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이번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카이스트 MSC 랩의 최근하 연구교수님을 모시고 국방 분야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최근하: 네, 안녕하세요.
김세연: 최근 전쟁 양상을 보면 과거와는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침공에 반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새로운 방식의 전술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드론 등 신기술을 활용하는 한편, 심리전, 정보전, 전자전 등 다양한 전술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또 북한군도 파병되어 러시아군과 함께 움직이며 새로운 전장 경험을 쌓고 있고요. 반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오랜 기간 격리되어 있죠. 남북 간 전술 개념 발전이나 교류에 있어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로부터 공격을 받은 이후 보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자 지구의 인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보와 AI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란이나 시리아에 대한 공격에서도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작전에 정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옮겨 보겠습니다. 우리는 유사시 정부나 군, 정보기관이 과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막막한 생각이 듭니다. 북한, 혹은 다른 외부 위협에 직면했을 때 말입니다. 이런 여건을 고려했을 때, 만약 새로운 국가 설계도를 백지에서 그린다면 우리의 국방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앞서 있었던 국방 분야 〈스케치 다이얼로그〉 대담에서 군 편제에 관해 논의할 때 합동군과 통합군 체계의 장단점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군 내 특정 조직에 물리력이 지나치게 집중될 때 군 수뇌부의 결심에 따라 체제가 위험에 처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 통합군 체계의 단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즉 특정 국가 기관에 물리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군과 경찰 사이, 또 군 내부에서 기능과 규모에 쏠림이 발생하지 않게 해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거버넌스를 짜야 하겠죠. 이런 부분도 논의의 전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최근하 교수님과의 대담에서는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인구 급감 환경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즉 상비군 규모가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인구 구조의 제약 조건, 그리고 인공지능 및 드론을 포함한 새로운 전술적 요소들이 이전 시대에 없던 방식으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전략 및 전술 개념을 그대로 지속해서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새로운 국가에서 새로운 국방 체계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죠, 교수님은 어떤 기본 요소들을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질문이 크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 질문드립니다.
최근하: 질문이 광범위합니다만 하나씩 풀어 나가겠습니다. 제가 군에 있었을 때, 방위사업청에 있었을 때, 그리고 지금은 학교에 있으면서 군을 바라보는 시점, 특히 과학기술군의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민군 융합 기술입니다. 민군 융합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미군을 보면 민수 기술을 국방으로 끌어오는 과정이 매우 유기적이고 가깝습니다. 필요하면 의도적으로 회사를 키워 주기도 합니다. 최근 팔란티어 주가만 봐도 알 수 있죠. 특히 다르파(DARPA, 미 고등연구계획국)가 많은 예산을 기업에 지원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거기서 나온 민수 기술을 국방 쪽으로 가져옵니다. 이렇게 성장한 기술이 히든 챔피언 기술이 되어 전 세계 무기 체계를 선도합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국방 분야에서 시작했습니다. 팔란티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많은 AI 기업들이 다르파로부터 알게 모르게 지원을 받습니다.
중국은 아예 대놓고 민군 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화웨이를 비롯한 다수의 상장사가 사실상 국영 기업화가 되어 있습니다. 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기업들이 방산 분야에 참여하고 있고요. 특히 화웨이 같은 경우에는 군 통신 체계, 클라우드, AI까지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국가가 민수 분야를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그 기술을 곧바로 국방으로 가져오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 군은 단절된 느낌이 있습니다. 민간과 국방 사이에 벽이 있습니다. 민간 기업이 국방 분야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국방 쪽에서 매출을 내거나 진입하는 데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 대형 방산업체 몇 곳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방사청 제도와 규정이 이들 비교적 큰 기업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기존 실적이나 기술, 무기 체계 납품 경험 등을 중시하다 보니 신규 참여가 어렵습니다. 아예 기술 개발 단계부터 참여했던 업체들이 양산까지 가는 프로세스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민수 기술이 아니라 방산만 계속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따라서 드론이나 AI 같은 기술은 민간이 더 발전했음에도 군이 빠르게 가져오지 못합니다. 이런 장벽 때문에 AI 기술군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약 10년 전부터 ‘드론봇’이라는 개념을 말해 왔습니다. 시기적으로 빠르게 논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전력화는 미진합니다. 민수 드론 기술을 빠르게 군에 도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백지에서 새로 그림을 그린다면, 민간 기술을 가진 기업, 방사청이나 국방부 같은 정부 기관, 그리고 방산업체가 기술을 빠르게 주고받고 공유할 수 있는 체계로 제도와 정책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세연: 그렇다면 조달 체계 문제로 연결됩니다. 다만 〈스케치 다이얼로그〉라는 저희 타이틀처럼, 지금은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이니 세밀한 부분보다는 큰 틀을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기존 체계 개선은 논외로 하고 백지에 새로이 요소를 앉힌다고 하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최근하: 우리 방사청 조달 체계를 ‘획득 체계’라고 부릅니다.
