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이번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이소연 박사님을 모시고 과학 기술 정책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소연 박사님은 2008년 한국인 최초이자 여전히 유일하게 우주에 다녀오셨고, 이후에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 가며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맞닥뜨렸던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부 출연 연구 기관 체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셨을 테고, 과학 기술 행정의 관료적 장벽이나 정책의 잦은 방향 전환으로 인한 시련과 좌절도 경험하셨을 것 같습니다.
〈스케치 다이얼로그〉는 백지에서 새로운 나라의 설계도를 그린다면 어떤 형태로 조각들을 맞춰 볼 수 있을까 하는 사고 실험을 전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행정 조직이든 절차든 프로그램이든 분야든, 혹은 그 일을 맡는 사람의 요건이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박사님이 가장 절실하게 느낀 부족함과 갈증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그림에 첫 번째 조각을 놓는다면, 어디에 어떤 조각을 놓으시겠습니까?
이소연: 최근 몇 년 동안 붙들고 있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이상적인 과학 기술 분야의 수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하는 질문입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전반적인 흐름이 달라지니까요. 지금으로 치면 과학기술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일 텐데,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미래를 그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누구일까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아래의 촘촘한 부분들을 채워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동안은 과학 기술을 오래 해온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졌습니다. 교수나 연구자처럼 한 분야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분야를 잘 알고, 잘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죠. 한국에는 특히 무언가를 오래 한 사람이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과학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정작 과학 기술계 사람은 아닌 분이 수장을 맡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과학 기술 분야에서 최소 20년, 30년 경력을 쌓아 높은 자리까지 온 사람에게 세부 전공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과학 기술 분야에는 사실상 제너럴리스트가 없다고 봐야 하니까요. 결국 특정 분야의 사람이 리더가 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중립적이고 형평성 있게 판단하려 해도, 30년 동안 몸담은 자기 분야에 애정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애정을 과도하게 감추면 같은 분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겠죠. 누가 되어도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는 저도 우주 분야 사람이 장관이 되어 이 분야를 조금 더 도와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공평하게 판단하려면 어느 분야에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과학 기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산술적으로 n분의 1로 나누는 것은 최악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일을 많이 겪었죠. 여러 나라의 수장을 만나고 여러 분야를 지켜보면서, 과학 기술에 무한한 존중심을 갖고 있지만 과학 기술계 출신은 아닌 사람이 오히려 가장 이상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분야 출신이든 괜찮다고 봐요. 각 분야의 전문가가 그 수장에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되니까요.
이 생각의 밑바탕에는 대한민국이 모든 과학 기술 분야를 다 잘할 수는 없다는 판단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특기가 달라서 어떤 사람은 축구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연구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악기나 노래에 재능이 있듯,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리적 위치, 경제적 여유, 문화, 자원을 종합해 보면 다른 나라보다 더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어요. 지극히 공학적인 효율의 관점이기도 하죠.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는 산업과 과학을 공정하게 지원하려면, 특정 분야 출신이 수장이 되었을 때는 분야 이기주의처럼 보일 수 있고, 다른 분야 출신이 오면 자기 분야를 홀대한다는 불만이 생길 수 있어요. 차라리 과학 기술계 밖에 있으면서 과학 기술을 잘 활용해 온 사람이 와서 “대한민국은 이 분야에 투자할 때 효율이 높으니, 여기에 조금 더 무게를 두자. 다만 나머지 분야도 일정 수준은 갖추도록 하자”라고 결정한다면, 더 많은 사람의 공감과 동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세연: 신경외과 의사에게 심장을 진단하고 수술하라고 하기 어려운 것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가진 강점이 있는 동시에 전문가의 시각이 전체를 조망하는 제너럴리스트의 시각을 압도할 위험도 있습니다. 이른바 전문가의 함정이나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끼리 모이는 본능과 친소 관계 때문에 의사 결정이 왜곡될 가능성을 우려하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소연: 맞아요. 그런 성향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정한 일을 잘되게 하는 데는 강점이 될 수 있어요. 다만 사회 전체의 방향을 정할 때는 약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김세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 수장은 과학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 기초적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물리학이든 생명 과학이든, 지질학이든 양자 역학이든, 다방면에 해박한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생소한 체계라 해도 빠르게 습득하고 오류를 최소화하면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도메인 전문가들의 통찰을 잘 조직화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수장으로 와야 하겠네요.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요?
이소연: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반이었다면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없다”는 주장에 반박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2020년대에는 그런 분들을 종종 만날 만큼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활동이 활발해졌고, 매체와 출판물이 다양해졌습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과학에 호기심이 있고, 대한민국의 문제를 과학이 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 고민을 가진 전문가들이 스스로 공부합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 분야 전공자도 아닌데 어떻게 저 용어를 알고 저 내용을 이해하지?’ 하고 놀랄 때가 있어요. 이제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세연: 여기에 한 가지 요건을 보태고 싶습니다. 우선 국가의 전략적 우위를 어떤 수단을 통해서 달성할지에 대한 경쟁 전략 또는 국가 전략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자신의 애착 분야나 관심 분야를 넘어 국가의 자원과 가용 역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배분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분이어야 하겠고요.
이소연: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과학 기술의 산물을 활용하는 분야에서 일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 분야라 하더라도 기술이 접목된 현장에 오래 있어서 기술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면 충분할 수 있어요. 리더에게 깊은 전문 분야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어요. 한 분야를 깊이 고민해 전문가가 된 분이 다른 분야를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분야가 이성적인 판단과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하니까요.
그렇다고 과학기술부총리를 아무나 무작위로 뽑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의료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과학 기술의 산물인 여러 기기를 사용하며 그 기술에 경의를 느꼈다고 해보죠. 기기를 쓰는 과정에서 물리학과 전기, 반도체까지 이해하게 되었다면, 과학 기술 연구 개발을 30년 해온 사람보다 오히려 더 중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체육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데이터와 AI, 각종 기구와 의료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되기 어렵습니다. 과학 기술의 산물을 깊이 이해하고 사용하면서 존중과 경의를 갖게 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내가 이 산물을 오래 사용해 왔으니 이제 이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동기를 갖는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김세연: 또 하나 중요한 요건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조직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니까, 사람들과 일하는 방법과 여러 단계를 거치며 의사 결정이 이루어질 때 생기는 왜곡과 잡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양한 판단과 조건을 조합해 최종 결정에 녹여 낼 수 있어야 하고, 개별적인 인간 행동과 집단적인 조직 행동에 대한 통찰도 필요하겠죠.
이소연: 정말 중요합니다. 결국 핵심은 과학 기술의 수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과학 기술을 오래 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는 틀을 깨는 데 있다고 봐요. 큰 조직을 이끌고, 소통 과정의 오류를 고려하고, 다양한 분야를 일정 수준 이해하는 능력은 과학 기술 부처뿐 아니라 어느 분야의 수장에게나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누가 과학 기술의 리더십을 맡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한 분야를 깊고 오래 파고든 사람보다는 과학 기술의 산물을 이용하면서 그것이 국민에게 왜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고민해 온 사람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전문 지식을 설명했을 때 얼마나 빨리 이해하고 필요한 지원을 결정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고요.
반대로 각 분야에서 그 리더에게 제안하는 사람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바로 아래 단계의 수장들 가운데 어려운 내용을 쉬운 말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터를 둬야 합니다. 최고 리더의 이해력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의 설명 능력도 함께 봐야 합니다.
김세연: 결국 특정 리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 팀의 문제입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완성된 리더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니어 시절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이런 소통 문화 속에서 성장한 인재 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풀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소연: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저는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 산삼을 캐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군가 산삼 비슷한 것을 들고 와서 “이건 아주 좋은 산삼이니 큰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와, 온 산을 뒤져 정말 귀한 산삼을 찾아낸 경우 중 어느 쪽의 품질을 더 신뢰할 수 있겠어요? 지금은 전국에서 산삼처럼 생긴 것을 들고 와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고르는 느낌입니다.
