들이 많아요.
예컨대 사회교육과에 정치학 전공 교수들이 옵니다. 그분들은 중등학교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르치는 내용도 자신이 연구했던 교과 내용에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임용 시험의 80퍼센트가 교과 내용에서 출제되다 보니 학생들 역시 교육학적 고민보다는 교과 내용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교대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사범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이런 환경에서 현재 교수진을 통해 개선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쉽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세연: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논의는 대부분 쳇바퀴를 돌다가 계속 마주하던 결론에 도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려는 거죠. 예를 들어 빌 게이츠와 데이비드 크리스찬이 시작한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교육의 근본적인 혁신을 위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과 지식을 학생이 습득하고 체화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새로운 교육과정입니다.
최근에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의 저서 《미래의 기원》를 보니까 비슷한 시도를 하셨더라고요. 우주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물질의 기원을 양자 역학 단계까지 가서 설명하고, 고전물리학을 거쳐 지구의 형성 과정에서 지질학의 영역을 다루고, 인류가 출현하면서부터 시작된 사회학, 정치학, 또 여기에 기술이 접목되면서 인류의 다음 진보를 고민하는 내용까지 다룹니다. 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를 다학제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겠죠.
이러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누가 경계선을 정할 것이냐 하는 주체 선정의 문제는 여전히 있겠습니다만, 교육과정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의 기능별 과목 분류를 극복하고 더 통합적인 교과 설계를 어떻게 시도할 수 있을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김승호: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진될 때 당시 가장 강조됐던 부분은 기존에 분과별로 나눠져 있던 사회와 과학 과목을 통합 사회, 통합 과학으로 묶어서 더 통합된 스토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에서는 사회 문제를 시간적, 공간적, 윤리적, 경제적으로 보는 다양한 시각을 포함했고, 과학에서도 빅뱅부터 시작해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통합적 서술이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통합 사회와 통합 과학이라는 교과를 고등학교 1학년 때만 배우고, 2학년과 3학년 때는 다시 기존 분과 중심 교육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통합된 교육 체계가 지속되지 않는 거죠.
국가 교육과정의 장점은 국가가 이런 변화를 일괄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역 교육과정이나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서 소위 상향식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아직 충분한 요구가 없는 상황에서는 국가가 앞장서서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주도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관행이 있으니까, 사실 국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 칸막이를 걷어 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태 안 하고 있는 거죠.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교수들의 목소리가 워낙 강하고, 둘째는 교육계가 교육의 전문성을 이유로 다른 걸 밀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세연: 학과를 폐지해야 근본적인 교과 이기주의를 걷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김승호: 교육과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데, 이는 학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대에서는 사대만큼의 학과 구분이 없다 보니 초등학교에서 통합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려는 모습이 중등학교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과정이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논의할 때, 서로가 떠올리는 학교급이나 학교의 지역, 실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매년 실시하는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부모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인성 교육이고, 고등학교 학부모들은 진로 교육을 원합니다. 학교급에 따라 학교에 대한 기대와 인식이 달라지는 거죠.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칸막이를 없애야 하고 학과를 없애야 한다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학년 동안의 교육과정이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를 먼저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9년제로 통합된 학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사실상 같은 양성 체제에 있는데, 최근에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면서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시스템이 완전히 다른 학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그럼, 똑같은 방식으로 키워 내는 것이 맞느냐. 고등학교를 좀 더 독립적인 기관으로 만들 거라면 고등학교 양성 체계와 중학교 양성 체계가 달라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논의가 필요하죠. 결국, 초등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 공간인지, 중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공간인지, 체계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김세연: 전체 교육을 하나의 단위로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초등 교육과 중등 교육이 맞물리는 지점에 경계선이 필요한데, 어디에 경계선을 그을지 결정하는 것이 대단히 큰 난제가 될 것 같습니다.
김승호: 말씀하신 것처럼 교육 문제는 어디서 끊고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것들을 다 같이 건드려야 하는데, 그동안은 이것 하나만 건드리면 괜찮아질 거야 했던 거죠. 그게 대부분 입시였던 거고요. 한국의 교육 정책 변화는 사실상 입시에 매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김세연: 역사와 대입해서 보는 분들은 지금의 입시를 변형된 형태의 ‘과거 시험’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계급 투쟁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상위 계급에 들어가기 위해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려고 한다는 거죠. 그런데 최근 들어 대학에 꼭 가야 하는가,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갈 필요가 있는가, 진학 여부와 진학 시점에 대한 기존의 강박이 점차 해소되고 있습니다. 학제와 진학 시점, 평생 교육과 고등 교육의 혼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입시와 진로 문제는 맞닿아 있습니다. 그동안 진로 결정은 고등학교 진학 때 한 번, 대학 진학 때 한 번 이렇게 달라졌죠. 그런데 특성화고 졸업생들 상당수가 대학 진학을 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진로 결정을 어떤 트랙으로 언제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학제 설계도 더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김승호: 2010년대 중반 박근혜 정부 때 ‘꿈’, ‘끼’를 강조하겠다며 자유학기제를 도입하고 진로 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제도가 도입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고,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더 일찍 정하고 그에 맞춰 꿈을 설계하고 활동할 기회가 생겼죠. 그런데 두 가지 측면이 고려돼야 합니다.
