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이번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국방 분야를 다룹니다. 창끝전투학회 전법센터장을 맡고 계신 이창인 박사님과 대담을 나눕니다. 이창인 박사님은 우리 군의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해 오셨습니다.
저출생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우리 군 병력 규모도 과거 60만 대군에서 50만 명이 무너졌고, 이제는 40만 명 아래로 줄어드는 중입니다. 기존의 작전 개념과 체계를 뒷받침할 병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기계의 도움을 받는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Manned-Unmanned Teaming·MUM-T)로 작전과 전술 개념을 바꾸어 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백지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가의 국방 체계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고자 합니다. 줄어든 병력으로 어떤 유무인 복합 체계를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이창인: 저희가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우리 육군의 현역 병력은 36만 명 수준인데, 북한은 약 110만 명입니다. 국방백서에 명시된 수치입니다. 북한이 거의 3배 정도 많습니다. 전시 상황이 되면 북한은 ‘노동적위군’이라고 불리는 예비 병력을 동원하게 되는데, 약 780만 명 정도입니다. 결과적으로, 북한군 병력은 약 890만 명에 이릅니다. 반면 우리는 현역과 예비군 약 220만 명을 모두 합쳐도 256만 명 정도입니다. 여전히 북한이 3.5배 정도 병력이 많습니다. 여기에 전시에 개입할 것이 거의 확실한 중국의 북부 전구 병력 40만 명과 후속해서 지원할 수 있는 수백만 명의 중국군을 고려한다면, 우리 육군은 평시에는 1명이 3명을 감당해야 하고, 전시에는 1명이 5~6명 이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병력 수로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로 극복해야죠. 현재 거의 유일한 방법이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입니다. 이 체계를 구축하려면 당연히 로봇 기술이 필요하고, 그 로봇을 운용하기 위한 운영 체계도 필요합니다. 이 시스템이 군용화되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군 전용으로 개발하면 비용이 상승하고, 독자 개발로 인한 낮은 호환성 때문에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에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민간용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르파(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DARPA,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의 로봇 챌린지에서 주로 사용되는 운영 체제가 ROS(Robot Operating System)입니다. 미군은 이 ROS에 군용 보안 프로그램을 결합한 M-ROS라는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로봇 간에는 상호 운용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로봇의 팔을 떼어 다른 로봇에 붙일 수 있고, 구동용 모터를 교체할 수 있는 식입니다. 당연해 보이지만 운용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로봇에게는 이것이 일치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상호 운용성을 확보한 구조를 만들고,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과 동일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우리나라는 시장 규모가 작지만, 미국 표준을 따르면 미국 시장뿐 아니라 같은 표준을 따르는 나토(NATO) 국가에도 수출이 가능해집니다. 확장성이 커지죠. 또한, 전시 상황에서 국내 생산 공장이 파괴될 경우, 미국이나 유럽 등 같은 표준을 따르는 국가의 부품을 가져와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방국 간 기술 표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미 현실 세계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로봇 기술 중 하나가 드론입니다. 그런데 이 드론 시장은 중국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시장의 약 7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죠. 그래서 우리나라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 문제로 자체 개발을 하기보다는 중국산 부품을 수입해 조립한 뒤 국산이라며 판매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중국산 장비는 스파이 칩을 삽입하기 쉽습니다. 특히 DJI사의 제품은 사용자가 드론을 운용할 때 해당 회사에 등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기를 등록하는 순간,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이나 좌표, 기타 모든 정보가 중국 DJI 본사로 전송됩니다. 그리고 그 정보가 러시아군에게 제공되는 것이죠. 이래서는 군용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파이 칩은 좁쌀보다 작습니다. 어떤 것은 현미경을 통해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전자 장비의 99퍼센트 이상이 이러한 칩을 내장하고 있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스파이 칩의 침투가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2010년경 미국에서 이루어진 조사인데, 다리미 내부에 와이파이 칩을 삽입했다는 겁니다. 전원을 연결하면 주변 전자 기기를 스캔해 특정 IP로 정보를 전송하는 중계기로 작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리미에까지 이런 걸 넣나?’ 싶을 수 있죠. 하지만 수십만 개 다리미 중 하나만 걸리면 되는 겁니다. 복사기도 마찬가집니다. 기본적으로 스파이 칩이 장착되어 있고, 문서를 복사하면 그 이미지가 RAM에 저장됩니다. 이 복사기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면, 램에 저장된 정보가 전부 중국으로 전송됩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 같은 방산 회사, 국방부 또는 보안 사무실에 이런 중국산 복사기가 설치되어 있다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복사기로 출력한 모든 내용이 중국으로 전송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엄청난 정보를 빼 갔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로부터 정보를 보호하고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를 구축했을 때 위협받지 않으려면, 우리의 로봇 생태계는 적대 집단과 완전히 독립되고, 우방국과는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합니다. 즉, 권위주의 국가들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국산 드론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로봇들끼리, 혹은 로봇과 사람이 실시간으로 초연결되어야 합니다. 실시간으로 명령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게임을 할 때 버퍼링이 생겨서 동작이 몇 초만 늦어져도 캐릭터가 죽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면 1초 미만의 지연은 생기겠지만, 물리적인 한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죠. 가능한 한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지연 시간을 최소화하는 초연결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지연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극복하는 기술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기술은 지금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만들어져도 15년, 20년이 지나서야 군에서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매우 답답한 일이죠.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PPBS(Planning-Programming-Budgeting System)라는 기획관리 제도 때문입니다. 1961년 미국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도입했습니다. 당시 미국 국방부가 워낙 난잡한 구조였기에 이 제도는 괜찮은 해결책이었죠. 2003년에는 여기에 실행(Execution) 단계를 추가하여 PPBES(Planning, Programming, Budgeting, and Execution System) 체계로 발전시키면서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PPBS 제도는 기본적으로 15년짜리 기획 시스템입니다. 당시에는 신기술이 개발돼 신제품으로 나오기까지 약 15년 정도 걸렸기 때문입니다. 즉, 당시의 기술 개발 속도를 고려한 기획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아침에도 기술이 바뀌고, 1~2년이면 신제품이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여태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PPBES에 평가(Evaluation) 체계를 추가로 얹었습니다. PPBES만 해도 복잡한데, 평가(Evaluation) 체계가 추가된 PPBEES(Planning, Programming, Budgeting, Execution, Evaluation System, 국방기획관리제도) 체계가 된 것입니다. 엄청나게 복잡한 기획관리 제도를 운용하는 거죠. 이 제도는 국방부만 사용합니다. 다른 부처에서는 만들지 않는 10~15년짜리 중기,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런 개념하에서 방위사업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승자박의 구조가 됩니다.
다른 부처들은 PBS 제도(Project-based System, 연구과제중심제도)를 사용하는데, 이 경우 계획 기간은 길어야 5년입니다. 예산이 편성되면 바로 다음 해에 연구나 실험이 시작되고, 긴급할 때는 2~3년 내에도 제품이 나와 완료됩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PPBEES를 절대 진리처럼 여기니 기본적으로 10~15년이 걸립니다. 그 시점에는 이미 구식 기술이 되는 거죠.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PPBEES 제도를 최소한 다른 부처가 운영하는 PBS 제도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길어야 5년짜리 기획 체계로 빨리 바꿔야 합니다.
