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오늘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강건작 장군님을 모시고 대한민국 국방의 미래 모습에 대해 말씀 나누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올해 3월 출간된 《강군의 조건》이라는 저서를 통해 군에서 오랜 기간 관찰하고 실행해 온 여러 경험과 고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좋은 제언을 해주셨습니다.
〈스케치 다이얼로그〉의 취지는 기존의 제도적 문제점을 수정하기보다는 나라를 새로 설계한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토대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따라서 오늘 질문도 국방 정책, 군의 편제와 전략 전술 개념, 군과 국민 간의 관계를 아우르고자 합니다. 국방이 군인들만의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정부 내 과학 기술, 산업,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영역과의 교차점에서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종합적인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 번째 주제로 기술적인 변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인구 변화를 다루겠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적정한 군의 역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이를 위해 내부 작동 원리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기술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론 격으로 인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몽둥이 같은 무기를 쓰다가 석기, 청동기, 철기를 지나 칼과 활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화약을 제조하게 되면서 살상력을 키운 폭발물이 결합된 무기로 발전했습니다. 여기에 교통수단이 결합되면서 기병의 시대가 왔고, 해양에서는 선박 건조 기술이 높아지며 돛단배에서 다양한 함정으로 발전했습니다. 공군 역시 프로펠러기에서 제트 엔진으로 넘어왔습니다.
앞으로 우주 발사체에 탄두 같은 탑재체를 올리게 되면, 미사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탄도 미사일에서 순항 미사일, 최근에는 드론까지 발전했습니다. 여기에 4족 보행 로봇, 언젠가는 2족 보행 휴머노이드도 전장에 배치될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가장 먼저 군사 기술로 쓰이고, 이것이 산업계로 파급되는 반복적인 사이클을 경험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 넘어와 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전에서 기본 교리로 편입됐다고 보이는 드론전이 있고, 로봇과 인공지능도 본격적으로 전장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팔란티어(Palantir)나 안두릴(Anduril) 같은 기업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예전 방식의 방산 업체가 아닙니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업입니다.
이제 각국에서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런 거대한 기술적 변화의 과정에서 과연 현재 대한민국 군이 여러 대비를 잘하고 있는지 질문드리겠습니다. 다만 2025년 현시점에서 보면, 당장 우리 뇌리에 각인된 현재 상황 때문에 고쳐야 할 부분들만 먼저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인식의 단절’을 꾀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이나 15년 후인 2035년, 2040년 정도를 가정해 보는 겁니다. 아마 이 시점이 되면 많은 무기 체계에 인공지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또 휴머노이드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4족 보행 로봇은 지금보다 훨씬 널리 쓰이게 될 것 같습니다. 정찰, 사격, 구조, 혹은 자폭 임무를 부여받은 4족 로봇이나 드론은 이미 전장에서 익숙한 만큼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겠죠. 또한 병사들의 물리적 힘을 증강시켜 주는 다양한 장치가 지금은 고가라 제한적으로만 운용되지만, 미래에는 보급이 큰 폭으로 확대되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리의 무기 체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강건작: 마침 제가 《무기와 전략의 역사》라는 가제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원시 시대 무기부터 2025년의 AI, 드론까지 전반적인 무기의 역사를 훑어보며 그 근원에 어떤 원칙이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지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회자께서는 인간이 무기를 든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세연: 공세적인 입장에 선다면 정복이나 약탈, 즉 먹을 것을 취하기 위해서겠죠.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을 때는 세력을 넓히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망 때문이 아닐까요?
강건작: 그것은 어느 정도 정치적인 구조가 형성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아주 먼 원시 시대에는 인구 밀도가 낮았습니다. 고고학적 증거를 보더라도 인간끼리 부딪힌 전쟁은 거의 없었더군요. 아주 먼 옛날, 우리가 흔히 아슐리안 석기라고 부르는 도구가 나왔을 시기만 해도 인간끼리 부딪힌 흔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약 60만 년 전, 쉐닝겐(Schöningen)에서 하이델베르크인이라고 하는 선행 인류의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함께 나온 유물 중에 나무로 된 창이 있었죠. 아마도 이 창이 인류 탄생 이후 만들어진 최초의 무기다운 무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전의 돌도끼 같은 것은 용도를 더 따져 봐야 하겠지만, 창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이후 네안데르탈인 시대를 거치면서 창끝에 돌을 끼우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복합 물질을 사용하여 한층 진보한 것이죠.
호모 사피엔스로 넘어오면 이 창을 더 멀리 던지게 됩니다. 단순히 팔 힘으로만 던지면 사거리가 짧으니, ‘투창 가속기’라는 것을 발명합니다. 회전 반경을 넓혀서 더 멀리, 더 치명적으로 날아갈 수 있는 무기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아틀라틀(Atlatl)’이라고 하는 무기인데, 아메리카 인디언, 오세아니아, 호주 원주민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어떤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최종 승리를 거둔 요인이 바로 이 아틀라틀 덕분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원시 시대의 상황을 따져 보면, 무기를 든 이유는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정치적 목적이나 점령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김세연: 그때는 사냥이었겠지요.
강건작: 그렇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사냥, 또는 자기를 지키는 도구였을 겁니다.
김세연: 제가 아까 말한 것은 공세적인 목적이고, 수세적인 목적이라면 방어겠군요.
강건작: 맞습니다. 최초의 목적은 공격이라기보다는 생존과 방어였습니다. 이것이 무기를 든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나를 지키면서 공격해 오는 상대를 제압해야 하니까 무기를 들어야 하는데, 저는 무기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가능한 한 원거리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내게 영향을 미치기 전에 처리하고 싶으니 돌도끼보다는 창이 더 유리하겠죠. 그런데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창은 반경이 크지만 빗나갈 확률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서 움직이는 돌도끼나 칼을 선호하게 되는데, 이런 근거리 무기는 창보다 치명적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결국 가장 좋은 무기는 반경도 크고 치명적인 것이겠죠.
하지만 고대의 근력 무기는 반경과 치명성이 일치하기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활은 반경은 매우 크지만 덜 치명적입니다. 방패 같은 방어구로 막으면 위력이 상쇄되어 버리니까요. 창은 활보다는 반경이 작지만 조금 더 치명적이고, 칼은 반경은 아주 작지만 훨씬 치명적입니다. 이런 무기들이 서로 공존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인류의 군사 역사를 주도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화약 무기가 등장하면서 양상이 달라집니다. 가시선(Line Of Sight) 안에서 사거리와 치명성이 동시에 달성되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사거리가 200미터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킬로미터, 4킬로미터로 늘어났죠. 이 범위 안에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치명성까지 함께 갖추게 된 것입니다.
즉, 화약 무기가 치명성과 전투 반경을 함께 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략 19세기까지는 화약 무기가 가시 범위 이내의 사거리를 주도했습니다. 최대 6킬로미터까지도 나갔지만 보통은 2킬로미터 내외였으니, 눈에 보이는 것을 조준해서 맞히면 그 안에서 치명성이 달성되는 수준까지 발전한 것이죠.
김세연: 주로 포병전에서 그랬겠군요.
강건작: 총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총통처럼 통에 화약을 넣고 재워서 심지에 불을 붙여 쏘는 방식이었습니다. 승자총통, 세총통 같은 게 있었죠. 서양으로 넘어가면서는 핸드 캐넌(Hand Cannon)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수가 원할 때 쏠 수 있도록 방아쇠가 만들어진 게 화승총입니다.
화승총은 화승이라는 심지가 항상 타고 있다가 방아쇠를 당기면 화약에 불이 붙어 날아가는 구조였습니다. 이후 부싯돌 방식을 거쳐, 나중에는 총의 후미에서 장전하고 조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강선을 넣어 사거리도 늘리는 식으로 19세기에는 현대적인 총의 형태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드라이제가 만든 볼트 액션식 소총의 원리는 지금도 저격총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19세기에는 총이나 포가 가시 범위 안에서 충분한 치명성을 달성하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포의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만든 ‘파리 대포(Paris Gun)’는 사거리가 130킬로미터 정도였습니다. 130킬로미터는 지금의 포들도 달성하기 힘든 거리인데, 당시 하루에 두세 발을 쏘더라도 그 정도 사거리를 구현했습니다. 이후 일반적인 포의 사거리도 15킬로미터, 20킬로미터까지 늘어났는데, 이때 이를 보완해 준 것이 통신입니다.
음성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포의 사거리가 가시권을 벗어나도 치명성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측 장교가 나가서 통신으로 좌표를 불러 주는 방식이었죠. 이렇게 15킬로미터 정도까지 살상 범위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 너머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파리 대포는 사거리가 130킬로미터나 되는데, 어디를 쏘겠습니까? 움직이는 표적을 잡을 수 없으니 프랑스 파리라는 도시를 공격한 겁니다. 그래서 이름도 ‘파리 대포’인 것이죠. 독일 영토 내에서 파리를 공격하기에 적합한 사거리였으니까요. 하지만 파리에 있는 적 부대를 정밀 타격할 수는 없으니, 결국 프랑스 시민을 공격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파리 시민을 공격하면 정치인들이 항복하지 않을까 생각했겠지만, 수백 명이 희생되어도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항공기가 등장하면서 작전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항공기는 하늘에서 직접 표적을 보고 쏠 수 있으니 치명성도 훨씬 좋아졌죠. 전쟁 양상을 한 차원 바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기만으로 전쟁을 종결지을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기관총이나 포탄이 정밀 유도 무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 정도 수준에서 대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 전까지는 무기의 도약적 발전 없이 시간이 흐릅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기술이 발전합니다. 항공기는 제트 엔진으로, 해군은 함포에서 반경이 엄청나게 큰 항공모함으로 도약합니다. 지상 포들은 사거리를 20킬로미터, 30킬로미터까지 늘렸고요. 그런데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K9 자주포도 40킬로미터까지 날아가는데, 40킬로미터 밖에 있는 표적 정보를 어떻게 제공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파리 대포와 똑같은 딜레마가 40킬로미터, 80킬로미터, 100킬로미터 나가는 포들에게도 생기는 겁니다.