정말 위대한 일을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한다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유능한 인재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건 모순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수준의 사람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 않으니, 산삼을 캐듯 찾아다녀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이 유니콘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온라인 쇼핑하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죠.
과학 기술계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는 폐쇄성이 있지만, 조금만 공을 들이면 좋은 사람을 찾는 일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서구 사회의 평판 조회, 이른바 레퍼런스 체크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도 추천서가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잘못 추천한 사람에게 불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을 추천받아 뽑았는데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면, 다음부터는 그 추천자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추천서를 한 장 쓸 때도 큰 책임감을 느끼겠죠.
해외 회사에서도 누군가가 추천한 사람이 적합하지 않으면, 그 추천자를 통하는 네트워크 전체를 다시 살핍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사람은 수십 명, 수백 명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잘못 소개함으로써 그 네트워크에서 쌓은 자신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나 추천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소개와 추천이 그렇게 작동하지 않아요. 그래서 추천해도 소용없다고들 하지만, 추천자의 평판과 책임이 실제로 연결되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부총리에 필요한 인재상을 명확히 제시하고 추천을 받았는데,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을 누군가가 추천했다면 그 추천자의 신뢰가 크게 떨어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추천만 받으면 연출이 가능할 수 있지만, 다섯 명이나 여섯 명에게 교차 확인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의견까지 받으면 웬만한 문제는 걸러집니다.
그 정도의 노력은 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 자리가 그만큼 무겁고 중요하다면 말이에요. 우리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을 뽑을 때도 하루 종일 면접하고 서류를 여러 단계로 검토합니다. 고위직 인재를 찾을 때는 그 사람의 네트워크에서 평판을 이중, 삼중으로 확인하고, 인재상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들에게 추천받아 몇 달 또는 1년에 걸쳐서라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못 찾을 이유가 없어요.
김세연: 평판으로 표현될 수 있는 사회적 신뢰가 인재 발굴이나 채용의 인프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아주 타당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관행을 보자면, 권력자의 측근이어야 주요 보직을 꿰찰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구의 눈에 잘 띄었는지와 같은 다른 기준이 주로 채택되면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이소연: 지금도 그 점이 참 어렵습니다. 주요 오피니언 리더들로 둘러싸여서 그들 안에서만 추천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 슬프기도 해요. 그 벽 한 겹만 뚫고 나와서 평판을 찾으면 좋은 사람이 보이는데, 리더를 철옹성처럼 둘러싼 단 하나의 레이어를 깨는 일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김세연: 과학 기술 리더십의 문제는 국가 리더십과도 직결됩니다. 앞서 과학 기술 리더에게 보고하는 레이어도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결국 각 레이어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문제는 과학 기술뿐 아니라 각 분야의 리더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즉 리더십 형성의 방법론에 관한 논의로도 이어집니다.
아까 산삼 찾기에 비유하셨듯 자생적으로 성장해 있는 개체(개인)를 찾아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이들이 더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미 성장한 개인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요?
이소연: 그런 면에서는 지금이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봐요. 예전에는 모두가 한 우물만 파고 한 가지를 잘하면, 시스템이 그 사람을 부품처럼 가져다 쓰는 구조였잖아요. 요즘은 조금 더 전인적인 교육과 성장 환경이 생겼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제가 요즘 강조하는 것도 엔지니어와 과학자라고 해서 공학과 과학에만 매몰되어 살아서는 과학 자체를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전 과목 A를 받고 1등을 한 학생이 물리학계를 발전시킬 리더가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요. 좋은 리더를 만나 연구자 한 사람으로서 잘할 수는 있어도, 물리학계 전체를 발전시키는 역량은 다른 문제니까요.
누구나 성장하고 더 나은 역할을 맡고 싶어 한다면, 언젠가는 조직을 이끄는 위치에도 설 수 있습니다. 그때는 깊은 물리학 지식만큼 인간관계와 소통, 조직과 시스템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하는 과정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어린 세대에게는 실패할 기회가 너무 없습니다. 배움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 더 많이 일어나는데도 말입니다.
우연히 만든 요리가 맛있으면 다음에 똑같이 만들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반대로 정성을 들여 영상을 100개쯤 찾아보고 요리했는데 맛이 없었다면, 왜 맛이 없었는지, 무엇을 잘못했고 다음에는 어떻게 바꿀지 고민합니다. 장기적으로 좋은 요리를 만들 사람에게는 초반의 몇 차례 실패가 오히려 유리할 수 있습니다.
김세연: 시행착오를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겠습니다.
이소연: 그렇다고 무조건 “누구나 실패해도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학교나 사회 초년생 시절만큼은 실패해도 괜찮고, 여기서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필요해요. 우리는 특목고에 떨어지면 끝이고, 대학에 못 가면 인생이 끝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단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랍니다. 그러면 인간미를 잃기 쉽습니다. 자신은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니, 옆에서 넘어진 친구의 손을 잡아 줄 겨를이 없는 거죠.
김세연: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논의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백지 위에 그리는 새로운 그림에서 과학 기술의 행정이나 예산 배분이 돌아가는 모습을 프랙털 구조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장 바깥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이 있고, 그 안에는 우주, 바이오, 기계 공학, 전자 공학처럼 분야별 영역이 있습니다. 각 영역 안에서는 큰 구조와 닮았지만 조금씩 다른 형태의 의사 결정과 실행 체계가 반복되면서, 작은 리더십이 수없이 배양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세부 영역에서 가장 뛰어난 리더십을 보인 사람들이 다음 단계, 또 그다음 단계의 더 큰 책임을 맡아 나가면 어떨까요. 이런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면 산삼을 캐는 방식보다 훨씬 넓은 인재 풀에서 뛰어난 자질을 갖춘 리더를 체계적으로 선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더를 발굴하고 중책을 맡기는 과정의 재현성과 체계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소연: 그렇죠. 그렇게 되면 산삼을 찾아 산 전체를 뒤질 필요도 없죠. 몇몇 구획만 살펴보고 좋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면 되죠. 그 구획 자체에 대한 신뢰 자본이 생기는 겁니다.
김세연: 각 구획에서 가장 뛰어난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테니까요.
이소연: 지금은 구획 자체를 믿지 못하니 모든 사안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구획별 신뢰 자본이 충분히 쌓이면 달라지겠죠. 그런데 저는 ‘구획’이라는 말에서 또 하나 생각할 점이 있다고 봐요.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경쟁 사회였고,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리더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하지만 팔로어 없는 리더는 없습니다. 모든 국민이 리더가 될 수는 없잖아요.
제가 전남대학교에서 하는 리더십 교육에서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 팔로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내가 팔로어일 때 “나 없이는 저 리더도 없다”는 자신감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리더가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아이들에게 심겨 있어요. 본인에게 리더의 자질이 없어도 반드시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부모는 학교까지 찾아와 자기 아이를 리더로 세워 달라고 요구하죠.
러시아에서 훈련받을 때 ‘이래서 대국이고 선진국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감동한 일이 있어요. 제가 훈련받은 곳은 러시아 공군 부대 안의 우주인 훈련소였고, 저는 우리나라로 치면 장교 숙소 같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아침이면 청소를 맡은 분들이 방에 들어와 정리해 주셨어요. 어느 날 수업이 늦게 시작해 청소하시는 분이 제 방에 오셨을 때 제가 방에 있었어요. 그분이 “네가 새로 온 우주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자기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했더니 로켓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어요. 완제품이 나오면 마지막으로 로켓을 깨끗하게 닦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엄청난 자부심이 담긴 표정으로 말했어요. “우리 아들이 그걸 잘못 닦으면 너 올라가다 죽을 수도 있어. 우리 아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니까 네가 안전한 로켓을 타고 우주에 가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의 어머니 가운데 저런 표정으로 같은 말을 할 분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그 공장 사장이야” 정도라면 자부심을 드러낼 수 있겠지만, “우리 아들이 마지막에 로켓을 닦는데, 우리 아들 없이는 네가 우주에 갈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각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에 자리 잡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 리더가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든 국가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꼭대기에 올라야 하고, 리더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결정이 옳아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서로 싸우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같아요.