김세연: 새로운 체계에서는 방사청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하: 중요한 것은 신속하게 민수 기술을 군에 적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민수 기술이 있으면, 군이 그 기술을 직접 발굴해 요구 사항을 제시하는 식입니다. 개조 기술 개발처럼 말이죠. 해당 기업은 그 기술을 군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고, 무기 체계를 만들어 냅니다. 이후 군이 시범 운용을 해보고 군사적으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전력화하는 겁니다.
김세연: 그러면 10년 걸리던 절차가 몇 년으로 줄어들 수 있을까요?
최근하: 1년에서 길어도 3년 이내로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군에도 이와 비슷한 ‘신속 획득 사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고, 예산도 적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부수적인 차원으로 둘 것이 아니라 아예 메인 제도로 가져가야 합니다.
지금은 기존 제도의 힘이 강합니다. 기술 개발, 운영 연구, 시험 개발, 체계 개발, 양산 절차가 방위사업법에 의해 획득 체계의 메인으로 못 박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속 획득 제도를 만들어도 본류가 아니라 곁가지일 뿐입니다. 새롭게 체계를 꾸린다면, 판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단계를 대폭 줄인 체계를 아예 메인으로 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을 가장 잘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메인 방산 기업은 물론이고 수많은 국방 벤처 기업이 있습니다. 기술을 내놓으면 군이 평가합니다. 좋은 기술이라 판단되면 사용자 요구 사항을 곧바로 줍니다. 기업은 이를 빠르게 커스터마이징하여 제공하고, 군은 직접 사용해 봅니다. 효과가 입증되면 별도의 절차 없이 곧바로 전력화하게 되죠.
김세연: 바로 전력화가 가능하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이스라엘 방위군에는 첨단 기술을 탐색하는 전문 기관이 있습니까?
최근하: 네, 있습니다. 이스라엘 방위군이 원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기관인 ‘이노펜스(Innofense)’가 대표적입니다. 이스라엘은 방위 산업 생태계가 굉장히 잘 꾸려져 있습니다. 돈이 잘 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국방 벤처를 만들어도 대부분 망합니다. 매출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산 체계 업체에 끼지 못하면 매출을 낼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김세연: 그렇죠. 실적이 없으면 애초에 들어갈 수도 없는 거죠.
최근하: 맞습니다. 우리는 방산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체계 업체’ 구조이기 때문에 작은 벤처 기업이 무기 체계를 납품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김세연: 그렇다면 군이 직접 체계 관리를 해야 하겠군요. 지금은 일부 대기업이 체계 관리를 맡고 있어서 국방 벤처들이 생태계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는 구조니까요.
최근하: 그렇습니다. 그래서 벤처들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기술이 좋으면, 그리고 사용자 요구 사항에 맞으면 빠르게 전력화할 수 있습니다. 매출 발생 확률도 높죠. 그래서 생태계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김세연: 우리나라에서 체계를 관리하는 대기업이라고 하면 대략 네다섯 곳 정도 되겠죠?
최근하: 그렇습니다.
김세연: 이스라엘은 군이 직접 체계 관리를 하고, 요소 기술을 채택하는 구조군요. 이렇게 구조가 다르니 생태계도 다양해졌고요. 그러면, 이스라엘군에서 체계 관리를 맡는 조직은 어떻게 운영됩니까?
최근하: 우리 육군 미래혁신연구센터와 비슷합니다. 군인 과학자들이 중심입니다. 저도 과거에 그런 역할을 맡았고, 육군 미래혁신연구센터에도 석박사 출신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스라엘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 공부를 한 인재들이 군 내에서 소요(所要)를 탐색하고, 결정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을 발굴해 적용하는 역할까지 밀접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김세연: 그렇다면 새로운 국가 설계도를 그릴 때, 국방 조달이나 국방 R&D는 군인 과학자가 주도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게 되면 생태계가 살아 움직일 수 있겠네요.
최근하: 맞습니다. 군과 방산 분야는 더 가까워지고 밀접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예전에 불거졌던 방산 비리 문제 때문에 투명성 이슈가 크게 작용합니다. 정서적으로 꺼리는 분위기가 있고, 감사 부담 때문에 군과 방산업체가 서로 가까이하기 어렵습니다. 세미나 등 교류는 있지만, 이스라엘이나 미국처럼 밀접하게 협업하기 힘듭니다.
미국에는 ‘원팀(One Team)’ 개념이 있습니다. 방산업체와 군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 유착 의혹이 생기고 감사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자료 유통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 체계를 만든다면, 긴밀한 협업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방사청은 업체를 만날 때 면회실에서만 만나야 하고, 반드시 두 명이 함께 나가야 합니다. 일대일로 만나면 괜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또 면담 사실도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투명성 강화를 위해 마련된 절차지만, 실무자에게는 간접적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가까이 협력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거리감을 두게 되고, ‘원팀’이 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김세연: 비슷한 문제가 행정 분야에도 있습니다. 한국 공공 부문, 특히 행정 쪽에서 순환 보직이 제도화한 것도 유착 우려 때문이죠. 과거에 좋지 않았던 사례들에 대한 반성과 예방 조치였지만, 그 결과 공무원들은 전문성을 쌓을 틈도 없이 끝없이 순환합니다. 공무원 조직의 행정 분야별 전문성이 극도로 저하되는 모순이 생겼고요. 군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유착 사례 때문에 긴밀한 협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황입니다.