김세연: 위성으로 좌표를 받아야겠네요.
강건작: 그런데 초기 위성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위성이 지나가며 사진을 찍긴 하지만, 당시 통신 기술로는 이 영상을 지상으로 전송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주 적은 데이터만 주고받을 수 있었지, 사진을 제대로 보낼 수준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사진을 찍은 필름 캡슐을 중간중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면 바다나 공중에서 항공기가 낚아채 회수해서 현상하고 해독하는 방식이었죠.
위성 사진을 찍어서 회수하고 해독해 보니 ‘저기에 적 부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공격하려고 할 때 그 부대가 여전히 거기에 있을까요? 이미 이동하고 없겠죠. 이것이 초기 위성 정보의 딜레마였습니다. 지금은 위성에서 영상을 쏘아 보내지만, 여전히 딜레마가 일부 존재합니다. 위성이 지상 기지국으로 데이터를 내려보내면, 사진 해상도가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그 데이터를 받아서 분석 시스템에 넣고 ‘이게 적 부대구나’라고 판독했을 때는 이미 지연(Time Delay)이 발생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감시와 타격 수단이 움직이는 시간 차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무기 체계가 직접 연결되어 운용되지 않으면 간극을 메우기 어렵죠. 그래서 미군은 1980년대부터 MTI(Moving Target Indicator, 이동 표적 표시) 기술을 이용해 움직이는 표적을 포착하고, 이를 타격 수단과 가능한 한 빨리 연결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제이스타스(JSTARS) 같은 무기 체계가 그런 예입니다.
이후 드론이 등장하면서 그 시간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했습니다. 미군은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에서 이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상대 군과 현격한 격차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능력이 말단 전술 제대까지는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그 한계를 깨뜨린 것이 바로 ‘멀티콥터 드론’입니다.
멀티콥터 드론은 저렴한 가격에 띄울 수 있으니 전방 병사들이 바로 확인하고 포병 부대에 연락하거나, 드론이 직접 포탄을 떨어뜨리고 자폭 공격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가시권 밖의 실시간 표적을 포착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드론에 의해 현실적으로 상당히 극복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우크라이나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을 잘 활용하는 듯했지만, 곧 러시아군도 똑같이 대응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늘에 드론이 수시로 날아다니니 병사들은 어떻겠습니까? 노출되면 죽는다는 공포 때문에 기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모두 땅속으로 파고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선은 고착되고 병력은 참호로 들어가, 결국 드론이 전선을 지배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김세연: 영상을 보니 참호의 조금 벌어진 틈 사이로 드론이 들어가서 폭발하기도 하더군요.
강건작: 맞습니다. 포가 있으면 포신 구멍을 직접 공격하거나, 해치가 열려 있으면 그 안을 정밀 타격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제약은 있습니다. 드론은 무선 전파로 조종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전자전(Electronic Warfare)’입니다. 강력한 전파를 쏴서 일정 구역 내에서 드론을 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단들이 발전했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도 러시아의 전자전 능력이 훨씬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전쟁은 로봇끼리 알아서 싸우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은 사람이 활동해야 합니다. 드론과 전자전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사람의 기동이 제한되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김세연: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안보 대비를 위해서는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반도 유사시에 전선이 형성된다면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양상이 될까요?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드론 운용 기술이나 대응법을 숙지했을 겁니다. 반면 우리는 빠르게 적응할 역량은 있지만 실전 경험은 없는 상태입니다.
강건작: 일단, 직접 조종하는 멀티콥터 드론은 전파 도달 거리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김세연: 그래서 유선으로 운용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강건작: 유선을 쓴다고 해도 거리가 수킬로미터 이내로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산악 지형이 많습니다. 전파 제약이 매우 심하죠. 우크라이나 전선처럼 평지에서 자유롭게 드론이 날아다니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한국 지형에서는 산 정상에 중계기 같은 것을 설치해야 드론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전선 수십 킬로미터 밖까지 드론이 자유롭게 오가는 현상은 벌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말씀드렸듯이 드론은 전파로 조종하기 때문에 전자전에 취약합니다. 그래서 현대전에서는 드론과 함께 전자전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보여 주는 GPS 교란 능력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 군 역시 지상과 공중의 전자전 수단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전으로 특정 구역의 전파를 완전히 차단(Blocking)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지역에서는 드론 운용이 어렵겠죠. 창과 방패처럼, 상대의 전자전에 대응하는 ‘반(反)전자전 기술’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움직이면서 상대 장비는 무력화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미래전 역시 ‘전투 반경’과 ‘치명성’이라는 무기 체계의 근원적 가치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 틀 안에서 AI의 역할을 봐야죠. AI도 여러 형태로 발전하는데, 말씀하신 팔란티어 같은 기업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지휘 통제 AI’입니다. 지휘 통제 AI는 아군 무기 체계의 위치와 적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합니다. 그리고 적이 접근할 때 아군 무기 중 무엇을 선택해야 가장 효율적인지를 AI가 판정해 주는 식으로 운용됩니다. 이런 AI는 무기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반적인 치명성을 향상시키는 수단입니다.
또 다른 형태로는 개별 무기에 탑재되는 AI가 있습니다. ‘천검(天劍, TAipers) 미사일’이라고 들어 보셨을 겁니다. 하늘에서 쏘는 국산 공대지 대전차 미사일인데, 여기에 북한군의 전차나 장비 이미지 수십만 장이 학습되어 있습니다. 사수가 해당 지역에 쏘기만 하면, 천검 미사일이 스스로 표적을 식별하고 선택해서 날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개별 무기에 AI가 탑재되어 정밀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즉, AI는 우리가 가진 수단을 얼마나 더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로봇과 드론이 등장하니 완전히 무인화가 될까요? 저는 향후 15년 정도를 내다봤을 때, 전면적인 무인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드론은 지금도 가능합니다. 드론은 기상 변수만 해결하면 변수가 적습니다.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비교적 쉽죠. 문제는 지상입니다. 자율주행차를 생각해 보세요. 도로 주행에서 아직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나오겠지만, 기술적으로 그만큼 어렵습니다.
게다가 지상 전투 환경은 도로가 아닙니다. 야지(野地)를 극복해야 하는데, 야지는 산도 있고 수풀도 지나야 합니다. 흙이 미끄러운지, 지반이 꺼지는 곳인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최적의 경로를 선택하고, 은폐까지 해야 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드론보다 변수가 수십 배는 더 많습니다.
이런 변수를 파악할 수 있는 센서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나중에 AI로 해결할 여지는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상에서의 자율 이동 수단은 생각보다 느리게 발전할 것 같습니다. 사람의 판단을 대체할 수준까지 가려면 15년 안에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AGI(범용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나오면 더 빨라질지 모르겠지만, 15년 안에 지상 전쟁 양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하늘의 드론은 더 치명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군집 비행 기술이라든지, 개별 AI가 탑재되어 사람의 얼굴까지 식별해 공격하는 수준이 가능해졌습니다. 공중 드론은 지상과 달리 지형지물 같은 변수의 제약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흔히 드론이라고 하면 배터리와 모터로 나는 멀티콥터만 생각하는데, 사실 드론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있었던 개념입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 군이 운용하는 드론은 대부분 ‘엔진형 드론’입니다.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기 체공 능력을 갖추고 있죠.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멀티콥터형 드론을 많이 쓰면서 멀티콥터가 부각되고 있지만, 그것은 전쟁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급하게 적합한 수단을 찾아야 했던 사정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수단들을 잘 디자인해야 합니다.
상업용 멀티콥터 드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하다면 항재밍(Anti-Jamming) 기술을 탑재해서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무기를 고민하고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이 상업용 드론 기술을 배워 와도 우리가 상대적인 우위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드론은 현실화했지만, 나머지 무인 수단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용화에 시간이 더 걸릴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율형 무인 전차’ 이야기도 하시는데, 같은 이유로 당장 현실화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약 무인 전차가 만들어진다면, 굳이 지금처럼 큰 플랫폼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데, 굳이 덩치를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저렴한 기동 수단에 강력한 포를 탑재하면 됩니다. 덩치를 작게 만들면 적에게 포착될 확률도 낮아지고 기동성도 빨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알던 과거의 전차 개념이 아닌 거죠. 그런 새로운 무기 체계까지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적의 치명적인 사거리 내에 무인 플랫폼을 투입해 전투한다면, 장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상대적 우세를 달성하는 수단이 될 수 있겠죠. 이런 부분을 더 상상하고 구체화해야 합니다.
김세연: 너무 먼 30~40년 후를 논하기에는 그사이 기술적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앞서 10~15년 정도를 전제로 질문을 드렸던 것인데요, 육상 자율주행, 그러니까 포장도로가 아닌 오프로드(야지) 자율주행의 완성도가 올라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군요.