첫 번째는 사교육과의 관계 문제입니다. 교과 수업이 줄어들면 그만큼 전통적 공부 시간이 모자라지고 이로 인해 사교육을 통한 격차가 생깁니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의 진로를 완전히 맞추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공교육은 공통의 지식을 가르치고, 그걸 통해서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과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고, ‘그럼 나는 이런 걸 해봐야지’ 하고 집에 가서 자신에게 맞는 활동을 하려면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디지털 기술이나 AI가 학교 교육에 들어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저도 그 부분에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지만,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학교에서 형성된 건 아니잖아요. 학교 밖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결과였죠. 학교 밖의 시간은 그만큼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은 사교육을 받느라 그럴 시간이 없어요. 밖에서 사교육을 다 받고 있으니 학교에서 이걸 책임져 달라는 건데, 어떻게 보면 구조의 역전이 발생하는 거예요. 학교에서 학생들의 개인 공간이 한 평이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걸 해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진로 교육이 학교로 들어왔다는 것은 진로에 대한 가이드를 잡아 줄 뿐이지 그 이상 심화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진로 교육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까 진로 선택을 고등학교 갈 때 한 번, 대학교 갈 때 한 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고등학교 갈 때도 정말 그런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특성화고와 일반고의 비율이 4 대 6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1.5 대 8.5 정도로 일반고 비율이 압도적입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다 일반고로 가는 거죠. 특성화고가 경쟁력이 있었다면 진지하게 고민해 봤을 학생들도 고민 없이 일반고로 갑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할 때 진로를 선택했다라고 보기는 어렵죠. 대학에 갈 때 처음으로 선택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에 대한 국가의 투자가 더 많이 이뤄져야 됩니다.
2015년에 대한민국이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같은 시기에 부산, 울산, 경남의 공장들이 망하면서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떨어지던 1인당 사교육비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사교육비 지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2015년부터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10년 전이라면 ‘대학을 꼭 가야 하는가’는 질문이 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들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저출생 문제와 맞물리면서 기회가 넓어졌으니 ‘더더욱 매달려 있어야 한다’, ‘여기서 뒤처지면 끝이다’ 하는 양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직업으로 얘기를 돌아오면, 이런 상황에서 직업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말씀드리면, 초중고의 수업 시간을 좀 더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 시간도 국가 차원에서 제한한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시간을 좀 더 줘야 합니다. 저희 어릴 때는 축구를 하고 싶으면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했습니다. 요즘 아파트에서 축구 하는 애들 본 적 있으세요? 없죠. 지금 아이들은 축구를 하려면 돈 내고 축구 아카데미에 가야 합니다. 음악을 하고 싶다면 음악 학원에 가야 합니다.
김세연: 이걸 학교에서 할 수 있게 하면 안 됩니까?
김승호: 학교에서 하기 위해서 시간표를 비워 내야 하는 거죠.
김세연: 앞으로 직업 선택 또는 대학 진학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한때 공무원 시험은 경쟁률이 엄청나게 올라갔는데, 이제는 경쟁률 하락은 물론, 퇴직 러시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 수험생들에게 과거와 같은 공무원직의 프리미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죠. 또 AI와 로봇이 많은 부분에서 노동을 대체해 나가고, 비어 있는 부분은 이민자와 이주 노동자가 대체하고 있고요. 노동할 거리가 별로 없는 시대가 되면 노동 시장의 변화가 진학과 진로에 영향을 주고 교육에도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공교육에서 시수를 재배분해서 사교육의 상당 부분을 공교육이 흡수해 주면 사교육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가계에 소비 여력을 그만큼 확보해 주니까 경제 활력 유지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고요.
김승호: 결국 다시 교육과정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곳입니다. 교육과정을 정하는 일은 학교가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이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보다 강하게 주도한다면 개편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교육 시스템은 7시간씩 5일, 총 35시간의 교육과정을 운영합니다. 중요한 건 이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입니다. 지금까지는 최대한 시간을 끼워 넣는 식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국어 배치하고, 영어 배치하고, 수학도 지켜야 하는 식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쟁점이 생깁니다. 첫 번째는 교과 시간을 줄였을 때 학생들이 학습해야 할 지식이나 활동이 줄어들면 사교육의 수요가 더 커지지 않겠냐는 문제입니다. 수업 시간이 줄어들고 배워야 할 것들이 줄어들면 경쟁 시험이 그만큼 치열해지거든요. 시험 범위가 좁아질수록 어려운 문제가 더 많이 나오다 보니, 학교에서 가르치기 힘든 깊이 있는 내용은 사교육을 통해 보충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과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보는 거고요.