좋은 팔로어 역할을 해본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팔로어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리더가 되어 구성원을 괴롭히는 장면을 자주 봐요. 그래서 리더라면 조직의 가장 아래부터 위까지 일정 수준 이상 경험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간의 낭비가 조금 있더라도 말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리더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과정을 거치게 해야 합니다.
김세연: 제너럴 일렉트릭이 ‘인재사관학교’로 불렸던 시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회사가 분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CEO 후보군을 패스트트랙으로 육성하면서 1년 반마다 서로 다른 제품군, 다른 대륙, 다른 기능의 직무를 맡겼다고 합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정상에 설 사람을 선별하는 방식이었던 것이죠.
로켓을 닦는 분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당을 짓는 벽돌공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벽돌을 쌓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다고 생각하며 벽돌을 쌓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마음가짐이 완전히 다른 것이죠.
우리나라는 출세욕의 노예를 너무 많이 만들었습니다. 승진 강박, 출세 강박은 거의 병리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백지 위에 새 그림을 그릴 때는 이 문제가 결국 교육과 문화의 차원에서 함께 다뤄져야 하겠습니다. 왜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반드시 반장이나 회장을 해야 하고, 임원이나 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경쟁 심리가 강했을까요? 높은 교육열 역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이소연: 초저소득 국가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피하기 어려웠던 산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정말로 도태되면 죽었잖아요. 그런데 그 강박이 개발도상국이 된 뒤에도 귀신처럼 따라왔고, 선진국이 된 뒤에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강박을 피부로 느낀 일이 있어요. 과학 여행 프로그램에 큐레이터로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한 부모님이 자녀를 과학 분야로 보내고 싶어서 큰돈을 들여 프로그램에 데려오셨어요. 그분이 제 옆에 딱 붙어 앉으셔서, 딸이 중학교를 졸업하면 미국 동부의 유명 보딩스쿨에 보내려고 준비 중인데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한다며 어떻게 설득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딸이 그 학교에 가야 성공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전제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어요.
제가 왜 꼭 보내려 하느냐고 물었더니 “먹고살아야죠. 취직해야죠”라고 하셨어요. 그 학교 학비가 1년에 2억 원쯤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어요. 3년이면 6억 원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죠. “현금으로 6억 원을 마련할 수 있는 어머니가 딸의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한다는 말이 저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마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 보셨을 거예요. 다른 자산은 빼고 현금만 6억 원을 마련할 수 있는 분조차도 딸이 그 학교에 가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강한 집단적 최면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딸이 먹고사는 일이 걱정이라면, 가기 싫다는 학교에 보내지 말고 그 6억 원으로 좋은 카페 하나를 차려 주세요. 평생 카페를 운영하며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입니다.” 그 뒤로 그분은 제 옆에 오지 않으셨어요. (웃음) 어쩌면 그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최면이 다시 딸에게 이어지는 과정인지도 몰라요. 말씀하신 대로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웬만한 굿으로는 그 귀신을 떼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세연: 역사적인 집단 기억과 집단 경험이 가정 안에서 전승되어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나 사회가 각 가정의 의식을 직접 통제하거나 조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을 바꾸고 새로운 기풍과 문화가 자리 잡게 하면 가정과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장(長)’자를 달아야 하고 팔로어가 되는 것은 굴욕이라고 여기는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중요한 화두입니다.
이소연: 저는 그 문제가 인권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많은 ‘장’들이 팔로어를 괴롭혔기 때문에, 팔로어가 되는 순간 괴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무의식이 어딘가에 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세연: 갑질하고 군림하고 권한을 남용해서 말이죠.
이소연: 그런 사회에서는 팔로어가 자신의 역할에서 의미를 가질 수 없잖아요.
김세연: 그렇다면 리더의 자격을 분명히 정립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이 리더가 되어 조직 전체를 망가뜨렸을 때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겠습니다. 엉터리 추천서를 낸 사람에게 커리어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책임을 묻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소연: 그렇죠. 이제까지는 너무 관대했습니다.
김세연: 온정주의가 팽배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소연: 저는 온정주의라기보다 성과만 나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는 태도에 가깝다고 봐요. 인권을 유린했어도 회사가 이윤을 내면 갑질 정도는 넘어가고,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말단 공무원을 괴롭혔더라도 “그래도 사업은 잘 끝났잖아” 하고 마무리하죠. 아무리 성공한 사업이라도 그 과정에서 인권 유린이 일어났다면, 그 리더는 칭찬과 포상을 받을 것이 아니라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감히 그런 행동을 할 생각을 못 하죠.
김세연: 가치관과 기준의 문제네요.
이소연: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 같아요. 성공이 우선이냐, 인권이 우선이냐. 저는 인권이 먼저여야 한다고 봐요. 물론 한국전쟁 직후처럼 정말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했을 때는 그런 여유조차 없었으니 그 시대의 모든 일을 지금 기준으로 비난하기는 어렵죠. 전쟁터에서 옆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한 행동을 평상시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뒤, 적어도 1990년대쯤부터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다 보니 너무 많은 일을 용서했습니다. 팔로어들은 “3년만 참고 내가 장이 되면 너희도 똑같이 당해 봐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구조죠.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루프를 끊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제 남편은 미국의 중범죄자 교도소에 2주에 한 번씩 환자를 진료하러 갑니다. 의사는 환자의 범죄 기록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이력과 투약 기록, 심리 상태를 알아야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남편의 말로는, 그곳에서 만난 흉악 범죄자의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 비슷한 범죄의 피해자였고, 당시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해요.
자신을 해친 사람이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모습을 본 순간,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학습이 깊이 새겨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심리 안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죄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왜 나만 처벌받느냐”고 억울해하죠. 팔로어가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하지 못한 데에도 이런 구조가 깊이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김세연: 앞선 〈스케치 다이얼로그〉에서는 교정 행정을 포함한 사법 분야와 심리케어 분야도 다루었습니다. 정상적인 범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리더십의 문제로 표현되지만, 그 범위를 이탈하면 범죄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과거에는 그 경계가 모호했다면 요즘은 그 선이 조금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학교든 가정이든 리더와 팔로어를 떠나 동료로서, 한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예우하는 가치와 기준을 가르쳐야 합니다. 첫머리에서 과학 기술의 리더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과학과 과학인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소연: 맞아요. 그래야 군림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수장이더라도 대한민국 과학 기술에 기여하는 모든 과학자를 존중하고 존경해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분야의 장이니 너희는 나를 따라야 한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같은 분위기에서는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깨닫기 어렵습니다. 팔로어가 팔로어답게 역할을 하려면 리더가 리더다워지는 일도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먼저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김세연: 달리 표현하면, 누가 리더가 되어도 큰 문제가 없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리더와 팔로어 사이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죠. 정치로 옮겨 보면, 시민 가운데 누가 정치인이 되어도 큰 차이가 없이, 누구든 문제없이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물론 현실이 이상적인 상태로 한 번에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백지상태에서 이상적인 상태를 계속 고민하다 보면, 현실에 접목하기 위해 어떤 단계와 조치가 필요한지 역순으로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당장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숨어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이소연: 모든 문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사회의 신뢰 자본과도 연결되고요. 가령 친구 열 명의 모임이 있고, 모두가 서로를 깊이 믿는다고 해보죠. 그러면 누가 회비 총무를 맡아도 상관없습니다. 실제 지출은 5만 원인데 걷다 보니 5만 5000원이 모일 수도 있어요. 그럼, 저는 ‘나는 5000원 받고 이 일 못할 것 같은데, 저 친구가 돈 걷고 정리하느라 수고했으니 남은 5000원은 그냥 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그런데 500원까지 문제 삼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그러면 제가 물어요. “500원 줄 테니까 그럼 네가 이 일을 할래?” 그건 싫다고 하죠. “그럼, 고맙다고 하고 조금 더 주자”고 합니다.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면 그렇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리더가 조금 부족해도 구성원이 그 빈틈을 메워 줍니다. 서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리더의 자격이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게 되죠.