강건작: 상당히 걸릴 겁니다. 난이도 순서로 따지면 하늘이 가장 쉽고, 그다음이 바다, 마지막이 지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휴머노이드나 4족 보행 로봇이 지상에서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수준까지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대신 말씀하신 외골격 로봇(Exoskeleton) 등에 플랫폼을 덧붙여 사람의 생존율과 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 당분간은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김세연: 아까 창과 칼, 활을 예로 들며 사거리와 치명성 같은 변수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런 변수들이 어떻게 조합되든 비슷한 예상치를 가지고 움직였는데, 화약이 결합되면서 치명성과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하셨습니다. 그 맥락에서 다시 드론 논의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드론이 만들어 낼 전쟁 양상을 고려할 때, 전자전에 취약하다는 점 때문에 항재밍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탄도 미사일이 갖는 사거리나 치명성과 비교할 때, 소형 상용 멀티콥터가 갖는 사거리나 치명성은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강건작: 그렇습니다. 다만, 무기의 목적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탄도탄으로 적의 특정 부대를 타격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탄도탄은 아주 먼 원거리에서 날아갑니다. 탄도탄은 지구 곡률이나 공산 오차 등의 문제로 인해 특정 적 부대라는 ‘점 표적’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시설이나 지역 같은 ‘지역 표적’을 상대하는 무기입니다. 반면 드론은 지역을 상대하는 무기가 아닙니다. 적 부대의 전투력, 즉 움직이는 대상을 직접 타격하는 무기입니다.
김세연: 기동 표적을 직접 노리는군요.
강건작: 맞습니다. 움직이는 대상을 정밀 타격한다는 면에서는 드론의 치명성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원거리 투사 능력이나 단일 무기의 파괴력은 탄도탄이 훨씬 강력하지요. 전쟁에 미치는 영향력을 따져 보면 상대적인 차이가 있는 셈이죠.
김세연: 여기에 비용 요소까지 대입하면 또 다른 변수가 되겠네요. 보유 자원으로 탄도탄 한 발을 쓸 것이냐, 드론 천 대를 쓸 것이냐 하는 문제 말입니다.
강건작: 그런데 그것도 무기의 목적과 용도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드론을 아주 멀리 보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경우 아까 말씀드린 전파 제약을 받습니다. 위성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있긴 합니다만, 여기서 한반도 전장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군사력이 밀집된 곳이고, 거기에는 방공 무기가 엄청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론은 기본적으로 저속 비행체입니다. 방공 무기가 촘촘하게 깔린 곳에서는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중동에서는 그런 밀집된 방공망이 없으니 미군의 드론이 주목받고 활약했지만, 한반도 환경에서는 그렇게 자유롭게 다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드론이 적진 깊숙이 들어갈 때 격추를 피하려면 RCS(Radar Cross Section, 레이더 반사 면적), 즉 레이더에 포착되는 크기를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드론을 작게 만드는 방법, 그리고 스텔스형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죠. 그렇게 스텔스 드론을 우리가 원하는 표적 근처까지 보냅니다. 드론이 현장에서 확보한 정보를 데이터 링크로 받아 탄도 미사일 등과 연동하면, 무기의 치명성이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 같은 중요 인물이 특정 건물에 들어갔다고 가정해 볼까요. 탄도탄이 거기까지 날아가는 데 약 15분에서 20분이 걸린다고 칠 때, 그 시간 동안 표적이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 확인된다면 의미 있는 표적이 됩니다.
김세연: 포격전 초기에 관측 장교가 수행하던 역할을 이제 무인 드론이 대신하는 셈이군요.
강건작: 그런 식으로 드론과 기존 무기 체계가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거리 40킬로미터, 80킬로미터짜리 포들도 드론과 통합되면 훨씬 효과적인 무기가 됩니다. 따라서 드론을 단독으로 볼 게 아니라, 드론이라는 플랫폼과 기존의 재래식 무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합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비용 측면에서도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김세연: 우리 군의 작전 개념에도 이런 부분들이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만, 보안 사항이라 질문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강건작: 계속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와 상식에 차이가 있다 보니, 군 내부에서도 모든 구성원이 이런 개념에 공감하거나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김세연: 그렇군요. 현실적으로 군사 기술 중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드론이라 이에 대해 상세히 들어 봤습니다. 다음으로 로봇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휴머노이드보다는 4족 보행 로봇이 조금 더 빨리 보급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움직이는 모양새를 봐서는 배터리 성능에 따른 가동 시간 등의 제약이 아직은 클 것이고, 통신 문제도 있을 겁니다. 특히 울창한 숲이나 산악 지대에서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 다양한 이슈가 있겠죠.
아까 공중보다 수상이, 수상보다 육상이 난이도가 더 높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무인 복합 체계(MUM-T, Manned-Unmanned Teaming)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이라고 보십니까?
강건작: MUM-T는 비교적 빨리 실현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AI와 결합하는 방식이니까요.
김세연: 유인 전투기 1대가 무인기 8대, 10대를 거느리는 것처럼 말일까요?
강건작: 전투기가 몇 대의 무인기를 운용한다고 할 때, 기본 명령은 사람이 내리지만 그사이 일어나는 작은 변수들을 AI가 해결해 주는 방식은 가능합니다. 다만 저는 지상 무기 체계에 관해서는 과연 비용 효율적으로 어떨지, 약간 회의적입니다. 지상의 수많은 변수를 해결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텐데, 과연 경제성이 있을까 싶습니다.
같은 선택지라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훨씬 싸고 당장 실현 가능한데, 굳이 비용을 많이 들여서 땅으로 기어가게 하는 게 맞을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전차 수준의 페이로드(Payload, 탑재 중량)를 가진 비행체를 만든다면, 굳이 무인 전차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지금은 전차도 헬기도 사람이 운용합니다. 하지만 무인화로 갔을 때, 땅으로 가는 것은 해결해야 할 난관이 많고 비용도 훨씬 많이 듭니다. 반면 하늘은 플랫폼을 조금만 키우면 미사일 등을 탑재해서, 전차가 지상에서 얻는 효과를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도 있습니다.
김세연: 말씀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리프트 챌린지(Lift Challenge)’라는 새로운 챌린지를 론칭했습니다. 드론 기체 중량에 제한을 두고, 최소 110파운드(약 50킬로그램) 이상의 무게를 들어 올려야 한다는 조건이더군요. 마치 체육관에서 바벨에 추를 달아 들듯이 말입니다. 기체 중량 대비 가반하중(Payload)의 비율(Ratio)이 최대인 팀에게 상금을 주는 챌린지입니다. 미 국방부에서도 말씀하신 관점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건작: AI와 드론을 결합하는 것은 조만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지상의 무인화 체계를 신뢰성 있게 만드는 것은 매우 복잡합니다. 기술적으로 훨씬 어렵고 비용도 엄청나게 많이 들죠.
김세연: 그렇다면 앞으로 육상 병력이나 장비에 투자하는 예산보다 드론 보유 대수를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십니까?
강건작: 핵심적으로 보면 그게 더 저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합니다. 바로 하늘이라는 공간이 항시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김세연: 아까 말씀하신 방공망 문제 때문인가요?
강건작: 방공망도 문제지만, 기상 문제도 있습니다. 태풍이 오거나 기상이 아주 악화되었을 때 하늘이라는 공간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년 365일 중 한 달 정도를 드론이 뜨지 못하는 기상 환경이라면, 안보에 있어 매우 치명적인 공백입니다. 따라서 공중 전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지상 플랫폼도 일정 부분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또, 하늘에 떠 있다고 해서 무조건 공군의 영역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지상을 상대로 하는 무기 체계라면 결국 육군의 범주 내에서 같이 운용될 수 있습니다. 선택의 범위 안에 있다고 봅니다.
그다음에, 말씀하신 무기 챌린지 중에 재미있는 것이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입니다. 현재 UAM 기술로는 가반하중, 즉 비행 시 탑재 가능한 무게가 200킬로그램에서 500킬로그램 정도까지 달성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기화할 수 있을지 제가 고민해 봤는데, 당장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배터리 문제 때문입니다. 현재의 리튬 배터리로는 1시간 정도 비행하며 일정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멀리 가기 위해 틸트로터(Tilt-rotor) 방식을 쓰죠. 이륙할 때는 헬기처럼 프로펠러를 위로 향해 뜨고, 날아갈 때는 옆으로 돌아 빠르게 전진 비행하며 에너지 효율을 높입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무기화되려면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공중에서 가만히 머무는 것, 즉 정지 비행(Hovering)입니다. 이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모됩니다. 현재 리튬 배터리 기반의 드론이나 UAM 수준은 딱 이 한계에 걸려 있습니다. 이 단계를 벗어나는 기술적 진보가 일어난다면, 사실상 지상 무기보다 하늘에 떠 있는 무기가 훨씬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김세연: UAM의 경우 비행 거리와 속도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둘지 기술적인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상용 UAM의 비행 속도가 최대치로 봤을 때 시속 400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UAM은 기체 크기가 큽니다. 방공망 범위 안에 들어간다면 작은 드론과 달리 기관포 같은 대공 무기에 격추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강건작: 방공망 범위 안에 들어가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결국은 사거리와 치명성의 문제입니다. UAM 같은 기체가 하늘에 뜨면 적에게 노출될 취약점도 커지지만, 반대로 우리가 더 멀리 볼 수 있는 장점도 분명히 생깁니다. 적보다 더 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고, 그 거리에서 정확하게 타격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굳이 적의 방공망 안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적을 식별하면 ‘천검 미사일’처럼 알아서 표적을 찾아가는 발사 후 망각(Fire and Forget) 방식으로 쏘면 됩니다. 이런 수단을 쓴다면 역할 분담이 가능해집니다. 더 높고 안전한 후방에서 관측 자산이 멀리 봐주고, 타격 수단에게 정보만 알려 주면 타격 수단은 해당 지역으로 쏘기만 하면 되는 방식입니다.