김세연: 우리는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국가의 국방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국방부의 사업 체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PPBEES 같은 10~15년짜리 사이클이 아니라 더 신속한 체계가 요구됩니다. 요즘 AI 분야만 봐도, 전문 연구자조차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혁신 속도가 빠릅니다. 한 달 사이에도 여러 개의 새로운 모델이 발표되기도 하고, 기술 변화가 엄청나게 가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팔란티어, 안두릴 같은 기술 기업들이 첨단 무기 체계를 빠르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기획과 조달, 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방 체계를 새로 설계한다면, 기간과 절차를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창인: 현재의 방위사업법 제도는 효율성이나 효과보다는 투명성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금융 시스템과 각종 관리 시스템이 발전해 투명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투명성과 관련된 문제는 AI나 금융 시스템을 통해 관리하고, 투명성 때문에 만든 복잡한 행정 절차와 규정은 과감히 단축해야 합니다.
또, 실험적인 제품이 개발되었을 때 특정 부대나 각 군 연구소에서 해당 제품을 직접 시험해 보고 훈련에 사용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미흡한 부분을 파악해 보완하면서 야전 배치하는 것이죠. 단순하면서도 상식적인 구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각 군 연구소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김세연: 기업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보면,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어 내부에서 실증 테스트를 하거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외부 고객에게 제공해 피드백을 받아 완성도를 높입니다. 완성도뿐만 아니라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부분, 실사용자의 피드백을 통해 성능이나 만족도를 어떻게 향상할 수 있느냐는 부분도 중요할 텐데요, 이런 관점에서 연구 개발 절차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창인: 맞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책임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실패하면 바로 아웃입니다. 사고가 나면 끝입니다. 연구 사업을 진행할 때도 실패하면 ‘왜 사전에 문제를 식별하지 못했느냐’는 식의 질책이 심합니다. 1~2년 단위로 보직이 바뀌다 보니, 그 사이에 각종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진급이 어려워져 이런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김세연: 감사 체계가 너무 강해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이창인: 조직 문화 자체의 문제입니다. 한 번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 아닌지 계속 문제 삼습니다.
김세연: 스페이스X는 나사(NASA)에 비해 10분의 1 정도의 비용으로 발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죠. 일론 머스크가 초기 ‘팰콘1’ 발사에 몇 번 실패했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실패는 하나의 옵션이다. 만약 실패하지 않고 있다면 충분히 혁신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당연한 말입니다.
이창인: 그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인사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실패로부터 경험이 축적되어야 할 텐데, 그런 경험이 쌓인 사람이 그 자리에 계속 있어야 가능하겠죠. 하지만 군이나 국방부 조직 대부분이 1~2년 단위로 보직이 바뀌기 때문에, 노하우가 전혀 보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결국 인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개선이 어렵습니다.
김세연: 행정 분야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유착으로 인한 부패에 대한 우려 때문에 너무 짧은 주기로 기계적 순환 보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공무원들이 기획안을 스스로 작성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의 기획안이 외주 용역으로 처리됩니다. 실력의 문제라기보다 책임 회피 문화에서 비롯된 현상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냥 거쳐 가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습니다.
이창인: 진급을 위한 경력 관리만 남게 되는 셈이죠.
김세연: 기획과 집행, 그리고 피드백을 받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들여다보면, 해당 업무를 맡은 주무관부터 간부들까지, 길어지는 사업의 경우에는 끝을 보지 못하고 계속 교체됩니다. 이런 식의 인사 제도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나 실제 정책 효과가 현장에서 발현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매우 이상한 인사 제도입니다.
이창인: 부패에 연루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전문가들이 5년, 10년씩 해당 부서에 머무르면, 아무리 복잡한 법이라도 그 테두리 안에서 원하는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지 못하는 이유가 부패 우려 때문이라면, 지금은 각종 감시 기술, AI 기반의 감독 시스템이 엄청나게 발전해 있어서 충분히 통제 가능합니다. 또, 설사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해당자만 엄정하게 문책하면 됩니다. 지금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상황입니다.
김세연: 결국 지금의 조직과 인사 제도는 전문성의 축적을 체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드린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스파이 칩을 언급하시면서 주변국에 의한 기술 및 정보 유출, 염탐, 스파이웨어 등에 관해 말씀 주셨습니다.
대한민국 인구가 한때 5185만 명까지 도달했다가, 현재는 감소세에 접어들어 앞으로는 4000만, 3000만 명대로 계속 줄어들 것이 예상됩니다. 인구 대비 적정 병력 규모는 전통적으로 어느 정도로 보는지 궁금합니다. 또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주적인 북한의 군사 편제를 고려했을 때, 적정한 현역과 예비군 병력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요? 아울러 로봇이나 AI 기술이 인구의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창인: 적정 병력 규모는 ‘적’을 상정해야 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일차적으로 수치로 분석해야 합니다. 이 수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최소한 적의 3분의 1 수준의 병력이 확보되어야 방어가 가능합니다. 공격을 당했을 때 방어에 필요한 최소 수준입니다. 만약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한다면 전투력 면에서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기술적 수단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기술적 수단으로 보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을 투자해야 합니다.
김세연: 지정학적 논의를 살펴보면, 2035년쯤에는 중국 해군력이 미국 해군력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의 관세 전쟁이 실제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런 전망이 아니더라도, 패권국의 교체와 같은 객관적인 여건 변화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국을 생각해 보면,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북한이 가장 주된 위협입니다. 다만, 좀 더 넓게 봤을 때 우리가 자주국방을 달성한 상태에서 중국과 교전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죠.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중국을 상대로 3분의 1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할까요?
이창인: 중국군은 현재 5대 전구(戰區)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중 한반도 유사시 출동할 수 있는 북부 전구의 병력은 대략 4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대응하려면 통일 후에도 우리 군은 최소한 중국 북부 전구의 3분의 1 정도는 있어야겠지요. 북부 전구 병력 40만 명은 육·해·공군이 통합된 통합군입니다. 반면 우리는 합동군 체제입니다. 육·해·공군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명령 체계의 효율성이나 부대 간 협업 능력, 단결력 측면에서 통합군보다 떨어집니다. 작전 체계 자체도 그렇고요.