김세연: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리더의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생태계가 가장 이상적이겠습니다.
이소연: 최고죠. 리더에게 빠진 부분을 팔로어가 채웠을 때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빈틈을 메워 전체가 돌아간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상태죠.
김세연: 거버넌스 관점에서 누가 리더가 되어도 손색없는 이상적인 상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상태를 구현하려면 리더가 되었을 때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그 자리에 근접하기 전에 필터링되는 메커니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소연: 그렇죠. 다만 필터링됐을 때 패배감을 느끼기보다는 그 사람도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고, 자신의 기여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역작용이 훨씬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김세연: 그 메커니즘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큰 숙제입니다. 앞서 말한 로켓 클리너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존중받지 못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군림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청소과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소연: 맞아요. 리더답지 못한 사람이 리더가 되려고 할 때는 대개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김세연: 심리적으로 보면, 교도소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남편분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애초에 그 결핍을 만들지 않았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소연: 맞아요. 부당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나도 올라가서 저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생기지 않았을 수 있죠.
김세연: 그 결핍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요?
이소연: 결국 이상적인 사회의 조건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잘못한 사람이 명확한 불이익을 받고 다시는 같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습을 본다면, 나도 똑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 거예요. 우리는 “저 사람도 하고 저 사람도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손해잖아”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나쁜 리더가 있는 조직에서 특히 그렇죠. 심지어 부모가 “저 사람은 요령을 피워서 잘되는데 너도 한번 해봐라”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결국 밥상머리 교육부터 시작되는 문제예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도 여자 친구나 주변 사람을 때려도 괜찮다고 배울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뒤에 갑자기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당한 행동이 처벌받지 않는 장면을 몇 번 보고 나면,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김세연: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지하철역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적용되죠.
이소연: 누군가가 쓰레기 하나를 올려놓으면 금세 쓰레기장이 되잖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왜 나만 잡아요? 저 사람도 잘못했는데”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유럽과 한국의 차이를 느낀 장면이 있어요. 유럽의 트램에서 표를 사지 않은 사람이 단속에 걸립니다. 같은 칸에 무임승차한 사람이 스무 명 더 있어도, 단 한 번도 “왜 나만 잡아요?” 하고 따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옆 사람의 잘못과 별개로 자신이 잘못한 것은 맞으니까요. 우리는 잘못한 사람을 모두 한꺼번에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이것도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도 적발되고 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오늘은 나만 잡혀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김세연: 평등이나 공정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소연: 러시아에서 제가 훈련받은 부대는 우리나라로 치면 철원 같은 곳에 있었어요. 모스크바를 서울이라고 하면 부대는 철원에 있는 셈이죠. 모스크바 시내로 나가려면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대 근처 역에는 표를 파는 기계도, 사람도, 확인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승객이 상자에 알아서 돈을 넣고 타는 구조였어요. 도시와 가까워질수록 기계와 사람이 생기고 검표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자체가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복지였습니다. 부대 주변 주민들은 소득 수준이 낮았고, 지방 정부에도 검표 시설을 운영할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이들에게는 기차를 자유롭게 타게 하는 것이 복지였던 셈이에요.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상자에 돈을 넣고요. 모스크바에 가까워질수록 주민 소득과 도시 예산이 늘어나니 기계와 검표원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름다운 복지 국가의 한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왜 저 지역 사람들은 표를 검사하지 않고 우리만 검사하느냐”고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곳에 살던 러시아 친구가 한국에 출장을 와서 서울 지하철 개찰구를 보고 한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기계가 세련되고 좋아 보이지만 한 대에 큰돈이 들잖아요. 친구가 “너희는 표를 검사하는 기계를 만드느라 지하철 요금이 비싸졌겠구나”라고 했어요. 모두가 정확히 요금을 낸다고 믿을 수 있다면 검표 기계가 필요 없고, 그만큼 모두의 요금이 낮아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의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큰 거죠.
한국에서는 강사를 초빙할 때 경력 증명서와 각종 서류를 요구합니다. 그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은 서류를 발급받아 보내겠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은 증명서를 떼는 데 며칠이 걸릴 수 있어요. 그러면 ‘이 시간을 쓸 바에는 20만 원을 받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전문가를 강사로 잃게 됩니다. 신뢰 자본의 비용은 돈에만 있지 않아요. 전문가의 시간도 돈인데, 우리는 그 시간을 너무 가볍게 여깁니다. 세후 12만 8000원의 강사료를 주려고 전문가에게 여섯 시간을 쓰게 하면서도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서류가 필요합니다”가 아니라 “이것과 이것을 보내야 강사료가 지급됩니다”라고 당연하게 요구하죠.
이 모든 것이 신뢰가 없는 사회가 치르는 비용입니다. 그 사람이 실제 교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면 많은 절차가 필요 없어요. 물론 과거에 신뢰를 저버린 사례가 있었기에 생긴 제도이겠지만, 사회 전반의 신뢰가 리더와 팔로어의 문제부터 행정 비용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전문가에 대한 존중과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 과학 기술과 각 분야의 보편적인 리더십을 배양하는 환경, 출세욕을 낳는 심리적 결핍을 어떻게 극복하고 또한 애초에 만들지 않는 환경을 만들 것인지까지 논의해 봤습니다.
다음으로는 층위를 조금 세부적으로 이동해서 개별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사님은 미국과 러시아의 시스템을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국내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이상적인 상태에 근접했다고 가정할 때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소연: 같은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십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과학 기술 과제와 프로그램에도 결국 신뢰의 문제가 작동해요. 우리가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이다 보니, 과학 기술 과제의 성공률이 90퍼센트에 이를 정도예요. 처음부터 성공할 과제를 제안하고, 마지막에는 성공했다고 보고하며 끝납니다. 의미 있고 도전적인 연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내 과제 심사 위원이 ‘멋진 실패’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제안서를 그렇게 쓰지는 않을 거예요. 실패하더라도 그 의미를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리더를 선발할 때 추천자 평판을 확인하는 일과 과학 기술 과제를 평가할 심사 위원을 선택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해요.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잘하지 못했는데도 잘했다고 평가하거나, 반대로 너무 잘한 사람을 질투해 끌어내리니까 결과가 모두 고만고만해져요. 심사 위원 다섯 명 가운데 네 명만 제대로 판단해도 괜찮습니다. 이상한 한 명은 튈 수밖에 없고, 다음부터 심사에서 제외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99명이 그래요. 훌륭한 한 명이 그 속에서 소외돼 버려요. 과학 기술 전문가들이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면, 연구가 크게 실패해도 “이 실패 자체가 의미 있으니 다음 단계에서 성과로 이어지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판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보고서상 성공률은 100퍼센트지만 과거에 했던 일을 반복했을 뿐이고 더 이어 갈 의미가 없다면,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도전적인 과제에 예산을 주고 시도해 보라고 제안하는 데 망설임이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서로를 의심합니다. “카르텔이라서 예산을 준 것 아니냐, 특정 대학 출신이라서 준 것 아니냐, 스승이 제자에게 준 것 아니냐, 실패했는데 서로 말을 맞춘 것 아니냐”고 합니다. 대한민국 과학 기술이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고 실패를 받아들이려면 전문가 집단의 신뢰 자본이 절실합니다.