최근하: 요즘 국제 정세를 보면, 원팀이 되어도 위태로운 마당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조차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어 안타깝습니다. 새롭게 판을 짠다면 기존 방위 사업 절차와 제도는 모두 걷어내야 합니다. 현재 절차는 투명성 강화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방위사업법의 입법 취지는 투명성과 전문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었지만, 현재 제도를 살펴보면 전문성보다는 투명성에 치우쳐 있습니다. 순환 보직은 물론이고, 각 단계를 쪼개 놓았습니다. 그 단계마다 작성해야 할 문서와 위원회들도 있습니다. 방위사업법 시행령, 시행 규칙, 분야별 규정까지 내려가면 위원회가 수십 개에 달합니다. 실무자는 위원회 안건을 만들고 통과시켜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으므로 획득 체계가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세연: 전형적인 가짜 노동, 가짜 행정입니다. 일종의 거대한 연극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데요, 이번 대담의 취지가 기존 체계와 절차를 백지화하는 사고 실험인 만큼 말씀 주신 내용에 깊이 공감합니다.
최근하: 저도 방사청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항상 느꼈던 점이 이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좋은 제품이 있으면 직접 써보고 좋으면 더 쓰면 됩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국방 쪽은 좋은 기술이 있어도 굉장히 어렵게, 또 오랜 기간 고민한 끝에 사옵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몇 발 앞서 나가 있는데, 우리는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뒤처집니다. 드론이나 AI 같은 기술은 개발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잠시 한눈팔면 다른 나라가 이미 멀리 앞서갑니다. 이런 기술 트렌드를 볼 때, 제도 역시 발맞춰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행정 조직과 절차가 지금처럼 규정된 배경에는 과거의 유착 문제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손발을 묶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올림픽 경기에 나가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제약 속에서 활동하는 셈입니다.
기술 측면으로 넘어가 보면, 하드웨어 개선에는 시간이 필요하니 어느 정도 시차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마치 한 달이 1년, 1년이 10년처럼 느껴질 만큼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술을 도입조차 못 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기존 획득 절차를 넘어, 완전히 새로 시작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 새로운 체계에서는 민관이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긴밀한 협업 체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기존의 전략 및 전술 개념도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총력전이나 소모전 개념에서 심리전, 정보전, 여론전, 마비전 등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전후방의 경계도 모호해졌죠. 정부와 군, 그리고 국민 간의 신뢰 관계를 해체해 싸우지 않고 승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양상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쟁의 개념부터 근본적으로 바뀌는 환경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전차 한 대를 드론 한 대가 파괴하는 식입니다. 완전한 비대칭 개념으로 전술도 바뀌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어떤 대비가 필요한지,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고려를 해야 할지 질문드립니다.
최근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무인 복합 체계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MUM-T(Manned-Unmanned Teaming)’라고 부르는데, 최근에는 AI 기술이 강화되면서 AI를 결합한 AI MUM-T 체계가 트렌드가 됐습니다. 미국, 유럽, 중국 등이 모두 이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먼저 인명 존중 사상입니다. 다음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의 위력을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도 드론과 무인 체계의 효과가 드러났죠.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이 이 방향으로 가고 있고, 우리도 당연히 따라가야 합니다. 이전 정부와 이번 정부 모두 AI MUM-T 체계 가속화를 국정 운영 방향으로 내세웠고요. 관련 핵심 기술들도 조금씩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최신, 최고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지,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김세연: 중국에는 DJI 같은 압도적인 세계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드론 기업이 있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이 드론을 전략 산업으로 인식하면서 드론의 중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다만 미·중 갈등 속에서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니 점유율에는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우리나라의 상황만 보자면, 민간 드론 수요가 빠르게 늘지 않아 공급망이 형성되기도 전에 중국이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즉, 국내 드론 산업 생태계가 매우 미약한 수준입니다. 생태계가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죠. 랩 스케일로 시험 운영을 하는 수준입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비해 국력 격차가 큼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에 공급망을 구축해 대량 생산을 이루어 냈습니다. 드론 전력을 통해 일정 부분 전력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드론 산업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면 어떤 산업적, 정책적 고려가 필요할지 질문드립니다.
최근하: 사실 우리는 이미 10년 전부터 ‘드론봇’이라는 이름으로 드론을 군에 대규모로 도입하겠다는 정책을 폈습니다. 군도 기술과 업체를 발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요. 홍보도 활발히 진행해 일시적으로 드론 붐이 일었고, 크고 작은 드론 업체들이 창업했죠. 그러나 결국 군의 소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체계는 군이 소요를 제기하면 합참이 확정하고, 방사청이 획득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군에서 소요가 풍부하게 나오지 못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1~2년도 매우 긴 시간인데, 오랜 절차 끝에 정찰 드론 몇 기, 소형 쿼드콥터 몇 대가 확정되는 정도였습니다.