두 번째는 활동형 수업을 제공할 때 교사들이 느끼는 부담입니다. 지금처럼 학교에 민원이 들어오는 구조에서는 조금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통학 버스 문제로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학교 진입로가 아주 좁고 협소한 언덕인데, 학부모들은 학교 안에서 아이들을 내려 줄 수 있게 해달라고 하고 학교는 걸어다니는 아이들이 위험해서 안 된다며 반대했습니다. 학부모들이 등교 거부를 하겠다면서 교육청에 민원을 넣으니까 결국 교육청이 개입해서 허용해 주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에 민원이 들어오면 대체로 학교가 물러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다칠 수 있는데, 그러면 교사는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 이렇게 많은 민원에 시달리면서 운영돼야 하는지 개인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김세연: 학교뿐만 아니라 젊은 공무원들이 그만두는 이유 중 하나가 극단적인 민원인들한테 당하는 시달림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서이초등학교 사건도 그렇고요. 이런 문제를 공공 부문에서 대민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주로 겪고 있고, 민간 부문에서는 서비스업 종사자가 겪고 있습니다. 콜센터 직원들이 고객의 폭언을 듣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 경고나 근로자 보호 조치가 도입되기도 했죠. 시민이 민원을 제기할 권리의 한계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승호: 우리가 학교 교육을 통해 걸러 내야 하는 건 시민입니다. 시민이라면 공공의 관점에서 나에게 조금 불이익이 있더라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결정을 따르고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학교 교육이 키우고 있는 건 사실 개개인의 소비자입니다. 저는 경쟁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도한 경쟁 교육과 그 끝에서 얻게 될 큰 보상이 학생들에게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제도만 이상적으로 바꿔 놓고 이를 실행하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저는 교과 수업을 일찍 마치고 오후에는 동아리나 자율 활동 같은 자유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교과 수업의 칸막이를 한 번에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면, 오전에는 교과 중심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통합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방식이 원래 자유학기제의 모델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기존 교과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선생님들이 보다 자유로운 수업을 운영하는 방식이었지만, 원활하게 안 됐죠. 한 학년만 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이 그럼 나는 1학년 안 하고 2~3학년 수업하겠다, 이렇게 되는 거죠. 오히려 지금 지역의 예술고등학교와 전면적으로 도입된다면 선생님들도 더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겁니다.
김세연: 당시 자유학기제 도입과 관련한 논의가 한창일 때 제가 국회에서 해당 상임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벤치마킹한 대상이 아일랜드였어요. 진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학교 바깥에서 현장을 체험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을 배정하자는 거였습니다. 원래 자유학기제에서 학년제로 확대됐죠.
하지만 초기에 난점이 있었습니다. 기업이나 기관들에서 학생들의 견학을 받아 줄 여럭이 없었습니다. 민간 부문에서는 체험 기회가 부족했고 공공 부문에서만 문을 열어 주니까, 학생들이 공무원이나 공공 기관에만 편중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김승호: 자유학기제가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운영됐지만, 저는 창의적인 활동이 오후 시간에 장기적으로 열리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에게 일종의 취미 활동인데, 만약 4교시까지 교과 수업을 진행한 후 5교시부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운영할 수 있게 한다면, 아이들이 그 속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존의 자유학기제는 아직 직업이 뭔지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직업 교육을 무리하게 엮으려고 했어요. 사실 이 문제의 본질은 아이들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김세연: 그러려면 교원 양성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 바깥 세상의 변화 속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처음에 OECD에서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전문가들이 학교에서 수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언급하셨는데요, 다시 라이선스 문제로 돌아가면 미국에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라는 단체가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교원 양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 전공자들이 2년간 수습 교사로 일하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하고, 이후 정식 교사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모델을 주 교육감들과 합의해 확산시키는 걸 15년 전부터 지켜봤습니다.
교원전문대학원 또는 교육전문대학원 역시 의전원처럼 다양한 전공자들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진입 경로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판사 임용도 그렇습니다. 5년 이상 법조 경력을 쌓은 검사나 변호사를 법관에 임용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특허 전문 법원에서 변리사가 판사로 임명되는 사례도 있고요. 법전만으로 세상을 이해하기보다는 더 넓은 시각을 갖게 하려는 취지입니다.
교대와 사대 과정을 거친 분들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제조업, 서비스업, 법조, 언론, 소방, 경찰, 의료, 사회복지 등등 다양한 직종에서 경험을 쌓은 분들이 학교 현장에 갈 수 있다면 교육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생생한 직업 교육도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승호: 비슷한 주장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시간제, 기간제 교사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제시된 적이 있었는데, 교원 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저는 국가직 교사 체제와 지방직 교사 체제를 병행하는 투트랙 방식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국가직 교사는 교과 중심의 교육을 담당하고, 지방직 교사는 직업 교육, 통합 교육, 돌봄 교사나 늘봄 교사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겁니다. 원할 경우에 국가직 교사가 지방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도 열어 두고요. 이런 유연한 구조가 되면 학교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김세연: 우리가 기존 시스템을 개선할 때 전면적으로 뭔가를 하겠다고 나서면 겪어 보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서로 자기 주장만 하고 상대 주장엔 무조건 반대하는 논쟁에 빠져 결국 아무것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리빙랩처럼 먼저 몇 군데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고,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해서 정제된 형태를 확산시키는 접근 방식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결단만 하면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승호: 실험적인 접근을 말씀하셔서 덧붙이자면, 현재 소규모 학교의 기준은 학생 수 60명 이하인데, 전국적으로 소규모 학교가 25퍼센트 정도 됩니다. 도 단위에서는 50퍼센트에 가까운 지역도 많습니다. 저는 이러한 소규모 학교에서 실험적인 교육 제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학교들은 다 문 닫을 위기거든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학생 수 감소는 미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현재 초중고 학생 수의 3분의 1이 사라집니다. 15년 정도 지나면 절반이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과밀 학급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아파트 문화 때문에 인구는 특정 지역에 계속 집중될 것이고, 작은 학교들만 소멸 위기에 놓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했을 때 저는 소규모 학교에서 다양한 제도적인 실험들이 이뤄지고, 여기서 나타난 성과를 교육청과 교육부에 보고해 확산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학생 수가 60명 이하인 학교, 300명 이상인 학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도적 실험의 노하우가 점진적으로 퍼져 나가게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김승호: 작은 학교들은 소멸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동의를 구하기가 좀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학교를 단순히 통폐합할지 말지로만 접근하니까 학교가 없어지는 게 싫은 지역 사회와 학부모는 반대하고, 규모의 경제를 얘기하는 분들은 경제적으로 통폐합에 찬성하면서 의견이 대립합니다. 이럴 게 아니라 아까 이야기 나눈 실험 학교 같은 새로운 교육 모델을 과감하게 확장해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합니다. 특히 직업 교육 같은 프로그램은 작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도전해 볼 수 있는 거죠.
