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스케치 다이얼로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홍태화 연구원을 모시고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질 때 어떤 외교 정책을 집행하면 좋을지 말씀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우리가 변방 의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세계 전체를 바라보며 외교 정책을 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는데요, 오늘은 어떤 주제를 준비해 오셨는지 먼저 간략하게 짚어 주십시오.
홍태화: 대외 정책을 만들 때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할지에 대해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 대화가 소국 외교에서 중견국 외교로 사이즈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국가가 대외 정책을 만들 때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상식적인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중요한 내용이니 다뤄 보겠습니다.
먼저, 강력한 대외 정책을 위한 대내 정책의 필요성입니다. 외교 정책은 국내 정책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국가와 관계를 맺을 때는 우리가 어떤 국가 정체성을 가졌는지, 우리의 국익은 무엇인지, 이런 인식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걸 어떻게 일관되게 유지하는지가 관건이겠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상 국가라면 충분히 활용할 만한 국가 정책 도구들이 적절하지 못한 방향으로 활용될 때가 있고, 적절하게 활용되더라도 국내에서 논란이 될 때가 많습니다. 햇볕 정책을 예로 들자면 이론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매우 중요한 전략 수단 중 하나입니다. 국가 정책 도구, 즉 ’Statecraft toolkit‘에 포함되죠.
그럼 왜 1970년대 미국의 데탕트는 비교적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한국의 햇볕 정책은 비교적 실패했을까요. 우리나라의 국가 정체성과 방향성에 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닉슨과 카터가 데탕트를 추구할 때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소련이 현실적으로 적이고 힘의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한 상태에서 대화하려고 했어요. 지극히 현실적인 접근이었죠. 1960년대 갈등이 고조돼 핵전쟁 위협이 높으니까 자국 안보를 위해 긴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겁니다. 소련과 중국의 틈이 갈라지는 것을 인식하고 중국과 화해했죠. 전략적인 사고의 틀이 잡힌 상태에서 올리브 가지를 내민 거예요.
반면 김대중 정부 이후 우리나라 정부의 햇볕 정책을 보면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합니다. 데탕트의 목표는 확실했죠. 중국의 손을 잡아서 소련을 약화시키고 핵전쟁 위협을 낮춰서 최소한 전쟁이 발발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햇볕 정책은 이와 다르다고 봅니다.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끌겠다는 목표는 있었던 것 같은데, 현실적인 실현 로드맵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남북 관계는 어떻게 형성돼야 하는가 같은 기본적인 질문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감성적으로, ‘우리 민족’이라는 슬로건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중요한 국가 정책 도구로 활용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미국과 북한 간의 셔틀 외교가 실패하면서 이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났어요. 외교 안보 분야의 많은 분들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추측하시더라고요. 우리 정부가 미국에 가서는 비핵화의 가능성을 높이 얘기하고, 반대로 북한에 가서는 미국이 제재 해제를 쉽게 해줄 것처럼 설명했다는 거예요. 양쪽 모두에게 비현실적인 희망을 줬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 외에는 전략적인 방향성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우리나라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정통성을 확보한 일관된 흐름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근본적으로 국내 여론과 담론 내러티브가 형성돼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어떤 국가인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서 우리가 어떤 수혜를 받았고, 지금 그 프레임워크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질서를 수호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수호할 것이라면 어떤 비용을 얼마나 많이, 오랫동안 지불해야 하는가. 모든 국민이 외교 전문가는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다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냉전 시기에 미국 국민이 소련과의 경쟁이 내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필요성을 직감적으로나마 느꼈던 것처럼 우리도 국내적인 내러티브 형성이 필요합니다.
이런 난관은 이미 왔습니다. 미·중 경쟁의 컨텍스트에서 보자면, 진정한 첫 테스트는 사드 배치 때였죠. 사드 배치에 중국이 강력하게 반대하니까 우리나라 내부에서 담론이 분열됐죠. 이런 순간이 앞으로 더 많이 더 주기적으로 찾아올 겁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고 우리는 그 사이에 끼어 있으니까 사드 배치보다도 더 중요한 결정의 순간들이 당연히 오겠죠. 그때 좋은 선택을 하려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변국들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돼야 합니다.