속도 싸움에서 균형을 맞추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 기업들이 업종을 바꾸게 됩니다. 막상 군이나 방사청에서 나중에 획득하려고 보면, 이미 사라진 업체가 많고요. 해결책은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겠죠. 그동안 지원책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군에서 시범 운용이나 교육용으로라도 판로를 열어 주고, 일부라도 획득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겁니다. 업체들이 그 기간을 버티며 기술을 개발하고, 다음 단계에서 더 나은 무기 체계를 만들 수 있었겠죠.
특히 국방 드론 산업은 국가적으로 키워야 할 분야였는데, 마치 민수 시장처럼 경쟁만 시키며 관망한 점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현재는 대대급 UAV를 생산하는 업체만 몇 군데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중국의 DJI처럼 작은 드론을 만들던 기업들은 거의 사라졌고, 대부분 민수 쪽으로 바꾸거나 업종을 변경했습니다.
김세연: 민수는 엔터테인먼트나 레포츠, 영상 촬영, 드론 쇼 같은 분야죠. 그런 쪽은 수요에 한계가 있어 시장이 제한적입니다.
최근하: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그 배경에는 군 내부 인식 차이도 있습니다. 드론봇이 처음 나왔을 때 ‘드론과 로봇이 과연 전투에 임팩트를 줄 수 있겠느냐’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당시 김 모 육군참모총장님이 추진했지만, 갸웃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제가 방사청에 있을 때도 방사청은 드론봇에 관심이 크지 않았습니다. 현행 삼축 체계, 유도 무기 등 기존 주요 무기 체계 중심으로 관심이 있었고, 드론봇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죠. 군 내부의 소요 제기가 늦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인사이트의 부족도 있었을 겁니다. 지금의 AI도 비슷하게 봐야 합니다. 정부나 외부에서는 AI를 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아직 군 내부에는 과연 AI가 필요한지에 대해 물음표를 가진 분들이 꽤 있습니다.
김세연: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설계도를 새로 그린다면, 미국의 다르파 같은 국방 R&D의 본산이자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겠죠. 최첨단 과학 기술과 군이 직접 연결되고, 사실상 한 몸처럼 융합되는 구조 말입니다. 과학 기술에서 군사적 용도로 활용되지 않을 부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버넌스 최상단에서 과학 기술과 군사 분야가 융합되는 체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동차 산업을 봐도,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관점 차이로 전기차 전환 등에서 내부 갈등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과학 기술 훈련을 받지 않은 군인의 관점과 과학 기술인인 군인의 관점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겁니다.
조직 절차에 이어 기술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의 인구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유·무인 복합 체계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출생아 수가 최근 다소 반등했지만, 예전처럼 연 100만 명이 태어나던 시대와는 다릅니다. 반등이라는 표현도 인구가 유지된다는 뜻이 아니라 급격한 감소가 다소 속도를 늦춘 상황인 겁니다. 여성 징병제 시행 여부도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결국 인구 감소가 어느 수준에서 수렴한 뒤 상비군 규모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 60만 대군에서 50만으로 줄었고, 앞으로는 40만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컨대 상비군 규모가 15만이나 20만으로 안정화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미 현역 복무 비율이 90퍼센트에 육박하면서 병영 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합니다. 상비군 규모를 정할 때 현역 비율을 어느 수준으로 설정할 것인지가 병무 행정의 핵심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의 보병 전력 중심 구성을 유·무인 복합 체계로 바꿔야 합니다. 지금은 드론이 주된 전력처럼 보이지만, 이는 지상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등 육상 드론(지상 로봇)이 상용화되기 이전의 과도기적 전력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공비행을 하는 드론의 기동성과 속도는 이점입니다. 따라서 드론의 공중 지원이 작전에서 필요하겠지만, 육상 병력을 유·무인 복합 체계로 전환할 때는 4족 보행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등의 변화하는 기술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기술 변동을 고려할 때 10~15년 뒤 전장을 어떻게 예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근하: 말씀하신 대로 드론은 자율 주행에 유리하고, 공중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장애물이 적어 운용이 편리합니다. 고도에서 감시 범위가 넓어 유용하기도 하죠. 민수 드론 기술의 성숙도도 높아 군사적 차용이 빨랐던 것도 있고요.
유·무인 복합 체계에서는 드론은 물론이고 지상 로봇이 투입됩니다. 지상 로봇은 인간이 팀을 이루어 통제하는 형태입니다. 원격 조종이든, 전투원을 따라다니며 전투를 보조하든, 지상 로봇, 드론, 인간이 협동 전투를 수행하는 콘셉트입니다. 또, 공군 관점에서는 지휘기 하나에 작은 전투기들이 같이 다니는 형태로, 조종사 1명당 전투기 5대가 편대를 이루는 형태가 됩니다.
최근에는 해군도 비슷합니다. 해군은 무인 수상함에서 선도함을 무인으로 두고, 중간에 함을 지휘하는 지휘 함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정찰이나 수송 관련 무인 함정들이 따라다니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이른바 ‘함정 드론’ 개념입니다.