김세연: 분교처럼 아주 작은 규모의 학교들이 많이 폐교되고 있습니다. 이런 소규모 학교들은 대도시의 인구 밀집 지역에 위치한 학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학 거리가 멀죠. 여기는 학교 운영 체계 자체도 달라야 합니다. 통합 교과를 가르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올라운드 플레이어 같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교육하고, 통학 거리가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심지어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통학 버스 체계가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을 패키지화해서 다르게 풀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승호: 그렇습니다. 학교는 학교급, 규모, 교사 수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상황이 다 다릅니다. 이런 문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죠. 우리가 지금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교육 모델을 논의한다고 해서 기존에 있던 동네와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학교들을 어떻게 운영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김세연: 사교육 문제도 큰 이슈이지만, 소규모 학교의 생존 방안이나 업그레이드 방안도 중요한 논의 주제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에 총신대 유아교육과 정대현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분이 전남 화순에 ‘하리숲학교’라는 대안 학교를 만드셨습니다. 그곳에서 학생들과 당나귀까지 키우며 자연 속에서 다양한 통합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한 예로 우리나라 전통 궁술인 ‘국궁’ 수업을 소개하시더라고요. 이 수업은 팔 뿐만 아니라 전신의 체력을 기르는 체육 수업이 되고, 화살이 그리는 궤적을 계산하는 면에서는 물리학 수업이 되고, 또 활과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는 역사 수업까지 겸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과들이 서로 교차되며 여러 효과가 파생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미술 과목에 역사를 접목할 수 있겠죠. 예술 사조가 변할 때마다 당시에는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혁신적인 시도들이 오늘날은 모두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대의 혁명적인 변화들이 결국 고전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음악이나 미술 수업만 들어도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연결되면서 역사 수업을 듣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빅 히스토리의 접근 방식과도 비슷하죠.
이걸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교원 양성 과정부터 교과 과정의 설계와 실행까지 거의 모든 이슈가 다 얽혀 있는데, 어떤 장치나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김승호: 결국 교사 재교육의 핵심은 방학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방학이지만, 교사들에게는 이 시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죠. 현재 교사들의 연수는 자율적으로 맡겨져 있지만, 동시에 의무적으로 강제되는 연수도 많습니다. 저도 무슨 예방 교육, 무슨 예방 교육, 이런 교육들을 원격으로 42시간 정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이런 연수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 필요합니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얘기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처럼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30년 전에 교사가 된 분은 여전히 교사로 있습니다. 그분이 교사가 될 때 요구되었던 것과 지금 요구되는 것은 굉장히 많이 달라졌는데 이들을 재교육하지 않으면서 국가가 책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죠. 국가가 국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은 결국 교사의 질을 국가가 관리해 주겠다는 뜻인데, 과연 국가가 이 교사를 위해 어떤 관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교사들에게 지속적인 연수가 제공돼야 합니다. 교사들이 학교 밖의 새로운 내용을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인적 자원 관리의 측면에서 보면 국가는 사실상 교사에 대한 인적 자원 개발을 거의 방관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교사 교육에 대해 좀 더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음악이나 미술 수업이 역사 수업이 될 정도가 되려면, 먼저 사전 정의와 교육과정에 명시된 지침이 있어야 하고, 교재나 교안도 준비돼야 하겠죠. 교사들의 역량이 충분히 올라와 있다면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도 문제 은행식으로 구성할 수 있겠고요.
그런데 필수 요소들을 다양화된 요소들과 분리시킬 게 아니라 같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 교사가 인상파의 출현을 가르치면서 시대적 배경, 르네상스 시대와의 연관성을 설명한다면 세계사 수업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데이터 관리가 매우 중요해지겠네요. 제가 요즘 외국어 학습 앱으로 다른 언어를 배워 보고 있는데, 오답 노트처럼 틀린 부분을 계속 보여 줘서 학습 효율 향상을 체감합니다. 만약 학생들이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 데이터가 잘 관리된다면 필수 요소와 다양화된 학습 요소가 자연스럽게 통합되고, 개인화된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승호: 페다고지와 안드라고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둘 다 교육학을 의미하지만, 안드라고지는 성인 교육을, 페다고지는 초중등 학생 교육을 말합니다. 페다고지를 한자로 표현하면 ‘줄탁동시’ 개념인데, 안과 밖에서 같이 쪼아 줘야 한다는 거죠. 즉 교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반면, 안드라고지는 기본적으로 자습 형태입니다.