김세연: 발사대를 공중으로 올렸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지대지 미사일보다 공대지 미사일이 각도나 여러 면에서 유리하니까요.
강건작: 그런 식으로 상상하면 다양한 무기 체계가 가능해집니다.
김세연: 그런데 비용 측면에서 보면 AI 기능이 장착된 미사일은 단가가 비쌀 수 있습니다.
강건작: 꼭 미사일 자체에 AI가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대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포도 사거리를 늘리는 기술은 확보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떠 있는 관측 자산이 더 멀리서 정확하게 보고, 지상에 있는 포병에게 표적을 할당해 주는 방식도 있습니다.
김세연: 전방 관측 장교(FO)가 하던 역할을 공중에서 수행하는 것이군요.
강건작: 맞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면 더 멀리서 관측이 되니까요.
김세연: 관측에만 특화한다면, 요즘 이야기 나오는 성층권 풍선이나 저궤도 위성을 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강건작: 그런데 저궤도 위성은 아까 언급한 지연 문제가 있습니다. SAR(싸) 영상이라고 들어 보셨을 텐데요, 합성개구레이더(Synthetic Aperture Radar, SAR)라고 하는 일종의 레이더입니다. 우리가 일반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건 가시광선 방식입니다. 그런데 야간에 찍는 건 적외선(IR) 방식도 있지요. 위성도 적외선 방식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외선도 구름이 많이 끼면 지상을 볼 수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로 SAR입니다. 위성에서 전파를 쏴서 지면을 훑는 방식입니다. 지면에 레이더를 돌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지상의 표적들이 형상화되어 나타납니다. SAR 위성은 기상 조건과 상관없이 위성이 지나갈 때 사진을 찍어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위성이 촬영한 데이터를 누가 받느냐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받기는 매우 어렵거든요. 결국 특정한 지상 기지국에서 받아서, 해독 가능한 정보로 가공해 전송하고, 거기서 다시 식별해 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위성 궤도에 따른 제약도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 주기와 같이 도는 정지 궤도 위성은 고도가 약 3만 6000킬로미터입니다. 너무 높아서 지상의 정밀한 영상을 획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정지 궤도에 적외선 탐지 위성을 띄우고 있습니다. DSP(Defense Support Program)라는 조기 경보 위성 체계인데, 이건 지상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미사일이 발사될 때 발생하는 거대한 화염(열)을 포착하는 용도입니다.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사실을 빨리 파악해서 알려 주는 정도의 능력인 거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밀 정찰 영상은 고도 600킬로미터 이하의 저궤도 위성에서 찍습니다. 그 정도 높이여야 판독 가능한 해상도가 나오니까요. 하지만 저궤도 위성은 지구를 계속 빠르게 돌아야 합니다. 게다가 선명한 영상을 얻으려면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아주 좁은 지역밖에 못 봅니다. 그러니 위성이 다시 그 지역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 지연이 또 발생하게 됩니다.
한반도 전체도 아니고 한반도에 한 번 걸치는 정도를 관측하고 분석하려면 영상 위성이 약 150개 정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위성만으로 표적을 놓치지 않고 추적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고정된 표적을 파악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만,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오가는 상황에서는 적 부대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니까요. 이걸 위성만으로 커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SAR 장비는 드론에도 얼마든지 장착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MQ-1 프레데터(Predator)나 MQ-9 리퍼(Reaper) 같은 드론에 SAR 기능을 탑재했습니다. 또한 미군은 육군이 정찰기를 많이 운용합니다. 주한 미군도 유인 정찰기를 많이 운용하는데, 역시 지상을 향해 SAR 촬영을 합니다. 이런 자산은 판독 시간이 매우 짧아서 즉시 표적화(Targeting)에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위성보다 유무인 정찰기로 표적을 획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김세연: 지금 우리 군에서는 위성이나 고고도 정찰기 운용을 누가 맡고 있습니까? 물론 미군과 연합 개념으로 풀고 있겠지만, 편제상 공군이 합니까, 육군이 합니까?
강건작: 사실 지상 표적을 운용하고 타격하는 것은 육군 자산과 통합되는 게 효과적입니다. 미군은 육군이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도를 기준으로 역할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GMTI(Ground Moving Target Indicator, 지상 이동 표적 탐지) 기능을 가진 자산이 거의 없습니다.
김세연: 자산이 없어서 별 이슈가 안 되는 상황이군요.
강건작: 그렇죠. 그 능력이 부족합니다. 미 공군이 운용하는 제이스타스(JSTARS)라는 체계가 있습니다. 도플러 레이더(Doppler Radar)를 쏴서 지상의 움직이는 표적을 포착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표적을 확인하고 바로 타격 수단과 연결해 주는 겁니다. 하늘에 떠 있는 전투기나 지상 사령부에 ‘움직이는 표적이 있으니 타격하라’고 정보를 주는 시스템이죠. 이게 걸프전 때 맹활약했습니다. 벌써 40년 가까이 된 무기 체계인데 우리는 아직 그런 전용 자산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위성 영상 획득 수단조차 별로 없다 보니, 영상 획득 단계에서의 고민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이제는 영상을 넘어서서, 전장 종심(Deep Operations)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실제로 포착하는 능력을 더 키워야 합니다. 저는 드론이나 AI로 가기 전에, 그 기본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우리 군 편제가 합동군 체계에서 고도를 기준으로 육군과 공군의 관할을 나누어 놓은 문제 때문이군요. 다시 논의로 돌아오면, 현재는 그런 자산이 많지 않아서 정보 획득이나 공유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제가 처음에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드린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 군에 존재하는 각 군 사이의 칸막이 때문입니다. 칸막이가 너무 견고한 상태에서 기술적 진보가 현장에 광범위하게 도입된다면, 과연 어떤 편제로 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 부분으로 논의를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건작: 군의 상부 지휘 구조와 연계되는 문제입니다. 군사력을 건설하거나 유지 및 관리하는 문제는 사실 각 군으로 나누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투력을 운용하는 문제, 즉 작전을 수행하는 문제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각 군이 원활하게 연계 작동하지 않으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작전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사실 매우 오래된 고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모든 나라의 군대는 해군과 육군이 병행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15~16세기 유럽부터 해군과 육군이 병행적으로 발전해 왔죠. 서로 다른 군대였습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군대와 지상에서 싸우는 군대였으니, 병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죠.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그런 체제였습니다.
그런데 1차 대전을 지나면서 공군이 커졌습니다. 영국이 가장 먼저 독립 공군을 창설했고, 미국은 2차 대전 때까지 별도의 공군 없이 육군 항공대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독일 역시 루프트바페(공군)가 있었지만, 완벽한 3군 병립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과도기였죠. 결국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대부분의 국가에서 육해공군이라는 3군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2차 대전을 치르면서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육해공 3군이 따로 병립해서 싸우니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해군이 함포 사격도 하고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도 띄우는데, 서로 따로 노니까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지휘권을 통합하는 방식을 고민해 보자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변화를 모색합니다. 일부 국가는 아예 통합군(Unified Force)으로 가서 육해공군의 지휘권을 한꺼번에 모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구의 군대들은 육군과 해군의 갈등이 너무 오래되어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절충안이 나옵니다. 건설, 유지, 행정은 3군이 각각 알아서 하되, 대신 작전만큼은 하나의 지휘권으로 통합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합동군(Joint Force)의 개념입니다.
김세연: 정리하자면, 통합군은 육해공군이 아예 하나의 조직으로 합쳐지는 것이죠.
강건작: 그렇습니다. 반면 합동군은 운영, 유지, 관리는 각 군이 따로 하고, 작전은 하나로 합치는 것입니다.
김세연: 그러니까 합동군 개념 안에서도 상부 지휘 구조, 즉 작전 통제는 실질적으로 통합되어 있어야 진정한 합동군이군요.
강건작: 맞습니다. 원리상으로는 통합을 지향해야 하죠.
김세연: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외형적으로는 합동군인데 말이죠.
강건작: 네, 좀 나누어져 있죠. 저는 이 문제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와도 연계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전작권을 완벽하게 행사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평시 운용에서는 각 군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합참(합동참모본부)이 강력하게 장악해 지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합동군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되, 미군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미군은 육해공군이 병립하고, 우주군이나 해병대 등도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작전은 하나로 통합합니다.
미군은 전 세계를 담당하는 7개의 지역별 통합전투사령부(Geographic Combatant Command)와 4개의 기능별 통합전투사령부(Functional Combatant Command)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작전은 각 군 참모총장이 관여하지 못합니다. 오직 통합군 사령관이 자기 예하에 배속된 육해공군, 해병대 등의 자산을 통합하여 작전을 지휘합니다.
김세연: 지역별 통합전투사령부라면 인도-태평양 사령부, 중부 사령부, 북부 사령부 같은 곳을 들어 봤습니다. 기능별 통합전투사령부는 어떤 곳입니까?
강건작: 예를 들면 특수전사령부, 사이버사령부 같은 곳입니다.
김세연: 그렇다면 지역별 통합사령부와 기능별 통합사령부 간의 조율은 누가 합니까?
강건작: 상단에는 합참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합참의장은 군령권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조율하는 권한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한반도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지휘 체계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인도-태평양 사령관(통합군 사령관)이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면 그 예하의 주한 미군 사령관이 지원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한미가 합의한 연합사령관이 작전을 행사하는 구조입니다.
작전 지휘를 한 사람에게 일원화해 주는 방식이 미국은 정착되어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합참이 있지만, 전시와 평시의 작전권이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고, 평시에는 각 군의 목소리가 훨씬 큰 외형적인 문제가 존재합니다.