다만 중국군은 통합군이긴 하나, 육군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해군이나 공군 전력의 활용이 더딘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단결력이 다소 떨어질 수는 있지만,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가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각 군의 전투 영역에 대한 전문성은 중국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런 전문성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육·해·공군을 통합하여 지휘하는 합참의장 등의 지휘관들이 각 군의 특징을 잘 알고 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육군 우선’식의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김세연: 행정부에서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통해 부처 소속을 넘어 인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과 실제로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국방 체계를 새롭게 구성한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처럼 합동군 체계로 육·해·공군을 분리해 각각 전문성을 축적하는 방식이 나을지, 혹은 중국처럼 통합군 체제로서 전술 개념부터 하나로 융합하는 방식이 나을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마치 제조업에서 생산 조직과 영업 조직을 하나로 통합할 것인가, 아니면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과 비슷해 보입니다. 하나로 합치면 합치는 대로의 문제가 생기고, 분리하면 분리한 대로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합쳤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분리하는 식으로 순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통합군과 합동군 체제도 비슷한 이슈를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보십니까? 만약 합동군 체제로 간다면 위관급, 영관급 단계부터 다른 군과의 교류, 각 군 간의 순환 보직을 통해 서로 다른 교리나 전술을 익힐 수도 있겠습니다. 타 군의 강점을 습득할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이후 지휘관이 되었을 때 작전을 바라보는 안목이 탁월하게 높아질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군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까요?
이창인: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군대는 항상 정권과 국민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무력을 쥐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군대가 국민이나 정권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려면 군사력의 분산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군령권과 군정권을 나누고 있습니다. 군령권은 합참이, 군정권은 각 군 참모총장이 가지고 있죠. 이렇게 이원화되어 있다 보니 별이 많아지고 체계가 복잡해집니다. 정치적 안전장치로 기능하기 위해 효율성을 희생한 구조입니다.
효율을 따지면 통합군이 더 효율적이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 통합군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통합군을 구성하더라도 그 안에 지금처럼 각 군 참모총장을 별도로 두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통합군 사령관이 군령권과 군정권을 동시에 쥐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겠죠. 그리고 통합군 체계에서는 각 전투 영역 간 전문성이 약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군 비행단에 육군 출신이 들어오고 해군 함장을 공군 출신이 맡게 된다면, 지상, 해상, 공중의 전장별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전문성이 무너질 수 있겠죠.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기 위해서는 통합군을 구성하되, 육·해·공군 체계는 현재의 병과 체계처럼 운영해 각 군이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아 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중간중간 순환 보직 형태로 타 전투 영역을 경험해 역량을 향상시키는 겁니다. 그중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재들을 고위 지휘관으로 선발해서 통합군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말씀하신 대로 체계를 정비한다 해도 인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작전에서 탁월한 사람이 역량을 발휘할 보직에 배치되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이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창인: 그런 문제를 막으려면 훈련을 많이 하면 됩니다. 훈련을 하게 되면 적나라하게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김세연: 훈련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가능성이 없습니까? 정성 평가가 개입될 여지 말입니다.
이창인: 정성 평가, 정량 평가 모두 들어갑니다. 정성적 평가의 예시를 들어 보죠. 한 지휘관을 두고 “이 사람 밑에서 전시에 함께 싸울 수 있겠나?”, “이 사람과 함께 싸우고 싶은가?”라고 부하들에게 묻는 것입니다.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이 많다면, 그 지휘관은 정말 탁월한 인재라고 할 수 있겠죠. 리더십이 부족하거나, 전술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인간적으로는 좋은데, 같이 싸우고 싶진 않다”라는 답이 나옵니다. 굉장히 직설적으로 결과가 드러납니다.
정량 평가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전술적 능력이나 군사 지식 수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사례를 보죠. 모스크바 근처에 장군참모학교가 있습니다. 준장이나 소장 등 장군 진급자들이 입교해 1년간 교육을 받는 곳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섯 차례의 모의 전투를 수행합니다. 장군참모학교를 지원하는 교도 사단의 3개 여단을 활용해 쌍방 기동 훈련을 합니다. 100제곱킬로미터짜리 러시아스러운 훈련장에서 쌍방 훈련을 하는 거죠. 보병뿐만 아니라 기계화 부대, 공군 전력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총 다섯 차례 전투를 벌이는데, 두 번 이상 이기지 못하면 진급에서 탈락합니다. 즉, 그 사람은 장군으로서 지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김세연: 지휘관의 능력을 보기 위해 그 많은 병력이 다 움직인다는 말씀이네요.
이창인: 그렇습니다. 교도 부대는 해마다 다양한 장군들의 지휘를 받아 쌍방 교전을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이 부대 출신 중에서 탁월한 인재가 많이 나옵니다. 이렇게 러시아는 실력으로 평가합니다. 러시아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긴 해도, 한국군보다는 훨씬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군사학’을 학문으로 만든 나라입니다. 군사학 박사 학위도 있고요. 군사학 박사를 받으려면 수학이나 물리학 등 이과 계통에서 박사 학위를 먼저 취득한 후, 군사학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는 방식입니다. 러시아의 군사학은 매우 과학적입니다.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학문을 쌓아 올렸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대 간격, 개인 간격 등도 수학적으로 계산해 도출합니다. 몇 명이 필요한지, 병력 배치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전부 계산해서 전투를 수행합니다. 또, 러시아는 실제 기동 훈련을 통해 전쟁 수행 능력을 입증하고 검증합니다. 그런 러시아군으로부터 북한군이 교육을 받았고요. 그래서 북한군을 결코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안 하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한 번 사고가 나면 경력이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훈련하지 않아도 평정은 잘 받습니다. 보직 경력과 지휘관으로부터 받는 평정만 좋으면 진급이 되니까 훈련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법과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요.
김세연: 정리하자면, 형태적으로는 통합군 체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합동군 체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또, 장군 진급이나 그 이전 단계인 영관급 진급 등의 시점마다 통합군의 관점을 내재한 단계별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우수한 지휘관이 진급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한다면, 통합군과 합동군의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이창인: 우리나라 정서상 ‘엘리트 교육’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는 한 명의 엘리트가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지휘관이란 과학 기술, 문학적 소양, 리더십, 체력 등 여러 면에서 전인적인 능력을 갖춘, 어떻게 보면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에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이런 자격이 없는 사람이 지휘관이 되면 많은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당장 부하들이 희생될 것이고, 그들은 우리 국민이죠. 국민의 생명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지휘관으로 임명하기 위해 엘리트 교육을 제공하겠다는데, 그런 교육에 반대한다면 내 자식을 능력 없는 사람에게 맡기고 전쟁터에 내보내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휘관의 자리를 아무에게나 줘서는 안 됩니다. 현재는 육·해·공군, 해병대, 모두 진급만 하면 지휘관을 맡습니다. 심지어 지휘관 보직을 꺼리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휘관 생활 중에 사고가 나거나 큰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더 이상 진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미군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진급자 중 약 40퍼센트만 지휘관으로 선발합니다. 인격과 리더십, 능력과 체력을 모두 인정받는 훌륭한 인재를 가려 뽑은 후, 지휘관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다음 계급 진급은 거의 보장되는 식입니다.
김세연: 즉, 지휘관 자체를 따로 선발하는 방식이군요.
이창인: 맞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은 숫자가 많지 않겠지요. 그래서 특정 분야에 특화된 사람이라면 굳이 진급하지 않더라도 그 분야에서 5년, 10년 지속적으로 일하게 하면 됩니다. 진급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 기간 집중하면 전문가가 됩니다. 그러려면 진급하지 않아도 성실히 장기 복무할 수 있도록 정년 연장이 필수입니다. 지금은 상사를 못 하면 45세쯤 전역해야 하고, 소령도 50세쯤 전역이니 장기 복무 자체가 큰 모험입니다.