김세연: 국가 단위의 외교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면서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기대 효과에 대한 분석이나 체계적인 접근 없이, 당시 정권을 잡은 정파의 오래된 신념을 표출하는 수단으로서 대외 정책을 구사한다면 국가로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대외 정책을 가질 수 없을 겁니다. 다른 국가들이 볼 때 일관성 없어 보일 테고, 국민 입장에서도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대외 정책이 수시로 바뀌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질문 드리고 싶은 대목이 몇 가지 있습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공 데탕트와 같은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했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청산가리 캡슐을 가지고 북한에 갔다는 후일담이 나올 정도로 전에 없던 협상이었어요.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열위에 있다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시점에, 보다 대등한 관계에서 안정적인 남북 관계로 전환하고자 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협상이 김대중 대통령의 1990년대 후반 햇볕 정책과 비교해서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보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 역대 정부의 대외 정책이 결정된 직접적인 요인들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때 북방 정책은 한국 외교사에서 그나마 가장 종합적이고 일관됐고 또 일시적이나마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압도적인 외교 역량 우위를 점한 긍정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북방 외교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혼선을 빚었죠. 특히 문재인 정부 때는 미·북 회담을 중재한다고 했지만 많은 문제를 남겼고요. 외교 난맥상이 발생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국가 수립 과정에서 시민 혁명 또는 독립 운동으로 쟁취한 주권이 아니라 주어진 독립, 만들어진 나라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내부적으로, 정치적으로 통합돼 있지 않아 대외 정책에도 분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내 정치적, 이념적 이견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생각이 다른 정파들이 서로 간의 공존 자체를 사실상 거부할 정도로 통합이 깨진 상태에서 합의된 국가 정체성에 기반한 대외 정책 툴킷이 나올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즉 국내 정치적인 통합 없이 안정적인 대외 정책을 만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아무리 정책 도구들을 잘 준비하고 배열하고 활용할 태세가 돼 있어도 선결 과제를 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겠죠. 안정적인 대외 정책의 수립에 있어서 국내 정치적, 이념적 통합 문제가 제일 핵심이라고 보는데, 해법이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홍태화: 두 번째 질문부터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국내 정치 담론이 극도로 분열되고 공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일관된 대외 정책을 발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입니다. 이 문제는 국제 정치를 넘어서 극심한 사회 문제이자 국내 정치의 문제입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실마리가 꼬여 있네요. 단기적으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면 아까 말씀드린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닉슨은 엄청난 반공주의자이자 공화당원이었고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중공에 손을 내밀 수 있었던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민주당 정부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보수적인 정책들이 있었어요.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 온건파도 그를 찍었다고 할 정도로 중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우파 진영도 흔히 좌파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라도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어야 해요. 진보 진영도 보수 진영의 아이디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고요. 남북 관계에서 보수 정부라고 북한과 완전히 문을 닫을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죠. 또 진보 정부일수록 국방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국내 정치를 예를 들자면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쉽으로 우리가 IMF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만약 보수 대통령이 부실 기업들을 도산시키고 국민들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으면 더 어려웠겠죠. 하지만 김대중이라는 진보의 거인이 우파적인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난관을 넘겼습니다. 상대방이 할 만한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현실에 맞게 가져오는 것도 나라의 생존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사구시 정신이죠.
첫 질문으로 넘어가면, 박정희 대통령의 7.4 남북 공동 성명과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지 물으셨는데요, 가장 큰 차이점은 당시 국제 정치의 맥락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에 왜 갑자기 손을 내밀었을까요. 당시 미국이 중국, 소련과 데탕트를 추구하면서 그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이 상당히 긴장을 했습니다. 미국이 우리를 버리고 중국과 야합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과의 긴장 상태를 낮춰서 우리가 무장을 하고 경제 성장을 할 시간을 벌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헤징(hedging)입니다. 정말로 미국이 우리를 버리고 북한과 전면전에 들어가면 우리가 질 확률이 컸기 때문에 일단 전쟁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유화책을 선택한 면도 있어요.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은 큰 흐름을 보자면 탈냉전 시대였고,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고 북한은 아사 직전의 상황이었어요. 북한이 우리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손을 내민 거고요. 이대로 가면 북한에 당할 수도 있다는 위협감 때문에 손을 내민 박정희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맥락이죠.
김세연: 진보 정치인이자 최초의 진보 진영 출신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이었기에 IMF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대거 수용할 수 있었고, 또 금기시되었던 일본 문화 개방까지도 결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 체결,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이 대표적으로 진영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국익 기반의 결정을 내린 사례였죠.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 정책 역시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를 진보 진영이 시도했다면 엄청난 논란이 불거져서 아마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외교 정책이 강력한 효과를 내고 국내에서 지지를 얻으려면 진영 논리를 넘어 통합할 수 있는, 또는 진영의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는 결단이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자리 잡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지지가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국내 정치적 통합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대외 정책을 안정적으로 구사할 수 있고, 특히 진영의 통념을 넘어설 때 효과가 배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을 만들기가 어렵죠. 국내 정치가 과거에도 분열돼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국가 정체성이 깨지기 직전까지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서는 대외 정책이 나올 수 없겠죠.
폴란드는 공산 체제에서 자유화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쪽이 소멸하며 통합되는데, 우리는 좀 다르죠. 대만이 우리와 비슷해요. 아이러니하게도 공산당과 투쟁하다가 쫓겨온 국민당이 친중이 돼 있죠. 중국의 향후 대만 대책이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여론전으로 뒷공작을 통해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조장해서 국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처럼 국내 정치적 세력 분포가 비슷비슷해서 다른 한쪽을 정리하는 게 어렵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라가 새로 만들어진다한들 여전히 좌우 대립이 극심해 안정적인 대외 정책이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태화: 이념 투쟁, 이념 갈등의 관점애서 볼 수도 있지만, 세대 교체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폴란드를 예로 드셨는데 지금 구동구권 국가들은 장관이 30대인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관료제는 지속성이 있어야 하니까 공산주의 시스템이라는 앙시앙 레짐에서 유능했던 사람들도 탈냉전 이후 체제에서 물론 역할이 있겠죠. 하지만 방향성 설정에 있어서는 친서방 성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동유럽 국가들의 운영 방향을 결정하게 됐어요.