지상만 놓고 보면, 일부 대형 방산업체가 지상 무인 로봇을 이미 시제품 단계까지 만들어 놓았고, 양산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아직은 자율 주행이 아니라 원격 조종 및 휴먼 팔로잉 수준입니다. 해당 플랫폼을 기반으로 구급차 대체, 물자 수송 등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 상부에 공격 드론을 탑재해 발사하는 역할이나 40mm 또는 60mm 주포를 올려 대전차 역할 등을 수행할 수 있는 형태로 계열화할 겁니다. 다양한 플랫폼이 나오겠죠.
문제는 한 사람이 6~8대의 로봇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간 한 명이 그 모든 기체를 리모트 컨트롤로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재는 로봇 한 대당 사람이 한 명입니다. 병력 감축 효과를 보려면 한 사람이 로봇 5대 정도를 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군이 가려는 방향과 현재의 획득 상황을 보면 거의 일대일 개념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를 바꾸려면 인간의 통제를 보조하는 AI가 들어가 지휘와 판단을 지원해야 합니다. 자율 주행 레벨 기준으로 최소 3.5~4레벨 정도의 반자율 이상이 되어야 실제 병력 감축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AI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는데요, AI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지휘 결심 체계를 지원하는 AI입니다. 객체 인식이나 표적 식별 같은 AI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봅니다. 지휘 및 결심을 지원하는 체계는 가장 어렵고 고도화된 영역이죠. 더욱 큰 문제는 데이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수행하는 과제들도 데이터 부족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군이나 국방 분야에서도 데이터를 많이 수집하겠다는 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충분히 파격적이진 않습니다.
제가 교육사에 있을 때부터 느낀 부분입니다. 데이터는 없는데, 민간에 AI 기술과 좋은 모델이 있으니 성능만 요구합니다. 데이터 없이 요구 수준만 높아지니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민수 AI 업체 입장에서는 국방 분야를 굳이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데이터를 줘도 할까 말까인데, 데이터도 없이 요구만 높으니 당연히 맞지 않죠.
지금 미국 같은 경우는 전장 데이터를 통합 수집하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자체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어드바나(Advana)’입니다. 일종의 데이터 허브인데, 국방 전장 데이터를 하나로 모으는 일종의 데이터 센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세연: 팔란티어나 안두릴 같은 곳에서 이 데이터를 받아서 새로운 무기 체계나 이들을 엮어 주는 OS를 만드는 식이죠.
최근하: 미국은 다 줍니다. 전적으로 오픈하고, 전적으로 제공합니다.
김세연: 그렇게 몰아줘도 특혜 시비가 생기지 않는 것은, 해당 업체들의 기술적 탁월함을 동료이자 경쟁자인 다른 엔지니어나 업체들도 인정하고, 군의 판단을 존중하기 때문이겠죠.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수주를 두고 물밑에서 비방전이 벌어지고, 의사 결정권자들이 이를 버티지 못해 거리를 두게 되었죠. 또, 절차를 중첩해서 신설하는 방식으로 흘러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동맥 경화 상황에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하: 정확히 보신 것 같습니다. 서두에서 말한 투명성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AI 데이터전(戰)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군이 자신감 있게 국방 AI 개발을 추진하지 못한 배경에는 일단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있습니다. 국방부와 군이 데이터를 수집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한데, 이마저도 부재한 상황이고요. 국정 과제에 올라 있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장 데이터와 관련된 역할은 과감하게 방사청에 위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방사청은 예산을 직접 받을 수 있고 규모도 크니,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며 군과 협조해 무기 체계에 넣을 전장 데이터를 통합 수집하는 작업을 맡으면 좋겠습니다. 행정, 복지, 인사 등 국방 행정 데이터는 국방부가 지금까지 하던 대로 국방부에서 모으고, 이를 통해 비무기 체계용 AI는 국방부가 개발하는 구조로 개선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어느 곳도 이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김세연: 지금 군 편제에서라면, 합참의 작전본부장이 이 문제를 완전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쳇바퀴 돌듯 제자리걸음일 것 같습니다.
최근하: 미국은 JAIC(합동 인공지능 센터, Joint Artificial Intelligence Center)라는 조직이 합참 밑에 있어서, 합참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습니다.
김세연: 완전히 새로운 설계에서는 군 편제가 어떻게 될지 열려 있지만, 현 체계로 보자면 그 정도 위치에서 다뤄져야 제대로 통합 운용이 가능하겠네요.