김세연: 지금까지 군의 편제, 그리고 지휘관이나 장군 진급 대상자를 어떻게 선별할 것인가에 대해 짚어 주셨습니다.
현재 우리 군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초급 장교와 부사관의 급속한 이탈입니다. 특히 병사 급여를 단기간에 급격히 인상하면서 초급 간부인 소위, 하사와 병장의 급여 차이가 크게 좁혀졌습니다.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장교와 부사관 지원자가 급감했습니다.
부사관 급여를 높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별 차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군의 허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표현이 기사 제목으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군 체계를 설계한다면, 병과 부사관과 장교들에 대한 바람직한 보상 체계는 어떤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창인: 부사관이 되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군대를 좋아합니다. 소위 ‘밀리터리 덕후’라고 하죠. ‘밀덕’입니다. 총을 써보고 싶지만,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명예롭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이 부사관이나 장교를 지망합니다.
그런데 젊을 때는 이런 동기로도 충분한데, 생계 문제와 행정 중심의 군 생활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만둡니다. 초기에는 열정만으로 입대했지만, 막상 복무를 시작하면 병장과 급여 차이가 거의 없다는 현실에 부딪힙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진급하면 이런 부분은 점차 해소됩니다. 그런데 그다음 문제는 실제 부대에서 훈련을 하지 않고 대부분 행정 업무만 한다는 점입니다. 업무 대부분이 ‘책임 회피용 문서 작성’입니다. 또,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 등의 상급자가 잘 모르기 때문에, 상급자를 이해시키기 위한 보고서 작성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일을 한다고 전투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훈련은 위험하다며 하지 말라고 하니 군인으로서 정체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거기에다 진급도 잘 안 되죠. 설령 진급이 된다 해도, 쿠팡에서 일하는 같은 연차의 근로자보다 봉급도 적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적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죠.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겁니다.
보수, 자긍심, 명예,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줘야 군에 남습니다. 물론 급여는 지금보다 더 높아지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군 본연의 모습입니다. 책임 회피용 행정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 중심의 부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사관들은 신나서 훈련에 임할 겁니다. 그게 좋아서 군대에 왔으니까요.
또, 국민개병제로 군대에 온 병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싫어도 자기의 주권을 지키러 온 것 아닙니까? 부사관들이 힘들어도 총을 메고 훈련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생깁니다. 이런 식으로 10년, 20년이 쌓이면, 부사관은 진정한 프로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전문가로 인정받고 명예로운 직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면, 봉급이 약간 낮더라도 자부심으로 그 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부사관과 장교들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힘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서 군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봉급이 조금 낮아도 계속 복무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현재 상황은 군을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행정 업무는 더 늘고 있습니다. 누군가 떠나면 남아 있는 이들의 업무가 늘어나는데, 상급 부대에서는 거기다 새로운 행정 업무를 또 추가합니다. 그걸로 진급해야 하거든요.
근무 평정을 쓸 때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이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입니다. 아무래도 보고서를 많이 제출하는 것이 인상에 남게 되니 계속해서 보여 주기식 보고서와 이벤트를 생산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벤트라는 것은 육군 규정, 해군 규정, 공군 규정 등에 항목을 자꾸 추가하고, 일을 만드는 겁니다. 또 각종 시범이나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실무자는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1인당 업무량이 더욱 늘어납니다.
김세연: 결국 국민과 영토를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 때문이 아니라, 왜곡된 진급 체계에서 파생된 문제들 때문에 바빠지고 고생하는 구조군요.
이창인: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이야기 하는 것이 ‘인사가 만사’입니다. 현행 군인사법 제8조(연령 정년, 근속 정년, 계급 정년)와 군인사법 시행령 제33조(진급 대상자 선발 기준)는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그 조항만 바꿔 줘도 판을 새로 깔 필요 없이 현재 구조 안에서 충분히 우리가 바라는 군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군인들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진급이 막히면 생계도 끊기게 되니까요.
김세연: 생계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현역 기간 중 가족 부양에 충분한 보상이 되고 있는지이고, 또 하나는 전역 이후의 문제입니다.
특히 연금 수령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전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 생활에 대한 환멸, 즉 꿈꿔 왔던 전투 중심의 군 생활이 아니라, 상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행정, 책임 회피용 행정만 반복하게 되는 현실에 지쳐서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군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우리 군의 성장을 돕다가 전역한 분들인데, 사회에서 국방과 관련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혹은 전역 후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군인 연금 제도에 관해서도 짚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창인: 군인은 나이와 상관없이 20년 이상 복무하면 전역과 동시에 연금이 바로 지급됩니다. 다만 무직일 경우에만 연금이 나옵니다. 전역 후 공무원으로 재취업하면 연금이 안 나옵니다.
일반 기업에 취업하면 연금이 계속 지급되긴 하는데, 회사 측에서 연봉에서 연금 수령분을 공제한 만큼만 급여를 책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역 후 일반 기업 연봉이 4000만 원인데, 연금으로 2000만 원을 받는다면, 회사에서는 연봉을 2000만 원만 지급해 총합을 4000만 원으로 맞추는 식입니다.
김세연: 그게 지금 시장에서 통용되는 방식이군요.
이창인: 그렇습니다. 결국 연금을 받는다고 해서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일반 직장인과 비슷합니다. 세금 떼고 이것저것 공제하면 실수령액이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소령이 연령 정년인 50세에 전역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평균 수명이 80세이니까 전역 후 30년 동안 연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애초에 60세나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해 주면 어떻게 될까요? 연금 지급 기간이 확 줄어듭니다.
물론 정년이 연장되면 호봉이 올라가겠지만, 연금 지급 대상과 기간이 줄어서 국가 재정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또한 연금 지급 기간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연금 지급액은 더 줄어들겠죠. 2022년에 이 계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년을 일괄적으로 60세로 조정하면, 10년간 국가 예산 약 4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김세연: 충분히 실현 가능해 보입니다. 물론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죠. 예를 들어 지휘관이 대위인데, 실무자는 소령이 되는 계급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하지만 문화나 인식 개선을 통해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다면, 개인과 군 모두에게 훨씬 더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창인: 연령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가 바로 계급 역전 문제입니다. 명령 체계가 꼬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그래서 최저 수준 평가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업무 능력이 기준 이하인 사람, 상급자의 정당한 지시를 교묘하게 뭉개는 사람은 신속히 전역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명령 체계가 확립됩니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직책 중심 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나이를 앞세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나이만 믿고 일하지 않으면 과감히 정리해야 합니다. 그에 맞춰 규정도 바꿔야 하고요.
연령 정년 제도는 196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평균 수명이 60세이던 시절이고, 벌써 60년이 넘은 오래된 제도입니다. 당시에는 소령 정년이 45세, 장군은 60세였는데, 그 당시 기준이라면 거의 평생 복무 수준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평균 수명이 20년 이상 늘어났습니다. 시대가 바뀐 만큼 제도도 바뀌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세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이러한 제도들도 현실에 맞게 점차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역 이후의 경제적 생활은 어떻습니까?