김세연: 기존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와 폐단을 비판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사례도 많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이미 깨진 신뢰 위에서 새로운 신뢰를 어떻게 처음부터 쌓아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소연: 적어도 기존 체계와 어느 정도 분리된 독립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곳에 새로운 사람들을 모으는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세연: 외부와 분리된 닫힌 체계라면 구성원을 필터링할 수 있습니다. 30퍼센트의 임계치를 넘어서면 중립적인 30퍼센트가 끌려오면서 다수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99명과 1명의 구도인 셈이고요.
이소연: 맞아요. 거의 그런 수준입니다. 매번 그 한 사람이 따로 들어가니 결국 혼자 버티다 떨어져 나가요. 그 한 명 한 명을 밖에 모아 스무 명쯤 만든 뒤 함께 들어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들도 “나 같은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절실하게 느낄 거예요. 혼자라서 외롭거든요.
김세연: 상세 설계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 설계이고, 그다음에 기본 설계와 상세 설계가 뒤따르는 것이죠. 앞서 리더십의 배양과 리더·팔로어의 구분이 없어지는 상태에 관한 논의에 많은 시간을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평가 프로세스를 잠시 살펴봤습니다. 도전적인 과제를 알아봐 주는 심사 위원이 없어 모두가 성공률 90퍼센트짜리 과제를 제안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국가나 인류의 운명을 바꿀 만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평가보다 그 이전, 기획 단계의 문제입니다.
이소연: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요즘 우주항공청의 기획 과제를 보면서도 많이 고민합니다. 제대로 된 기획을 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단위로 쪼개 전(全) 분야에 흩뿌리다 보니, 기획은 했다고 하는데 기획의 산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왕처럼 모든 그림을 그리게 해야 하느냐고 하면 그것도 반대편의 극단입니다. 그 둘 사이의 어디쯤으로 가야 할지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 처음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기획에 앞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우선순위 없는 기획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대국도 모든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자원이 한정된 나라가 모든 분야를 골고루 잘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서운하고 속상하더라도 국가 차원의 과학 기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톱3를 세워서 큰 힘을 싣고 제대로 기획한 뒤, 성과를 보고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방식이 필요해요. 모든 분야를 똑같이 기획하고 누구도 소외하지 않으려 하면, 결국 아무것도 기획하지 않은 것과 비슷해집니다.
아직 우리 독자 기술로 달에 탐사체를 보내는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화성 탐사를 기획하는 데 몇억 원을 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그 돈을 재사용 발사체에 더 얹어 개발을 앞당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 같은 사람의 의문입니다. 물론 저도 한국인 우주인이 한 명 더 나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더 필요한 것은 또 한 명의 우주인보다 위성 데이터, 우주 데이터센터, 위성 활용처럼 비교적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결과를 낼 수 있고 우리가 잘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일 수 있습니다. 그런 곳에 자원을 몰아주면 좋겠어요.
하지만 사방에서 “그럼, 우리 분야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리더는 때로 그런 목소리를 무릅쓰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라고 세우는 사람입니다. 모든 목소리를 똑같이 듣고 모두를 만족시키라고 세운 것이 아니죠. 그런데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리더가 많다고 느낍니다. 리더는 ‘배드 캅’ 역할도 감당해야 해요. 우리는 리더가 늘 착하고 관대하며,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모두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습니다.
저도 많이 반성합니다. 서른 살 무렵 우주인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 우주인이니까 대한민국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만나고, 사람들이 우주인에게 바라는 소원을 모두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우주인의 모습을 제가 실현해 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돌아보면 그게 제가 가장 잘못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 생각이 저를 갉아먹었어요. ‘누군가는 나를 미워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과 유인 우주라는 큰 그림 안에서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훨씬 건강하게 일했을 것 같아요. 요즘 한국의 많은 사람도 비슷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모두에게 좋아 보이고 싶어 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차,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집을 원합니다. 삶의 기준이 지나치게 똑같죠.
김세연: 판단 기준에서 민주성과 효율성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고, 정말로 중요한 성취에서는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뵈었을 때 위성과 발사체 분야는 다른 나라들이 앞서 있고 우리는 후발 주자인 상황에서 한국이 우주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우주 통신에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죠. 벌써 1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이소연: 그때 시작했으면 지금 스페이스X처럼 하고 있을 거예요.
김세연: 당시 저는 ‘우주 통신’이라는 단어 조합도 생소했었는데, 뭔가 이유가 있으니 그런 말씀을 하셨을 텐데 왜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무언가를 먼저 보셨던 것 같습니다.
이소연: 우리가 통신을 잘하고 있었잖아요. 지상의 인터넷과 이동통신은 그때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요.
김세연: 리더에게는 소통 능력과 각 분야의 전문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핵심은 전략적 판단인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차원에서 보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AI 기술이 긴 겨울을 지나던 시기에도 연구비를 끊지 않았던 곳에서 지금의 싹이 튼 것처럼,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분야라도 완전히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기본적인 예산 배정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 예산을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전략적 목표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해서 적정하게 자원을 배분하고, 동시에 연구 다양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균형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소연: 그 말씀을 들으니 과학 기술은 제너럴리스트가 리더를 하는 것이 맞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당시 대표님이 그 질문을 하셨을 때 제가 우주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문가였다면, 우주 통신이라고 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제 원래 전공은 우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꽤 제너럴리스트였어요. 제 몸이 우주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갑자기 우주 분야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혼자 우주 분야를 공부하던 때였어요. 우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니 통신도 있고 데이터도 있고 에너지도 있었습니다. 한창 공부하던 시기였고, 특정 분야에 대한 편향이 없었죠.
만약 제가 유인 우주 분야에서 10년간 연구한 뒤 우주인이 되었다면 “빨리 제2의 우주인을 만들어 유인 우주 분야를 더 해야 한다”고 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에 흔들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제너럴리스트였습니다. 우주에 다녀온 뒤 사람들이 계속 “대한민국은 우주 분야에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어떤 선택이 우리나라에 가장 이상적일지 혼자 고민했어요. 어린 마음에 그것이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자들의 질문에 잘 답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우주 통신이라는 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국제우주정거장에는 16개의 파트너 국가가 있습니다. 리더십은 러시아와 미국이 가지고 있었지만, 나머지 14개국도 각자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어요. 인구와 과학 기술 예산 규모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캐나다는 우주정거장의 로봇 팔을 만들어 캡슐을 옮기고 결합하는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저런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자원과 기술이면 캐나다보다 못할 이유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독도 미생물(Donghaeana dokdonensis)’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일도 있습니다. 우주정거장에서 영상을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장비가 일본 것이었어요. 미국 영상도 일본 장비로 내려오고, 러시아 영상도 일본 기계로 내려옵니다. 모든 영상을 일본이 검토하죠. 그런데 제가 우주 환경에서 실험을 설명하면서 “이 미생물은 독도 미생물입니다”라고 말한 장면이 포착된 거예요. 그 미생물의 이름이 실제로 ‘독도’였는데, 일본에서 우주인의 입에서 ‘독도’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이 한국에 전달됐습니다.