사실 우리나라의 현 체제가 소멸에 가까워진다고 하면 가장 큰 이유는 사회 계약의 붕괴일 거예요. 연금이 대표적인 예시죠. 내가 젊었을 때 국가에 이만큼 돈을 냈으니까 소득이 없는 노년에는 국가가 나한테 이만큼 돈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그런 기대가 무너지면 나와 정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좌우 가리지 않고 수십 년간 폭탄 돌리기를 해온 정치권의 잘못이죠. 그런 맥락에서 어떤 생각과 이념을 가졌든 최소한 상식이 통하는 세대가 등장하는 것이 변화의 방향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좋은 부분을 지적해 주셨는데, 사실 보수 정부가 진보 어젠다를 채택하거나 진보 정부가 보수 어젠다를 채택한 사례를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 해군 기지 건설처럼 실용적이고 실질적으로 중요한 결단도 있었지만, 상징적인 것도 상당히 많았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상징적이지만 실질적인 이득은 없는 행보였습니다. 정치적 자산만 낭비했을 뿐입니다.
그럼, 지금 우리 정부는 뭘 해야 할까요. 하나를 꼽자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은 소위 자유 진영과 밀착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요. 이때 중요한 건 이런 강대국들과의 소통 유지입니다. 사이가 안 좋더라라도 적어도 저 나라가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상태에서 견제하고 경쟁해야 해요. 그런데 요즘 한국과 중국의 공식, 비공식적 접촉이 거의 약해졌다고 합니다. 채널을 열고 소통을 늘려서 적어도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오해는 줄여야 합니다.
김세연: 김대중 정부는 민주당의 첫 집권이었지만 대통령 본인이 워낙 오랜 세월 정치적으로 단련돼 있는 분이었고, 기존의 관료 시스템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고 봅니다. 반면 그 이후 들어선 진보 진영의 대통령들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불신 그리고 대체 세력을 들이면서 관료 시스템의 효능을 제대로 발휘시키지 못한 면이 있어 보여요.
2000년대 이후 집권한 정부들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전 정권에서 주요 역할을 하면 다음 정권에서 사실상 처벌을 받다시피 불이익을 받는 관행이 생기면서 특히 대외 정책에서 관료 집단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안정적인 정책 품질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시기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동서 진영으로 구분돼 있어 미국과 밀착하고 북한만 견제하면 됐다면, 지금은 양상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졌죠. 기존 세계관에서 대외 정책을 관리하던 외교관들이 적절한 세계관 업데이트가 안 됐고, 또 이들을 잘 작동하게 하는 정치 리더십도 약해져서 대외 정책이 더 흔들리게 된 것 아닌가 합니다.
새로 만들어질 나라에서 훨씬 더 안정적인 대외 정책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준거 틀이 될 수 있는 대전략에 기반해서 세부 정책들까지 기술된 문서 형태의 합의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외 정책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들로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컨대 외교관 집단과 선출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돼야 일관되고 안정적인 대외 정책이 가능할지 논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홍태화: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정부 관료와 선출된 정치인들 간의 관계 설정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죠. 문재인 정부 때 외교 컨트롤 타워에서 외교부가 힘을 잃고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힘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외교 문제에 노하우가 있고 다른 나라들과 오랜 기간 소통 채널을 유지해 왔던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국내 정치적 어젠다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과의 수출 규제 관련 다툼이었습니다. 당시 외교부에서는 대부분 우리나라의 지소미아 파기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치권 지도자들이 강하게 밀어붙였죠. 선출된 사람들의 선택으로 넘어오게 된 거죠. 저는 이게 선악이나 실익이 쉽게 구분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출직 공직자는 국민의 주권을 대행하는 사람이고, 그들이 A라는 정책을 추진할 때 공직자 개인은 A가 싫더라도 국민들이 A를 보고 뽑은 걸 수도 있으니 그걸 반영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선출직 공직자가 방향성을 선택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갈 때의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분야에 훈련이 잘돼 있는 관료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 분업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까 통합된 문서를 언급하셨는데, 미국은 행정부마다 NSS(National Security Strategy)라는 국가 안보 전략 문서를 발행합니다. 큰 정책의 흐름이나 방향에 전환이 있으면 그때마다 이 문서를 통해 설명합니다. 최근 중요했던 NSS는 2017년에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것입니다. 과거 테러와의 전쟁을 안보 어젠다로 삼았던 미국이 이제 중국과 러시아라는 다시 일어선 강대국들과의 경쟁을 어젠다로 삼는다는 것이 주요 포인트였어요. 두 국가를 협력의 대상보다는 견제와 경쟁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을 공식화했기 때문에 파급이 컸죠.