말씀하신 외국어 학습 앱의 가능성은 성인 교육에서는 명확히 드러나지만, 초중등 학생들에게도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성인은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자발적인 동기로 학습을 시작하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떨어지죠. 이 문제는 코로나 시국에 원격 수업을 진행하면서 두드러졌습니다. 학습 의지가 있는 학생들은 동영상 강의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잘 때도 틀어 놓고 자는데,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아예 한 번도 안 봅니다.
그런 학습 방식이 미래에는 초중등 학생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성인 학습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다들 열심히 수업을 들을 거예요. 하지만 학교 교육의 본질은 배우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도 최소한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이 유급 제도라고 생각해요. 만약 교육 체계에서 딱 하나만 도입할 수 있다면, 저는 초중고든 대학이든 유급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김세연: 사실 학과 폐지 자체가 필요하다기보다 교과 통합을 위한 방안이 필요한 것인데요, 우리는 지금 백지에서 논의하는 것이니까 이런 질문도 가능하겠습니다. 월반과 유급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면 학년제 폐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승호: 완전히 자유로운 논의를 전제로 하더라도 한국의 사교육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교육과정의 성취 기준을 충분히 달성한 학생은 학교를 졸업시켜도 된다는 전제가 있다면, 소위 말하는 월반도 저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변화가 한국 사회 특유의 나이 문화를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세연: 성리학적 또는 주자학적 세계관의 경직성이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가로막습니다. 언쟁이 붙으면 “너 몇 살이야?”부터 시작하는 문화가 대표적이죠.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데 월반이나 진학의 유연성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획일성을 줄이고 다양성을 늘리는 데에도 순기능이 많을 것 같고요.
물론 진학을 빨리한 학생들은 동급생들과 체격이 달라서 유년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사례가 축적되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생길 겁니다. 특히 소수자 차별이 얼마나 반윤리적인 행위인지를 인식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 교육은 초등학교 전부터 확고하게 해놔야 합니다. 역풍도 불고 있죠. 최근 농촌이나 산업 도시 지역의 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늘면서 토종 한국인 가정 출신 학생들이 소수자로 몰려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승호: 지금 말씀하신 것들을 재조합해 보면, 첫 번째로 유급과 월반의 개념에서, 체육이나 음악, 미술 같은 과목에서는 무학년제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은 6학년 수준이지만 체육은 2학년 수준이라면, 각 과목에 맞는 수준에서 학습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체육도 6학년 수준까지 맞추면 졸업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5~6년씩 차이가 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컨대 음악이라는 과목을 융합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흥미롭게 지켜보고 계신 것 같은데요, 실제로 고등학교에서는 자율적 교육과정이라고 해서 한 주 정도 실험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더 깊이 논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음악 수업에서 한두 개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더 나은 수업인가, 아니면 음악사를 아는 것이 더 나은가. 혹은 이 둘을 균형 있게 배워야 하는가. 이 질문이 선행돼야 합니다. 음악 시간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교육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데이터 관리입니다. 저도 데이터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요즘 학생들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온라인 도구를 사용할 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글 문서나 버전 기록 등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수업을 시작하지만, 막상 학생들이 모른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고등학교 교사가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알지 못하면 연속성이 없어지죠. 국가 교육 체제를 차곡차곡 올라오면 알아야 했던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데이터 관리가 꼭 필요합니다. 만약 중학교 때 배우지 못한 내용이 있다면 고등학교에서 방학 중 과제로 내주거나, 선생님이 동영상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일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김세연: 가령 도구 사용 방법이나 기초 지식 같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학생이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이 기본적인 관리를 통해 학생의 이해 수준을 확인하고, 더 상위 단계로 나아가면 학생이 어떤 학습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인수 분해는 잘하는데 확률이나 기하를 잘 못하면 AI가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식이죠.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관리하려면 교육과정 논의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도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결국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합의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승호: 저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가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교육과정이 시험, 즉 아웃풋에만 집중되어 있고, 그 앞부분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죠.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 항상 사회 변화를 이유로 내세우곤 합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도 코로나 팬데믹이나 기후 변화 같은 이유로 변경됐어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이전 교육과정이 아이들이 충분히 배울 수 있었던 내용이었는지, 혹은 그 내용이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한 검토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검토 없이 시대가 변했으니 교육과정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만 반복되고, 실제 바뀌는 내용은 거의 없죠.
그 결과로 지금처럼 “한국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기초는 어디쯤 형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답을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됐어요. 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거죠. 문해력 논쟁과 학력 논쟁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주로 이공계 교수님들이 “요즘 애들은 미적분을 안 배워서 문제다”라고 교육과정에서 빠진 내용을 지적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문해력 논쟁은 학교에서 배웠어야 할 내용들에 대한 것이에요. 교육과정에 다 있는 내용인데, 아이들이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단순히 빠진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학력 논쟁보다 훨씬 심각한 거예요.