이창인: 저도 그렇습니다만, 박사 학위를 받았거나 아카데믹 쪽으로 경력을 길게 쌓으신 분들은 오히려 진급이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는 중령, 길어야 대령 정도에서 전역하게 됩니다. 물론 그만큼 학위와 경력, 데이터 축적이 있으니까 전역 후에 민간 기업에 취업하기는 수월한 편입니다. 실제로 후배와 동기 중에 카이스트에 정교수로 임용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재를 선발할 줄은 아는데, 활용은 잘하지 못합니다. 준비된 사람들은 민간으로 빠르게 전환합니다.
반면, 공부나 준비가 덜 된 사람은 많이 힘듭니다. 그런 분들이 주로 시험 보는 게 비상계획관 같은 자리이고, 장군급 인사들은 기업체 이사나 자문직 등으로 몇 년 일하다가, 정보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굉장히 힘들죠.
김세연: 그렇다면 연금만 가지고는 생계가 어렵겠군요?
이창인: 어림도 없습니다. 현재 4인 가족 기준 중위 소득이 609만 원인데, 20년 차 45세 전역의 경우 연금이 200만 원 정도입니다.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이죠. 올해 최저 임금 기준 월급이 209만 원이니까, 사실상 최저 임금 수준의 연금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김세연: 미국은 어떤가요?
이창인: 미국은 전역 후 취업하면 우리처럼 연금 받는다고 연봉을 깎지 않고 온전히 받습니다. 연금은 연금대로 별도로 지급됩니다. 즉, 군대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전역해서 좋은 곳에 취업하면 수입이 꽤 풍족해집니다. 전투에서 부상을 입는 경우를 제외하면 군대 생활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유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미국 방위산업체들도 군 출신을 적극적으로 채용합니다. 우리는 보안에 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라 군 내에서도 연구 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국방부, 각 군이 보안 문서를 주고받을 때 절차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반면, 미국 방산업체의 가장 큰 특징은 보안 체계와 정보 교류가 매우 유연하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교류도 유연합니다.
미국은 방산업체, 국방부, 각 군 간에 상호 기밀 정보 공유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방산업체에 미군 현역이 파견돼 개발을 돕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평가해 본 뒤 피드백도 주고요. 이걸 ‘솔저 터치포인트(Soldier Touchpoint)’ 제도라고 하는데요, 제품을 써본 뒤 바로 피드백을 주고, 그에 따라 기업이 바로 개선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기술 개발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김세연: 개발 체계 내에서 민군 통합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겠네요.
이창인: 그렇습니다. 보안 체계의 유연성이 보장되니까 이런 구조가 가능한 것입니다.
김세연: 벽으로 가로막힌 것이 아니라 인적 교류까지 보장해 주니 개발 속도도 훨씬 빨라질 수 있고요.
이창인: 실제로 현역이 방산업체에 파견돼 일하다가, ‘전역하고 이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라는 의사를 밝히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열심히 하라고 보내 주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했다간 보안 문제도 제기될 것이고 자료를 빼간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받게 됩니다.
김세연: 부당한 현실이네요. 지금까지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설계한다는 가정하에 군의 조직과 인사 체계, 그리고 전역 이후의 삶까지 함께 훑어봤습니다.
이제 군 자체나 내부 문제를 넘어서 주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최근 펴내신 책 《초연결 전쟁: 전쟁은 어떻게 하는가?》에서 하이브리드전에 많은 양을 할애하셨습니다. 군사적 요소뿐 아니라 비군사적 요소까지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국가 역량이 총동원되는 방식이고, 전시와 평시의 경계가 흐려지는 전쟁 양상인데요, 정치(Political), 군사(Military), 경제(Economic), 사회(Social), 정보(Information), 인프라(Infrastructure)를 포괄하는 PMESII라는 개념을 소개하셨습니다. 하이브리드전은 이들 간의 상호 작용 속에서 전략이 전개됩니다.
박사님께서는 클라우제비츠 같은 고전 군사 이론가들의 개념을 풀어 주면서, 전쟁이란 결국 내 의지를 상대에게 강제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물리력만으로 상대의 본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정치 리더십, 군, 국민 사이의 결속을 깨트리지 않으면 전쟁은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정보전, 여론전, 심리전을 통해 내부를 교란해 그들을 이간질하거나 분열시켜서 전쟁 의지를 약화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으로 승리하는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런 연결 고리들이 거의 끊어져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아니면 어떤 하나가 나머지를 지배하거나 예속시키는 관계로 작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과연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바로 들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 주변의 권위주의 국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우리 내부를 교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댓글 공작 같은 것 말입니다. 실제로 댓글을 보면 문체나 표현에 있어 한국 사람이 썼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정보전은 상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만약 백지에서 새로운 국가 체계를 설계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통합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념 갈등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갈등이 잠복했다가 다시 표출되기를 반복해 왔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분열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서, 과연 정치적으로 통합된 국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잘 서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단 정치적 통합 문제는 별개로 두고 이야기해 보죠. 우리가 새로운 안보 개념을 도입한다면 그 중심에는 국민, 정부, 군 사이의 신뢰와 이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따로 다뤄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방어적으로 잘 유지하고 지켜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당한 부분은 받은 만큼 되돌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불필요한 갈등을 피해야겠지만, 상대가 의도적으로 교란 행위를 벌인다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상응하는 억지력을 보여 주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놓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음 헌법을 새로 만들게 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무력을 함부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어떤 상황이 발발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헌법에 못 박아서 우리 손발을 스스로 묶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주의를 천명하는 것이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란 본질적으로 대내외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폭력의 사용은 자제해야 하지만, 필요할 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준비는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손발을 묶는 것은 곤란합니다. 헌법 조항과 선제공격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 등이 하이브리드전 개념에서는 주변국에 정보전, 여론전, 심리전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상황을 보겠습니다. 상대방이 더 넘어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도 위협적인 조치를 해야 할 텐데, 지금은 유약하게 당하고만 있습니다. 이걸 당연시하는 상황은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해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억지 부리기를 계속하면 마지막엔 폭파해야 합니다. 불법 조업을 단속하는 우리 해경을 창으로 찌르기를 반복하면 그런 어선은 격침해야 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입니다. 지금은 정상 국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로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지금 일본은 평화 헌법을 개정해서 ‘정상 국가’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정상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이라고 정신 승리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제 정치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장입니다. 여기에 비정규전이나 하이브리드전까지 고려했을 때, 군사적 대응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질문드립니다. 국가의 대외 인식과 정신적인 자세 등까지 포함해서 의견 부탁드립니다.