NSS는 임기 1~2년 내 최대한 빨리 발행돼야 효과적이라는 것이 미국의 대전략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에요. 또한 이 문서는 단순 발행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과 최고 권력층들이 이 문서에 힘을 실어 줘야 합니다. 정부에 여러 부처가 있고 부처들 간 이해관계가 다르니까요.
한국에서는 외교부와 국방부, 산업부의 방향성이 다를 때가 있어 보입니다. 산업부는 무역을 최대한 늘리고 전략 물품을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외교부는 소위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요. 국방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죠. 요컨대, 미·중 경쟁을 보는 세 부처의 생각이 다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세 부처를 하나로 묶는 컨트롤 타워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정권이 있는 최고위층에서 힘을 실어 줘야 해요. 우리의 국정 운영 방향은 이것이다라고 명확히 보여 줘야 합니다. 그게 시그널일 수도 있어요.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는 이럴 것이다라고 연설한 내용일 수도 있죠. 어쨌거나 확실한 방향성을 잡아 줘야 여러 부처들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어젠다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재밌는 예시가 있어요. 레이건 정부의 목표 지향점은 소련과의 경쟁이었잖아요. 소련을 어떻게 이기나, 생각하다 보니까 우선 순위를 설정할 필요가 생깁니다. 목표는 유럽에서 소련을 약화시키고 소련이 군비 경쟁에서 패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유럽에 힘을 집중하기 위해 그 외 지역에서 미국의 개입을 어떻게 줄일지가 관건이 되죠. 1982년에 레바논 내전이 시작되면서 중동의 화약고로 변하는데, 그때 레바논에서 미국의 역할이 대두됩니다. 미국이 고민하게 된 거죠. 여기에 발을 더 집어넣으면 소련과의 경쟁에 더 집중할 수 없고, 그렇다고 발을 빼면 우방인 이스라엘이 위험해지고 미국 영향력도 축소될 수 있으니까 레이건 대통령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임기 초반에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부처들도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충돌했어요.
이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서 만약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진다면 임기 초반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우리의 국정 운영, 외교 대전략은 이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문서로, 혹은 다른 무언가로 선포하고 부처들이 최대한 그 노선을 따르도록 압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세연: 국방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투입해서 동맹 관계나 영향력을 유지 또는 강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정된 자원 때문에 발생하는 딜레마입니다. 미국의 이라크 철군, 아프가니스탄 철군도 비슷한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미국 정도의 위상이 있을 때 그렇죠.
우리는 가령 우크라이나와 대만 상황에 개입을 한다면 수위나 역학 관계에서 우리 포지션을 어디로 잡을지 결정하는 역할은 정치인이 하되, 어느 정도로 구두 개입을 할지, 어떤 성격을 가진 물자를 어떤 루트로 지원할지, 직접 전달할지 대체 방식으로 할지, 이런 선택지들을 필요한 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풀 세트로 구비해 놓는 역할은 외교관들이 해야겠죠.
아까 외교부, 국방부, 산업부가 부처별로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말씀 주셨습니다. 영국 총리실은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은데 구심점으로서 기능적 통합을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교육, 의료, 관광, 이런 소프트한 정책들을 묶으면서 산업과 외교까지 엮어 모아 내더라고요.
우리 총리실은 총리실에 가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또 대통령실은 대외 정책을 국내 정치적 활용을 위한 도구로 동원될 수 있는 위험을 증폭해 왔고요. 부처별로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기능별로 분절되지 않고 통합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이 문제는 사실 대외 정책이라기보다 정부 조직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영역으로 넘어옵니다.
가령 백악관의 컨트롤 타워 기능과 한국 대통령실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비교하자면 통제 면에서는 한국 대통령실이 더 강력하겠죠.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정도로 강력한 통제를 하고 있겠죠, 이렇게 그립이 센 것과 고차원 고품질의 정책이 집행될 수 있을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걸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홍태화: 우리도 명목상 그런 기구가 있기는 합니다. NSC인데요, 비공개 회의 내용은 기밀이라 제가 알 수 없지만 그 회의에서 나온 결과물을 봤을 때 미국의 NSC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기회비용의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책에는 기회비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정책에 안 좋은 부분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객관적으로 실익을 따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외교 정책과 그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감정에 따른 계산이 많아요.
일본 수출 규제에서 우리가 얻은 것이 뭘까요? 저는 늘 의문이 있어요. 항상 우리가 이겼다고들 이야기하거든요. 1910년에는 우리가 졌지만 2019년에는 우리가 이겼다. 그런데 뭘 이겼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경제 규모가 큰 일본의 압박을 우리가 이겨내서 기분은 좋을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얻은 이득이 뭔지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어요. 이렇게 되면 단기적인 손익 계산이 무너지고, 중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분석은 더 무너지죠.