그런데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 교사는 중학교를 탓하고, 중학교 교사는 초등학교를 탓하고 부모를 탓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저는 더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 어떤 사람들이 참여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마치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을 뽑듯 국민들의 투표가 필요한 수준의 논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세연: 투표의 결과가 항상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낼까요?
김승호: 그렇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누군가를 넣어야 하는 구조니까요.
김세연: 진지하게 고민해 온 훌륭한 전문가가 들어갈 확률보다는 미사여구로 잘 포장하는 사람이 들어갈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어서, 참여 주체의 선정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토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승호: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만약 누군가가 맡게 된다면 국회의원 정도의 수준으로, 다른 일을 겸임하지 않고 전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가교육위원회도 상임위원 세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겸임이고 비상임으로 활동하는데, 이렇게 되면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 어렵습니다. 상임직으로 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야죠. 비록 처음에는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더라도, 장기적으로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세연: 상임위원을 누가 추천하느냐도 큰 문제죠. 추천하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거버넌스에 결함이 있습니다.
김승호: 첨언하자면 사람들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 선거에 대한 관심도는 74퍼센트로 나왔는데,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도는 43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시도지사 선거는 나이가 들수록 관심이 높아지는 반면, 교육감 선거는 40대에서 정점을 찍고 50대부터 관심이 떨어졌고요. 나이가 들면서 자녀가 초중등 교육을 졸업하고 나면, 교육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거죠. 이런 점에서 기존 제도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더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김세연: 백지에서 그리는 교육 체계를 한번 정리해 보자면, 우리 사회의 공통 인식 기반을 어떻게/무엇으로 합의할지, 교육과정에 대한 합의와 설계의 주체를 어떻게/누구로 정할지, 교원 양성 과정을 어떻게 설계할지, 학제 구분과 학교급 설정을 어떻게 할지, 그리고 더 세세하게는 소규모 학교에서 실험적으로 진행한 교육의 결과를 확산시킬 체계를 어떻게 만들지, 이런 논의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논의들은 여기서 잠시 일단락하고, 이제는 교육과 맞물리는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진로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스웨덴 쇠데르턴대학교의 최연혁 교수님의 대화 속에 인상적인 한 대목이, 그분의 주치의가 의사가 되기 전에 목수로 일했다고 합니다. 고등 교육과 평생 교육이 혼재돼 있고 전직의 장벽이 대단히 낮은 거죠. 새로운 교육을 받는 동안 생계가 문제되지 않도록 사회 보장 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사회적 인식과 개인의 역량도 평준화돼 있고요. 앞으로의 세상에서 학교의 역할이 지식을 잘 넣어 주는 게 아니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거라고 한다면 스웨덴은 이미 몇십 년 전에 모범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셈입니다.
대한민국 사회 또는 대한민국의 후신인 국가에서 개인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역량의 편차가 최소화돼 있게 하는 것이 공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입시 문제가 모든 교육 이슈의 블랙홀이 되어 왔는데, 이를 완화하려면 직업 간 보상의 편차가 크지 않고 삶의 질이 크게 다르지 않은 체계를 만들어야겠죠. 여기서 전제는 인간이 계속 노동을 한다는 것일 텐데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노동 기회가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따라서 교육의 또 다른 과제는 노동과 소득의 연결 고리가 끊긴 상태에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에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대폭 연장되거나 영생에 가까워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 부분은 아직은 불확실성이 많으니 일단 놔두고 다시 앞선 논의로 돌아가면, 교육을 통해 역량과 소득의 편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고졸 병사가 군 복무를 통해 대학 진학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뒀는데요, 엘리트 병사들이 과학 기술 분야에서 고도의 업무를 수행한 후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8200부대라는 특수 부대도 있습니다. 군 복무와 교육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죠. 아까 말씀드린 스웨덴의 사례처럼 고등 교육과 평생 교육이 통합된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승호: 말씀하신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서 모든 경쟁이 끝나버리고, 이후로는 매우 경직된 형태로 사회가 이어진다는 점이 교육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2의 기회가 생겨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등 교육 시스템은 그렇지 않죠.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저출산 문제와도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자녀를 낳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2차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가 제공하는 고등 교육 서비스로서 대학원 교육이나 직업 교육 등의 형태로 재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면, 젊은 층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많은 젊은 세대가 계층 상승이나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를 가장 많이 느끼는 시기가 자녀를 낳을 때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녀를 낳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하잖아요. 하지만 어려운 계층에서는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가가 이들에게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재교육은 대학원 교육일 수도 있고, 직업 교육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대학도 학생 수 감소 문제를 일부 보완할 수 있고, 해당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면 개인에게도 큰 혜택이 됩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은 대학에 전면적인 육아 기능을 부과하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돌봄 기능을 제공하면, 자녀를 키우는 부담도 덜 수 있고, 이러한 체계를 통해 좀 더 유연하고 실질적인 교육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세연: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방안인데, 여러 가지 좋은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겠지만, 우리 논의는 지금 백지에서 준비하는 거니까 그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고요.