김세연: 그렇다면 현재 상태의 문제는 일단 두고, 백지에 새로 설계도를 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합동군 체계 안에서 작전은 통합적으로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강건작: 저는 작전에 대해 확실한 장악력을 가진 사령부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합참이 그 역할을 하기에는 벅찹니다. 왜냐하면 합참은 말 그대로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의 군령권을 보좌하면서, 필요하면 참모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명칭부터 ‘합동참모의장’이니까요. 대통령과 장관의 참모라는 뜻입니다. 육해공군 참모총장도 마찬가지로 각 군의 참모라는 뜻이지, 엄밀히 말하면 작전 지휘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들을 지휘관으로 생각합니다. 진짜 지휘관이 필요합니다.
김세연: 저서에서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원래는 전투에 직결되지 않는 인사나 행정 기능을 각 군 본부로 많이 넘겼어야 했는데, 육군본부에서 관리하기 부담스러워해서 지작사가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강건작: 그렇습니다. 저는 당시 지작사 지휘부의 안목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시 체제에 너무 오래 젖어 있다 보니, 내가 가져야 할 권한과 버려야 할 권한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겁니다. 결국 작전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김세연: 초기 설계 취지는 합동군 체계에서 작전이 통합되는 올바른 방향이었으나, 현실화 과정에서 이슈가 있었군요.
강건작: 요점은 합참 외에 작전만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순수한 작전 사령부가 한반도에는 하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김세연: 그럼 명칭은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강건작: ‘합동군 사령부’라고 해도 되고, ‘통합군 사령부’나 ‘통합작전사령부’라고 해도 됩니다. 합참의 작전본부와 한미연합사의 한국 측 조직, 이 두 조직을 하나로 합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평시 작전도 거기서 수행하고, 전시에 전작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연합사령관과 협의하면 됩니다. 나중에 전작권이 전환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령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죠.
김세연: 조직의 재배치나 개편을 최소화하는 관점에서 합참 작전본부와 연합사 한국 측의 결합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합참의 나머지 기능들은 그대로 있어도 무방합니까?
강건작: 나머지 기능은 그대로 있어도 됩니다. 예를 들어 계엄 관련 기능이나 통합 방위 기능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합참에는 전략 및 전력 기능이 있습니다.
김세연: 조달까지 포함하는 기능 말씀이군요.
강건작: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원 기능도 있습니다.
김세연: 병력 동원 업무는 어디에 들어갑니까?
강건작: 일부 동원 기능도 들어가지만, 동원 업무는 현재 국방부가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책적인 기능들, 필요하다면 국방부 정책실 같은 기능을 일부 합참이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합참이 작전 지휘를 하면서 이 모든 행정 및 지원 기능까지 다 떠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합참의장에게 모든 권한과 부담이 모여 있습니다. 만약 진짜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 와중에 전작권까지 합참이 떠안게 되면 과연 그 모든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김세연: 전시작전권 환수, 또는 ‘회복’이라는 새로운 용어도 쓰이고 있습니다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군의 상부 지휘 체계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겠군요.
강건작: 저는 무조건 그것부터 먼저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전시와 평시를 칼같이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라고 하지만, 러시아는 전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전쟁을 선포한다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결정입니다. 하지만 군사적인 충돌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죠.
우리는 평시 체제에서 전시 체제로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지만, 어떻게 자연스럽게 되겠습니까? 막상 교전이 벌어지는데 양쪽의 의사 결정이 대립할 수도 있고, 국제 관계까지 얽히면 결정이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김세연: 마치 이원집정부제 개헌 논의에서 외치와 내치가 명확히 구분 가능하다는 환상을 두고 논의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강건작: 현실적으로 전시와 평시를 칼같이 나눌 수 없는데, 우리는 작전 지휘권이 이원화되어 있고 사령부조차 다릅니다. 사실 지금까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다행인 거죠.
김세연: 동의합니다. 이 대목에서 최근의 정치적 논란을 짚어 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아까 합참의 계엄 관련 기능도 잠깐 언급하셨지만, 사이버사령부나 드론작전사령부처럼 비교적 최근에 설치된 부대들이 정치적으로 잘못 엮여 불필요한 부담을 군에 지운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주제를 조금 넓혀 보겠습니다. 앞서 기술 진보가 군의 편제나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비군사적 위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통신과 뉴미디어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여론전 수행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외부 세력의 개입이나 교란이 너무나 손쉽게 발생하고, 탐지나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테러 같은 전통적인 비정규전 방식이 아니라, 타국의 여론몰이 개입 같은 의심스러운 정황이 계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정치적 통합이 군사적 역량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전쟁 수행 역량 자체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군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이슈들을 군사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군의 역할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 군의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쟁 승리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국민적 지지와 사회 통합이 국가 전체의 방위 역량과 결합되어야 할 텐데, 어떤 노력이 가능할까요?
강건작: 잘 아시겠습니다만, 평시에는 군에 그런 부분에 대해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이 없습니다. 과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에서도 봤듯이, 국내의 대립적인 정치 환경에 군이 섣불리 개입하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은 국가 차원의 안보 문제입니다. 군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사실 국가에는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외부 세력을 확인하는 국가정보원, 평시 정부 기능을 유지하는 행정안전부, 그리고 법무부와 검찰, 외교부 같은 기관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관들이 작동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군이 사회의 일반적인 질서나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법적으로 단 한 가지 경우뿐입니다. 계엄법이 발효되지 않는 한 군이 나서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론 ‘통합방위법’ 같은 제도가 있지만, 그것도 ‘통합방위사태’가 발령되었을 때, 경찰과 함께 검문검색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유일하게 하나 들어 있을 뿐입니다.
평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우리 초병이 해상에서 무장간첩으로 의심되는 미상의 인원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냥 총을 쏘는 것은 불법입니다. 초병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발포할 수 있는 경우는 상대가 초병을 해하려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즉 자위권을 행사할 때뿐입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군사적 활동에 대해 법적으로 엄격한 제약을 걸어 두었습니다. 분란전이나 인지전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평시 상황에서 군이 사회 문제에 관여할 여지는 없다고 봅니다. 국가가 가진 다른 역량들이 그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게 맞습니다.
김세연: 검찰, 경찰, 국정원 같은 법 집행 기관들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던 흔적이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도 정권이 바뀌면서 정쟁의 대상이 되거나, 기능이 악용되면서 국민적 신뢰를 잃기도 했습니다.
강건작: 그런 조직을 악용한 사람들이 신뢰를 잃게 만든 책임이 있죠.
김세연: 그렇게 악용한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조직에 속해서 부화뇌동했던 사람들도 역시 책임을 져야겠죠.
강건작: 분란전이나 인지전의 위험이 매우 크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우리 국가의 내부 역량을 키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민주주의의 가치, 자유의 가치, 인권 문제 등 우리가 헌법적으로 부여한 가치들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확산시키고 교육해야 합니다. 여야나 진보, 보수를 떠나 우리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확고하다면,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 가치에 동의하고 공유한다면, 외부에서 분란전이나 인지전 공격이 들어오더라도, 적어도 공동체 전체가 위협받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단순한 국방 문제가 아닙니다. 일종의 ‘국가적 면역력’을 키워 가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세연: 저도 이것이 국방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영역에 걸쳐 이슈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일 해법이 아닌 복합적인 해법이 나와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해보겠습니다. 전시와 평시의 구분이 어렵고 여론전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국가든 비국가 행위자든 외부의 실체로부터 공세가 들어올 때 우리는 대응해야 합니다. 이때 안보적인 고려가 결부될 수밖에 없어서 현실적으로 군의 관여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군의 관여는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테고요.
군이 관여를 하느냐 안 하느냐, 이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가의 총체적인 안보 역량 관점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사회적 신뢰,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 그리고 집행권을 위임받은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 무력으로 국민과 영토를 지키는 군과 국민 간의 신뢰.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체를 군이 아니라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로 바꿔도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강건작: 평시 운용 문제에 있어서 국방 분야는 법적으로 매우 많은 제약이 걸려 있습니다. 과거 군사 쿠데타를 겪은 역사의 후과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국방이 그 분야까지 기능을 확장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국방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흐트러뜨릴 수 있습니다.
김세연: 이 이슈를 국방 문제로만 국한해서 질문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백지 위의 설계도라는 측면에서 국방과 사회가 맞물리는 지점이라 질문을 드렸습니다.
강건작: 결국 그 역할은 국가의 역량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가 주도한다면 범정부 차원의 역량이어야 하고, 더 크게 확장하면 국민적 공감대와 신뢰를 확산해 가는 방식이어야겠죠.
김세연: 그렇습니다. 그 관점에서 비교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미 국가안보국)가 운영하던 ‘프리즘(PRISM)’ 감시 체계를 폭로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 통신을 들여다본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이슈가 되었죠.