당장 미국의 외교 정책이 지금 위태로운 단계까지 온 가장 큰 이유는 기회비용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탈냉전 시대에 엄청 팽창하면서 경제적으로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큰 나라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모든 지역에 개입하고 모든 분쟁에 개입하고 미국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자유 무역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기회비용을 무시한 채 팽창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가 이제야 돌아오면서 붕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고 빠르고 값싼 승리는 없다는 걸 인식해야 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X라는 결정을 내리면 A라는 장점과 B라는 단점이 있다는 걸 정치권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 후에 A와 B의 무게를 비교해야죠. 모든 정책에는 항상 단점 혹은 기회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어요. 이 단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정치인과 관료의 역할입니다. 예컨대 지금 정부의 친서방 노선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안 좋아지는 건 당연하죠. 그런 단점을 인정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지, 이걸 했더니 이런 부작용이 생겼는데 어떻게 할 거야, 책임져라. 이거야말로 책임감 있는 정치가 아니죠.
스스로의 한계도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자기 객관화가 된 상태에서 냉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니까 우리 정부가 뭔가를 해서 상대가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가 있어요.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고 저들이 X라는 행동을 하는 까닭은 내가 Y라는 행동을 해서라는 얘기인데, 나르시시스트적 사고죠.
왜 김정은과 푸틴이 갑자기 밀착했나. 이게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을 했기 때문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급하니까 북한의 폭탄과 지원이 필요했고, 북한은 중국이라는 뒷배가 있지만 러시아라는 보험을 마련해 두고 싶은 것이죠.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겁니다.
제가 듣기로는 러시아와 우리 정부는 전쟁 이후에도 소통을 해왔습니다. 서로의 레드라인을 인식했어요. 그래서 최근까지도 러시아 측에서는 한국이 우리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무기 지원을 안 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실제로 한·러 간의 소통이 있었기에 서로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한 거예요.
그럼 왜 러시아가 북한을 품으면서 우리의 레드라인을 넘었나. 우린 그동안 변한 게 없는데, 러시아가 갑자기 변했다면 러시아의 사정을 봐야죠. 우리 때문에 변했다고 생각하는 건 나르시시스트적 사고입니다. A가 일어난 다음에 B가 일어났다고 해서 A가 B의 원인이 되는 건 아니죠. A가 B까지 이뤄지는 과정에서 어떤 로직으로,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진보 정부, 보수 정부 다 그동안 국제 정세의 여러 현상을 아전인수식으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원인과 영향을 분석하기보다는 직관적인 판단을 많이 한 거죠.
예컨대 202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니까 보수 일간지와 매체, 전문가들이 미국이 아프간 정부를 버린 것처럼 우리도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완전히 다른 사례인데도 그런 얘기가 정말 많았어요. 아프가니스탄을 봤을 때 우리는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결여된 주장이 주류 언론과 담론 현장에서 많이 나왔죠. 체계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직감적인 때려 맞추기로 결과물이 나온 거죠. 과학적인 분석법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국제 정치 이론에 더 기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과 이론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지만, 이론이라는 건 그냥 내 머릿속 망상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축적돼 온 수많은 데이터에서 하나의 흐름을 찾은 거죠. 물론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지점도 있고, 그 흐름과 무관한 현상도 있겠지만, 대체로 이렇다는 걸 알아 두는 것만으로도 정책 결정 과정에 큰 힘이 됩니다.
김세연: 우리는 〈스케치 다이얼로그〉를 통해 백지에 새로운 정책 요소와 기능을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각각의 영역이 최종에는 어떤 모습으로 연결될지 떠올려 보면 마치 인간 뇌의 뉴런처럼 여러 경로로 서로 연결돼 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오늘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다른 영역과 연결되는 부분을 다시 한번 보자면 국내 정치적인 통합은 역사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 나눴듯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국가 정체성을 결정짓게 하는 관점들, 역사관, 정치 경제 이념, 즉 어떤 정치 경제 시스템이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이러한 국내 정치적인 또는 정치 철학적인 또는 역사 인식의 관점에서 연결되는 부분이 한 덩어리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인과 외교관의 관계 설정,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씀 주셨습니다. 정치인이 직접 부여받은 권한과 외교관 집단의 전문성을 어느 선까지 존중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정치인들이 제한된 지식으로 복잡한 정책을 단순화해서 결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선출된 공직자와 임명된 공직자들 간의 관계 설정이 필요한데요, 이런 역할 분담은 정부 조직 구성은 물론이고 운영 측면에서도 운영의 묘가 필요해서 말이나 글로 풀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명문화된 절차나 제도보다는 행동과 문화의 영역에 포함되는 일이니까요.
기회비용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지금 우리의 결정이 낳을 영향과 효과에 대해 보다 사회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처럼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대응, 자존심이 주된 동력이 되는 정책 결정으로 이어져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책 대안의 선택에 있어 정성적인 판단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계량적이고 분석적인 판단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이해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경제학과 법학의 교집합인 법경제학이 떠올랐습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 때 입법 영향 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서 논쟁이 되고 있죠. 법의 제정 또는 개정이 이해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량하고 분석하자는 것인데, 이걸 의무화해서 모든 법에 영향 평가를 다 하려면 지금 국회 입법조사처의 자원으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안 하게 그냥 두면 입법을 남발해서 규제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날 우려가 있고요.