저는 우주에서 갑자기 연락을 받았습니다. 생물 실험으로 재현만 하고 논란은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였어요. 국내 언론도 크게 반응했죠.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은 이 장비 하나를 우주정거장에 올려놓고 이걸 다 조종한다고? 그럼, 우리도 뭐 하나 올려놓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미국도 어지간하면 일본에 맞춰주거든요. 미국이 그 장비를 만들 능력이 없어서 일본에 맡긴 것이 아니에요. 자신들은 더 큰 일에 집중하고, 이 역할을 일본에 맡긴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맡을 수 있는 역할 하나쯤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끼리 내부에서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싸우느라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픈 거예요. 우리가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아마 그 고민 끝에 나온 답이 우주 통신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넷과 핸드폰 통신을 잘하는 나라라면 우주에서도 비슷한 일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특정 분야에 편향되지 않은 제너럴리스트이면서도 기술에 대한 존중과 존경, 약간의 판타지가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김세연: 매우 인상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우주항공청의 과제 기획은 정렬되지 않은 소규모 과제들로 파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다르파(DARPA,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의 방식을 보면 하나의 담대한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그 아래 여러 소과제를 배치합니다. 정보 보안상 연구자들은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격리된 상태로 연구를 수행하지만, 작은 조각들을 다 모았을 때는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됩니다. 이런 방식의 소과제 기획도 가능할 텐데요.
이소연: 가능하죠. 다만 과제를 내는 리더의 머릿속에 완성될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소과제는 그런 조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n분의 1로 나눈 경우가 많습니다.
김세연: 백지에서 몇 가지 큰 그림을 먼저 그렸다면, 그 과제들을 다시 중과제와 소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 개의 거대 과제가 있다고 하면, 그 과제들에 사용되는 과학 원리나 기술이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공유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하나의 연구가 복수의 프로젝트에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하면 자원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텐데요.
이소연: 소과제를 할 때 말씀하신 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소과제를 하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려면, 그 소과제가 다른 조각들과 합쳐져 하나의 큰 목표를 이뤄야 합니다. 그래야 팔로어로서 자신의 중요함을 느끼죠.
김세연: 그것이 로켓 클리너이고 성당을 짓는 벽돌공이고요.
이소연: 그렇죠.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n분의 1로 쪼개면 그 조각을 모두 모아도 큰 호랑이가 되지 않아요. 스타트업 지원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AI든 우주든 생명 과학이든 의료든 스마트팜이든, 지금은 여러 스타트업에 지원금을 n분의 1로 나눠 줍니다. 하지만 우주를 예로 들면, 지원받는 스타트업들이 협력해 달에 하나의 모듈을 띄우는 큰 그림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스타트업은 지원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김세연: 그런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이소연: 미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큰데, 한국은 이렇게 많은 국비를 투입하고도 왜 잘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매출을 만들어 주지 않고 지원금만 주기 때문이라고 봐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소기업 지원은 단순히 보조금을 나눠 주는 방식과 달라요. 나사가 필요한 기기를 개발해 달라고 해서, 스타트업이 개발해 주면 대가를 지급합니다. 그러면 그 회사는 그 기기를 계속 만들 수 있는 마켓이 형성돼요. 나사는 그 제품을 활용해 미션을 달성합니다.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그냥 1억 원을 지원해 줘요. 그리고 스타트업은 그 돈이 끝나면 좀비 기업이 되고요.
김세연: 나사가 어떻게 하는지 뻔히 보고도 왜 같은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까요?
이소연: 그 방식을 채택하려면 지원해 주는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쓰고 복잡한 기획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해야 하니까요. 나눠 주는 돈만큼 준비 과정에 비용을 써야 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준비에 쓰는 돈의 중요성을 잘 몰라요. 준비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누군가 그 돈을 가져갈까 봐 걱정합니다.
김세연: 그래서 기획 자체를 외부 용역에 맡기죠.
이소연: 그러니 기획에 오너십이 없습니다. 잘못되면 용역 탓을 하면 됩니다. 기획은 자신들이 직접 해야 해요. 자신들의 그림이어야 해요.
김세연: 앞선 〈스케치 다이얼로그〉의 행정 편에서도 다뤘지만, 지나치게 짧은 주기의 기계적 순환 보직은 행정의 전문성 축적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소연: 그것도 게으름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단기 순환 보직의 취지는 유착 방지입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죠. 그렇다면 고인 물이 썩지 않게 관리하면 되지, 왜 무조건 물을 흘려보내야 할까요. 한자리에 있는 사람이 부패하지 않도록 만들면서 전문성을 기르면 되잖아요. 대한민국이 고효율을 추구하며 만든 여러 제도 가운데 상당수는 어려운 문제를 정교하게 풀기보다 단순한 규칙으로 회피하려는 게으름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김세연: 좋은 결과를 내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 열정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쉽게 성과를 얻으려 하다 보니 투입은 줄고 결과의 수준도 낮아집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스템을 백지에서 설계할 때, 고인 물이 썩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소연: 제너럴리스트형 리더십이 자리 잡으면 이 문제도 풀릴 수 있다고 봐요. 과학자를 존중하고 과학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사람이 기획을 맡으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싶을 겁니다.
김세연: 그 리더가 3년이나 5년 만에 떠나야 한다면요?
이소연: 그렇다면 그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없겠죠.
김세연: 생태계가 자리 잡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저는 20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소연: 최소 10년, 안정적으로는 20년까지 봐야 할 것 같아요. 다만 생태계가 제대로 형성되면 개인의 임기는 덜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고 리더가 될 만한 다섯 명이 3년씩 이어 맡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같은 방향을 이해하는 사람들 안에서 순환해야 해요. 그런 인재 풀이 만들어지고 그 풀 안에서 순환한다면 임기가 조금 짧아도 괜찮습니다.
김세연: 그런데 그 풀에 잘못된 사람이 한 명 섞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요.
이소연: 그럼, 그 풀 전체가 이상하게 바뀔 수 있죠. 그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끌어들일 테니까요.
김세연: 결국 제도만으로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고, 어떤 사람들이 제도를 운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소연: 제가 우주에 다녀온 지도 거의 20년이 되어 가고,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산 지도 15년 가까이 됩니다. 그동안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한국을 떠나 있는 저를 나쁘게 말하는 분들에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 자신도 밖에 있다는 사실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으로서 과학 기술과 우주 분야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건강을 잃을 만큼 크게 갖고 있었는데, 물리적으로 한국 밖에 있으니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었죠.
그 시간의 긍정적인 부산물도 있습니다. 멀리서 계속 지켜보고, 혼자 오래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저도 대표님과 같은 고민을 합니다.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든 아니든 해법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계속 생각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보니, 결국 가장 밑바닥에는 교육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문제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률·사법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말할 때도 그 기저에는 교육이 있어요. 윤리와 책임, 공동체에 대한 교육은 한두 살 때부터 가족 안에서 시작됩니다. 형제와 경쟁하고 협력하고, 부모에게 도움받고, 어린 동생을 돕는 건강한 공동체 경험은 학교에 가기 전에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이미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저는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이 오는 스페이스 캠프에 가끔 봉사를 갑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가정에서 윤리와 책임을 배운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눈에 띄게 다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윤리와 책임을 배우지 못했는데 머리는 아주 좋은 아이입니다. 정신적·윤리적 토대가 형성되지 않은 채 영리하기만 한 아이가 특목고와 명문대, 법대와 의대로 가서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 문제의 기저를 계속 따라 내려가면 결국 부모와 가정이 시작이에요.
김세연: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부모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입니다. 공동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가 다시 부모가 되면, 같은 문제가 세대를 거쳐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행태나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행동이 집단 안에서 재생산되기 시작하면, 결국 성악설이 작동하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정적인 학습은 훨씬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소연: 맞아요. 기하급수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김세연: 그 악순환을 어디에서 어떻게 끊을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이소연: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공동체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사람을 분리하는 방식까지 떠올릴 수 있지만, 윤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겠죠.
김세연: 모든 문제의 근저에 교육이 있다는 말씀을 공교육에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부모로서의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것이죠.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입시 과목 아니면 자습만 시키는 식이 아니라, 부모란 무엇이고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배우게 할 수 있습니다.