또한 현재 팔란티어가 수행하는 사업들도 안보와 프라이버시 침해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을 오가고 있습니다. 미국도 예전처럼 통합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래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이슈에서는 국민적인 지지가 어느 정도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똑같은 이슈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분열이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백지상태에서 국가를 다시 설계한다면, 앞서 논의한 상부 지휘 구조 개편은 국방 정책 차원에서 진행하더라도, 이른바 ‘회색지대’의 문제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영역은 군뿐만 아니라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이 관여합니다. 인체로 비유하자면 이 기관들은 백혈구 역할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면역 체계, 즉 사회적 면역력이 높아야 외침으로부터 몸을 잘 보호할 수 있겠죠. 이런 기본 전제에 관한 공감대는 깔려 있는 상태에서, 이 백혈구들이 어떻게 하면 더 역할을 잘하게 만들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건작: 문제는 그 접점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직이 어떤 곳이냐겠죠. 예를 들어 과거의 방첩 부대 같은 곳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 백혈구 역할을 했다기보다는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군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하나하나 다 막아 버리는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생각합니다. 법적 제도나 체계가 이미 상당히 정비되어 있고, 한계선도 명확하게 그어져 있습니다. 결국 국민들이 전반적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 주는 단계까지 가지 못하면, 평시에 군이 무엇을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김세연: 제가 이 질문을 계속 다른 표현으로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법적인 경계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어서 혼선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술적, 사회적 환경 변화로 인해 회색지대가 광범위하게 넓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이 과거의 악몽 같은 경험 때문에 명확한 선을 그어두고자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중학생이 장난으로 쓴 글과, 실제 외국 스파이 조직의 공작에 대응하는 문제는 달라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국정원과 경찰, 검찰, 그리고 군이 정보를 교류하고 업무 협조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건작: 군의 방첩 활동이나 정보 활동도 군과 관련된 사항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인지전같은 활동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지전에 대한 위협을 군이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 대응은 군이 주도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관이 해야겠죠.
예를 들어 북한이나 적대국의 간첩이 넘어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간첩이 군사 시설과는 무관하게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정보를 캔다면, 군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군사적인 목표물에 접근할 때 비로소 군이 나설 수 있죠.
김세연: 직접적인 개입이나 액션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전에 공동 대응하는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예를 들어 적대적일 수 있는 외부로부터 어떤 흐름이나 시도가 있다는 사실을 상시적으로 공유하는 것 말입니다.
강건작: 그렇습니다. 당연히 공유되어야죠. 조금 다른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EEZ(배타적 경제수역) 내로 중국 함선들이 자주 넘어옵니다. 여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중국 군함이 넘어오는 경우도 있고, 해경선 같은 관공선이나 중국 정부 기관 소속 선박들이 넘어와서 해양 조사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대응은 누가 해야 할까요? 해경도 해야 하고, 우리 해양 조사선도 대응해야 합니다.
김세연: 군함이 오면 해군이 나서야 하고요.
강건작: 그렇습니다. 해군도 해야 하죠. 결국 특정 기관 하나가 아니라 상황에 맞춰 국가 역량이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인지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에서 정신적인 인지전 공격을 해온다면, 이에 대한 공통된 인식은 공유하되, 역할은 각 기관의 기능에 맞춰 구분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EEZ에 중국이 시설물을 설치했다고 해서 해양수산부 혼자 대응하지 않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서 해결해야 하듯, 이 문제도 국가의 여러 기능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포괄 안보’의 관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안보를 국방, 외교, 정보 같은 특정 영역으로만 한정해서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들은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중국이 서해 EEZ를 내해화(內海化)하려는 활동은 그들의 국가 역량 전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 어선의 조업 활동까지도 그런 의도가 숨어 있다고 확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국방과 안보 사이에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위기 관리 관점에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재해도 안보 문제입니다. 우리의 안전을 크게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외부의 정치 세력이든 자연의 변화든 국가 역량을 통합해서 대응해야 합니다. 그런 의식의 변화는 지금 단계에서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해서 힘과 역량을 모으는 역할은 결국 정부가 해야 합니다.
김세연: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앞서 기술의 변화가 작전 개념을 바꾸고, 드론을 포함한 무인 전투 체계가 생각보다 빠르게 편입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무인 자율 전투 체계, 특히 육상 분야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하셨습니다.
이 내용을 인구 구조 변화와 연결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향후 20~30년 안에 3000만 명대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주 가파른 인구 절벽 상황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저서를 통해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기지 경계나 시설 관리 같은 비전투 임무, 혹은 해안선 경계 임무 등은 각각 민간 업체나 경찰, 해경에게 이양하자는 것이었죠. 김포나 강화 쪽에 주둔하는 해병대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켜 전투력을 보존하자는 제안도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방법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과도기를 거쳐 15년, 20년 뒤 적정 인구 규모로 수렴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국방력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을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강건작: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은 AI나 드론 같은 첨단 기술로 사람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AI 드론을 잘 운용하면 적정 인원수가 적더라도 국방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물론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만 그런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중국은 이미 최근 몇 년 사이 군사 퍼레이드에서 로봇 개나 드론 등을 대거 공개하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앞서 말씀하셨듯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해 드론전을 익히고 왔습니다.
결국 기술 발전이라는 외형적 조건은 각국이 비슷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다소 우열은 있겠지만, 기술 발전만으로 병력 부족 현상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상대적 우세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사람을 대체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우리 병사 한 명이 로봇이나 드론 10대를 운용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상대방 병사 10명도 똑같이 일인당 10대씩 운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김세연: 가령 상대가 병사 한 명당 5대나 10대를 운용할 때, 우리는 20대나 50대를 운용하는 식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을까요?
강건작: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노출된 기술 수준은 결국 비슷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기술이 인구 불균형을 메우는 완벽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마저 안 하면 병력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완전히 도태되겠지만, 기술 수준은 서로 비슷하게 올라간다고 전제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즉, 기술 발전이 도움은 되겠지만 인구 절벽의 완전한 대체 수단은 아닙니다.
김세연: 그럼, 이런 가능성은 없을까요? 중국 인구가 14억 명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 7억 명으로 줄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역피라미드 구조로 젊은 층이 줄어 군인이 3억 명에서 1억 명이 됩니다. 반면 우리는 100만 대군에서 80만, 60만, 40만으로 깨지고, 인구 3000만 명 시대에 병력이 15만 명 수준이 되었다고 해보죠. 이때 중국군과 우리 군의 병력 격차를 고려하면, 중국이 인간 대 기계 비율을 1 대 10으로 가져갈 때 우리는 1 대 100이나 1 대 300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 상대가 안 되니까요. 우리가 더 절박하기 때문에, 기계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건작: 당장 AI 기술이나 드론 기술만 봐도 우리가 중국보다 뛰어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단순히 같은 기술로 경쟁해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전투 반경(Battle Radius)의 개념입니다. 우리가 적보다 더 넓은 전투 반경을 확보하고, 그 안에서 더 치명적인 공격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적 드론의 작전 반경이 3~4킬로미터라면, 우리는 10킬로미터, 20킬로미터, 40킬로미터 범위에서 훨씬 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겁니다.
먼저, 드론을 멀리 보낼 수 있는 능력, 즉 우주 통신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북한이 당장 드론을 만들 수는 있어도, 우주 통신 체계를 우리 수준으로 구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스텔스 드론 기술을 접목하고,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보유한 포병의 정밀 타격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가 드론을 운용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즉, 같은 드론 기술이라도 무기 체계가 가진 근원적인 구조나 시스템을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단기간에 기술적으로 따라오기 어려운 구조적 격차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 병사들이 야간에 볼 수 있는 야간 투시경(NVG)을 100퍼센트 장착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반면 북한은 자금과 기술 부족으로 그럴 수 없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야간 투시경을 통해 200미터 거리에서 조준 사격을 할 수 있는데, 상대는 장비가 없어서 50미터 이내로 접근해야만 전투가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압도적인 우위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김세연: 그 경우에 우리는 야간전을 위주로 작전을 짜야겠군요.
강건작: 그렇습니다. 거꾸로 우리가 야간전을 주도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핵심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드론이나 AI 기술 자체의 경쟁이 아닙니다. 무기 체계 운용의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전투 반경과 치명성을 가능한 한 확장하는 방식으로 우리 군의 구조를 재편해야 합니다. 그러면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병력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로마의 삼두 정치 중 한 명이었던 크라수스(Crassus)는 파르티아(Parthia)라는 나라로 원정을 갔습니다. 3만 8000명의 로마 정예군을 데려갔는데, 거기서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고 맙니다. 당시 로마군은 갑옷을 입고 방패와 단검을 쓰는 근접 전투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파르티아군은 경기병이었습니다. 몽골군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말을 타고 원거리에서 활을 쏘는데, 뒤에는 낙타가 화살을 잔뜩 싣고 쫓아옵니다. 그러니 멈추지 않고 계속 활을 쏘는 겁니다.
김세연: 병참이 딱 받쳐 줬군요.
강건작: 그렇죠. 병참이 버텨 주면서 끊임없이 원거리 사격을 퍼부으니 로마군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기동성도 떨어지고, 무기의 사거리도 짧았으니까요. 게다가 당시 파르티아의 활은 ‘복궁(Double Bow, 듀플렉스)’ 형태였습니다. 원이 두 개인 활, 즉 우리가 쓰는 동아시아의 복합궁(Composite Bow)과 유사한 형태였습니다. 파르티아가 유목민의 후예다 보니 그런 기술을 썼던 것 같은데, 이 활은 사거리가 길고 관통력이 뛰어나 로마군의 방패와 갑옷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로마의 다른 적들은 그런 능력이 없었지만, 파르티아는 사거리와 치명성을 가졌기에 로마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겁니다.
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걸프전 당시 미군은 이라크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습니다. 미군의 전투 사망자는 140명 정도였습니다. 이라크군 사망자는 최대 10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무기의 물리적 파괴력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먼저 보고 먼저 쏘는 능력의 차이가 압도적인 치명성의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군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세연: 중국이 로봇과 드론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야말로 진정한 과학군을 지향해야 할 텐데요. 미국은 DARPA를 만들 때부터 그런 스토리를 써왔죠.