계량 분석 도구를 활용하는 법경제학처럼 정치학에도 계량정치학 같은 분야가 이미 확립돼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사실 제가 접한 사회 과학 분야 중에서 국제정치학이 가장 추상적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가지고 담론을 만들어야 하니까 계랑화가 쉽지 않겠죠. 그런데 한편으로 경제학의 발전 과정을 보면 변수가 많고 측정이 어려워 계량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개념화, 이론화의 과정을 거치며 계량화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 많거든요. 마찬가지로 국제 정치 영역도 전보다 계량화 시도가 용이해지는 단계로 접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 좀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이 가능해질 것도 같은데요.
홍태화: 국제 정치 분야가 계량화로 접어든 것도 사실이고, 숫자와 통계 사용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는데, 여기에 회의감을 갖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도 절대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질적 방법론을 통해서도 이론을 충분히 만들고 검증할 수 있거든요. 숫자를 안 써도 가능하고 오히려 그렇게 나온 결론들이 우리가 당연하게 해오던 인식들을 깨부수는 것들이 많습니다.
국제 정치에는 ‘Reputation for resolv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 나라가 싸울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를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개념입니다. 과거 히틀러의 부상과 그에 대응한 유화(appeasement) 정책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죠. 유럽이 계속 양보하니까 히틀러가 유럽 국가들은 싸울 의지가 없다고 생각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게 우리 통념입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나는 뮌헨에서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들을) 봤다. 그들은 지렁이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여기에서 A라는 지역에서 싸워서 B라는 지역에서도 싸울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는 논리가 파생됩니다. 그런데 사료를 보면 그렇지는 않다는 게 요즘 주류 의견입니다. 히틀러와 독일 수뇌부의 토의 내용을 보면 과거에 영국과 프랑스가 가만히 있었다고 지금 우리가 이걸 저질러도 괜찮겠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시 독일은 국제정치학의 기본인 두 가지를 신경 썼습니다. 관심(interest)과 역량(capability)을 봤죠. 지금 당장의 이 사안에 그들이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지, 그리고 이 사안에서 만약 싸운다면 그들이 군사력을 얼마나 투입할 수 있는지. 이 두 가지를 살폈습니다. 그들이 과거에 다른 지역에서 뭘 했는지를 보고 현재 그들이 뭘 할지는 의외로 별로 참고하지 않았던 거죠.
이게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예컨대 미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고 베트남전을 ‘미국화(Americanize)’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소련에 ‘우리가 유럽에서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어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기밀 해제된 기록을 보면 소련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소련은 미국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병력이 죽어가고 있는지를 봤지, 미국이 저기서 열심히 싸우니까 유럽에서 전쟁이 나도 열심히 싸우겠다, 이런 단순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거죠.
직감적으로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오히려 말이 됩니다. 전쟁 같은 ‘high stake game’에는 과거의 사례를 그대로 대입하는 것이야말로 도박인 거죠. 이처럼 숫자를 안 써도 질적인 방법론으로 충분히 연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가 현실 정치나 현실 정책에 적용되지 못했기 때문에 소모적인 분쟁이 많았죠. 우리의 직관적인 이해와 반하는 것들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세연: 국제 정치에는 가정이 워낙 많이 들어가고, 아무리 정교한 모델이라도 복잡성의 차원에서 현실과 비길 수 없어서 계량적인 접근에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다만 보완적인 수단으로 계량적인 접근을 활용하는 방안을 준비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고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감정에 치우치거나 국수주의 내지 비속어로 ‘국뽕’에 빠지거나, 국가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지거나, 우리를 영원한 약소국으로 평가하거나, 우리가 2000년 전에는 세계를 주름잡는 제국이었다는 과잉 역사관에 사로잡혀 있다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대외 관계의 집행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더불어 남미, 중동처럼 우리 일상과, 또 지리적으로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지역의 문제도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 일의 일부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테고요. 결국 다시 교육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홍태화: 지난 대담에서 말씀 나눈 대로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이 변하면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죠. 21세기의 질서는 이런 식으로 변하고 있구나, 우리는 이렇구나, 우리가 뉴스에서 보던 삼성 얘기, SK 얘기, 반도체 얘기, 중국 얘기가 국제적 흐름 속에서 되게 중요하구나, 우리는 국제 질서 속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세연: 역사 인식과 국제 정세 인식에 통합된 기준을 갖는 차원에서 두 과목의 통합은 바람직한데, 명제가 옳다고 해서 그 조치를 실행한 결과가 반드시 좋을 수만은 없겠죠. 사실 상고사, 고대사, 중세사까지는 이념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요동이 고구려 이후에도 한민족의 활동 권역이었냐 이런 논쟁은 있죠. 그런데 근현대사는 역사에서 비교적 근거리에 위치해서 현대 정치에 대한 이념적 경향성이 투사되기 쉽습니다. 세계사를 전공한 교수와 교사, 국사를 전공한 교수와 교사를 단순 통합하면 세력 분포에 따라 방향이 정해질 수 있고, 오히려 왜곡이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통합 자체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통합이 돼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문제는 학계와 교육계의 세력 다툼 문제로 치환될 수 있어서 풀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합의를 도출하게 할 것인지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출발이 될 수 있는데,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있으실까요?