이소연: 좋은 생각이네요. 실제로 부모가 될지 여부와 별개로, 누구에게나 부모가 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직 성인이 아닌 아이들에게 국회와 삼권분립을 가르치고, 투표가 권리이자 시민의 책무라고 알려 줍니다. 그 아이가 나중에 이민을 갈 수도 있고 투표할 기회를 갖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민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가르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너희는 언젠가 부모가 될 수 있으니 부모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가르칠 수 있겠네요. 부모 소양 교육을 공교육에 넣는 것은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세연: 〈스케치 다이얼로그〉의 취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발견입니다. 오늘은 과학 기술 체계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를 논의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립된 시스템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메커니즘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앞으로 교육 분야를 다시 논의할 때 반영해 보겠습니다.
이소연: 그런 소양 교육을 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는 이해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발달 단계에 맞춰 조금씩 시작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김세연: 예를 들어 심리 모델에 대한 이해도 발달 단계에 맞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는지,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이 그런 상태를 만들 수 있는지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것이죠. 단순히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추상적인 말보다, “이런 말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이런 말은 관계를 좋게 만든다”처럼 훨씬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겁니다.
이소연: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생기면 반드시 어른에게 이야기하고 선생님에게 알려야 한다는 행동 지침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해요. 그러면 가정에서 학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아이가 “학교에서는 이런 상황이면 선생님에게 말해야 한다고 했어요”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부모도 긴장하게 되잖아요. 아이를 통한 역교육이 일어나는 거죠.
김세연: 맞습니다. 환경 교육이 자리 잡기 전에는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고 버리던 부모가 아이의 지적을 받고 뜨끔해서 행동을 바꾼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런 역교육의 요소를 여러 곳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과학 기술계에서 리더와 팔로어,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했습니다. 앞으로는 AI와 로봇이 일상에 들어오면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자연과 동물, 기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수평적인 인식으로 옮겨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소연: 그 방향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피지컬 AI가 보편화되면, 아이들에게 “우리 집 기계보다 옆집 아이의 생명과 안전이 더 소중하다”는 점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인간과 동물, 자연과 기계를 모두 존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그때는 인간의 생명을 우선하고, 동물이 기계보다 앞선다는 최소한의 기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우리 집의 집안일을 해주는 로봇을 옆집 아이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교육도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똑같은 교육을 반복했고, 그 결과가 지금 교육 현장의 여러 문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세연: 과학 기술에서 출발한 논의가 인간의 존재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의 교육 체계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시 과학 기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거나 지나치게 소홀히 다뤄진 분야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소연: 대한민국에서 기초 과학과 자연 과학이 소외되어 온 것이 여전히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공학자이고, 공학자 가운데는 자연 과학을 당장 쓸모가 드러나지 않는 먼 이야기나 몽상가의 일처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과학이 없었다면 공학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뉴턴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도 없었고, 오늘의 공학도 없었겠죠.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이라면 5년 뒤 만들어 팔 반도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반도체 다음에 무엇이 올지를 탐구하는 순수 과학에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너무 외면해 왔어요.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말 그대로 예입니다. 이 사례 하나에 논의가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달의 헬륨-3를 미래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를 실제 에너지로 전환해 상용화하는 기술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달에서 헬륨-3를 가져와도 에너지원으로 쓸 방법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문제는 공학자보다 물리학자가 먼저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물리학의 깊은 역사와 전문가층을 가진 러시아와 유럽이 이런 연구를 주도할 가능성이 큰 이유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산유국과 자원 부국이 이런 미래 에너지 연구에 투자한다는 점이에요. 석유로 돈을 벌어 본 사람들이 에너지가 얼마나 큰 부가 가치를 만드는지 알기 때문이죠. 석유가 고갈된 뒤를 준비하는 겁니다.
오히려 석유가 없어 고생한 우리 같은 나라가 미래 에너지를 선제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언젠가 헬륨-3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원유를 수입해 정제 기술로 부가 가치를 만든 것처럼 새로운 산업을 선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려면 지금도 늦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기초 과학과 물리학에 꾸준히 투자했다면 지금 선두권에 가까워졌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대통령이고 과학 기술 수장이냐에 따라 기초 과학을 갑자기 키우고 외국 교수를 불러왔다가 몇 년 뒤 예산을 줄여 모두 떠나게 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기초 과학과 자연 과학은 그렇게 들쑥날쑥한 투자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잖아요.
김세연: 녹색 성장에서 창조 경제로, 다시 사람 중심으로 구호와 방향이 계속 바뀌었죠.
이소연: 어떤 상황이라 해도 과학의 기저에 있는 기초 과학 없이는 공학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김세연: 과학 기술 리더의 요건에 한 가지를 더 보태야겠습니다. 방금 주신 말씀에서 자격 요건을 하나 더 추출해 보자면, 과학과 공학을 관통하는 통찰입니다. 과학의 이론과 원리가 공학으로 구현되는 연결 고리, 공학 기술이 산업과 실제 응용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모두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소연: 정말 중요합니다. 그 연결을 이해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 투자하게 되죠.
김세연: 그렇죠. 그럼, 과학 기술 리더가 통과해야 할 문이 점점 더 좁아지겠네요.
이소연: 어렵지만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다고 봐요. 산삼을 캐듯 열심히 찾으면 되죠. 대한민국 리더십에서 아쉬운 점은 행정의 리더가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신뢰 관계를 만들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분야 밖의 인재 풀은 빈약하거나 왜곡되기 쉽습니다.
김세연: 부모 소양 교육을 공교육에 넣는 방안을 논의했듯, 새로운 국가의 설계도에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교류할 환경도 포함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소연: 오바마 행정부 시절 우주인 출신으로 미국 항공우주국장을 맡은 분과 우연히 가까워져 몇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분은 나사를 떠난 뒤 10년 정도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국장으로 돌아왔어요. 낙하산처럼 보일 정도였죠.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다시는 우주 분야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나 계시다가 어떻게 다시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도와 달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그 친구가 오바마였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미국에서는 법대 나온 정치인의 오래된 친구 가운데 우주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맥 인사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어요. 내 인맥이라는 이유로 자격이 부족한 사람을 앉히면 문제죠. 하지만 자격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 친구를 돕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잠시 접고 공직으로 오는 인사는 가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주 드물게 그런 일이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자신의 친구가 대통령으로 성공하도록 개인 경력을 잠시 접고 행정부에 들어오는 지원군을 종종 볼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행정부가 성공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치 지도자가 성장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같이 학생 운동을 하고 같이 정치한 사람들이에요. 과학, 예술, 교육 분야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비슷한 사람들로 철옹성처럼 둘러싸입니다. 그러면 다른 분야의 좋은 인재가 그 담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분야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거기로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수장이 되는 일이 생깁니다.
김세연: 정작 그 분야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위에서 내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소연: 가장 좋은 레퍼런스 체크는 지도자의 가까운 친구 가운데 해당 분야를 깊이 아는 사람이 있는 경우입니다. 대통령이 그 친구를 직접 임명할 수도 있지만, 그 친구에게 “네가 믿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인이 오랫동안 지켜보고 신뢰한 사람을 추천한다면 그만큼 검증된 후보가 올 가능성이 커지겠죠. 그래서 다양한 네트워크가 정말 중요해요. 리더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자기 분야 밖에도 깊고 폭넓은 신뢰 네트워크를 갖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세연: 겉으로는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장을 체계적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소연: 어린 시절부터 과도한 경쟁과 분리를 줄이기만 해도 달라질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운동하는 아이는 평생 운동만 하고, 공부하는 아이는 특목고에 가서 공부만 합니다. 서로 만날 틈이 없어요. 과학고에 다니더라도 취미로 예술을 충분히 경험하고, 예술에 재능과 열정이 생기면 예술대학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술고를 졸업한 학생도 과학에 뒤늦게 큰 관심을 갖고 실력을 쌓았다면 과학기술원으로 갈 길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런 이동이 사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전체 정원의 5퍼센트나 10퍼센트 정도는 다른 경로에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필요하다면 특별 전형을 활용해서라도 분야 사이의 이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술에도 과학이 필요하고, 과학에도 예술이 필요하니까요. 미국 대학에서는 2년제 지역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이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길이 너무 묘연해요. 기존 학생 부모들이 반대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그 소음을 감수하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고,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만납니다.