최근하: 미군은 합참 차원의 AI 조직이 컨트롤 타워로 각 군의 AI 정책을 통제하고,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했던 겁니다. 우리 군은 국방부 기획조정실 예하 지능정보화정책관이 AI 업무, 첨단전력기획관이 AI와 유·무인 복합 체계(MUM-T)를 혁신하는 정책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조직이 약하기도 하고 원래 무기 체계 획득 및 운영을 하던 조직이 아니라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방사청과 국방부가 따로 노는 느낌이고, 각 군도 각자 살아남기 위해 별도 조직을 만들어 따로 움직입니다. 톱다운으로 내려가기보다 산발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무기 체계 획득과 AI 정책에서 정합성과 일관성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김세연: 너무 많은 일이 그렇게 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AI 및 소프트웨어 쪽의 문제와 개선 대안을 간단히 살펴봤으니, 하드웨어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MUM-T 체계에서 병사 1인이나 조종사 1인, 함장 1인이 유·무인 복합 전력을 운용하는 그림을 말씀하셨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AI 윤리 이슈로 기계에 인명 살상을 처리할 수 있는 결심을 위임하지 않고 인간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리모트 컨트롤을 붙들고 있는 건 일면 이해는 됩니다. 다만, 인간 운전자보다 훨씬 안전한 도로 주행이 가능한 자율 주행 기술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 계속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요? 카메라만으로 자율 주행을 구현하고 있는 테슬라가 아마 확산 속도를 더 앞당길 걸로 예측되고요.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국방 분야에서 인간 대 로봇의 비율이 1:3, 1:5, 1:100, 이 중 어느 쪽이 맞을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기술 성숙이 더 진행된 뒤의 전장 시뮬레이션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물론 실전은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습니다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합니다. 우리의 대비 수준은 첨단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는 국가들에 비해서는 상당한 격차가 있어 보입니다. 백지에서 새로 그려 본다고 가정하면, 지금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으므로, 당장은 리모트 컨트롤을 쓰더라도, 곧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킬러 AI’, 즉 AI 윤리, 생명 윤리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질 겁니다. 이 논쟁이 매우 중요하지만, 막상 전장 상황에서는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질 가능성도 클 것 같습니다.
생명 공학이나 살상 무기를 운용하는 국면에서 인권을 소홀히 하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국가들이 잠재적으로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AI 윤리 논쟁으로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해서 우리 병사들의 생명만 위태롭게 둘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곧 부상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그런 이유로 일견 한가해 보일 수 있는 AI 윤리 논란은 잠시 보류해 두고, AI 대 AI, 로봇 대 로봇의 전투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의 유·무인 복합 체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과도기에 해당하는 너무 가까운 미래는 예측이 더 어려울 수 있으니, 2030년 이후의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해 보기로 하죠.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하: 최근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입니다. 민수 분야는 자율 주행만 잘하면 됩니다. 목적지까지만 잘 가면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군 무인 로봇은 자율 주행에 더해 과업 수행까지 잘해야 합니다. 이동과 과업 수행이 번갈아 이루어지므로, 자율 주행과 ‘행동 모델’이 함께 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군의 수준은 자율 주행 레벨 2 이하 수준이고, 리모트 컨트롤에 일부 경로 주행을 추가하는 정도까지만 전력화되어 있습니다. 현재 민수 쪽은 레벨 3.5 정도까지 와 있으므로, 우리도 빠르게 따라간다면 그 정도까지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기술 개발이 진행되지 못한 부분이 ‘행동 모델’입니다. 무인 전투 체계끼리 전투를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둘 다 자율 주행을 할 겁니다. 자율 주행 중 서로 마주치면, 전투를 더 잘하도록 학습된 쪽이 이기겠죠. 각각 10대씩 가지고 붙었는데, 우리 10대가 다 져버리면 안 됩니다. 따라서 전투 행동을 잘 수행하는 AI 기능을 함께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이 분야의 개발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김세연: 사실 그래서 저는 인간 대 기계의 비율이 1:3이나 1:5 같은 비율은 궁극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먼 미래에는 1:100, 1:1000, 경우에 따라 0:100, 0:1000 같은 작전 개념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하: 앞으로 무인 이동체의 전투 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자율 주행이 아니라 행동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병사가 전투 기술을 배우듯, 로봇도 전투 기술을 얼마나 잘 학습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겁니다. 만약, 어떤 나라와 우리가 무인 전투를 시작했을 때, 여기서 전력이 압도적으로 갈릴 수 있습니다.
김세연: 드론은 탐지와 식별을 하고, 육상에서는 실제 행동이 이루어지는 식으로 전투가 벌어질 겁니다. 미국이나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바로 맞닿아 있는 북한과 비교해도 우려가 있습니다. 북한의 부품 및 기술 제약을 감안하면 로봇 기술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만, 우리는 기술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규제나 제약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식 자체가 결여된 것 같습니다. 국가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매우 회의적인 생각이 들 정도로요.
최근하: 말씀처럼 아예 이런 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니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군에서 누군가 발제하고 기획, 건의가 이루어져 R&D 과제로 진행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부분이 부족합니다. 또, 데이터가 많이 필요한데, 기술만 있지 데이터를 모으지 못해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도 큽니다.
최근 휴머노이드 기술 개발 붐이 일고 있는데, 조만간 미국이나 중국은 이것을 군으로 가져올 가능성이 100퍼센트라고 봅니다. 휴머노이드는 자율 주행이 아니라 ‘행동’을 목적으로 개발된 플랫폼입니다. AI 모델 도입, 강화 학습 등으로 다양한 액션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행동 모델’입니다. 이를 무인체에 응용만 하면 다양한 전투 행동이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인데, 상대는 구르고 숨고 회피까지 가능하다면 전투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휴머노이드를 전력화하더라도, 휴머노이드 간 전투에서 누가 더 잘 싸우게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그걸 위한 AI 지능 개발을 병행해야 합니다. 현재 이 ‘행동 모델’ 쪽이 특히 부족합니다.