이창인: 《손자병법》에 ‘적을 알아야 이긴다’는 말이 있죠. 정부 조직을 제대로 운영해야 합니다. 국가정보원이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세력들에 대해 우리가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군사 분야와 관련해서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겠죠. 경제, 정치, 사회, 인프라, 정보 등 각 분야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우리 역량으로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의 리스트가 나올 겁니다. 미국은 이걸 실제로 리스트업 하고 있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리스트에 있는 각 요소를 건드렸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전문가들을 통해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리스트를 토대로 이번에는 이 요소를, 다음에는 저 요소를 건드리는 식으로 운영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관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면 될 겁니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 아마도 잘 몰라서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비군사적 요소만으로도 우리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함부로 우리를 도발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전투기가 방공식별구역을 넘어왔을 때, 우리가 굳이 무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용히 뒤에서 상대국의 치명적인 요소를 한두 개씩 건드리는 겁니다. 공개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없습니다. 첩보 조직을 통해 은밀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면 상대는 움찔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뒤에서 할 수 있는 첩보전이고 은밀한 외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요령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내부에서 우리끼리 싸우기 바쁜데, 외부로 시선을 넓혀야 합니다. 첩보 조직을 이렇게 만들고, 적의 핵심 취약점을 리스트업 해서 정리하는 겁니다. 군사력은 이런 비군사적 수단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존재해야 합니다. 상대가 무력 대응에 나섰을 때 “그래, 붙자” 하고 대응할 수 있는 군사력이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가 지지 않을 정도의 전력을 갖추고 훈련돼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단순히 군대만 있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권의 의지, 국민의 열망만으로도 불충분합니다. 국민과 국가, 군이 함께할 때 가능합니다. 그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공통된 가치관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공통된 포괄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물론 해석은 각자의 것일 수 있지만, 큰 틀 안에서 서로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군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기준은 이겁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겠죠.
김세연: 결국 이 문제는 교육과도 연결됩니다.
이창인: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국영수만 가르칩니다.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자꾸 잊고 있죠. 예를 들어 백제가 멸망한 이유는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대제국이 무너진 것은 ‘틀리면 다 죽인다’는 식의 배타성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제국이 점점 쪼그라들어 오늘날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반쪽만 남게 된 것입니다. 상대의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했어야 했는데, 손쉽게 배척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교육을 통해 바꿔야 합니다. 기존의 유교적 관점으로는 불가능하겠죠.
김세연: 유교의 장점은 살리지 못하고, 연공서열이나 나이로 누르는 문화 같은 폐해만 남아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창인: 유교는 주로 옳고 그름을 가릅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서양 국가들,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이 거대하게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성선설과 성악설 중 성악설 쪽을 더 지지했죠. 인간은 악하며 그래서 불완전한 존재이다, 절대자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서니 권력은 반드시 분립돼야 하며, 서로를 견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인간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서하고, 뉘우칠 기회를 주는 교육이 필요하겠죠. 그래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영구 격리 같은 방법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교육하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김세연: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인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스템은 이 시기에 지나친 주입식 암기 교육,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마치 시험 치는 기계처럼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온전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인식을 가질 기회나 협업, 공존, 절충, 타협 같은 훈련 없이 곧바로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게다가 지금은 미디어 채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알고리즘에 따라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 듣고 싶은 정보에만 반복적으로 노출됩니다. 이런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 때문에 인식 자체가 타인과 분리된 상태입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과연 정치적 통합이 가능할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역량을 국방이나 안보 관점에서 총집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교육적인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보니 큰 시스템의 문제도 더 크게 증폭되고 잘 풀리지 않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창인: 교육 문제에 있어 ‘정답이 있는 교육’의 전형이 사지선다형 시험입니다. 정답과 오답이 정해져 있죠. 그런데 이건 채점자가 편하기 위해, 등수를 쉽게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형식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좋은 성적을 받아도,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교육 개혁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수능은 치르되 대학은 자율적으로 입학 제도를 운영하게 하는 거죠. 대학에 따라 기부 입학도 허용할 수 있겠죠. 기부 입학을 통해 입학한 사람도 졸업 후에 그만큼 사회에 기여하면 될 테니까요. 만약 사회적 기여 없이 졸업한다면 그에 대한 비판도 받겠고요.
실제 기업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들을 뽑아 봤자 몇 년도 안 되어 회사를 떠나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돈만 들고, 개발도 안 되고, 인재도 유실되는 구조입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중간 수준의 성적으로 입사했지만, 성실하고 꾸준히 남아 기술을 개발해 온 사람들이 결국에는 더 큰 전문가가 되고, 기업에도 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기업이 진짜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세연: 〈스케치 다이얼로그〉의 대담이 아직 열 차례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교육 문제는 벌써 두 번이나 다루었을 정도로 비중 있게 보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 부분은 추후 더 깊이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국가 역량을 총결집해서 외부 위협으로부터 생존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까 첩보전에 관해서도 설명하셨는데, 여론전의 측면에서는 상대국이 적성국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적성국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내부를 교란하거나 이간질하려는 정황이 뚜렷하게 포착되고 있으니까요. 또 신분은 주변국 유학생이라고 하는데 국가 중요 시설을 무단 촬영하거나,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수집하는 등의 사례도 있었죠. 이런 부분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창인: 가장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대응책은 간첩법을 조속히 개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이 될 만한 국가들은 권위주의 체제입니다. 그리고 권위주의 체제는 성선설에 기반하고 있죠. 즉, 한 명의 유능하고 탁월한 영도자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플라톤의 철인 같은 인물이죠. 이 모델을 중국은 시진핑에게, 북한은 김정은에게, 러시아는 푸틴에게 투영하고 있습니다. 이 영도자는 절대 실수하지 않고 항상 바르며 옳은 행동을 한다고 믿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아래 사람들이 다 잘못한 것이고요. 영도자는 완벽했지만, 참모진이 실수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럴까요? 무오류의 영도자를 유지해야 하다 보니 근본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정치 체제가 된 것이죠. 결국 권위주의 정치 체제는 거짓말에 기반해 세워진 체제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나오는 정직하고 거짓 없는 정보입니다. 진짜 정보, 왜곡되지 않은 사실이 들어오는 순간, 이들의 권위는 무너지고 정치적 입지는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 약점을 철저히 이용해야 합니다. 사실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 언론이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잘 실천하면 좋겠습니다만, 현실은 언론도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라도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국가 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국내 정치는 건드리지 않고, 국외 사안에 대해서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기관을 만드는 것이죠. 그러면 국내 정치 개입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위주의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기반으로, 언론도, 정치도, 국민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즉 객관적인 판단,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김세연: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들의 입지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경제적인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이에 따라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에 대해 예전같이 중립적,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언론이 무너지면, 결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둥 하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정말 큰 위협입니다.
이창인: 미국에서는 중산층의 기준 중 하나가 언론지를 최소 하나는 구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이 정론직필을 하려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중산층이 구독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언론이 올바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구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김세연: 우리가 국가를 다시 설계한다고 가정한다면, 기본적으로 포함해야 할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중산층 재건입니다. 1, 2차 산업 혁명 이후, 중산층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배부른 항아리처럼 두꺼운 중산층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 자유 언론이 함께 꽃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계 문명의 부상으로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중산층의 축소, 혹은 몰락에 따라 기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큰 도전에 직면한 겁니다. 이 부분은 정치 거버넌스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앞으로 정치 체제가 과연 지금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큰 이슈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혹시 여기에 대해 코멘트하실 부분이 있으신지요?