서울에서 자란 학생이 광주에서 올라온 학생과 친구가 되어야 지방의 현실도 이해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강남에서 자란 아이들이 강남 아이들끼리만 친구가 되어서는 어렵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섞여야 해요. 요즘은 가난한 집 아이와 놀지 못하게 하거나 임대 아파트 놀이터에 가지 못하게 하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계층이 섞여야 분야도 섞일 수 있습니다.
김세연: 소득 계층뿐만 아니라 여러 기준에서 소셜 믹스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연령으로는 언제부터 이런 경험이 시작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이소연: 아주 어릴 때부터요. 어린이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도 그때부터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세연: 학교에 다니는 동안 클럽이나 스포츠 활동을 통해 섞일 수도 있고, 졸업한 뒤에도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교류하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겠습니다.
이소연: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1991년에 중학교에 들어가 2008년에 박사 과정을 마쳤으니, 한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닷컴 버블을 거쳐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시기에 학생으로 살았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기에 좋은 시기였어요. 요즘 학교 폭력이나 계층 분리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금 초등학생이었다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부유한 친구의 부모들이 예전처럼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저희 집은 가난했지만 제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부잣집 엄마들이 저를 자주 초대해 자기 애들이랑 놀게 했어요. 저와 어울리면 자기 아이도 공부를 조금 더 잘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셨겠죠. 그 덕분에 제가 원래는 접근하기 어려웠을 계층의 삶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태권도를 한 경험도 있습니다. 영재반 수업이 끝난 뒤 운동하려면 밤 9시 일반부에 가야 했어요. 여중생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 일반부 태권도장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중장비를 운전하거나 육체노동을 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저씨들이 일을 마치고 스트레스를 풀러 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그런 오빠들과 함께 운동하고, 운동이 끝나 그분들이 맥주를 마시러 가면 저는 옆에서 주스를 마신 뒤 집에 돌아갔어요. 그때 또 다른 세계를 봤죠. 과학고에서도 여학생회와 밴드 활동을 했고, 서울대 학생들과 교류하며 합창 공연도 했습니다. 비슷한 학업 경로를 거친 다른 친구들보다 제 주변의 네트워크가 훨씬 풍성하고 다양해졌습니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에 가고 우주인이 되면서 계층과 분야를 가로질러 제 네트워크가 더욱 복잡하게 섞였습니다. 그 경험이 정말 감사해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취업하지 못해서 한동안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시간 강사로 물리학을 가르쳤습니다. 일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우울하던 때였어요. 동네 학교에서 물리학 강사 한 명이 갑자기 그만둬 다음 학기 수업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들었습니다. 요즘 하는 일이 없다면 이번 학기에 물리학 입문 수업을 맡아보겠느냐는 제안이었어요.
수락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내가 한국에서 카이스트 박사까지 마쳤는데, 광주의 어느 전문 대학에서 시간 강사가 부족하다고 연락이 오면 달려가 가르칠 수 있을까? 이 월급을 받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못 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취업이 잘되지 않았고, 당시에는 악성 댓글로 인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남아 있어 정상적인 취업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 일이라도 하게 됐죠.
커뮤니티 칼리지 교실에는 제가 이전까지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반에 20명이 있다면 15명은 육체노동을 하면서 직업을 바꾸거나 자격을 높이기 위해 야간 수업을 듣는 성인이었습니다. 나머지 5명은 공부를 아주 잘하지만 4년제 대학에 갈 돈이 없어 지역 대학에 온 학생들이었어요. 두 집단이 한 교실 안에서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 있었어요. 덧셈과 뺄셈도 어려워하는 마흔 살 노동자와, 성적만 보면 하버드에 갈 수 있지만 학비가 없는 고등학생이 같은 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수업을 2~3년 했어요.
그 경험을 하면서 ‘나는 한국에서 왜 이런 사람들을 보지 못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과학고와 카이스트라는 경로 안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볼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광주의 전문 대학에도 직업을 바꾸려 애쓰는 성인이 있었을 것이고, 실력이 뛰어나지만 돈과 기회가 부족한 학생이 있었을 텐데, 저는 카이스트에서 박사까지 하는 동안 그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과 교육을 말하려면 먼저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정과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에서 우주인이라며 과학 교육이 어떻다고 떠들었는데, 의미 없는 짓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그런 경험을 한 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섰고 교육 예산이 크게 줄었습니다. 커뮤니티 칼리지의 시간 강사 자리가 대거 사라졌고 저도 다음 학기부터 수업을 맡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특별한 설명도 없었습니다. 정규 교원들은 예산 삭감 때문에 시간 강사가 맡던 수업까지 떠안았죠. 그때 능력과 무관하게 일자리를 잃는 비정규직의 아픔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우주인이 되지 않고 박사 졸업 뒤 대기업에 취직했다면, 그런 사정을 모른 채 ‘공부를 못했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년 계약이 끝난 뒤 연장되지 않아 떠난 사람들의 마음도 이랬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과정 전체가 감사해요. 다양한 시선과 사람의 사정을 직접 알고 바라보는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엘리트 가운데는 자신이 그런 현실을 이미 다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김세연: 한 개인이 자신과 다른 속성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을 최대한 많이 만날 기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전체 시스템 설계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노드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사회에서도 사람이라는 노드뿐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 사이의 연결, 즉 엣지(edge)가 늘어날수록 네트워크의 가치가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오늘 논의에서 설계도에 꼭 넣어야 할 요소를 하나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이소연: 그 말씀을 들으니 더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회든, 어떤 기능과 목표를 가진 집단이든 저는 다양성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팬데믹에서도 보았듯 다양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생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아이디어는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수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듣고 고려는 해야 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하고 시급한 가치는 다양성과 포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의 효율만 보면 구성원이 균일한 조직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전쟁 직후 먹고사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때까지는 그런 방식이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양성과 포용이 없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효율이라는 망령에 갇힌 과거 세대가 다양성을 막으려 전방위적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처럼 출생률이 낮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다양성마저 사라지면 국가의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김세연: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은 과학으로 옮겨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생물의 종 다양성을 보존하듯 과학의 세부 분야와 연구 주제의 다양성도 보존해야 하겠죠.
이소연: 맞습니다. 한 연구 기관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라고 해서 모든 연구원이 항공우주공학 전공자여서는 안 됩니다. 물리학자와 생물학자도 들어와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분야를 묶더라도 그 안에 다양성이 있어야 생존과 변화에 더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김세연: 앞서 이야기했던 소셜 믹스와 함께 다양성의 문제는 ‘존재의 다양성’과 ‘연결의 다양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나온 이 두 요소는 앞으로 이어질 논의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삼아 보겠습니다.
이소연: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어 하고, 만나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저는 그런 행동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뇌가 빅데이터 프로세싱을 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지난 50년의 경험이 거대한 데이터처럼 처리되어 이 방향으로 가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알려 주는 무의식적 행동일 수 있습니다.
김세연: 그것을 직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호기심이나 탐구 정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오늘 과학 기술에서 출발해 리더십과 신뢰, 교육, 다양성까지 여러 영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말씀해 주신 통찰을 잘 압축하고 정리해, 더 나은 생태계를 만드는 재료로 쓰일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귀한 시간과 깊이 있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이소연: 저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