또 하나 우려하는 점은, 몇 년 내 AI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나라와 공유할 수 없는 나라가 갈릴 가능성입니다. 일종의 ‘AI 동맹’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이스라엘 등 몇 나라와만 보유 데이터를 공유한다고 가정해 보죠. 이 나라들은 AI 학습이 쉬워, 순식간에 미국과 비슷한 레벨의 기능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이 동맹에 끼는 나라와 못 끼는 나라의 격차가 벌어질 것입니다. 미국의 국방 AI 기술이 더 압도적으로 발전하면, 데이터 공유를 동맹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우리도 데이터를 많이, 그리고 ‘좋은 데이터’를 보유해야 합니다. 지금 수준으로는 어렵습니다.
김세연: 낄 수가 없는 거네요. 예컨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같은 경우도 위성을 포함한 신호 정보들을 서로 충분히 갖고 있어야 데이터를 주고받고 할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되죠?
최근하: 아예 끼워 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동맹에 낄 만큼의 데이터 거버넌스를 갖췄는지, 국방 쪽 컨트롤 타워가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저는 ‘AI 강군’에 앞서 그것부터 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능 중심에만 관심이 쏠립니다. 드론에 이 기능 넣었느냐, CCTV에 휴먼 디텍션 넣었느냐 같은 문제 말이죠. 그보다 데이터 조직을 만들고 센터를 세워, 지금부터 대대적으로 수집하고 통합하는 체계를 꾸려야 합니다. 현재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김세연: 혹시 기밀이 아니라면, 어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지 말씀 주실 수 있을지요?
최근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유·무인 복합 전투를 하려면 인간과 무인 체계 사이의 협동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좋은 케이스와 나쁜 케이스가 모두 있어야 하고, 사람과 무인 체계의 위치 정보, 각종 센서 데이터, 교전 시 속도 등 모든 데이터를 수집해야 합니다. 전투 후 피해 평가 자료로 좋은 평가 사례를 더 학습시키고, 나쁜 사례는 제외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데이터를 다 모으려면 위해서는 광범위한 IoT 센서들이 필요합니다.
김세연: KCTC(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같은 곳에서 대대급 정도로 무기 체계의 믹스를 바꿔 가면서, IoT 센서를 충분히 장착 또는 배치해서 계속 돌리면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물론, 지형지물의 다양성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도시 시가전, 산지 고지전 등 다양한 환경 데이터를 모아서 넣고, 나무, 바위, 도로 등 상황별 행동을 학습시켜 모델을 만들면 새로운 상황에서도 추론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학습시킬 데이터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점이겠죠.
최근하: KCTC 데이터도 활용해 보려 했습니다. 거기에도 IoT 센서가 있어 전투원 위치 등을 수집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다릅니다. KCTC의 데이터는 사후 평가를 위한 것입니다. 훈련을 잘했는지 안 했는지 보기 위해 만든 것이죠. 우리는 AI 학습용 데이터를 모아야 합니다. 피지컬 AI든 객체 인식이든, 한 개 부대에 센서 시스템을 통째로 달아 1년 내내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훈련하고, 전장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모으는 전용 체계가 하나 있다면 데이터가 계속 쌓일 것입니다.
김세연: 웨이모 등의 라이다 방식과 달리 테슬라는 카메라만으로 자율 주행 관련 학습을 시킵니다. 엄청난 GPU를 투입해 데이터를 계속 학습시키다 보니, 어느 순간 성능이 훨씬 올라갑니다. 이와 비슷하게 드론과 인간 병사의 웨어러블 카메라는 물론이고, 4족 보행 로봇이나 휴머노이드가 아니더라도 차륜형이나 무한궤도형 육상 드론들이 돌아다닐 때 데이터를 모아야 합니다. 카메라를 장착해 돌아다니면 데이터를 계속 넣어 줄 수 있습니다. 모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추론하는지는 블랙박스일 수 있지만, 어쨌든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가능합니다.
최근하: 그래서 센서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동시에 오토 레이블링까지 가능한 데이터 수집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김세연: 그런데 그게 채택이 안 되고 있죠. 체계를 백지에서 새로 그린다면, 데이터 수집을 전담하는 부대를 창설하거나, 기존 부대의 임무를 전환해 미션을 부여해야 합니다. 한 부대에만 고정하면 다양성에 한계가 생길 수 있으니, 여러 부대가 가상전, 대항전 개념으로 끊임없이 훈련해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지휘관과 병사의 판단에 따라 경우의 수가 많아질 테니까요. 예컨대 연 1주 또는 1개월씩 순환하되 전력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려해 체계를 설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하: 정확하게 말씀 주셨습니다. 전담 부대이든 전담 센터이든, 각 군에 데이터 센터 역할을 할 데이터 수집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또, 무선으로 데이터를 모을 통신 인프라와 민간과도 공유 가능한 클라우드 인프라가 함께 묶여야 합니다. 몇 년만 운영해도 엄청난 데이터가 쌓일 겁니다. 그러면 민수 기업도 그 데이터에 관심을 가지고 모델을 제공해 빠르게 학습시킬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좋은 성능이 나온다면, 무기 체계에 더 신속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거 만들어 보자’라고 제안하면, 업체가 데이터를 묻습니다. 그러면 업체에 알아서 찾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저희 ‘데이터 랩’을 만든 겁니다.