강건작: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드론이나 AI의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구조적인 능력을 갖추면서 체계를 구축해야 하죠. 또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인구 부족 문제는 결국 사람이 일정 부분 필요합니다. 상비군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 줄어든 상비군을 보완하기 위해 예비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이 제도 개선으로 가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세연: 이스라엘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논란은 있었지만, 본업이 변호사인 이스라엘 공군 예비역 조종사가 F-16 전투기를 몰고 야간 작전에 출격했다가 아침에 복귀해서 몇 시간 자고는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했다는 일화가 있었죠. 저서에서도 제시하셨던 방안인데, 우리의 ‘전시 치장 물자’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강건작: 그렇습니다. 사실상 우리 군에는 제대로 된 전시 치장 물자 개념이 없다고 봅니다.
김세연: 저서에서도 막상 유사시에 예비군들이 동원되어도 장비가 다 오래된 것들이라, 한 번도 안 써본 옛날 장비를 써야 한다고 지적하셨죠.
강건작: 우리가 상비군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전시에 필요한 전체 전력 투자에서 일부가 결핍된 결과입니다.
김세연: 콜롬비아에 퇴역 함정을 기증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식으로 물자를 소진해 버리고 정작 비축은 거의 못 하고 있는 실정인 것 같습니다.
강건작: 저는 앞으로 그런 구형 장비를 비축할 것이 아니라, 최신 물자를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세미나에서 이것을 ‘확장군’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예비군이니 상비군이니 하면 개념이 명확하게 와닿지 않아서 쓴 용어입니다. 평시의 국지 도발이나 위협에는 상비군으로 대응합니다. 하지만 6.25 전쟁처럼 북한이 기동과 화력을 통합해 총공세를 펴는 전시 상황에서는 확장군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군대 규모는 이 확장군 개념에 맞춰 물자와 장비를 비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최신 장비 중 일부를 상비군이 순환해서 운용하거나, 예비군 훈련 때 사용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해야 합니다.
김세연: 아까 로마의 크라수스가 이끄는 3만 8000명이 파르티아 기병에게 전멸당한 사례를 말씀하셨죠. 3만 8000명을 전멸시키기 위해 파르티아군은 화살을 얼마나 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병사 수의 10배에서 20배 정도는 족히 필요했을 텐데요, 그만한 비축 물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승리였을 겁니다. 평소 전쟁이 없는데도 그들은 수십만 개의 화살을 비축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지금 우리의 비축 물자가 얼마나 빈약한지 듣고 놀랐습니다. 만약 예비군이 아니라 확장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통해 개념을 재정립한다면, 충분히 인식의 전환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생적인 경제 효과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치장 물자가 충분히 비축될 때까지 우리 방위산업체가 생산을 맡게 됩니다. 수출은 경기 사이클에 따라 수주 물량의 변동성이 있는데, 그 빈틈을 우리 군의 비축 물량 발주로 채워 준다면 방산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생태계가 안정되면 생산 단가가 낮아지고, 높아진 가격 경쟁력으로 다시 해외 수주를 늘리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 무엇보다 본질적으로는 인구가 줄어 상비군이 감소하더라도, 확장군의 규모와 장비가 유지된다면 국방력 유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강건작: 그렇습니다. 인구 절벽의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해결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예비군의 부담을 무작정 늘리는 방식은 쉽지 않을 겁니다. 저는 예비군 훈련을 자격 기준과 달성 기준에 따른 성과제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은 예비군들에게 동기 유발이 전혀 안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은 훈련 기간을 줄여 주거나 면제해 주는 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사람이 손으로 써가며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여기에 AI 기능을 도입하면 됩니다. AI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춤형으로 관리해 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 현역 시절 특급 전사를 달성했거나 특등 사수였던 사람은 1년에 한 번, 사격 훈련만 하고 귀가하면 되도록 자격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체력 검정 역시 국민체력인증센터 같은 곳에서 측정한 데이터만 제출하면 훈련을 면제해 주는 식의 제도 개선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김세연: 가령 기갑부대나 포병 출신이라면, 본질적인 핵심 전력 유지에 필요한 교육 훈련만 받게 하는 식이겠군요.
강건작: 맞습니다. 예를 들어 보병인데 소총 조준경이 신형으로 바뀌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럼, 바뀐 조준경 사용법만 숙달하고 가도록 하는 식이죠. 그렇게 훈련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보상 비용을 확실히 산정해 줄 수 있겠죠. 저는 AI 기술이 발달하면 이런 식의 맞춤형 관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비군의 부담은 줄이면서 우리 군의 핵심 기능은 유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김세연: 기존의 동원 개념에서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하기까지는 현실적인 간극이 꽤 클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모델이 잘 그려져 있다면, 언제든지 전체든 부분이든 벤치마킹해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건작: 예를 들어 예비군 중에 K9 자주포 운용 능력자나 포술 능력자가 부족하다고 가정해 볼까요. 그러면 예비군 훈련 기간에 포술 능력을 숙달해서 자격증을 따면 비용을 산정해 주는 식의 인센티브를 주면 됩니다. 완전히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보다는 비용이 더 들겠죠. 하지만 인구 감소는 우리가 막을 수 없는 문제이니, 결국 경제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김세연: 비용이 든다고 해도, 예비군 참여로 인해 줄어드는 경제 활동의 기회 비용만큼 국가가 충분히 보상해 준다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돈은 결국 국민 경제 안으로 들어가서 순환되는 것이니까요.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건작: 병력이 줄어들면서 우리가 제약을 받는 또 한 가지 요인이 숙련도 문제입니다.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줄어들어 가장 큰 걱정입니다. 그런데 따져 보면 훈련의 숙달은 사실 기초 군사 훈련 때 다 만들어집니다. 해외 대부분의 군대는 기초 군사 훈련이 끝나면 바로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듭니다. 그 적정 기간이 보편적으로 대략 3개월 정도입니다. 특히 훈련을 많이 하는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주특기마다 다르지만, 자대 배치 없이 훈련만 6개월에서 8개월까지 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4~5주를 합니다. 전 세계 모든 군대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김세연: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배경이 궁금하네요.
강건작: 제가 교육사령관 할 때 들여다봤습니다. 사실 6.25 전쟁 초기에는 1~2주 훈련하고 내보냈는데, 전쟁터에서 희생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 16주까지 늘렸다가, 시간이 지나며 12주로 줄었고, 1980년대에 이르러 4주로 줄어든 것입니다. 이 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그러니까 4주 훈련은 정상이 아닌데,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이 틀에 갇혀서 4주를 정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을 늘려야 합니다.
김세연: 그럼, 어느 정도가 적정하다고 보십니까?
강건작: 최소 12주 정도는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보병 분대에는 기관총도 있고, K201 유탄발사기, K1, K2 소총 등 다양한 장비가 있습니다. 지금의 4주 훈련으로는 이것들을 다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번 주특기를 받으면 그것만 하게 됩니다. 병장이 되어서도 기관총 사수는 기관총만 들어야 하죠. 물론 행군할 때 힘들어서 서로 바꿔 들어 주기는 하지만, 운용 능력 면에서는 잘못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사례를 볼까요. 그들은 MG42라는 기관총을 썼습니다. 연사 속도가 너무 빨라서 연합군이 ‘히틀러의 전기톱(Hitler's Buzzsaw)’이라고 불렀던 아주 우수한 다목적 기관총입니다. 독일군은 이 기관총을 중심으로 분대 전술을 짰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기관총이었던 거죠. 그런데 전투 중 기관총 사수가 전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옆 전우가 바로 기관총을 잡아서 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다기능화가 되어야 합니다. 분대 요원이라면 기관총, 유탄발사기, 소총 등 분대 화기를 모두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훈련을 안 시킵니다. 겨우 4주 훈련 동안 소총 사격 한 번 하고, 수류탄 한 번 던지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최소 3개월 정도 훈련하면서 분대 공용 화기를 다 다뤄 보고, 수류탄도 여러 번 던져 보고, 응급 처치와 부비트랩(Booby trap) 설치법까지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전쟁이 났을 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기초 훈련 때 자격이 부여되면, 자대에 가서는 그 능력을 확인하고 유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자대에 투입된 15개월 동안은 확인 과정과 전술 훈련, 팀 훈련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죠. 그러면 예비군이 되어서도 어떻겠습니까? 최소한의 확인만 하면 금방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김세연: 장군님께서 사단장을 맡으셨을 때, 자대 배치 직후에 추가 훈련을 시키셨던 것으로 압니다.
강건작: 네, 약 4주간 집체 교육을 시켰습니다.
김세연: 그렇게 추가 훈련을 하니까 해당 기수의 능력이 확 올라갔다는 대목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강건작: 일취월장했습니다. 사실 우리 젊은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고 습득력이 빠른 자원들입니다. 여건만 마련해 주면 됩니다. 3개월 동안 무지막지하게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과제를 명확하게 부여하고 차근차근 달성하도록 해주면 금방 성장합니다.
김세연: 〈스케치 다이얼로그〉는 백지상태에서의 설계를 지향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짚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현재 상태에서 기초 훈련을 4주에서 12주로 늘린다면, 늘어난 8주 기간만큼 자대 배치가 늦어집니다. 일시적인 병력 공백이 생기지는 않겠습니까?
강건작: 복무 기간 18개월 중 3개월(12주)을 훈련에 쓰면, 자대에서 보내는 기간은 15개월로 줄어듭니다. 자대에 있는 병력이 적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비군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상비군이 전쟁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부대는 아닙니다.