이창인: 민주주의란 결국 국민이 주권, 즉 국가의 권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각 개인이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겠죠.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의 개념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노력해서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법률과 제도로 만들어 줘야 합니다.
개인이 생계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따질 때, 진보 진영에서는 대기업 또는 미흡한 복지 제도를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러한 부분도 문제겠지만, 자신의 성과를 바탕으로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있다면 모두 자신의 사업을 할 겁니다. 마찰력을 높인 올록볼록한 병뚜껑을 개발한 사람이 몇백억 원을 벌어 몇 대가 먹고살았죠. 특허권이 제대로 보장되니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래야죠. 발명 하나로 평생 먹고살 수 있도록 특허를 내기 쉽고 그 특허권이 철저히 보호된다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기업은 그 특허를 활용해 고부가 가치 상품을 생산하겠죠. 이런 시스템이라면 개인의 생계 기반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김세연: 요즘엔 특허도 역사가 누적되면서 기업들이 파생 특허를 통해 진입 장벽을 만드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이창인: 장벽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장벽을 확 낮춰 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기존 시스템은 대체로 기업 중심, 즉 기업이 성장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방식이었지만, 저는 오히려 특허 제도를 낮춰서 개인 창업을 쉽게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에서 창업이 쉽게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가 강력한 특허 보호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자금은 다르파 같은 곳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드 사이언티스트 콘퍼런스(Mad Scientist Conference)’입니다. 기발한 사람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김세연: 국가의 R&D 예산도 일정 부분은 그렇게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과제에 쓰여야 합니다. 이걸 ‘마중물’ 역할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예산이 쓰여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금융업계에 오래 종사했던 분의 의견을 들었는데, 이분은 대량 생산 기반의 부가 가치 창출 모델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럼 고부가 가치 산업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물었더니, 금융 자산의 투자 풀(pool)이 형성되면 창업과 선순환 효과를 내는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미국에는 자산운용사가 3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금융 시스템이 너무 취약하죠. 말씀하신 개인에 대한 특허권 보호, 창업 용이성, 자금 순환 구조,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국방 체계를 새로 그리는 작업에서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을까요?
이창인: 앞서 인사 체계와 PPBEES 제도를 말씀드렸습니다. 또 각 군 연구소 이야기를 했었는데, 최신 기술이 들어오면 새로운 방법으로 그 기술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각 군 연구소가 필요합니다. 현재는 그런 연구소가 없는 실정입니다.
김세연: 각 군 연구소뿐 아니라 부대별로도 연구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컨대 통신을 전담하는 부대라든가, 기갑 부대의 금속 소재나 열처리를 연구하는 부대 말입니다. 군별로 종합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세분화된 R&D 센터들이 군과 거의 일체화된 형태로 나아가는 모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창인: 이미 국방과학연구소가 그런 역할을 하고는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자체 기술력을 갖고 있었고, 제작, 시험, 공장에서 생산까지 수행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방위사업청(방사청) 산하로 편입되면서, 문서에 스테이플러만 찍는 기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걸 외주를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역시 책임 회피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생산성은 낮아지고, 실제 이득은 외주 업체들이 다 가져가는 구조가 되어 버렸습니다. 외주 업체의 구성원들은 군에서 박사나 석사 과정을 마치고 퇴역한 인재들입니다. 돈을 정말 이상하게 쓰고 있는 겁니다.
전군 차원의 조직으로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있으니, 조직을 정상화하면 됩니다. 문제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가 각기 자기 전투 환경에 맞는 신기술 적용과 실험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전파 특성은 공중, 지상, 해양이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똑같은 기술이라도 적용 방식은 달라야 하죠. 똑같은 신기술도 각 군에서 다르게 적용해서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때 야전에 무기로 배치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무기 체계를 2~3년 안에 공급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각 조직에서 역할을 해줘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할 각 군 연구소가 없습니다.
또, 현재 무기 체계와 전력 지원 체계가 분리되어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무기 체계가 일원화되어 있었는데 방사청이 생긴 이후 이 모든 걸 가져가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업무는 방사청이 독점하고, 실사용자인 장병의 요구 사항 반영은 어려운 구조가 되었죠. 사용자 피드백도 결국 각 군 본부의 기참부 담당자를 통하는데, 이 사람들이 1~2년 주기로 바뀌다 보니 전문성도 낮고, 실제 사용 경험도 없는 경우마저 있죠. 당장 필요한 휴지, 전투복, 전투화 같은 사소한 것마저 방사청에서 모든 계약을 담당하니, 방사청도 각 군도 모두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소총, 전차, 장갑차, 전투기와 같이 큰 건은 방사청이 담당하고, 전투복, 전투화, 배낭 같은 작은 부분은 전력 지원 체계로 정의해 각 군이 계약하도록 했습니다. 전력 지원 체계 사업 절차가 초기에는 간단해서 1~2년 만에 필요한 것은 바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예산이 3000~5000억 원 정도 되죠.
그런데 비리 논란과 소송 등으로 인해 이것까지 규정을 덧붙이더니 지금은 방사청의 무기 체계 사업 절차와 차이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 결과, 모자 하나 바꾸는 데 3~5년, 전투복 하나 교체하는 데 10년 넘게 걸리는 기형적 시스템이 된 겁니다. 2010년에 전투복이 마지막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좋은 소재에 가격도 저렴한 물건이 있는데도 도입이 안 됩니다. 각 군이 자승자박한 규정인데, 이 복잡한 규정의 유일한 장점은 사업 관련자의 억울할 수 있는 책임 문제를 방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무기 체계와 전력 지원 체계로 구분하기 어려운 체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듈식 드론은 같은 드론인데도 포탄을 달면 무기 체계, 그렇지 않으면 전력 지원 체계로 분류됩니다. 소총은 무기 체계인데, 소총에 장착하는 스마트 조준경은 전력 지원 체계입니다. 같이 세트로 사업을 해야 하는데 별도 사업으로 계약하고 진행해야 하는 불합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생기고 있습니다. 비상식적이고 이익도 없는 무기 체계와 전력 지원 체계로 이원화된 것을 무기 체계로 다시 합쳐야 합니다.
김세연: 그리고 일상 장비 정도는 각 군에서 직접 채택할 수 있도록 하고요.
이창인: 무기 체계도 통합 네트워크나 통신 장비 등 전체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무기 체계는 국방부 차원에서 총괄하되, 함정, 전차, 전투기 등 각 군 고유 장비에는 자율성 부여가 필요합니다. 이 체계를 방사청에 집중시켰던 이유는 투명성 확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투명성 부분을 기술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김세연: 다만, 이미 만들어진 조직은 자기 생존을 위해 구명 로비를 계속하겠죠.
이창인: 맞습니다. 예전에 방사청에서 2~3급으로 복무하던 분이 방사청장으로 진급한 일이 있습니다. 밑에 있을 때는 “우리가 국방부 산하에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더니, 막상 청장이 되자마자 “우리는 별도의 청으로 존재해야 한다”라고 입장을 바꾸더군요. 결국 자기 조직원 생계를 지켜야 하니까 그런 입장을 택한 겁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방사청과 국방부가 완전히 분리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방사청 같은 조직은 국방부 산하에 존재합니다.