김세연: 이제까지 AI와 하드웨어를 어떻게 풀어 갈지 어느 정도 얘기했으니, 몇 가지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기존의 참호전, 총력전, 소모전에서 최근에는 무기 체계의 기술적 발전에 따른 변화와 맞물려 마비전 등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군만 잘한다고 전쟁 수행 역량이 높아지는 건 아닐 수 있으니, 설계도를 새롭게 그릴 때 어떤 요인을 고려해야 할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최근하: 과거 ‘군산복합체’가 부정적으로 비치곤 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결국 공급망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EU나 미국도 공급망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죠. 러시아는 전격전으로 빨리 끝내려던 계획이었지만 장기 소모전이 되었죠. 그러면서 막대한 무기 체계를 장기간 공급해야 했습니다. 동맹국들이 지원하려 해도, 자국 물자를 다 퍼줄 수는 없고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생산 능력과 공급망에 한계가 있었죠.
우리도 군만 전투를 잘해서는 안 됩니다. 방위 산업 기반이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AI 칩과 반도체 등 많은 부품을 선진국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최근 ‘국방 반도체’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무기 생산이 막히고, 싸울 무기가 사라집니다. AI와 로봇 중심으로 갈수록 핵심 부품은 AI 칩, 데이터, 모터, 모터 제어기 등입니다. 이런 핵심 부품과 기술을 국산화해 공급망 문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큰 숙제가 될 것입니다.
김세연: 현재 국내 부품 생태계를 보면 자립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하실 수 있습니까?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산과 격차가 커 어려움이 많은데요.
최근하: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차, 자주포 등의 주요 무기 체계에 방산 원가를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저가형 드론처럼 일부 품목은 여전히 최저가 입찰이지만, 주요 체계에는 방산 원가가 적용돼 비교적 가격을 제대로 쳐줍니다. 그래서 중국 부품이 덜 들어옵니다. 이 부분은 계속 지켜야 합니다. 방사청과 국방부도 핵심 부품과 칩 등에 대해서는 저가 부품으로 돈 아끼려 하지 말고 과감하게 열어 줘야 합니다. 국산 중소기업이 제품으로 먹고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소형 저가 드론 등은 지금도 조달 체계에서 전부 저가 입찰입니다.
값싼 부품을 쓰다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CCTV에 중국 화웨이 칩이 들어가는 식으로 말이죠. 앞으로는 국방 주권 측면에서 모든 것을 틀에 박힌 ‘공정, 투명 경쟁 입찰’로만 볼 게 아닙니다. 안보 관련 분야에는 적절한 대가를 지급하고 상호 작용을 강화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독자 기술을 가진 교수님이 있습니다. 군이 찾아와 제안을 해서 과제 기획을 1년 합니다. 그런데 다음 해에는 공개 경쟁을 해야 하니 100쪽짜리 제안서를 써야 하는데, 수주가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평가 위원으로 그 기술을 모르는 분도 들어옵니다. 해당 기술을 가진 사람은 그 교수님뿐인데 이렇습니다. 기본은 경쟁 구조로 하되, 일부 안보 분야는 규제를 풀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세연: 안타깝습니다. 과거에 문제가 많았기에 지금과 같은 체계가 되었고, 수의 계약을 허용하면 악용 사례가 한 건만 나와도 곧바로 원상 복구될 겁니다. 여러 분야에서 그런 일이 많았으니까요. 현 시스템에서는 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설계도로 대한민국의 ‘후속 국가’가 만들어질 때는 유치원, 초등 교육부터 과거의 부조리와 관행을 분리해 새로운 질서 위에 올려야 합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죠.
최근하: 방사청에서 오래 근무해 봐서, 말씀대로 어렵다는 걸 압니다. 투명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가져가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전용 트랙을 만드는 것도 실무자에게 큰 부담입니다. 다만 백지에서 그림을 그린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그려 놓고 시작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지금은 이미 그려진 판을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하니 매우 어렵습니다. 새로 그린다면 좀 다를 수 있겠죠.
김세연: 기존 관행을 당연시하고, 빈틈만 생기면 과거 관행을 되살리려는 관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 체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요소가 섞이면 오염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는 답이 없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장기, 초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하기 어려운 논의였는데,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최근하: ‘백지 위에서 그린다’라는 접근은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백지에 바로 그리라면 쉽지 않겠지만, 많은 이야기와 아이디어, 인사이트를 듣고 나서 그린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세연: 국방과 과학 기술, 두 분야의 전문성과 통찰을 겸비한 분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보통 때 듣기 어려운 혜안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최근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