전쟁에는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경계 지역에서의 우발적 충돌, 국지적인 교전, 기동부대 없이 포격전만 하는 상황, 그리고 기동부대가 총동원되어 남한을 석권하려는 6.25 전쟁 같은 전면전까지 다양합니다. 진짜로 대규모 병력이 필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인 전면전입니다. 그런데 전면전은 북한도 엄청난 준비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징후가 나타나죠. 우리가 정보력을 키우면 이를 더 빨리 알 수 있고, 그 시간을 이용해 앞서 말한 확장군을 신속히 통합하면 됩니다.
상비군은 전면전 징후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현상, 즉 국지 도발이나 초기 대응에 대비하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상비군 전체가 반드시 대규모 병력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꼭 필요한 기능과 부대는 완편(완전 편성)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3개 여단이 있는 보병 사단이라면, 그중 1~2개 여단은 완편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하나는 장비와 간부만 유지하며 병사들에게 기초 군사 훈련을 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간 편성을 하는 겁니다.
김세연: 기간 편성 부대는 비축 장비를 관리하고 훈련도 시키면서 말이죠.
강건작: 그렇습니다. 평시에는 그렇게 운영하다가, 유사시 예비군을 받아 부대를 전시 체제로 신속히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비군을 무조건 일정 규모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만 벗어나면, 훈련 기간을 늘려 정예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김세연: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GP/GOP의 경계 병력을 빽빽하게 배치할 것이 아니라 무인화를 적극 도입해야겠군요.
강건작: 그렇죠. 오히려 후방보다 전방의 경계 작전이 무인화하기 좋습니다. AI나 로봇이 복잡한 전장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지만, 경계 구역이 명확하고 루틴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에서는 평시에도 당장 쓸 수 있습니다.
김세연: 저서에서 언급하신 일선형(一線型) 배치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6.25 당시에는 전선을 따라 병력을 쭉 늘어세우는 것이 유효했을지 몰라도, 엄청난 사상자를 내면서 지켜낸 방식이었죠. 이런 도그마에서 자유로워진다면 훨씬 더 유연하고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으로는 과학 기술과 국방의 접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방산 기술이나 우주 기술은 대부분 이중 목적 기술이라 민수용으로도 충분히 전환이나 응용이 가능합니다. 만약 설계도를 새로 그린다면, 과학 기술과 국방을 거의 한 몸처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비대칭 투자를 대대적으로 단행하는 겁니다. 마치 이스라엘처럼 가장 뛰어난 두뇌 집단이 군인 과학자가 되고, 전역 후 창업으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죠. 그 생태계에서 나온 기술이 다시 무기 체계로 편입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건작: 맞습니다. 우리 군 구조도 그런 식으로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는 물리적인 핵심 분야 중 하나가 바로 통신입니다. 전투 반경을 늘리는 현대전의 핵심은 통신입니다. 정보 획득도 중요하지만, 통신 능력이 첫 번째로 갖춰야 할 기반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김세연: 당위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역량 수준을 100이라고 봤을 때, 우리 군의 현실은 어느 정도입니까?
강건작: 우주 통신 능력만 놓고 본다면,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2006년에 군사 통신 위성이 하나 올라갔습니다. 정지 궤도 위성인 ‘무궁화 5호’였죠. 그리고 2020년 ‘아나시스 2호(Anasis-II, Army Navy Air-force Satellite Information System-II)’가 발사되었습니다.
김세연: 얼마 전에 또 하나 올라간 것으로 아는데요.
강건작: 그것은 ‘425 사업’이라고 해서 관측을 목적으로 하는 정찰 위성입니다. 통신 위성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참고로 2006년 띄운 무궁화 5호 위성은 민군 겸용이었습니다. 아나시스 2호는 군 전용 통신 위성인데, 이걸 무슨 돈으로 띄운 줄 아십니까? F-35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절충 교역(Offset Trading)으로 미국이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군 통신이 원활하게 운용되려면, 현재 미국도 관심을 쏟고 있는 저궤도 위성(LEO) 체계로 가야 합니다. 이 분야에서는 스타링크(Starlink)가 민간과 군을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습니다. 미국도 군 자체적으로 저궤도 위성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스타링크를 지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통신 시설이 파괴되어도 통신이 끊기지 않으니까요.
반면 우리는 우크라이나처럼 할 수 없습니다. LEO 체계는 아예 없고, 대부분 지상 기반 통신 체계입니다. 적의 화력이나 드론 공격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죠.
김세연: 우리도 스타링크를 빌려 쓸 수는 있겠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한번 그랬던 것처럼 그쪽에서 언제든 꺼버릴 위험이 있죠.
강건작: 그렇습니다.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독자적인 체계를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우리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가능합니다. 의지만 있다면 유럽과 협업하면 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위성을 공유해서 쓰면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김세연: 유럽이라면 EU와 직접 이야기하는 겁니까?
강건작: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하든, EU와 하든 방법은 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당장의 드론이나 AI 개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김세연: 가령 NATO 정상 회담에 우리가 옵저버로 참여할 때, 이런 이슈를 같이 논의해 볼 수도 있겠군요.
강건작: 그럴 수도 있죠. 굳이 정상이 직접 가지 않더라도, 국방부 장관이 가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NATO와 협력할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우주 분야는 협력의 여지가 아주 많습니다.
김세연: 일본도 필요하다면 우리와 함께 펀딩을 할 수도 있을까요?
강건작: 펀딩은 할 수 있겠지만, 일본은 우리와 같은 시간대를 씁니다. 위성을 동시에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같이 할지 여부는 신중히 따져 봐야 합니다. 하지만 보안 프로토콜만 확실히 확보한다면, 같은 인프라에 태우더라도 데이터가 섞이지 않게 하는 기술은 이미 되어 있습니다.
김세연: 그러니까 위성이라는 인프라만 띄워 놓고, 운영은 각자 하는 방식이군요.
강건작: 그렇습니다. 통신선을 같이 쓰더라도 끝단에 보안 장비(비화기)를 달면 도청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위성은 기지국처럼 띄워 놓고 공유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문제는 인식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군은 대포, 배, 비행기 같은 플랫폼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진짜로 통신이 현대전의 핵심 능력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국방비 투자 비율도 너무 낮았습니다.
김세연: 지금 군 내부의 인식은 어느 정도까지 올라와 있습니까?
강건작: 안타깝게도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김세연: AI에 대한 인식도 아직 높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강건작: 그렇습니다. AI에 대해서는 말만 무성하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진전도 별로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사실 아주 쉬운 방법은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의 팔란티어 시스템을 그대로 쓰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아까 스타링크 사례와 똑같은 문제입니다. 완전히 종속되는 것이죠. 영국은 최근에 팔란티어 시스템을 도입해서 종속되는 길을 택했더군요.
김세연: 그래도 영국은 위성 분야에서는 원웹(OneWeb)을 통해 미국에 들어가지 않고 독자 노선을 걷기 위해 따로 띄웠다고 들었습니다.
강건작: 그러니 영국 같은 나라와 우리가 협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방식을 찾아봐야 합니다.
김세연: 위성을 추가로 띄울 때 혼자 하려면 부담일 테니까요.
강건작: 그렇죠. 우리와 교대로 띄우든지, 자금을 같이 출자해서 띄우든지 하는 겁니다.
김세연: 정지 궤도 위성은 고정되어 있으니 어렵겠지만, 저궤도 위성은 지구를 계속 도니까 가능하겠네요. 저궤도 군집 위성망(Constellation)은 한 국가가 24시간 전부 다 쓰지는 않을 테니, 서로 공유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건작: 맞습니다. 충분히 좋은 방법입니다. NATO와 하든, 유럽 개별 국가와 하든 상관없습니다. 인도도 있고요. 우리의 잠재적 적국이 아닌 나라라면 어디든 협조가 가능합니다.
김세연: 우리가 UAE 같은 중동 국가들과도 군사 교류를 계속하고 있으니 이쪽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건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위성을 공유하며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김세연: 정리하자면, 가장 부족하고 시급한 부분은 우주 통신을 포함한 통신 분야입니다. 통신이 되어야 AI도 되니까요. 그다음 우선순위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강건작: 정보 체계입니다. 드론도 단순히 근접 정찰 드론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GMTI(Ground Moving Target Indicator), 즉 지상 이동 표적을 탐지하는 체계를 대폭 확충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미사일이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가든, 포가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가든 효율적으로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집니다. 425 사업 같은 위성 체계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다양한 제대에서 이동 표적을 실시간으로 포착해서 타격 수단과 연계하는 것이 그다음 핵심입니다.
김세연: 정리해 주신 내용을 들으니 해야 할 일의 순서가 명확히 보입니다.
강건작: AI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 기술입니다. AI가 핵심이라며 단순하게 AI에만 투자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군에서 기존 전차의 성능 개량 사업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재정 당국에서 빼버렸습니다. 요즘 대세가 AI인데, 재래식 무기를 그냥 업그레이드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뺐다고 하더군요. 이런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겁니다. AI라는 간판만 내세우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김세연: 기존 무기 체계도 업그레이드가 되어야 AI도 접목되어 운용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건작: 그렇습니다. 같이 업그레이드되어서 함께 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차는 재래식이고 AI를 해야 한다면서 대체재처럼 생각합니다. 잘못된 접근입니다.
김세연: 기계적인 순환 보직 문제 때문에 예산 심의 관계자가 해당 분야 내용을 잘 몰라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강건작: 정부 고위층에서 AI를 강조하니까, 무기 체계 사업에서도 무조건 AI만 찾다가 정작 중요한 기본을 놓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세연: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무기의 원시적인 단계부터 최첨단 수준에 이르기까지, 무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우리 군의 편제와 움직임, 인구 감소 대응, 그리고 통신 분야 등 집중 투자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진단까지 폭넓게 들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바탕으로 다음에 더 발전된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건작: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