홍태화: 가치 판단과 선악 판단이 아니라 인과 관계에 더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A 때문에 B가 일어났다고 얘기하면 지금 A를 정당화하는 거냐, A가 잘했다는 거냐, 이렇게 항상 얘기가 와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치 판단과는 무관한 인과 관계성이 엄연히 보이는데, 이걸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고 선악으로 나누는 시도가 항상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인과 관계성을 보여 주는 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특정 대통령 누가 잘했다, 누가 더 훌륭했다, 이런 판단을 하는 역사 교과서는 불건전하고 있으면 안 되죠. 그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A 때문에 B가 일어나고, B 때문에 C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나열하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 사실 나열에 있어서만큼은 잔인할 정도로 현실에 가깝고 진실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마저도 어려운 과제인 것이 사실이지만요.
김세연: 제가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에서 2년 3개월 정도 활동하면서 대토론회를 포함해서 50차례 정도 회의를 했습니다. 국정감사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주 했어요. 또 국회 교과위를 8년 했으니까 기간이 일부 겹치긴 해도 거의 10년간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을 위해 팩트와 인과 관계를 발췌하고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학계 내부의 역학 관계를 경험한 바로는 말씀하신 대로 되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좌우 이념 대립을 극복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논쟁이 가능하려면 세대 교체를 과감하게 한번에 크게 해야 할 텐데, 국가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면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태화: 교과서에서 대놓고 특정 대통령, 특정 정파나 정당을 비판하거나 찬양하는 현상도 볼 수 있습니다. 가치 판단을 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어쩌면 더 위험한 건 가치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입니다.
김세연: 논란이 많이 있었지만 사진 자료를 쓰는 것도 그렇죠. 역사 왜곡을 자율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자정 기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분열되고 왜곡된 역사관을 초중등 교육 시기에 주입받고 나면 대외 정책의 안정적 집행을 위해 필요한 국내 정치적 환경 조성은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이것만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은 그렇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스케치 다이얼로그〉를 통해 앞으로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진다면 외교 정책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건지를 살펴봤습니다. 마무리에 앞서 보충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홍태화: 한국이 좀 더 국제적인 어젠다를 가지고 외교 활동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죠. 다만 글로벌 외교를 펼치는 과정에서 우리의 현실적인 한계 또한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러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는 것은 좋지만, 어떤 방향에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실익은 무엇인지 분석했으면 좋겠어요. 나토가 지금 아시아에서 하듯 추후에 반대로 아시아도 유럽에 더 관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면, 우리의 노선을 조심스럽게 설정해야 합니다. 그때는 지나치게 적극적이면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을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대서양 안보와 인도·태평양 안보의 불가분성은 이론적으로 맞지만, 일단 역할 분담이 필요합니다. 유럽 국가들이 유럽 안보를 잘 챙겨서 러시아를 잘 견제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아시아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미국이 그만큼 아시아를 우선할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국가들이 지역 안보에서 큰 역할을 하면 미국도 어느 정도 유럽에서 안보 존재감을 유지할 여력이 생기겠지요. 이건 유럽 국가들 입장에서 반길 일이고요. 일종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세연: 우리가 오커스나 파이브 아이스, 나토 플러스 같은 다층적 안보 협력의 틀에 들어가서 다양한 부분 집합의 일원으로 동맹 체계 내에서 움직이는 게 추가적인 부담은 들어도, 안전 보장을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강화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우리가 단순한 구도 안에서 흑백 논리로 움직이는 데 안주해 왔다면, 이런 고차원 틀을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데 물론 시행착오와 학습의 기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그래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태화: 저는 전통 안보, 즉 하드 파워 면에서 우리가 군함을 어디로 보내고 병력을 어디에 배치할지는 인도·태평양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비전통 안보는 지금보다 협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 안보에 중요한 반도체를 보면 아시아에 삼성도 있고 TSMC도 있지만, 네덜란드에 ASML도 있잖아요. 유럽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죠. 또 파이브 아이즈는 첩보 동맹이에요. 우리가 직접 하드 파워를 투사하지 않는 부분이니까 유럽 국가들과의 동맹 수준까지 협력을 지금보다 훨씬 끌어올려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하드 파워 부분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 있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소프트 파워 부분에선 유럽 국가를 포함해 중국과 러시아에 경계심을 가진 나라들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세연: 우리가 인도네시아와 KF-21을 공동 개발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죠. 그간 선진국 기술을 카피하거나 기술 이전을 받아서 쫓아가는 데 익숙해 있다가, 기술 수준이 올라가서 기술 공여국의 지위에 이르니까 하드 파워 협력이든 소프트 파워 협력이든 어떻게 핸들링할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경험이 없다 보니까 미숙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파병,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도 호주는 전쟁에 직면할 위험이 거의 없는데도 항상 전투병을 파병합니다. 