김세연: 조달 시스템에 관해 말씀 주셨습니다. R&D와 관련해서는 앞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미군이 강력해지고 미국의 과학 기술 생태계 전반을 풍요롭게 성장시키는 데에 다르파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대학에서 다르파 과제를 수행한 분에게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대학에서 맡은 과제만 해서는 전체 체계에서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잘게 쪼개져 있어 보안이 철저히 유지된다는 겁니다. 완성된 결과물이 모였을 때 비로소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방식이죠. 저는 다르파의 이런 방식이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조직의 역량과 효과를 유지해 왔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과제를 총괄하는 사람은 공무원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계약직 PM(Project Manager)이었습니다.
이창인: 프로젝트 매니저, 우리로 치면 군무원입니다.
김세연: 민간인인데, 거의 전권을 위임받아 프로젝트를 관리한다고 하더군요. PM들이 단기 계약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전체 프로젝트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조직 내에서의 권위도 막강하고요. 다르파 체계 성공 요인의 핵심은 바로 이 PM들의 역할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한국에 도입하면 이상하게 변형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창인: 이상해지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인사 제도입니다. 어떤 일이든 왜 망가졌을까, 왜 찌그러졌을까 하고 추적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인사 때문입니다.
다르파에 파견된 군인들은 진급보다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에 소령으로, 또는 대위로 해당 과제를 끝까지 책임지고 수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성과 기반 연봉을 받거나, 필요시 민간인으로 신분 전환도 할 수 있죠. 그래서 프로젝트 시작부터 완료까지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끝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이후 진급을 하게 될 수도 있고요.
미국 육군 미래 사령부(Futures Command)가 만들어진 것도 우리처럼 복잡한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은 땅이 워낙 넓다 보니, 각 군의 병과 학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 시너지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기획 관리 체계가 10~15년짜리로 되어 있는데, 중국은 1~2년 만에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술도 있고 돈도 있는데 왜 그렇게 못하는지 살펴봤더니, 모든 것이 다 흩어져 있고 전문가들은 계속 순환 보직을 돌고 있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텍사스 오스틴대학교 안에 육군 미래 사령부를 설치했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 사업과 관련된 병과별 전문성 있는 간부, 공무원, 기업체 기술자, 박사급 인력까지 모아 5~6년 동안 한 프로젝트에 전념하게 합니다. 재정, 인사 담당자는 물론, 법률, 감찰 인력까지 모두 내부에 통합되어 있어, 법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도 최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야전 배치 또는 시제품을 5년 내에 완료하는 것입니다.
김세연: 새로운 무기 체계 도입을 전담하는 것이 미국 육군 미래 사령부의 핵심 역할이군요.
이창인: 초기에는 단순히 신무기 개발을 위한 조직인 줄 알았는데, 실은 너무 느린 무기 도입 속도를 개선하고, 전략적으로 시급한 무기 체계를 우선적으로 야전 배치하기 위한 목적이었죠.
김세연: 방사청도 애초에 투명성 확보를 이유로 별도 조직화했지만, 그 취지가 지금은 일정 부분 달성된 상황이니 이제는 다른 조직 구조도 고려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요?
이창인: 재조직하면 됩니다. 기존 인력을 해고할 필요도 없습니다.
김세연: 그렇죠. 기존 조직은 없애더라도, 유능한 인재들은 새 조직으로 옮겨와 재배치하면 됩니다. 여러 가지 방식이 가능하겠죠.
이창인: 지금 방사청 대전 이전을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각 군 연구소가 설립되고, 방사청이 국방부 산하로 편입된다면, 방사청도 각 군별로 무기 체계를 담당하는 인력이 있으니, 그 담당자들을 육·해·공군의 기획관리 참모부와 군수참모부에 배치하면 됩니다. 즉시 TF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김세연: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지금 우주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입니다.
미군은 이미 우주군을 창설했고, 우리나라도 공군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하신 합동군, 통합군 문제와 연결해서 보면, 영역 권한 분쟁이 우주 전략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L-SAM, M-SAM 개발만 해도 그렇습니다. 패트리어트, 사드, SM-3 같은 다층 방공 체계의 경우, 육해공이 고도와 사거리 구간을 두고 관할권을 나눠 가집니다. 방공망 체계가 분할되어 관리되다 보니, 육군이 L-SAM의 사거리를 의도적으로 줄인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공군에서 가져갈 수 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이창인: 권한 다툼, 영역 구분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세연: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달 기지, 화성 기지 건설은 물론이고 우주 식민지 개척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구 성층권 위쪽의 저궤도를 어떻게 다룰지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달에 과학 기지도 건설해야 할 텐데요, 극지방 협약의 연장선에서 1979년 유엔에서 채택된 달 협약(Moon Treaty)이 있습니다. 달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기에 어느 국가도 독점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우주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면 그곳에 군대가 얼마나 주둔하고 있느냐에 따라 영토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이창인: 이름을 먼저 붙이고 깃발을 꽂는 것, 그것이 영토 확장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지금 각국이 달에 자국의 이름을 붙이며 경쟁하고 있는 겁니다.
김세연: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창인: 우주로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라그랑주 포인트(Lagrangian point, 칭동점)’를 확보해야 합니다. 달과 지구 사이의 중력 평형 지대입니다. 어쨌든 뭐라도 하나 갖다 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재산을 침해하지 말라는 식의 명분이 생깁니다. 우주 진입은 공군이 유리합니다. 대기권을 넘어 우주로 진입하는 기술은 공군이 강하니까요.
김세연: 그럼 지구가 아닌 달이나 화성 등 다른 천체의 지표면에서 작전을 하는 건 육군인가요, 공군인가요?
이창인: 통합군 체계가 정립되면 깔끔하게 정리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이 있는 곳에서의 전투는 육군이 할 겁니다. 가장 잘하는 부대니까요.
김세연: 결국 이 문제는 군뿐만 아니라 천문학, 지질학, 국제정치학, 국제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야 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극의 전략 기지 배치만 봐도 우리는 동쪽, 서쪽, 중앙에 기지 세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다섯 번째 기지를 가동하기 시작했죠. 기지 하나 운영하는 데 연간 몇십억 원이 든다고는 하지만, 국방 예산 중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지출 규모를 생각하면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닙니다. 우리도 미국, 중국과 같은 수의 기지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창인: 무인 기지도 만들 수 있죠.
김세연: 맞습니다. 로봇을 배치해서 로밍하거나 원격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달 기지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지금 자국 영공과 영해를 자주 침범당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정권에 따라 대외 관계에 대한 인식이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 정치적 분열이 국가 이성을 약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 공동체로는 정상적인 국가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우리가 국가의 구조를 백지에서 새로 설계할 수 있다면, 다양성을 존중하되 하나의 체계로 통합해 충분한 숙의와 절충, 타협을 통해 국가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체계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국방은 물론 다양한 분야까지 아우르는 깊은 통찰을 나누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성껏 말씀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창인: 좋은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