김승호: 저는 이 방식이 한국 사회의 특징에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맞벌이 가정이나 돌봄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데, 초등학생의 돌봄을 학교가 맡아야 하는지, 지자체가 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죠. 그런데 영유아 단계의 돌봄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족한 편입니다. 기존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다 떠안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출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학에서 교육을 운영하게 되면, 당연히 아이를 맡아줄 공간이 필요하고 이러한 돌봄 기능을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함으로써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녀를 출산한 다양한 사람들이 재교육을 받으며 서로 섞이고, 이를 통해 사회적 통합이 촉진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와 군대가 사회적 통합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사회적 통합까지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아까 논의처럼 다양한 직군 경험을 가진 분들이 학교 현장에 들어와 사회와 현실, 그리고 전문 분야의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2차 고등 교육의 과정에서 일부는 교사로 재교육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분들이 교육 공급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교원 충원 경로가 다양해지고, 네트워크의 풍부함도 높아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육 시스템의 질도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 있겠죠.
다른 영역과 맞물리는 부분들을 더 살펴보면 국제 정치에서도 교육이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국 안에서만의 상황이 아니라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여러 층위의 공동체들, 즉 가정, 지역, 국가, 때로는 직장 같은 곳도 준거 집단으로 삼곤 합니다. 대체로 국가 단위 안에서 소속집단과 본인 정체성을 결부시켰죠. 그런데 국가 내에서의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인류 정체성, 즉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도 중요합니다. 세계 시민 교육이나 다문화 교육이 필요하죠.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즉 시각적인 차이를 본질적 차이로 인식되지 않게 하는 교육이 필요할 텐데요, 우리처럼 동질성이 강한 사회에서 이런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이 부분도 짚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김승호: 한국 교육은 이탈과 유입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1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교육과정이 매우 빽빽하게 짜여 있어서, 이민 등으로 중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구조입니다. 1학년 때 어느 정도 수준이었어야 2학년 교육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조건도 불명확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한국 교육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전제에서 이뤄집니다. 교육을 통해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지만, 이미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아이들의 성향과 취미가 다양해지고, 다문화 가정도 늘어나고 있잖아요. 이런 환경에서는 기존의 교육과정이 적합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역사 교육에서 자주 나오는 논의처럼, 한국사를 가르치느냐, 세계사를 가르치느냐에 따라 교육의 관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한국사의 전통과 관행을 이어 가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에 한국사가 필수적으로 포함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3.1절 논란이 일어나면 “아이들이 한국사를 안 배워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 반드시 한국사를 배워야 하고, 나아가 수능에서도 필수 과목으로 넣어야 한다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분리가 좀 돼야 해요. 교육은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먼저 설정해야 합니다. 이 논의가 선행돼야 교육과정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김세연: 우리 첫 질문의 기초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김승호: 이 논의는 항상 반복됩니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이게 과연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덕은 가르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도덕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죠.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만약 그것이 지식이라면,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품성이나 덕목 같은 것들은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관점입니다.
김세연: 품성을 결정하는 요인들이 뭘까 생각해 보면, 유전적 요인도 있겠지만 환경적 요인도 큽니다. 그런데 가정 교육의 편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누리 과정 같은 3~5세 통합 교육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품성 형성에 중요한 0~3세 시기의 교육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려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훌륭해야겠죠.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갑니다. 훌륭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공동체는 망가지고, 반대로 훌륭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공동체는 지속 가능해집니다.
교육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기초적인 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분열돼 있죠. 요즘에는 가족조차도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희생하는 분들이 나온다는 것은 국가 정체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교육을 통해 품성이나 공동체 의식, 남을 위한 배려, 희생할 마음가짐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요?
김승호: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까 소크라테스를 인용했지만, 소크라테스조차도 결국 지식을 통해 품성이 형성된다고 우회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반복하다 보면 품성이 형성된다고 했죠. 제가 일본에 있는 학교를 방문했을 때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교실 밖에 테라스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위험하다”였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학생들이 나가지 말라면 나가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나가지 말라면 더 나가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는데, 일본에서는 눈치나 집단의 압박 때문에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가 일본 사람을 보고 인성이 좋네 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인성이라는 것이 스스로 판단했느냐, 아니면 공동체의 압박이나 이지메를 통해 만들어졌느냐고 했을 때 후자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완전한 자율적인 인성을 형성하는 경우는 적다는 겁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도 강제된 애국심이나 강제된 인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족의 힘이기도 했고, 교육의 영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강제된 품성 형성이 무너지는 가운데, 가정은 핵가족화됐고, 학교에서도 집단 활동이 줄어들어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기회가 적어졌습니다. 무리 지어서 놀 수 있는 게 없는 상태죠. 이런 상황에서 저는 학교가 더 강한 권위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아까 말씀 나눈 학교 권위의 붕괴를 막기 위한 민원의 수용 가능한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 교육 현장에서 교권과 학생 인권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등의 매우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그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 같고요. 현저히 실추된 교권을 회복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김승호: 그동안 우리가 국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었고, 특히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국가의 일종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최근 많은 논란이 된 아동 학대 문제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학교가 다시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의 권위는 지식의 권위라고 봅니다. 