우리는 전투병 파병을 죄악시하고 공병이나 의무병 파병 정도에 그칩니다. 일본은 헌법 9조에 의해 군대를 가질 수 없지만, 실은 자위대라는 실질적 강군을 이미 보유하고 있죠. 우리가 하드 파워를 전개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자율 규제로 보통 국가가 아닌 상태로 인식이 굳어져 버려서 글로벌 안보 협력이 훨씬 더 높은 차원으로 요구될 때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홍태화: 중요한 지적을 해주셔서 제가 드린 말씀에 보충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먼 지역에 하드 파워를 투사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쏟아부어서 정작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중요한 아시아와 한반도 안보에 기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입니다. 두 번째는 처음에는 적은 자원을 투입했다가 갈등과 분쟁이 격화하면서 자원이 점점 더 들어가 밑빠진 독처럼 될 수 있어서입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그랬죠. 이 두 가지 상황이 아닐 때는 우리가 충분히 리더 역할을 할 수 있고, 말씀대로 전투 병력의 경험 차원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우크라이나에 한국도 파병하라는 얘기냐고 하는 분도 있을 텐데, 그건 당연히 안 되죠. 러시아라는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과 전쟁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충돌은 피해야죠. 대신 그렇지 않은 분쟁도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2020년에 홍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청해부대가 파병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때 여론 반응이 매우 안 좋았죠. 사실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만 가는 게 아니라 전 세계 50개국이 참여하고 또 현장 경험을 쌓는 일인데요. 국제적인 기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내러티브를 쌓아 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세연: 국민의 국제 정세 인식이나 국가의 군사 외교, 하드 파워 투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담보되지 않으면 50개국이 참여하는 해군 작전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죠.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시기별 전쟁을 우리가 지나치는 사이, 작전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군사용 드론이 비대칭 전력으로 사용되죠. 우리는 기사로만 접하는데, 현장을 보지 않으면 남의 일로 생각하고 긴박감의 차이도 크겠죠. 가령 러시아군이 보는 현장감과 한국군이 보는 현장감이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금기시된 조건과 환경하에서 자연스럽게 깃들 수밖에 없는 나태함이 우리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태화: 강대국이 전쟁에 참여할 때 동맹국이 왜 따라가는지도 국제정치학의 재밌는 토픽 중 하나입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강대국한테 자신의 ‘충성심(loyalty)’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강대국이 전쟁을 할 때 우리가 돕는 걸 보여 줘야 우리가 필요할 때 저들도 우리를 돕는다는 거죠. 단어 자체는 다소 위계질서의 뉘앙스가 있지만 이건 상호적인 부분입니다. 강대국도 그 동맹국들에 충성심을 보일 필요가 있죠. 이 부분은 다소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할 거 같습니다.
두 번째는 강대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치기 위함입니다. 전쟁에 자신의 지분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레버리지도 생긴다는 논리죠.
요컨대 한국 전쟁에 영국이 참전한 이유 중 하나가 그런 논리였습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 당시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참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힘을 빼면 유럽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왜 파병을 했나. 충성스러운 동맹이라는 걸 미국에 보여 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기밀 해제된 문서를 보면 미국의 전쟁 방향과 전략에 자신들이 영향을 주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951년부터 양측은 본격적으로 휴전 협상을 벌이는데,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빨리 휴전하라고 압박을 하죠.
강대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주고, 하나의 스테이크를 가져가고, 이에 따른 부담도 당연히 안는 겁니다. 이 메커니즘에서 손익을 따져 결정하는 거죠.
김세연: 영국의 6.25 전쟁 참전 동기를 설명해 주셨는데, 국제 정치 무대에서 우리가 종속 변수가 아니라 독립 변수로서 판단하는 주체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야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겠죠. 남이 결정해 놓은 것을 수용할 거냐, 반대할 거냐, 이 정도 수준의 인식으로는 그런 결정에 이르기 어려울 겁니다.
홍태화: 하나 추가드리자면 동맹국이 강대국을 따라 전쟁에 참여했을 때 그럼 정말 영향력을 가지게 되느냐, 정말로 그만큼 지분을 얻게 되나. 이건 의견이 갈립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유고 내전 때도 영국군이 똑같은 이유로 참여를 하거든요. 당시 영국 정부 문서 기록을 보면 우리가 참여해야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당시 영국 정부 인사들의 회고록을 보면 우리가 열심히 어필해서 평화 협정이 체결됐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실제로 영국 때문에 미국이 평화 협정을 중재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미국 주도의 틀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늘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 그런 의견이 있고 우리 상황에 따라 고려해 볼 필요는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김세연: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국제 정치, 외교 정책을 화두로 기존 대한민국이 갖고 있던 정책 의사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의 한계를 짚어 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할 때는 어떻게 풀어 볼 수 있을지에 대해 말씀 들었습니다. 홍태화 연구원의 깊이 있는 고민과 통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스케치 다이얼로그〉의 첫 순서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홍태화: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