학교가 지식의 권위를 갖지 못하면 굳이 권위를 가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사회가 상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영국이 섬나라라는 사실조차 몰라도 되는 사회라면, 굳이 학교를 보낼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학교는 지식이 어느 정도 중요한 사회적 인식 체계 속에서 그 지식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살아 있고 생동감 있는 지식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권위를 얻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학교의 지시나 교사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유 급식을 신청한 학생들이 많이들 안 먹습니다. 그러면 꼭 먹으라고 지도를 하거든요. 그러면 학생들이 “왜 우유 급식을 꼭 먹어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이때 단순히 “하라면 해”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질문에 “말이 많다”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로 응답하곤 했어요. 저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성적표가 언제 나오냐 물어봤다가 혼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잘라내던 방식은 이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 구조에서 많이 변하긴 했지만, 교사들이 설명하지는 못하고 단순히 아이들의 질문을 들어주고 수용하는 형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교사들도 학교 체계, 교육 시스템,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줄 수 있고, 그럴 때 아이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며, 사회의 규칙을 파악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국가가 교육과정의 설계, 유지, 관리, 운영에 책임을 지고, 공통의 이해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의 책임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의 역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교육 체계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겠죠. 학교 거버넌스의 바람직한 형태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주로 교사, 학부모, 학생이 주요 주체가 되고, 여기에 더해 다른 이해관계자들도 있을 겁니다. 이런 다양한 주체를 고려했을 때, 이상적인 학교 거버넌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김승호: 저는 이 문제가 민원의 형태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거버넌스는 개개인을 중심으로 형성하지 않고, 어떤 조직이나 조직의 대표자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층층의 구조로 이뤄잖아요. 그런데 학부모 거버넌스를 생각해 보면, 과연 학부모들에게 그런 대표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현재는 학부모들이 개별적으로 행동하고, 그에 따라 학부모의 의견이 대표적으로 수렴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모든 학부모가 개인으로서 민원을 제기하고, 학교는 그 민원들로 과부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학교에는 이를 수렴할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교육청이나 교육부를 우회해 더 큰 압력을 가하게 되는 구조가 발생하죠.
학부모회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학부모들이 계속해서 교육을 받고 학부모회의 대표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민원들도 학부모회를 중심으로 제기돼야 더 건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개개인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는 문제가 있죠.
동시에 교사들도 대표성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교감이나 교장은 교사들이 뽑은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교사들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합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교사회가 있지만, 교사 대표들이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할 수 있는 공식적인 구조를 더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세연: 우리가 왕조 시대와 일제 시대, 그리고 권위주의 시절을 거치다 보니 자치에 대한 개념이나 자치 기구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이 부족합니다. 또 자치의 기준에 대한 합의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자치의 구성 요소들이 파편화돼 있고, 거버넌스의 실제 구성 요소도 부족해서 결국 모든 것이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 남게 됩니다. 또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그 권한을 선량하게 행사하기보다는 기구를 사유물로 인식해서 권한을 독점하거나 남용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권위도 사라지고, 극단적인 개인의 목소리만 커지게 되죠.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학교 리더십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장과 교감의 리더십은 근무 평정에서 아주 미세한 차이로 승진이 결정되는데, 이들이 학교 거버넌스의 일부를 구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버넌스의 감독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리더십을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마지막으로 질문드립니다.
김승호: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연장해 보자면, 저는 학교 거버넌스를 로마 공화정 체제에서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은 일종의 원로원 역할을 하고, 학생들은 민회와 호민관 체제를 이루는 구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장은 집정관처럼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수 있겠죠. 이런 방식으로 학교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장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문제에서는 두 가지 모순점이 발생하는데, 하나는 교장이 “나도 권한이 없어, 나도 힘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서이초 사건 이후에 언론에서 교장의 태도를 조사해 논문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교장들이 “나는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또 다른 모순점은 교장 양성 과정에 있습니다. 교장 양성 과정에서 갈등 해결 역할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교장, 교감이 되는 과정에서 갈등 해결을 주도하는 커리큘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교장, 교감을 개방형으로 뽑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이 나올 수 있지만, 이 역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서 내부에서 리더십을 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들이 일정 기간마다, 예를 들어 5년마다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10년, 15년, 20년마다 계속해서 보고서를 쓰고, 이를 통해 교장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로 계속 남으려는 사람들과 교장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트랙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장이 되려는 사람들은 행정적 실험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교육적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김세연: 제가 ‘티치 포 아메리카’ 본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10여 년 전에 뉴욕에 있는 사무실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인근 중학교에 가보자고 해서 같이 갔습니다.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40대였는데, 몇 달 전에 부임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으로 치면 교감 선생님에 해당하는, 연세가 지긋한 세 분이 있었습니다. 젊은 교장은 다른 학교에서 교감으로 일할 때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낸 경험이 있어서, 침체된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초빙됐다고 하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교육 전문가와 행정 전문가의 트랙을 다르게 갈 수 있겠습니다.
김승호: 그렇죠, 트랙을 일찍부터 구분해서 재교육을 꾸준히 시행하면 교사 교육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교육 현장에서 의외로 합의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학교에는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합니다. 젊은 교장들을 양성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학교 운영을 혁신해야죠. 문제 해결형 교장들이 더 많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교육 문제는 복잡하고 방대해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다른 여러 문제가 생겨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그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세부 분야마다 고민해오신 바들을 아주 명쾌하고 깊이 있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들을 바탕으로 더 발전된 논의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승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